〈 4화 〉 4화. 순경, 무림 고수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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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순경, 무림고수가 되다!
쏴아아아……!
밤이 깊어지자 동하가 처음 칼에 찔렸던 그날처럼 비가 퍼붓기 사작했다. 중환자실 복도에 앉아 당직을 서고 있던 간호사는 갑자기 배가 살살 아파오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마침 그때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며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비에 흠씬 젖은 우비를 걸친 남자가 내렸다.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모자의 챙 안쪽에서 핏발선 눈을 번질거리고 있는 남자는 리길상이었다.
“하, 씨발! 강동하 이 간나는 끝까지 사람을 귀찮게 하니?”
리길상이 나직이 중얼거리며 중환자실을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드르르륵!
여닫이를 열고 방안으로 들어오자 특유의 약품냄새가 코를 찔렀다.
“후우우웁!”
그 냄새를 깊이 들이마시며 리길상은 여섯 개의 침대를 하나씩 확인했다. 그리고 마지막 침대에 옴짝달싹도 못하고 누워 있는 동하를 발견했다.
“흐흐흐흐! 산송장이라고 하더니만, 정말 눈만 말똥말똥 뜨고 디비 자빠져 있네? 느그집 안방인 줄 아니?”
리길상이 비릿하게 웃으며 품속에서 시퍼렇게 날이 선 사시미를 뽑아들었다. 칼끝으로 동하의 심장을 조준하며 리길상이 음산하게 말했다.
“이 칼 기억나니? 한 달 전에 강 순경의 가슴에 꽂혔던 바로 그놈이야. 내가 강 순경을 위해서 특별히 같은 칼로 준비를 했지. 어떠니? 감동 받아 울고 싶지 않니?”
조준을 마친 리길상이 칼을 확 쳐들었다.
“같은 칼에 심장을 두 번씩이나 찔리는 재수 없는 새끼는 아마 너 밖에 없을 거다!”
동하가 병상을 박차고 일어나 리길상의 턱에 주먹을 쑤셔 박은 것은 그때였다.
쯔거억!
“우웩!”
자신의 턱뼈가 으스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리길상이 느낀 감정은 딱 두 가지였다.
충격과 불신!
식물인간 상태라고 들었던 동하가 오뚜기처럼 발딱 일어선 것은 충격이었고, 병신으로만 알았던 순경의 주먹이 지금껏 자신이 상대했던 어떤 조폭보다 강하다는 것은 믿을 수가 없었다.
“이 개새끼야!”
충격과 불신이 분노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앞니가 몽창 부러진 리길상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지르며 동하에게 사시미를 휘둘렀다. 그의 눈에는 아직도 병신 찐따로만 보이는 순경의 멱을 따버릴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이 서려 있었다.
붕! 부웅!
“어?”
하지만 동하는 섀도우 복싱을 하듯 칼날을 살짝살짝 잘도 피했다.
“진짜 죽인다아!”
리길상이 최후의 살기를 끌어 모아 찌른 칼날을 동하가 고개를 살짝 비틀어 아슬아슬하게 흘려보냈다.
“헉!”
동시에 동하가 주먹이 시야를 가득 메우는 것을 보며 리길상이 숨을 훅 들이켰다.
꽝!
동하의 주먹 끝에서 빛이 희미하게 어른거리는 것을 본 것도 같다고 생각한 순간, 둔중한 타격음과 함께 두개골이 흔들리는 충격이 느껴졌다.
“끄어어어....!”
쿠우웅!
이번만은 독종 리길상도 견디지 못하고 병실 바닥에 뒤통수를 처박고 말았다. 동하의 주먹 자국이 선명하게 찍힌 채 움푹 파인 그의 얼굴에선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핏물이 꿀럭꿀럭 새어나오고 있었다.
“너어……, 니가 어떻게……?!”
리길상이 가물거리는 의식의 끝자락을 간신히 붙잡고 자신 앞에 당당하게 서 있는 동하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동하가 한 팔순 노인은 됨직한 가래 끓는 소리로 웃어젖혔다.
“켈켈켈켈! 발경이 제대로 된 주먹을 처맞고도 기절하지 않다니, 독종은 독종이구나. 자,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매타작을 시작해볼까나.”
쾅! 쾅! 쾅! 쾅!
동하가 리길상을 깔고 앉아 안면에 주먹을 연달아 내리꽂기 시작했다.
* * *
“흐음……, 지금쯤 정리가 끝났겠지?”
그 시각, 김인철 소장은 모처럼 한가한 대림지구대의 소파에 앉아 믹스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자신들의 자리에서 조서를 정리하고 있던 신영우 경사와 박대식 경위가 그를 안심시키려는 듯한 마디씩 했다.
“리길상이 어떤 놈입니까?”
“진즉 끝내고 어디서 한 잔 빨고 있을 겁니다.”
김인철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왜 아무 연락이 없지?”
“길상이가 우리 부하도 아닌데 따박 따박 보고를 하겠어요?”
“내일 차이나타운에서 얼굴 보면 그때 얘기하려고 할 겁니다.”
“그렇겠지?”
“그럼요!”
그제야 김인철이 인상을 풀었다.
“큭큭큭! 그럼 이걸로 강 순경 건은 깔끔하게 정리됐다고 생각해도……, 흐어억!”
김인철이 웃다 말고 비명을 질렀다. 지구대 출입문을 열고 들어오는 리길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리길상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콧잔등을 중심으로 얼굴 전체가 찐빵처럼 부풀어 오른 것이 보톡스 주사를 한 백 대쯤 한꺼번에 맞은 사람처럼 보였다. 무엇으로 어떻게 처맞았는지 콧구멍에서는 아직도 코피와 진물이 찔끔찔끔 새어나오고 있었다.
“허억! 너……, 너는……?!”
형편없이 망가진 리길상보다 김인철을 더 놀라게 만든 것은 조선족 깡패의 뒷덜미를 틀어잡고 들어온 동하였다. 리길상의 손에 죽었다고 믿었던 동하가 오히려 그를 피투성이로 만들어 끌고 왔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강순경, 너 언제 깨어났어?”
“설마 네가 리길상을 저렇게 만들었냐?”
신영우와 박대식도 떨리는 소리로 물었다. 동하가 리길상을 지구대 안쪽으로 거칠게 밀쳐놓으며 대답했다.
“두어 시간 전쯤 깨어났어요. 그런데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저를 죽이려고 칼을 빼든 이 자식이 보이더군요.”
“으윽!”
휘청거리며 자신들 쪽으로 밀려오는 리길상을 쳐다보는 김인철과 신영우, 박대식의 눈가에 의혹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 악명 높은 조선족 깡패가 이파리 두 개짜리 순경에게 피투성이가 되도록 처맞았다는 사실 자체를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그러니까 너를 죽이려고 병원에 잠입한 리길상을 강 순경이 아작냈단 말이지?”
“네, 맞아요.”
“하, 하지만 어떻게?”
“네?”
“리길상은 길림파 행동대장이잖아. 그런 리길상을 네가 어떻게……?”
동하가 코피를 질질 흘리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리길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하도 리길상, 리길상 하기에 대단할 줄 알았는데, 동네 양아치만도 못하던데요.”
“우와악! 이 개씹새끼가 방금 뭐라 했니?!”
격분한 리길상이 동하를 향해 주먹을 날리며 덤벼들었다.
우직!
“컥!”
리길상의 주먹이 동하에게 닿기도 전에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그의 얼굴이 뒤로 휙 젖혀졌다. 동시에 콧구멍에서 다시 피가 콸콸 쏟아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인철과 신영우 그리고 박대식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너무 빨라 동하의 주먹이 조선족 깡패의 콧잔등에 꽂히는 것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끄아아악! 내 코! 내 코!”
코피가 뿜어지는 얼굴을 감싼 채 지구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리길상과 그 앞에 당당하게 서 있는 동하를 질린 듯이 바라보던 김인철이 떨리는 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봐, 강 순경…… 확실한 거야?”
동하가 힐끗 김인철을 보았다.
“네? 뭐가요?”
“리길상이 병원에 침입해 널 해치려고 했다는 증거가 있느냐고? 증거도 없는데 사람을 이렇게 피떡으로 만들면 오히려 강 순경이 고발당할 수도 있어요.”
“이미 병원 CCTV를 확보했습니다. 거기에 중환자실에 침입하는 리길상의 영상이 선명하게 찍혀 있거든요.”
“어! 그, 그래…….”
또박또박 말하는 동하를 보며 김인철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신영우와 박대식도 벙찐 눈으로 동하를 쳐다보았다.
‘강순경 저 새끼 주먹만 세진 게 아니라 갑자기 똑똑해진 것 같네.’
‘죽다 살아나더니 인간이 확 달라졌어.’
동하가 리길상의 뒷덜미를 잡고 강제로 일으키며 김인철에게 물었다.
“리길상이 유치장에 처넣었다가, 내일 본청으로 송치해도 되죠?”
“어? 어어! 그, 그렇게 해.”
증거가 너무도 확실해 차마 이번에도 풀어주자고는 못 했지만 김인철은 속이 바싹 타들어갔다. 이대로 본청으로 압송된 리길상이 자신들의 사주를 받고 동하를 살해하려했다고 자백이라도 한다면 모든 게 끝장이었다.
“또 처맞기 전에 얌전히 들어가라, 응?”
리길상을 유치장으로 끌고 가는 동하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김인철이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리길상의 오른팔이자 길림파의 넘버3인 서봉춘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정확히 삼십 분 후에 서봉춘이 조직원 열 명을 거느리고 대림지구대로 들이닥쳤다. 리길상이 잔인한 승냥이 같다면 서봉춘은 포악한 곰처럼 생겨 먹었다. 보통 사람보다 목 하나쯤 더 큰 서봉춘의 거구는 마치 차력사처럼 울퉁불퉁한 근육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런 서봉춘이 지구대 안으로 밀고 들어와 눈을 부라렸다.
“길상이 형님 어디 계십네까? 우리 형님 풀어주지 않으면 이놈의 지구대를 확 엎어 버릴 겁네다!”
서봉춘 뿐만 아니라 부하들의 눈매도 예사롭지 않았다. 하나같이 눈빛이 서늘한 조선족 깡패들은 당장 리길상을 내어주지 않으면 지구대 안에서 칼춤이라도 출 기세였다.
“이봐, 봉춘이 일단 진정해. 자네들 형님은 현행범으로 잡혀 왔기에 풀어줄 수가 없어요. 내일 본청에서 조사가 끝나면 바로 풀려날 테니까 돌아가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라고, 응?”
“지금 당장 풀어줘! 당장! 풀어주지 않으면 오늘 밤 대림지구대가 피바다로 변할 수도 있다 이거야!”
“아 진짜! 이거야 원 말이 통하질 않으니…….”
김인철이 짐짓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는 동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목소를 최대한 낮추며 말했다.
“강 순경아, 계속 버텼다간 오늘 밤 우리 다 줄초상을 치르겠다. 일단 리길상을 풀어준 다음, 내일 본청 인력을 지원받아서 다시 체포하자.”
“지금 리길상이를 풀어주면 새벽에 인천항에서 밀항선을 타고 중국으로 튀어 버릴 텐데요?”
“그래서 뭐 어쩌자고? 싹 다 봉춘이 손에 죽자고?”
왈칵 짜증을 부리는 김인철의 얼굴을 동하가 지그시 바라보았다. 리길상을 사주해 자신을 해치려고 했던 김인철과 선배들이 끝까지 조선족 깡패를 비호하자, 부아가 치밀었다.
‘머지않아 당신들도 죗값을 치룰 테니, 그때까지만 참읍시다!’
속으로 다짐하며 동하가 스윽 몸을 일으켰다.
“제가 해결할 테니, 소장님은 물러나 계세요.”
“야, 강 순경! 봉춘이 성격 알잖아. 쟤 함부로 건드리면 큰일 나.”
타악!
뒤쪽에서 자신의 팔을 붙잡는 김인철의 손을 뿌리치고 동하가 자신보다 목 하나쯤 더 큰 서봉춘과 마주 섰다. 한동안 서봉춘의 무시무시한 눈빛을 받아내던 동하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봉춘아, 이 무식한 새끼야. 여긴 경찰서 지구대야. 너희 조폭들이 이렇게 떼로 몰려와 피의자를 내놓으라고 협박할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니들 형님 리길상처럼 피똥 싸지를 때까지 처맞지 말고 얌전히 집으로 돌아가 발 닦고 잠이나 자라, 응?”
“허……!”
황당한 듯 동하의 얼굴을 굽어보던 서봉춘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했다.
“강 순경 이 병신 새꺄! 지금 뒤지고 싶어서 환장을 했니?!”
서봉춘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솥뚜껑만한 손바닥을 확 쳐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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