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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경찰-13화 (13/75)

〈 13화 〉 13화. 세 명의 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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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세 명의 살수

“으윽! 강동하 순경이 완전 허당은 아니었군.”

은서가 자신의 손등에 꽂혀 있는 표창을 뽑아내며 노숙자 청년을 한 방에 쓰러뜨린 동하를 쳐다보았다.

순간 그녀의 눈에 이번엔 동하를 노리고 표창을 날리려고 하는 노파의 모습이 들어왔다.

“강 순경, 조심해!”

“!”

은서 덕분에 동하도 자신을 노리고 있는 노파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노파와의 거리는 너무 멀었고, 이건 표창을 든 노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순간 동하는 이진산이 당부를 퍼뜩 떠올렸다.

[앞으로는 동전 몇 개씩 꼭 주머니에 넣고 다녀라.]

동하가 바지 주머니에서 재빨리 동전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동전에 기를 실어 지체 없이 날렸다.

부드러운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던 동전이 노파의 인중에 명중했다.

퍼억!

“끄아악!”

노파는 결국 표창을 날리지도 못하고 고꾸라졌다.

“버러지 새끼! 감히 내 마누라와 아들을!”

츄우우욱!

이번엔 동하의 등 뒤에서 노숙자 노인이 손가락을 찌르며 달려들었다.

젠장, 저 세 노숙자는 일가족이었던 모양이군!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던 사실을 깨달으며 동하가 노인을 향해 돌아섰다.

푸우욱!

“으악!”

동시에 노인의 손가락이 어깻죽지에 박히며 동하가 비명을 질렀다. 미처 피할 틈도 없을 정도로 노인의 공격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크흐흑!”

피가 튀는 어깨를 감싼 채 물러서는 동하를 노리고 노인이 살기를 뚝뚝 흘리며 쫓아왔다. 동하는 황급히 이진산으로부터 전수받은 보법 밀영환위를 펼쳤다.

슈슈슈슈슉!

발을 몇 번 움직였을 뿐인데, 노인이 찌른 손가락이 거짓말처럼 빗나갔다.

‘적에게는 멀게, 나에게는 가깝게라고 했겠다?’

동하가 노인의 손가락 공격을 어깨 위로 흘려보내며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노인의 가슴에 정권을 처박으며 일갈했다.

“용호십삼권 제 이초 맹호포효!”

뻐어어억!

“우웩!”

노인이 핏물을 울컥 토하며 뒤쪽으로 붕 날아갔다.

자신의 발밑까지 날아와 처박히는 노인을 은서는 흠칫 내려다보았다.

쿠아앙!

“허억!”

동하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피투성이가 되어 널브러져 있는 노숙자 일가족을 둘러보았다.

“허억…… 허어억……!”

그리고 은서는 그런 동하를 이채를 띄고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 세월 이종격투기를 연마했기에 그녀는 누구보다 싸움 실력을 정확하게 간파할 수가 있었다. 영등포경찰서를 피습한 세 명의 노숙자 살수는 그녀로선 감히 상대조차 할 수 없는 무서운 실력자들이었다.

‘그리고 그 셋을 순식간에 해치운 저 강동하 순경은 그야말로 상상불허의 고수라고 할 수 있겠지……?!’

동하를 주시하는 은서의 눈동자에 경외심과 호기심이 동시에 떠올랐다.

* * *

당연한 결과지만 날이 밝자마자 영등포경찰서는 발칵 뒤집혔다.

공원에서 주취난동을 부려 유치장에 입감됐던 노숙자들에게 경찰관이 둘씩이나 목숨을 잃었으니, 어찌 소동이 벌어지지 않겠는가!

경찰관들만 목숨을 잃은 게 아니었다. 동하와 격투를 벌였던 세 노숙자 중 청년이 죽었고, 노인과 노파도 중태였다.

“그 노숙자 청년이 죽었다고요? 노인과 노파도 사경을 헤매고 있고?”

소식을 전해들은 동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이진산이란 기연을 만나 무공을 배우면서도 누군가 자신의 손에 죽으리라곤 상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세 노숙자들의 실력은 대단했다. 그런 실력자들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 동하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고, 상대의 안전을 고려해 힘을 조절할 여유 따윈 더더욱 없었다.

청년이 죽고 두 노인이 사경을 헤매는 이유는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는 사람들을 살려주는 경찰이 되라고 하셨는데, 이 손으로 사람을 죽이다니……!”

영등포경찰서 조사실에 홀로 앉아 가늘게 떨리는 손바닥을 들여다보며 동하는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서 이진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자책하지 마라. 무인의 길을 걷다 보면 살인이란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 중요한 것은 네 손에 죽은 자가 악인이었다는 사실이니라.]

‘영감님, 저는 그냥 지구대 순경이라고요. 제 꿈은 말이죠, 경찰로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다가 지구대 소장쯤으로 정년퇴임하는 거였단 말이에요. 무인의 길을 걸을 계획도 없었고, 그로 인해 사람을 죽일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고요.’

[그래서 노부와 만난 걸 후회하느냐?]

‘글쎄요…….’

동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이진산을 만나지 못했으면 이미 저승에 가 있을 테니, 그렇다고 대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충격은 쉬 가시지 않았다.

‘후우우우……!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 무공을 배워 강해지는 건 싫지 않은데, 계속 사람을 죽이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동하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방문이 열리며 반 대머리의 중년 형사와 뱁새눈의 젊은 형사가 들어왔다.

투우욱!

“강동하 순경?”

뱁새눈이 동하가 앉아 있는 테이블 위에 서류철을 신경질적으로 던져놓으며 물었다.

“네, 그런데요.”

동하가 맞은편에 나란히 앉는 반 대머리와 뱁새눈을 덤덤하게 마주 보았다.

뱁새눈이 미간을 좁히며 다짜고짜 반말로 물었다.

“너, 무슨 운동했어?”

“…….”

반말질에 기분이 나빠진 동하가 가만히 쳐다보자, 뱁새눈이 서류철로 테이블을 탕탕 두드렸다.

“얀마! 너, 귀머거리야? 왜 대답을 안 해?”

“초면에 왜 반말이지?”

“뭐, 인마?”

“내가 무슨 피의자도 아닌데, 왜 다짜고짜 반말이냐고?”

“하! 이 새끼 이거 말하는 싸가지 좀 보소. 야 인마! 지난밤에 니 손에 한 명이 죽고, 두 명이 중환자실로 실려 갔어! 그런데도 피의자가 아니야?”

동하가 뱁새눈을 향해 코웃음을 쳤다.

“그 전에 그 셋은 유치장을 지키고 있던 경찰 두 명을 살해했고, 두 명에겐 중상을 입혔어. 그리고 중요 피의자인 리길상을 살해하려고 했지. 그런 자들을 막은 내가 왜 피의자 대접을 받아야 하느냔 말이요?”

“이 새끼 이거 완전 청산유수네.”

위압적인 언행으로 동하의 기를 꺾어놓으려고 했던 뱁새눈은 만만하게 봤던 순경이 의외로 조목조목 반박하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동료의 팔을 지그시 누르며 반 대머리가 동하를 향해 점잖게 말했다.

“사실 우리도 많이 놀라고 있다네. 주취난동 노숙자인 줄만 알고 연행했던 자들이 갑자기 돌변해 경찰관들을 살해했으니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지.”

“......”

“그런데 우리를 더욱 놀라게 만든 건 바로 자네야!”

반 대머리가 동하를 가리키며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그 무서운 살인자들을 강력반 형사도 아니고 일개 신참 순경이 제압했으니 말일세.”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동하는 변명조로 말했다.

“당시 상황이 워낙 다급해서 능력 이상의 힘을 발휘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순전히 우연이다?”

“네!”

“아니지……, 그건 아니야.”

반 대머리가 손사래를 치며 히죽 웃었다.

“자네가 얼마 전에 길림파의 간판을 내린 그 친구라지?”

“그, 그건…….”

반 대머리는 동하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어쩌다 한 번 일어난 일은 우연이라고 할 수가 있어. 하지만 같은 우연이 두 번 이상 반복되면 우린 그걸 필연이라고 부른다네.”

“으음…….”

동하가 궁지에 몰리는 듯하자, 뱁새눈이 다시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쾅!

“솔직히 불어, 이 새끼야! 너 중국 조폭하고 관련이 있지? 지난밤 우리 서를 기습한 조선족 청부업자들도 네가 끌어들인 거 아니야?”

“이 무슨……!”

황당한 비약에 어안이 벙벙해진 동하는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억울함까지 더해져 그는 한 마디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의 침묵을 뱁새눈은 수긍의 뜻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그가 서류철의 조서를 펼치며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다 이해해. 요즘 중국 애들이 워낙 돈을 잘 풀잖아. 너도 그 돈에 넘어간 거냐?”

으이그 진짜! 이 뱁새눈 새끼가 아주 그냥 소설을 쓰고 자빠졌네!

뱁새눈에게 광룡승천으로 한 방 처먹이고 싶은 욕구를 참느라 동하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에이 씨! 귀찮아 죽겠네. 빨리 집으로 돌아가 발 닦고 잠이나 푹 잤으면 좋겠다.”

“이 새끼가 조서 쓰다 말고 뭐라는 거야?”

“자꾸 이 새끼 저 새끼 할래, 씹새끼야?!”

동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순간, 방문이 벌컥 열리며 마약과의 이은서 팀장이 뛰어 들어왔다.

“잠깐! 감사과에서 왜 우리 마약과의 손님을 취조하고 있는 거죠?”

은서가 도끼눈을 뜨고 추궁하자, 반 대머리와 뱁새눈 둘 다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하! 이 팀장, 오랜만입니다.”

“취조는 무슨? 그냥 참고인 조사 중이었어요.”

“지금 장난하세요? 그러니까 왜 우리 마약과 사건을 감사과에서 조사를 하느냐고요?”

“그야 아무래도 현직 경찰관들이 살해당하다 보니까…….”

은서가 더 이상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활짝 열려 있는 방문을 가리켰다.

“엄한 사람 들쑤시지 말고 당장 나가세요!”

“하지만 이 팀장…….”

“저 빡 도는 거 보고 싶어서 그러세요? 오랜만에 미친년이 미쳐 날뛰는 꼴 한 번 보여줄까요?”

은서의 표정이 살벌하게 변하자, 반대머리와 뱁새눈이 도망치듯 조사실을 빠져나갔다.

“아, 알았어요! 지금 나갑니다!”

“갑니다, 가요. 가면 될 거 아니냐고요?”

반대머리와 뱁새눈이 매에게 몰린 토끼처럼 도망치듯 조사실을 빠져나갔다.

복도로 나온 두 형사가 그제야 억울한 듯이 투덜거렸다

“이은서 팀장, 쟤 너무 건방진 거 아닙니까?”

“냅 둬! 저 사이코는 서장님도 못 건드린다.”

* * *

“…….”

조사실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단둘이 마주앉아 동하와 은서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좁은 창을 통해 들어온 아침 햇살에 비친 그녀의 얼굴이 여전히 참 예쁘다고 동하는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밤 가까스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뜬눈으로 밤을 새운 여자라곤 믿기지 않는 그런 예쁨이 은서의 얼굴 곳곳에 묻어 있었다.

한동안 동하와 시선을 마주하고 있던 은서가 불쑥 악수를 청했다.

“뭡니까 이게?”

부러 심드렁하게 묻는 동하를 향해 은서가 배시시 미소 지었다

“살려줘서 고맙다고요. 강 순경님이 아니었음 저도 순직한 두 경찰관 옆에 나란히 누워 있었을 거예요. 우리 부모님이 그런 저를 보며 마음 아파하셨을 생각을 하면…….”

“아……!”

은서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지켜보며 동하도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서 무작정 무공을 익히고 길림파를 깨부쉈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다. 동네 경찰로서의 평범한 삶을 꿈꿨던 동하에게 그것은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었고, 그는 계속 무공을 익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까지 했었다.

그런데 지금 동하의 눈앞에 앉아 있는 이 예쁜 아가씨는 만약 그가 무공을 익히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며 감사해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 역시 무공을 익힌 것은 잘한 일이야!’

꽈악!

은서가 내민 손을 힘주어 잡으며 동하는 앞으로도 계속 운기 연습에 매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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