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6화. 폭주 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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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폭주 순경
길림파의 보스 김철은 기분이 더러운 상태였다. 아지트의 맨 꼭대기 층에서 정부와 단잠에 빠져 있던 그는 꼭두새벽부터 부하들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억지로 깨어났던 것이다. 부하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의 단잠을 방해한 이유는 리길상 때문이었다. 어디선가 얼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처맞고 돌아온 리길상은 당장 전쟁을 치러야 한다며 보스를 깨우라고 고래고래 악을 썼다고 한다.
"허억…… 헉헉헉……!"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씩씩대고 있는 리길상을 김철이 아지트의 옥상에 놓인 의자에 앉아 지그시 보고 있었다. 김철의 등 뒤에는 조직원 스물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었다.
“전쟁을 벌이겠다고 했다지? 대체 어느 조직이랑 싸울라고 새벽부터 지랄이니?”
리길상이 뿌드득 이를 갈아붙이며 말했다.
“조직이 아니라 영등포경찰서 대림지구대입네다. 거기 강동하란 순경 새끼를 갈아 마시고, 유치장에 갇혀 있는 봉춘이와 아이들도 구해낼 겁네다.”
“그러니까 대림동 짭새들이랑 전쟁을 벌이시겠다?”
“맞습네다, 형님!”
순간 김철의 입술을 비집고 짜증기가 진하게 배인 한숨이 새어나왔다.
“하아……! 리길상 이 머저리 새끼야.”
“!”
김철의 눈빛이 변하자 리길상이 찔끔했다.
사실 김철은 리길상보다 세 살이나 어린 후배였다. 고향 장춘에서는 조직에 먼저 몸을 담은 리길상 밑에서 김철이 똘마니 노릇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었던 김철은 오래지 않아 리길상을 따라잡았다.
혈혈단신으로 경쟁 조직원 스물과 혈투를 벌여 그 중 대다수를 불구로 만든 다음부턴 확실하게 리길상을 젖히게 되었다. 그럼에도 김철은 고향 선배이자 한때 자신이 모셨던 형님인 리길상을 그나마 챙겨주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는 더 이상 챙겨주고 자시고 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위기감을 느낀 리길상이 김철을 향해 허리를 구십 도로 숙였다.
“잘못했습네다, 형님! 벌을 내려주시라요!”
시퍼렇게 날선 눈으로 리길상을 쏘아보던 김철이 손가락으로 그의 퉁퉁 부은 콧잔등을 가리켰다.
“니 얼굴 꼬라지도 대림지구대의 강동하라는 그 순경 놈 작품이니?”
“맞습네다. 형님, 저 억울해서 이대로 정말 못 살겠습네다.”
“그래서 복수 한답시고 지구대로 쳐들어가 그 새끼를 발라 버리겠다는 거니?”
“네! 그 간나새끼 멱을 따오겠습네다!”
김철이 간신히 화를 참는 목소리로 말했다.
“길상아, 한국 경찰이 아무리 호구로서니 조폭들이 지구대까지 쳐들어와 경찰들을 찔러죽이면 가만히 있겠니? 언론에서 대림동이 조선족 깡패들 때문에 무법천지가 되었다고 떠들어대서 서울청 강력반 애들이라도 들러붙어봐라. 우리가 수년 동안 피를 흘리며 터를 닦은 이 대림동에서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니?”
“죄, 죄송합네다. 형님 말씀 들어보니 제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네다.”
더욱 깊숙하게 머리를 숙이는 리길상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
리길상을 차갑게 쏘아보던 김철이 낮게 깔리는 소리로 물었다.
“대림지구대 유치장에서 도망쳐 나왔다 했니?”
“네? 네네!”
“유치장에는 왜 갇혔었니?”
“저어 그것이…….”
리길상이 망설이자, 김철이 미간을 찌푸렸다.
“가감 없이 솔직하게! 날 속이려고 들었다간 손가락 하나론 부족할 거 아니 모르니?”
“아, 알겠습네다. 실은 제가 지난밤 병원에 입원 중인 강동하를 찾아가 멱을 따버리려고 했습네다. 그런데 그 종간나 새끼가 갑자기 깨어나는 바람에 실패했고, 그 영상이 병원 CCTV에 고스란히 찍히는 바람에……. 미치겠습네다, 형님.”
“길상이 네가 우리 조직의 얼굴에 똥칠을 하고 다녔구나, 응?”
“죄송합네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네다!”
“날이 밝기 전에 청도로 향하는 밀항선을 타라!”
“네?”
흠칫 고개를 쳐드는 리길상을 보며 김철이 쏘아붙였다.
“못 알아듣겠니? 잠잠해질 때까지 대륙으로 건너가 죽은 듯이 엎드려 있으라.”
“하, 하지만 강 순경 그 간나새끼를 그냥 두고 떠날 수는…….”
“스으으……!”
김철의 눈가에 감도는 살기를 확인한 리길상이 다시 고개를 처박았다.
“당장 떠나겠습네다, 형님!”
이때 조직원 하나가 옥상으로 헐레벌떡 뛰어 올라왔다.
“형님! 형님! 큰일 났습네다!”
“넌 또 무슨 일인데 이리 호들갑이니? 새벽부터 단체로 미쳐 돌아버렸니?”
짜증스럽게 묻는 김철을 향해 조직원이 숨이 턱에 차서 보고했다.
“지금 아지트 밖에 대림지구대 짭새들이 몰려와 있습네다!”
“대림지구대 애들이 왜?”
“그게 저어…….”
자신을 힐끔거리며 말끝을 흐르는 조직원을 향해 리길상이 눈을 부라렸다.
“똑바로 말 못 하니?”
“그게 그러니까……, 길상 형님을 체포하기 위해서 우리 사무실을 수색하겠답네다. 어떡합니까?”
“하……! 이것들도 제정신이 아니네.”
이번엔 리길상보다 김철의 얼굴이 먼저 일그러졌다. 그는 리길상을 본토로 피신시키는 선에서 대림지구대와의 갈등을 무마시킬 계획이었다. 그런데 아지트를 수색하겠다니, 이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도발이 아닌가!
결국 김철은 마음을 바꿨다. 이번 기회에 리길상을 아작낸 그 강동하란 순경 나부랭이는 물론 대림지구대의 짭새들 전원에게 대림동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각인시켜주기로!
“길상아.”
“네, 형님!”
“애들 전원 집합시키라. 지금 당장. 그리고 허락 없이 우리 아지트에 한 발자국이라도 들여놓는 새끼는 경찰이든 뭐든 다 박살을 내버려라. 알겠니?”
“아……!”
리길상의 안색이 환해졌다.
* * *
동하는 아직 날이 완전히 밝지 않은 대림동 중앙시장 차이나타운의 끝자락에 서서 4층짜리 다세대주택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말이 좋아 주택이지 칠이 벗겨져 회색 콘크리트가 속살처럼 드러나고, 사방에 쩍쩍 금이 가다 못해 뼈대처럼 철근까지 드러난 그 건물은 붕괴되기 일보 직전처럼 보였다.
실제로 이 건물은 안전상의 이유로 철거예정이었다. 그런데 입주민들이 모두 떠난 후에 길림파가 터를 잡고 버티면서 철거는 차일피일 미뤄지다가, 결국 조선족 조폭들의 아지트가 되고 말았다.
이 불법적인 건물의 1층과 2층에서 길림파는 주로 마약을 팔고 매춘업을 했다. 그리고 3층과 4층은 조직원들의 숙소이자 사무실로 사용했다. 대림지구대는 물론 서울시의 모든 경찰이란 경찰은 이 건물 안에 들어가길 꺼려했다. 이 건물에 잘못 발을 들여놓았다간 어디서 날아왔는지도 모를 칼에 맞고 불구가 되거나, 더 재수가 없으면 시체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
“슬슬 진입을 시작해볼까요?”
동하가 사색이 되어 등 뒤에 서 있는 김인철과 신동우 그리고 박대식과 양 순경을 돌아보았다. 길림파의 아지트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며 필사적으로 버티는 선배들을 동하는 리길상을 일부러 풀어준 혐의까지 더해 감사과에 고발하겠다고 협박하여 억지로 끌고 왔던 것이다.
썩은 감을 씹은 표정을 짓고 있던 김인철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강 순경아! 야, 제발 정신 차리자. 여기 잘못 들어갔다간 시체도 찾을 수 없다는 거 너도 알잖아? 너 도대체 왜 그래?”
“그러게 리길상은 왜 풀어주셨어요? 그런 짓만 안 했어도 길림파의 아지트까지 들어갈 일은 없었을 텐데요.”
“아 글쎄! 리길상이는 저 혼자 탈출했다니까!”
“배가 아프다고 데굴데굴 굴러서 소장님이 문을 열고 들어간 틈에요?”
“그, 그렇지!”
“하, 씨발! 어디서 초딩들도 안 믿을 그런 뻥을!”
“뭐, 인마?”
“둘 중 하나를 선택하세요. 나랑 같이 길림파 아지트로 쳐들어가 리길상을 끌고 나올래요 아니면 지금 당장 본청 감사과로 가실래요?”
“또, 또 그놈의 감사과!”
이를 갈아붙이는 김인철을 향해 동하가 히죽 웃었다.
“제가 앞장설 테니까 너무 쫄지 말아요. 소장님과 선배들은 제 뒤만 받쳐주면 됩니다.”
“기어이 저 무저갱 속으로 들어가시겠다?”
“물론!”
“강 순경 넌 미친 새끼야.”
“제 어머니가 저 깡패새끼들 손에 돌아가셨어요. 미치지 않는다면 오히려 정상이 아니죠. 흐흐흐!”
동하가 이죽거리며 지옥의 입구처럼 불길한 분위기를 팍팍 풍기는 다세대의 현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울상으로 변한 김인철과 신동우, 박대식, 양 순경이 동하의 뒤를 따랐다.
다행히 1층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서 동하와 선배들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자 양쪽으로 죽 늘어선 방안에서 남녀의 거친 신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쯧~ 2층은 길림파가 운영하는 매춘업소라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리는 동하의 등 뒤에서 김인철이 재촉했다.
“2층에도 리길상은 없는 것 같으니까 빨리 3층으로 올라가자. 빨리!”
“그건 안 되죠. 매춘도 엄연한 불법인데, 어떻게 그냥 지나칩니까?”
“그래서 뭘 어쩌자고?”
쾅! 쾅! 쾅! 쾅!
“경찰이다! 당신들을 싹 다 성매매 금지법 위반으로 체포하겠다!”
발로 문짝들을 걷어차며 돌아다니는 동하를 선배들이 입을 떡 벌리고 지켜보았다.
“으악 씨발! 갑자기 웬 단속이야?”
“으앗! 나, 난 구경만 했어!”
“꺄아아악!”
갑작스런 경찰의 기습에 놀란 손님들과 아가씨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옷도 챙겨 입지 못하고 반라상태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손님들과 아가씨들을 지켜보는 김인철과 선배들의 안색이 똥색으로 변했다.
“아 씨발……, 좆 됐다.”
“이거 무사히 나가긴 틀린 것 같은데요?”
선배들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순식간에 2층을 쑥대밭으로 만든 동하가 3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자, 이제 3층으로 가시죠!”
3층도 1층처럼 고요했다. 동하와 선배들은 3층 입구에 서서 촉 낮은 백열등이 깜빡거리고 있는 기다리고 복도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강 순경아, 우리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쉬잇!”
동하가 손가락을 제 입술에 대며 자신을 설득하려는 김인철을 제지했다.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3층 복도를 뚫어져라 쏘아보던 동하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쥐새끼처럼 숨어 있지 말고 나와!”
덜컹! 덜컹! 덜컹! 덜컹!
동시에 좌우편으로 늘어선 방문들이 일제히 열리며 사시미와 손도끼를 꼬나 쥔 길림파 조직원들이 튀어나왔다. 약이라도 빨았는지 하나같이 눈빛이 심상치 않은 조폭들은 어림잡아도 사, 오십은 되어 보였다.
김인철은 물론 신동우와 박대식까지 동하의 팔을 붙잡고 우는 소리를 냈다.
“강 순경, 지금이라도 나가자 응?”
“이러다 우리 진짜 다 죽어!”
“나는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들이 있어, 인마!”
파앗!
“이제야 수색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왜들 이러십니까?”
동하가 선배들의 손을 뿌리치며 복도 끝의 방문을 노려보았다.
끼이이익!
그 방문이 천천히 열리며 리길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어~ 리길상이!”
리길상을 발견한 동하가 반가운 척 손을 번쩍 쳐들었다. 아직 콧잔등이 퉁퉁 부어 있는 리길상이 부하들의 앞으로 나서며 이를 갈아붙였다.
“이름 함부로 부르지 마라, 씨발새끼야! 내가 니 친구니? 뭐 잘못 먹고 왔니?”
“엥? 나는 우리가 제법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완전 짝사랑이었나 보네?”
“갈아 마셔도 시원찮은 벌레 같은 새끼가 어디 터진 주둥이라고 나불거리니……!”
동하를 노려보며 이를 갈아붙이는 리길상의 눈에서 불이 뿜어질 것 같았다.
동하가 그런 리길상을 향해 빨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길상아, 얌전히 가자. 그래야 불쌍한 니 동생들 안 다친다.”
“저 새끼 저거 갈가리 찢어 죽이라!”
“우와아아아악!”
리길상의 명령을 받은 길림파 조직원들이 일제히 칼과 도끼를 휘두르며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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