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11화. 신변보호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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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신변보호 요청
“우리 길림파를 관리하는 상급 조직은 동북회라 하지. 길림성의 성도인 장춘을 꽉 잡고 있는 삼합회 조직이 아니겠니.”
“동북회라……?”
“장춘은 동북평야를 중심으로 형성된 자동차 공업단지가 유명해. 그 공업단지를 꽉 잡고 있는 조직이라 동북회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갔니.”
리길상이 맞은편에 나란히 앉아 있는 은서와 동하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심각하게 말했다.
“작년 여름에 동북회는 우리 길림파에 대한민국 전역에 대량의 마약을 공급할 수 있는 루트를 구축하라고 명령하지 않았갔니. 당연히 김철과 나는 그 명령에 충실하게 복종했고.”
“하! 너희 길림파가 대림동을 장악한 이후, 서울은 물론 전국 대도시의 마약사범이 두 배 이상 급증한 게 우연이 아니었구나, 응?”
눈을 부라리는 은서를 무시하고, 리길상이 동하에게 불쑥 물었다.
“그런데 김철과 내가 대림지구대의 일개 순경에게 피떡이 되도록 처맞고 체포당했어. 어이~ 강 순경! 니가 만약 동북회 보스라면 우리를 어떻게 했을 것 같니?”
“병신아,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크흐흐흐! 당연히 멱을 따서 입을 막으려고 하지 않겠니? 결국 내가 죽는다면 그건 다 강동하 네놈 때문이란 말이다.”
“헐! 지랄을 한다.”
“지랄이 아니라 이게 바로 현실이다.”
“현실이든 뭐든 나는 너 같은 새끼 당장 뒤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네 손에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만 생각하면 내 손으로 패 죽여 버리고 싶은데…….”
어머니가 이야기가 나오자, 리길상이 처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내래 미안하게 됐다. 솔직히 어머니를 해한 일에 대해서는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지 않겠니?”
“이런 씨이…….”
리길상에게 욕을 퍼부으려는 동하의 입을 막으려고 은서가 급히 질문을 던졌다.
“김철은 그래서 자살을 택했군. 동북회에서 보낼 청부업자들이 두려워서 말이야. 자식이 그렇게 안 봤는데 은근 겁쟁이네.”
순간 리길상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쾅!
“개소리! 김철은 그렇게 나약한 남자가 아니야!”
“그럼 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건데?”
“으음…….”
“왜 말하기 싫어? 그럼 우리 그냥 나갈까?”
은서가 협박조로 나오자, 리길상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김철에겐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여동생이 하나 있지 않겠니. 그 아이가 지금 동북회에서 관리하는 장춘의 한 클럽에서 일하고 있어.”
“그럼 설마……?”
“맞아, 여동생은 일종의 인질이야. 김철은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겠니.”
“비열한 깡패새끼들……!”
열이 치받친 은서가 으득 이를 갈아붙였다.
그런 그녀의 옆에서 간신히 감정을 수습한 동하가 물었다.
“그런데 리길상 너는 왜 신변보호를 요청한 거지? 동북회에서 너와 관련된 인질들을 그냥 두지 않을 텐데?”
“나는 인질이 될만한 가족이 아예 없지 않겠니.”
“뭐?”
리길상이 재밌어 죽겠다는 듯이 키득거렸다.
“나란 놈은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에 버려졌거든. 아직 미혼에 사교성도 없어서 변변한 친구 하나 사귀지 못했지. 그러니 누굴 인질로 잡을 수가 있겠니? 흐흐흐흐!”
리길상 저 새끼, 자신의 불행을 참 태연하게도 지껄이는군.
동하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 왜 하필 나를 불러 신변을 보호해달라고 한 거냐?”
“그야 대림지구대의 강 순경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 아니갔어!”
“뭐?”
“김철은 내가 아는 가장 강한 남자였어.”
리길상이 동하의 얼굴을 가리키며 눈을 빛냈다.
“그런데 너는 그런 김철을 피투성이로 만들어 때려눕혀 버렸지.”
“하아……! 그래서 나보고 뭘 어쩌라고?”
“어쩌긴 뭘 어쩌니? 낮밤 없이 내 곁에 붙어서 이 몸을 경호해줘야지.”
“리길상 넌 양심도 없냐? 우리 어머니를 해친 주제에 그런 부탁이 나와?”
“큭큭큭큭!”
리길상은 실성한 듯이 웃으며 말했다.
“명줄이 걸렸는데 뭔 짓인들 못하겠니? 여기 영등포경찰서의 허수아비 같은 경찰 백 명이 지킨들 동북회의 살수들을 막아낼 수 있을 것 같니? 아니야, 아니야! 오직 강동하 너만이 내를 지켜줄 수가 있어.”
졸지에 허수아비로 전락한 은서가 발끈했다.
“에이 씨! 지금 누구 보고 허수아비래?”
리길상이 다시 은서를 무시하고 동하를 향해 절박하게 말했다.
“날 지켜다오, 강동하 순경! 이렇게 부탁한다!”
“푸하하하!”
자신에게 머리까지 숙이는 리길상을 동하가 시원하게 비웃어주었다.
“거절한다!”
“어째서?”
“너 같은 쓰레기 조폭새끼가 뒤지든 말든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해두지.”
은서도 동하를 거들고 나섰다.
“이것 봐요, 리길상 씨. 당신이 지금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 영등포경찰서에만 천 명이 넘는 경찰관들이 근무하고 있어요. 그런데 누가 감히 여기까지 쳐들어와 당신을 해칠 수가 있겠어요?”
“하, 씨발……!”
실망한 리길상 입에서 쌍욕이 튀었다.
“이것 보라우, 이 경위님.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똑똑히 들으라우. 동북회에서 키운 살수들은 여차하면 중국 공안의 멱도 따버리는 무지막지한 놈들이야. 그런 놈들이 한국 경찰 따윌 무서워할 것 같니? 걔네들이 마음만 먹으면 허수아비 같은 한국 경찰은 백이든 천이든 싹 다 쓸어버리고 내 목을 가져갈 거라고.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아듣겠니?”
“아니, 전혀!”
리길상이 눈을 부라렸지만 은서는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당신이야말로 똑똑히 들어! 동북회에서 청부업자 백을 보내든 천을 보내든 우리가 싹 다 체포해서 콩밥을 먹일 테니까, 당신은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수사에 협조할 생각이나 하도록 해. 그것만이 당신이 만수무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그래서 강 순경을 나한테 붙여주지 않겠다는 거니?”
“강 순경은 대림지구대 소속이야. 그러잖아도 선배들이 너희 길림파 때문에 줄줄이 옷을 벗는 바람에 지구대가 텅 비어 있는데, 강 순경까지 빼내서야 되겠어?”
“크흐흐흠……!”
신음을 흘리며 은서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리길상이 툭 내뱉었다.
“좋아, 딜하자!”
“딜이라니? 무슨 딜?”
“당신들이 지금 애타게 찾고 있는 게 우리가 비밀리에 운영하던 마약가공 공장 아니니?”
마약가공 공장이란 말에 은서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중국 본토에서 공급받은 무수초산을 가공하여 필로폰으로 만드는 비밀공장이 실제로 존재한단 말이야?”
“공장이 없었으면 어떻게 그만한 대량의 마약을 유통시킬 수가 있었겠니, 응?”
“어디야? 대체 어디에 실험실을 숨겨뒀어?”
흥분한 은서가 리길상의 팔을 잡고 흔들어댔지만 조선족 조폭은 가차 없이 쳐냈다.
파앗!
“맨입으로?”
“맨입이 아니면?”
리길상이 턱짓으로 동하를 가리켰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가 영등포경찰서에서 조사받는 동안만 강 순경을 내 경호원으로 붙여줘. 그때까지 살수가 찾아오지 않으면 동북회에서 날 죽일 계획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실험실의 위치를 알려줄게.”
“그, 그건 곤란해. 일단 강 순경이 당신을 경호할 생각이 없다잖아.”
“킥킥킥! 누굴 병신으로 알아? 위에서 까라면 까는 거지 순경이 무슨 힘이 있어?”
“아 진짜! 일이 복잡하게 돌아가네.”
골치 아픈 듯 앞머리를 쓸어넘기던 은서가 대뜸 동하를 불렀다.
“강동하 순경.”
“왜요?”
“리길상의 경호……, 가능하겠어요?”
“절대로 불가능한데요!”
고개를 휙휙 가로젓는 동하를 향해 은서가 설득조로 말했다.
“개인감정은 잠시 접어두고, 대의를 위해 희생해줄 수는 없나요?”
“거듭 말하지만 싫습니다.”
“강 순경!”
“아! 왜 자꾸 불러요?”
“순경이 높아요? 경위가 높아요?”
“그야 당연히…….”
“까라면 그냥 까세요. 억울하면 출세를 하시든가.”
“아 진짜! 이건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미안해요. 하지만 나로서도 방법이 없네요.”
리길상이 죽상으로 변한 동하의 얼굴을 쳐다보며 이죽거렸다.
“큭큭큭큭! 앞으로 잘 부탁해, 강 순경.”
“죽탱이 날아가고 싶지 않으면 입 싸다물어, 씨발아.”
열이 뻗친 동하의 옆에서 은서가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강 순경님, 일단 일어나요. 우리 서에 머무는 동안 지낼 숙소로 안내할 게요.”
“아 씨발! 리길상 저 새끼 경호업무는 죽어도 안 한다니까요.”
“까라면 까라니까요!”
“이익!”
이를 악물고 은서를 째려보던 동하가 마지못해 일어섰다.
“더러워서 짭새짓 때려치우든지 해야지, 원!”
툴툴거리며 은서를 따라 돌아서는 동하를 리길상이 불렀다.
“어이, 강동하 순경!”
“왜 자꾸 불러, 새끼야?”
신경질적으로 돌아보는 동하를 향해 리길상을 히죽 웃었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우. 나는 니가 은근 마음에 들지 않겠니. 흐흐흐!”
동하가 그런 리길상을 향해 중지를 세우며 씹어뱉었다.
“넌 너란 새끼가 존나 마음에 안 들거든. 이런 내가 너한테 진짜 위험이 닥쳤을 때, 과연 구하려고 할까?”
“당연히 구하지 않갔어? 한국 경찰 책임감 짱이잖아.”
“옘병!”
동하가 욕지기를 내뱉으며 돌아섰다.
* * *
동하와 나란히 복도를 걸으며 은서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흐음……! 리길상은 이 어리바리한 순경을 우리 영등포경찰서 전체 인원보다 더 믿고 있다는 거잖아. 강 순경에게 정말 그만한 능력이 있는 것일까?’
궁금증을 견디지 못하고 은서는 직접 확인해 보기로 결심했다.
결심이 서자마자 그녀는 우뚝 걸음을 멈추며 동하를 불렀다.
“강동하 순경!”
“네?”
동하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은서가 그의 얼굴을 노리고 냅다 정권을 날렸다. 동하가 진짜 고수라면 이 정도 주먹쯤은 간단하게 피할 수 있으리라.
퍼어억!
“크흡!”
둔탁한 타격음이 울리는 순간, 맞은 동하보다 때린 은서가 더 놀랐다.
얼굴을 감싼 동하의 손가락 사이로 코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며 은서는 급 당황했다.
“미, 미안해요. 실수였어요.”
“다짜고짜 사람 얼굴에 주먹을 날려놓고, 실수였다고요? 지금 나랑 장난해?”
“정말 미안해요. 당신이 이렇게 찐따일 줄은 몰랐어요.”
“뭐요? 당신 말 다했어?”
코피를 흘리며 악을 쓰는 동하의 얼굴을 보며 은서는 이제 그가 길림파를 무너뜨렸다는 사실 자체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은서가 동하에게 숙소로 정해준 곳은 영등포경찰서 숙직실이었다.
“불편하겠지만 넉넉 잡고 열흘만 참아요. 그때쯤이면 리길상에 대한 조사가 끝나고, 검찰로 송치할 수 있을 테니까.”
은서가 나가자마자 동하는 퀴퀴한 홀아비 냄새가 풍기는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리길상의 이죽거리는 얼굴이 떠오르며 짜증이 함께 치솟았다.
“에잇~ 그냥 잠이나 자자!”
동하가 눈을 감는 순간, 머릿속에서 이진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자지 말고 운기 연습 좀 하고 자라.]
‘지금은 피곤하니까 그냥 좀 넘어가자고요.’
[냉큼 일어나지 못해, 이놈아!]
‘아잇 진짜! 오늘따라 왜 이렇게 사방에서 짜증나게 만들지?’
[왠지 예감이 좋지 않다. 비명횡사하고 싶지 않으면 운기 연습을 하며 대비를 하란 말이다.]
‘네네! 순경 주제에 까라면 까야지 별 수 있나요?’
동하가 툴툴거리며 억지로 기마자세를 취했다.
씨발! 아직 근육이 풀리지 않아 허벅지에 돌멩이를 매달고 있는 것 같군.
무릎을 굽히고 두 팔을 앞으로 내밀자마자 땀이 비 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영감님! 내가 오늘 진짜 힘들어서 그러는데요, 그냥 좀 자면 안 될까요?’
[무릎은 더 구부리고! 두 팔을 더 쭉 내뻗고!]
‘그래, 차라리 죽여라! 죽여!’
결국 동하는 이진산의 강요를 이기지 못하고 아침이 환하게 밝을 때까지 기마자세를 유지한 채 피똥을 싸지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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