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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경찰-9화 (9/75)

〈 9화 〉 9화. 이은서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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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이은서 경위

영등포경찰서 마약과 이은서 경위는 취조실 테이블의 맞은편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강동하 순경을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 앞에는 동하로부터 진술을 받기 위한 노트북이 놓여 있었다.

그녀가 동하에게서 받은 첫인상은 그냥 딱 풋내기 순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저 풋내기가 관내에서 가장 골칫거리였던 대림동 길림파를 혈혈단신으로 일망타진하고, 그들과 유착관계였던 대림지구대의 선배 경찰관들까지 굴비 엮듯 줄줄이 엮어 감사과에 넘겼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았다.

동하의 퉁퉁 부은 콧잔등과 얼굴과 온몸 군데군데 생긴 선명한 피멍에서 지난밤의 격렬했던 싸움의 흔적을 엿볼 수는 있었지만, 여전히 지구대 순경 혼자 흉포한 길림파를 일망타진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었다.

영등포경찰서의 전지현으로 통하는 그녀가 얼굴을 빤히 쳐다보자, 동하는 괜스레 얼굴이 붉어지며 시선을 피했다.

‘우와 씨! 무슨 경찰이 저렇게 예쁘지?’

이은서 팀장처럼 예쁜 경찰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동하가 모르는 것이 있었으니, 이렇게 청순한 이은서가 이종격투기 실력자에 일단 열이 받았다 하면 권총을 뽑아 방아쇠부터 당기는 열폭녀라는 사실이었다.

그런 이은서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강동하란 인간을 철저하게 스캔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그냥 애송이 순경인데……, 그런데 대체 어떻게……?’

손가락으로 노트북을 툭툭, 두드리며 생각에 빠져 있던 그녀가 불쑥 동하를 불렀다.

“강동하 순경!”

“네? 아, 네!”

“혹시 운동했었어요?”

“네?”

기습적인 질문에 동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시 머리를 긁적이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조금 했습니다.”

“무슨 운동을 했는데요?”

이종격투기 실력자인 은서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눈을 반짝 빛냈다.

“어렸을 때 태권도를 꾸준히 해서 검은 띠를 땄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숙소 근처 피트니스클럽에서 헬스를 조금…….”

“하! 그런 운동 말고!”

탕! 탕! 탕!

은서가 짜증스럽게 테이블을 두드리자, 동하는 절로 목을 움츠렸다.

헐! 운동 하냐고 물어봐서 운동한다고 대답했는데 웬 성질?

이 여자 이거 생긴 것과는 딴판으로 성격은 완전 개차반일세.

경계하는 동하를 향해 은서가 한숨을 푹 몰아쉬며 다시 질문했다.

“강동하 순경은 우리 영등포경찰서 강력팀에서도 함부로 진입하지 못했던 길림파 아지트로 쳐들어갔어요. 그리고 오십 명이 넘는 조직원들을 때려눕히고, 보스 김철과 행동대장 리길상을 피떡으로 만들어 체포했죠. 이게 보통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나요?”

“글쎄요…….”

골똘히 생각하던 동하가 고개를 휙휙 가로저었다.

“보통사람한테는 쉽지 않은 일 같은데요.”

“그렇죠? 그래서 강동하 순경이 그런 엄청난 일을 해낼 만큼 특별한 무술 같은 걸 익혔는지 묻고 있는 거예요.”

“아……! 이제야 무슨 말씀인지 알겠네요.”

헤벌쭉 웃는 동하를 보며 은서가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걸 참느라 주먹을 바르르 떨었다.

“그래서? 그런 무슬을 익혔나요?”

“그게 그러니까…….”

이진산의 존재에 대해 고백하려다가 동하는 멈칫했다.

자칭 사상 최고의 고수님께서 영혼 상태로 내 몸 안으로 빙의했다고 지껄이면 정신병원으로 보내려고 하겠지?

역시 이진산에 대해 말해봤자 믿어줄 것 같지도 않았고, 괜히 자신만 미친놈이 될 것 같아 동하는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런 대단한 무술 같은 거 익힌 적 없는데요.”

실망스런 대답에 은서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하아아......! 그럼 대체 어떻게 강 순경이 길림파를 깨뜨렸을까요?”

“그건 걔네들이 생각보다 너무 약해서리…….”

“지금 나랑 장난해?”

쾅!

은서가 다시 책상을 내리쳤다.

“씨발! 익힌 적이 없어서 없다고 했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지금 욕했니? 당신은 이파리 두 개짜리 순경이고, 난 무궁화 하나짜리 경위인데?”

“경위님이 먼저 반말했잖습니까?”

꼴에 남자라고 자존심을 세우는 동하의 면상을 엘보우로 찍어 버리고 싶은 것을 참느라 민서가 팔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도 동하가 실력을 숨기고 있는 고수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저 무서운 길림파를 깨뜨린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단 말인가.

“아 진짜 미쳐 버리겠네.”

은서가 신경질적으로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풍성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순간 신선한 과일향의 청량한 샴푸 냄새가 진하게 풍겼고, 동하는 저도 모르게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흐~ 냄새 진짜 죽인다!

순간적으로 드러난 은서의 희고 긴 목이 그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아……! 이런 여자와 데이트 한 번 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눈빛이 게슴츠레하게 변하는 동하를 향해 은서가 쏘아붙였다.

“강동하 순경! 강력팀도 아닌 마약과에서 이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게 이상하지 않나요?”

“그, 그야 길림파가 약장사도 했기 때문 아닌가요?”

은서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길림파가 대림동 일대에서 마약 소매업만 했다면 우리 마약과에서 직접 파헤치진 않았을 거예요. 우리는 길림파를 중국에서 들어오는 대규모 마약공급 루트의 한국 내 거점으로 보고 오래 전부터 내사를 해오고 있었어요.”

“아, 그렇군요.”

건성으로 대답하는 동하를 보며 은서가 허탈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강동하 순경이 하루아침에 길림파를 궤멸시켜 버리는 바람에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죠.”

“아, 네네! 그럼 혹시 제가 사과를 해야 하나요?”

“!”

동하의 눈빛이 변하자, 이은수가 움찔했다. 동하의 눈빛에서 길림파에 대한 강렬한 적대감과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자긍심이 읽혔기 때문이었다.

“아, 그렇다고 길림파를 해치운 게 잘못된 일이라는 건 아니에요.”

“당연히 그러셔야죠. 그동안 길림파가 대림동 주민들을 상대로 부린 패악질이 장난이 아닌데요. 게다가 리길상 그 새끼는…….”

말끝을 흘리며 이를 갈아붙이는 동하를 향해 은서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어머니가 리길상에게 희생당하셨다는 말은 들었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동하가 답례도 하지 않고 은서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마치 “그동안 너희들은 뭐했냐?” 라고 추궁하는 듯한 동하의 시선을 마주하며 은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맞아요. 길림파는 대림동의 암덩어리 같은 녀석들이었어요. 그 깡패새끼들을 해치운 건 분명 칭찬받을 일입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맙네요.”

그제야 표정을 푸는 동하를 향해 은서가 다시 정색하며 물었다.

“그런데 정말 무술 같은 거 익힌 적 없어요?”

“네, 전혀 없습니다.”

“하! 그럼 대체 어떻게……?”

바로 그 순간 방문이 벌컥 열리며 마약과 팀원인 강영철 형사가 뛰어 들어왔다.

“팀장님, 큰일났습니다!”

“갑자기 무슨 큰일?”

“유치장에 입감되어 있던 길림파 보스 김철이 목을 맸습니다!”

“뭐가 어째?!”

* * *

“아 진짜 돌아 버리겠네……!”

김철은 유치창 철창에 허리띠로 목을 맨 채 숨져 있었다.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혀를 길게 빼문 김철을 보며 은서는 연신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동하도 김철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경찰복을 입은 지 석 달이 지났지만 시체를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게다가 그 시체가 자신과 싸우다 체포된 조폭 두목이 아닌가!

‘혹시 나 때문에 죽은 걸까?’

괜히 다리가 후들거리고, 입안이 바싹 타들어갔다.

“강 순경.”

“......”

“강동하 순경!”

“네? 아, 네.”

“나중에 다시 부를 테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요.”

“하, 하지만…….”

“나 지금 바쁜 거 안 보여요? 빨리 가라고요.”

단호한 은서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동하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돌아섰다.

“네네! 가라면 가얍죠.”

유치장을 빠져나오기 직전 동하는 힐끗 고개를 돌려 마지막으로 김철의 얼굴을 한 번 더 보았다.

* * *

“후우우우…….”

오후 늦게서야 자신의 원룸으로 돌아온 동하는 매트리스 위에 털썩 주저앉으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땅 꺼지겠다, 이놈아. 웬 한숨을 그리 쉬어?]

이진산의 물음에 동하가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김철이 죽은 거 알죠?’

[네가 보는 건 나도 본다. 그러니 당연히 알고 있지.]

‘김철이 나 때문에 죽은 것 같아 기분이 꿀꿀하네요.’

[그놈은 허리띠를 풀어 스스로 목을 맸어. 그런데 왜 네놈이 되도 않는 자책을 하고 지랄이냐?]

‘조폭두목이 일개 순경한테 피떡이 되었으니, 자존심이 상해 뒤져 버린 게 아닐까요?’

[개 풀 뜯어먹는 소리 그만하고 시간 날 때 빨리 운기 연습이나 좀 해라.]

‘갑자기 운기 연습을 하라고요?’

[그래, 인마! 너 김철과 싸울 때 뭐 느낀 점이 없냐?]

‘으음…….’

골똘히 생각하던 동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김철의 주먹이 확실히 내 주먹보다 세던데요. 영감이 막판에 용호십삼권인가 뭔가를 알려주지 않았으면 아마도 내가 깨졌겠지.’

[제대로 보았다. 그때도 말했지만 네 하단전에는 김철 따위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내공이 쌓여 있다. 하지만 그 엄청난 내공을 혈관을 통해 몸 구석구석으로 흘려보내는 운기 연습이 부족하여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지. 그러니까 이제부터 박 터지게 운기 연습을 하란 말이다.]

‘에이~ 길림파도 간판을 내린 마당에 뭐하러요?’

[이 아둔한 놈아! 넌 이대로 대림동에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보느냐?]

‘길림파가 사라졌으니 당연히…….’

[김철이 무술이 아닌 기를 활용한 무공을 사용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녕 모르겠느냐?]

‘글쎄요……?’

이진산이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노부의 통박이 맞는다면 대륙에서 이곳 대림동으로 점점 더 강한 고수들이 찾아올 것이다. 아까 영등포경찰서의 그 여자 경찰도 말하지 않았더냐? 대림동을 장악한 길림파가 중국에서 들어오는 대규모 마약공급 루트의 한국 내 거점이었다고!]

‘아! 그 소리는 나도 들었어요. 그러니까 영감님 말은 길림파를 뒤에서 조종했던 중국의 더 큰 조직에서 자신들의 마약 거점이었던 대림동을 되찾기 위해 더 강한 고수를 파견할 거란 말이죠?’

[에휴, 내 팔자야……! 너란 놈은 꼭 일일이 설명을 해줘야 말귀를 알아듣는구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던데, 너무 구박하지 맙시다.’

동하의 항의를 무시하고 이진산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노부가 진심으로 염려하는 것은 길림파를 배후에서 움직인 조직이 노부의 세 제자들이 장악한 그 절대 조직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다. 만약 그렇다면 너는 물론 노부의 목숨까지 위태로워질 것이야.]

‘네? 방금 뭐라고요?’

[못 들었으면 되었다. 어쨌든 대림동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일 수가 있으니, 운기 연습에 박차를 가하란 말이다.]

‘알았어요, 알았어. 이렇게 하면 되는 거죠?’

동하가 힘겹게 다리를 꼬고 가부좌를 틀자, 이진산이 황당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지금 뭐하냐?]

‘운기 연습이란 거 이렇게 하는 거 아니에요? 무협영화에서 보면 대충 다 이렇게 하던데?’

[니가 아주 지랄을 하는구나. 썩 일어나지 못해, 이놈아?!]

이진산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까지 지그시 감는 동하를 향해 버럭 고함을 질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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