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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경찰-10화 (10/75)

〈 10화 〉 10화. 운기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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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운기 연습

‘끄으으으……! 이, 이게 운기 연습 자세라고요? 확실해요?’

기마자세를 한 동하가 앞으로 나란히 한 두 팔을 부들부들 떨며 물었다.

[그래, 이놈아. 편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하는 운기는 다 영화에서 만들어낸 엉터리란 말이다.]

‘아 씨! 꼭 이렇게 고통스럽게 연습해야 돼요? 이건 뭐 너무 힘들어서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네.’

동하가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이진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인간이란 본래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해야 잡생각이 사라지는 법! 그 자세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버티며 온몸으로 때 국물을 질질 흘리다보면 어느 순간, 정신이 맑아지며 오직 의념에 집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니라.]

‘이 자세로 어떻게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버텨요? 벌써부터 팔다리가 마비되려고 하는구만.’

[버텨라. 그것만이 네가 강해질 수 있는 지름길임을 잊지 말고!]

‘아 진짜! 이 힘든 걸 꼭 해야 됩니까?’

[해야 한다. 그래야 네놈 어머니의 복수도 해낼 수 있을 터!]

‘어머니의 복수요?’

[오냐! 예부터 부모를 죽인 원수와는 한 하늘 아래서 숨을 쉴 수 없다 했느니.]

어머니의 이야기가 나오자, 동하의 표정이 시무룩하게 변했다.

‘하지만 리길상을 잡아 처넣으면서 어머니에 대한 복수는 마무리가…….’

[길림파는 대륙에 있는 거대 조직의 하부조직에 불과하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들이 배후에서 길림파를 조종하지 않았다면 리길상이란 놈이 그처럼 날뛰었겠느냐? 네 어머니가 그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겠느냐?]

‘그건…….“

잠시 머뭇거리던 동하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듣고 보니 영감님 말씀이 맞네요. 대륙에 있다는 배후조직까지 박살내지 않으면 진정한 복수가 아니겠네요.”

[너란 놈은 말귀를 참 어렵게 알아듣는 경향이 있구나. 이제라도 알아먹었으면 집중 또 집중해라!]

‘끄으으으……! 그런데 영감님, 정신이 집중되기는커녕 똥을 쌀 것 같은데요?’

[그것도 운기의 과정이니, 싸고 싶으면 그 자세로 싸도록 하렴.]

‘아 쫌!’

[그리고 운기에 집중하며 이 무공초식을 외워두도록 해라.]

순간 동하의 머릿속에서 지난번 이진산이 가르쳐준 광룡승천과 비슷한 권법이 떠올랐다.

‘어! 이것도 용호십삼권인가 뭔가 하는 그거 아닌가요?’

[제대로 보았다. 용호십삼권의 제 이초 맹호질주라고 한다.]

‘맹호질주……? 사나운 호랑이가 내달린다, 뭐 그런 뜻인가요?’

[옳다! 노부는 용호십삼권 하나로 대륙을 누비며 삼합회를 일통하였다. 하지만 용호십삼권이 아무리 강한 권법이라도 내공이 제대로 실리지 못하면 무용지물! 능수능란한 운기를 바탕으로 초식을 펼쳐야만 진정한 무공고수가 될 수 있음을 명심 또 명심해라.]

‘아이 씨! 고수고 나발이고 힘들어 죽겠다고요!’

* * *

결국 그날 날이 저물도록 동하는 기마자세를 유지한 채 지옥 같은 시간을 견뎌야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두 시간쯤 지나며 온몸이 땀범벅으로 변하자, 잡생각이 사라지며 정신이 맑아지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하단전에 쌓여 있는 기를 의념, 즉 의지와 생각만으로 주먹이나 발로 흘려보내는 것은 여전히 힘든 일이었다.

“하, 씨발! 이거 나한테 소질 자체가 없는 건 아닐까?”

몇 번이나 포기하려다가 악과 깡으로 버티던 동하는 결국 저녁때가 되어서야 기마자세를 풀고 매트리스 위로 쓰러졌다.

그리고 피곤에 쩔어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드르렁~~ 푸우우우~~ 드르렁~~ 푸우우우~~”

요란하게 코를 골며 잠든 동하의 머릿속에서 이진산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다른 건 몰라도 동하 네놈이 끈기는 조금 있구나. 하긴 끈기도 재능이라고 할 수 있지. 부지런히 연습해라. 노부의 예감이 틀리지 않다면 머지않아 대륙에서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올 것 같으니…….]

* * *

“입국 목적이 뭡니까?”

인천공항 입국심사대에서 공항직원이 눈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조선족 청년을 향해 물었다. 봉두난발에 때가 꼬질꼬질한 청년은 그냥 딱 봐도 대륙의 노숙자였다.

빌어먹더라도 넓은 대륙이 유리할 텐데, 뭐하러 비싼 비행기 티켓까지 끊어가며 들어왔대?

공항직원의 목소리에 절로 짜증이 묻어났다.

“입국 목적이 뭐냐니까요?”

그제야 청년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어눌하게 대답했다.

“그냥…… 관광 좀 하려고…….”

“헐! 관광이라고요?”

노숙자 주제에 무슨 관광이냐고 비웃어주려다가 공항직원은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입국 서류에 문제만 없으면 되는 것이다.

청년의 여권에 스탬프를 쾅쾅, 찍으며 직원이 외쳤다.

“통과!”

“이건 또 뭐야?”

청년이 지나가자마자 자신 앞에 서는 구멍이 숭숭 뚫린 벙거지를 눌러쓴 노인을 발견하고 공항직원의 표정이 황당하게 일그러졌다.

아무리 봐도 노인 역시 중국 노숙자였다.

“입국 목적은?”

“관광이외다. 클클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는 노인을 보며 공항직원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노인 역시 여권과 입국 서류에서 어떤 하자도 발견되지 않았다.

공항직원은 다시 스탬프를 찍어줄 수밖에 없었다.

“통과!”

“이런 빌어먹을……!”

마지막으로 한여름임에도 때가 꼬질꼬질한 솜옷을 껴입은 노숙자 노파가 눈앞에 나타나자,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직원은 욕지기를 뱉어내고야 말았다.

그가 다시 스탬프를 쾅쾅, 찍으며 구시렁거렸다.

“중국 노숙자들이 떼거지로 대한민국으로 원정이라도 오는 거야, 뭐야?”

* * *

“어구구……! 어깨, 팔다리, 허리야!”

자정이 한참이나 지나서야 동하는 매트리스 위에서 깨어났다. 자는 내내 누구한테 짓밟힌 듯 온몸 구석구석 안 아픈 곳이 없었다.

“망할 놈의 운기 연습을 두 번만 했다간 아예 박박 기어 다니게 생겼군. 이걸 정말 계속해야 해?”

투덜거리는 동하의 머릿속에서 이진산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놈아, 불평 좀 하지 마라. 그럼 그만한 고생도 없이 고수가 될 줄 알았더냐?]

‘내가 언제 고수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까?’

[당연히 고수가 되어야지! 그래야 어머니의 복수도 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하아……!’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자 할 말이 없어진 동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운기 연습이 얼마나 유용한지 노부가 알려주랴?]

‘아 또 뭔 짓을 시키시려고?’

[너 혹시 동전 가진 것 있냐?]

‘동전이요? 잠깐만요.’

동하가 바지주머니를 뒤적여 백 원짜리 네 개를 꺼냈다.

‘딱 사백 원 있네요. 빌려드려요?’

[그 동전 중 하나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보렴.]

‘이, 이렇게요?’

[이제 동전을 쥔 손에 기를 흘려보낸 다음, 동전을 눈앞의 벽을 향해 힘껏 날려봐라.]

‘이걸 날리라굽쇼? 표창처럼?’

[그래, 표창처럼!]

동하가 곧장 운기를 통해 동전을 쥔 오른손에 기를 흘려보냈다. 손아귀에서 기가 느껴지는 순간, 그는 동전을 힘껏 던졌다.

땡강!

하지만 동전은 벽에 부딪쳤다가 맥없이 튕겨 나왔다. 동시에 이진산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놈아! 동전에도 기를 불어넣어서 날려야지 그냥 날리면 어떡해?]

‘방금 전에는 손에만 기를 불어 넣으라면서요?’

[동전을 끼워 넣은 두 손가락에 기를 불어넣어. 그러면 자연스럽게 동전에도 기가 흘러들어갈 테니.]

‘네네! 한 번 해볼게요. 이야압!’

동하가 기합을 지르며 다시 동전을 흩날렸다.

쐐애애애애액! 퍼어억!

부드러운 궤적을 그리며 날아간 동전이 벽에 반 넘게 박혔다.

“우와아! 이게 되네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탄하는 동하의 머릿속에서 이진산이 여봐란 듯이 말했다.

[주머니에 늘 동전을 몇 개씩 넣어두고 다녀라.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표창 대용으로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게다.]

“휴우우……! 진짜 피곤한 하루였어.”

대충 양치를 하고, 샤워를 끝낸 동하가 매트리스 위에 벌러덩 누우며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물에 젖은 솜뭉치처럼 온몸이 무거웠지만 잠은 쉬 오지 않았다.

눈을 감자마자 뜻밖의 얼굴이 떠올랐다. 바로 영등포경찰서 마약과의 이은서 팀장!

그녀의 찰랑거리는 머리카락과 길고 하얀 목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강동하 인마! 스물일곱이 되도록 연애 한 번 못해보더니, 네가 이제 미쳐 돌아가는구나.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어디서 김칫국부터 들이키고 있냐, 엉?”

하지만 동하가 완전히 김칫국만 마신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은서 팀장이 다세대의 현관문을 걷어차고 뛰어 들어왔던 것이다.

“강동하 순경! 당장 일어나서 옷 챙겨 입어요! 지금 당장!”

“헉!”

* * *

왱왱왱왱왱왱왱!

경광등을 번쩍이며 경찰 순찰차가 새벽의 텅 빈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경찰관의 등 뒤에 이은서 경위와 강동하 순경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동하가 곁눈질로 은서의 옆얼굴을 힐끔거렸다. 약간 피곤해 보였지만 그녀는 여전히 예뻤다.

‘킁킁~ 오늘도 똑같은 샴푸를 썼나?’

동하가 콧구멍을 벌름거리고 있을 때, 은서가 불쑥 물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요?”

“헉!”

소스라치게 놀라는 동하의 얼굴을 은서가 스윽 돌아보았다.

“사람을 왜 그렇게 빤히 쳐다보냐고요?”

“예, 예뻐서요!”

“뭐요……?”

동하가 저도 모르게 빽 소리치자, 은서가 눈살을 확 찌푸렸다.

“예쁘다느니 매력적이라느니 그런 말들이 더 성추행에 해당된다는 것도 몰라요?”

“죄,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부동자세를 취하는 동하를 지그시 보다가, 은서가 심각하게 입을 열었다.

“꼭두새벽부터 강동하 순경을 찾아온 건 리길상 때문이에요.”

“리길상이 왜요? 혹시 리길상도 김철처럼……?”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동하가 눈을 부릅떴다.

은서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럼 대체 무슨……?”

“실은 리길상이 긴급하게 신변보호 요청을 해왔어요.”

“엥? 뜬금없이 무슨 신변보호요?”

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되어 조사를 받고 있는 범죄자가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한다는 게 동하로선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솔직히 그 유치장 안이 가장 안전한 장소가 아닌가.

은서가 살짝 긴장한 목소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림동 길림파가 중국에서 들어오는 대규모 마약 공급루트의 한국 내 거점이라는 얘기 내가 했었죠?”

“네, 듣긴 들었습니다만.”

“바로 그것 때문에 리길상이 우리에게 신변보호를 요청한 거예요.”

“그건 또 무슨 말이죠?”

점점 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동하를 보며 은서가 말했다.

“리길상은 중국에 있는 자신들의 상급 조직에서 증거를 없애려고 자신을 죽일 거라고 믿고 있어요.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김철도 그게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죠.”

뭐야 이거?

그럼 중국의 더 큰 조직에서 대림동으로 계속 더 무서운 고수를 파견할 거란 이진산 영감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거잖아!

동하가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그런데 저는 대체 왜……?”

“리길상이 강 순경을 콕 집어 자신을 보호해줄 경찰로 지목했거든요.”

“네에……, 리길상이 저를요?!”

황당해하는 동하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은서가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었다.

“솔직히 나도 궁금하네요. 강 순경한테 죽기 직전까지 처맞았던 리길상이 왜 다시 당신을 애타게 찾고 있는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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