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 경찰-14화 (14/75)

〈 14화 〉 14화. 마라탕집 장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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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마라탕집 장 씨

“아직 식사 전이죠? 내가 밥 살 테니까 우리 나가요!”

동하와 조사실에 마주 앉아 있던 은서가 다짜고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자, 동하도 얼결에 따라 일어섰다.

“후루루룩~ 어, 시원하다. 이 집 설렁탕 잘하네.”

대단한 요리라도 사줄 줄 알았는데, 은서는 유치장 면회실로 설렁탕 세 그릇을 배달시켰다. 그리고 리길상까지 셋이 식사를 하자고 했다.

리길상과 겸상하는 게 내키지 않았지만 동하는 국물까지 시원하게 들이켰다.

그런 동하를 못마땅한 듯이 흘겨보던 리길상이 툭 내뱉었다.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응! 완전 잘 넘어가는데.”

“이런 씨앙!”

리길상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쾅! 쾅!

“불과 몇 시간 전에 내는 황천행 급행열차에 올라탈 뻔했단 말이야. 이 간나새끼야. 그런데도 밥이 넘어가니, 엉?!”

동하가 깍두기를 으적으적 씹으며 리길상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래서 나한테 뭐 어쩌라고?”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갔니? 대책을! 동북회 자객들로부터 나를 지킬 대책! 말을 하면 좀 알아 처먹어야 되지 않갔니?”

은서가 설렁탕을 먹다 말고 씩씩대는 리길상을 달랬다.

“리길상 씨, 그러지 말고 진정부터 해요.”

은서가 옆자리의 동하를 가리키며 설득조로 말했다.

“어쨌든 여기 강동하 순경 덕분에 살아남았잖아요. 징징대기 전에 고맙다는 인사부터 하는 게 순서 아닌가 싶은데요?”

“허참나!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는데 무어가 고맙니?”

“야 이 새끼야! 니 손에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그런데도 살려줬으면 절을 해도 부족한 줄 알아야지!”

밥알을 튀기며 소리치는 동하의 팔을 은서가 붙잡았다.

“강 순경도 진정합시다.”

“옘병. 그러니까 앞으로 날 어떻게 지킬 거냐고 묻고 있는거 아니니? 경찰기동대를 동원하든, 군대를 동원하든 해야 할 것 아니갔니!”

은서가 냅킨으로 입가를 슥슥 문지르며 말했다.

“아니지, 아니야. 순서가 잘못됐어.”

“순서? 무슨 순서 말이니?”

눈을 부라리는 리길상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은서가 배시시 미소 지었다.

“이번엔 리길상 씨가 길림파의 비밀 마약 가공공장을 알려줄 차례 아닌가요?”

“크흐흐흐! 내가 머리에 총 맞았니? 아직 안전도 확보되지 않았는데 마지막 카드를 까보이게? 내가 목숨이 두어 갠줄 아니?”

“호오, 그러니까 약속을 어기시겠다 이겁니까?”

눈빛이 변하는 은서를 가리키며 리길상이 목청을 높였다.

“일단 내래 안전하다는 확신부터 줘야 하지 않갔니? 그런 다음에야 비밀공장의 위치를 알려줄 거이야!”

동하가 씩씩대는 리길상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누가 양아치새끼 아니랄까 봐 시도 때도 없이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응?”

그런 동하의 옆에서 은서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흥분할 필요 없어요, 강 순경님. 리길상 씨는 어차피 우리한테 협력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큭큭큭큭! 지금 내랑 장난하니?“

자신을 비웃는 리길상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은서가 동하를 불렀다.

“강 순경님!”

“넵!”

“지금 즉시 대림지구대로 복귀하세요.”

“갑자기 그게 무슨……, 아!”

어리둥절해하던 동하가 무언가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떴다.

리길상은 리길상대로 급 당황했다.

“강동하를 보내 버리면 내는 누가 지키란 말이니? 너 미친 거 아니니?”

“그야 내 알 바 아니지.”

“이 무슨 개같은 소리하는 거이야? 날 지켜주기로 하지 않았니!”

“리길상 씨가 먼저 약속을 어겼는데, 왜 나만 약속을 지켜야 하냐고요?”

싱글벙글 웃는 은서를 노려보며 리길상이 뿌드득 이를 갈아붙였다.

“알았다, 알았다고. 내래 비밀공장의 위치를 알려주면 될 거 아니니.”

“진즉 그렇게 나왔어야지. 그래서 그 공장은 대체 어디쯤 짱박혀 있는데요? 평택? 아니면 인천?”

“으으음…….”

잠시 뜸을 들이던 리길상이 짧게 대답했다.

“비밀공장은 여기에 있다.”

“여기요? 여기 어디?”

리길상이 짜증을 참지 못하고 빽 소리쳤다.

“바로 이곳 대림동 안에 있단 말이다!”

“뭐? 대림동 한복판에 마약 가공공장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

놀란 은서가 찢어져라 눈을 부릅떴다.

“이, 이럴 수가……! 중국과 가까운 서해안의 평택항이나 인천항 인근의 어느 야산 깊숙한 곳에 비밀공장이 있을 줄 알았는데, 대림동 한복판에 떡하니 차려놓았다니!”

“그러니까 너희 한국 경찰이 무능하다는 거 아니겠니. 한국 경찰보다 금붕어 머리가 더 좋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이었던 거지. 푸하하!”

“뭐가 어쩌고 저째요?!”

권총을 뽑으려는 은서의 팔을 동하가 붙잡았다.

“아아! 진정합시다.”

동하가 리길상을 향해 히죽 웃으며 물었다.

“비밀공장이 대림동의 정확히 어디에 박혀 있는데?”

“…….”

혼자만 알고 싶은 아까운 비밀을 털어놓기라도 하듯 리길상이 아쉬움이 짙게 베인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장 씨네야.”

“누구?”

“장 씨네 지하실에 비밀공장이 있다고 안 카냐!”

“장 씨라면 설마 대림동 중앙시장에서 마라탕집을 운영하는 그 장 씨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

충격으로 입을 떡 벌리는 동하를 향해 리길상이 비웃듯이 말했다.

“큭큭큭큭! 그 장 씨가 맞는데.”

“말도 안 돼! 그 장 씨를 리길상 네가 개 패듯 패는 바람에 우리의 악연이 시작된 거잖아?”

“말은 바로 해야지. 니가 장 씨를 후려 패고 있는 나를 현장에서 체포하면서 우리의 악연도 시작되지 않았갔니.”

동하가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죽거리는 리길상의 얼굴을 가리켰다.

“그럼 그날 마구 팬 것도……?”

“그거 다 생쇼였다. 하하! 내래 가끔 장 씨를 두들겨 패야 사람들이 그 마라탕집 지하실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지 않갔니.”

“하……, 하하……!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장 씨를 돕겠다고 나섰다가 어머니까지 잃었으니…….”

“와? 억울하니? 그럼 지금이라도 달려가 장 씨 싸다구를 갈겨 버리든가. 하하하!”

“니 아구통부터 날려 버리기 전에 주둥이 닥쳐, 이 새끼야!”

꽈악!

“끄아악!”

동하가 턱이 으스러져라 움켜잡자, 아직 그에게 맞은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은 리길상이 죽는다고 비명을 질렀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이 자리에서 당장 널 때려죽여도 시원찮아!”

리길상의 턱주가리를 앞뒤로 흔들어대는 동하를 은서가 억지로 뜯어말렸다.

“강 순경님, 이러면 안 돼요! 제발 참아요!”

동하를 간신히 떼어낸 은서가 턱을 매만지는 리길상에게 물었다.

“그래서 장 씨네 비밀공장은 몇 놈이나 지키고 있죠?”

“글쎄, 그게 몇 명쯤 되었더라……?”

골똘히 생각하는 척하던 리길상이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한 예닐곱 명쯤 되지 않겠니? 아이다! 산수를 못해서 헷갈렸네. 얼추 열 명은 될기다.”

“열 명? 그럼 마약과 소속 형사 여섯에 형사기동대 2개 반 정도 지원받으면 되겠네. 그렇죠?”

“뭐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갔니?”

사실 마약 가공공장을 지키고 있는 조직원은 서른이 넘었다. 리길상이 거짓말을 한 이유는 형사들이 궁지에 몰린 틈을 타서 도망칠 기회를 엿보기 위해서였다. 그런 다음 동북회도, 한국 경찰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꼭꼭 숨어 버리면 되는 것이다.

리길상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은서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며 호기롭게 외쳤다.

“강동하 순경! 내일 새벽 장 씨네 마라탕집을 급습합시다.”

“이상하다. 내가 아는 장 씨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닌데…….”

* * *

중국 길림성의 성도 장춘시는 자동차공장 밀집지대로 유명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직후인 1956년에 중국 역사상 최초의 자동차 공장이 이곳에 세워졌다. 그 이후 장춘의 광활한 동북평야 일대에 중국 국내 자동차는 물론 세계 유수의 자동차공장들이 경쟁적으로 터를 잡았다.

퇴근 시간에 맞춰 기름때가 덕지덕지 묻은 작업복 차림의 훤칠한 청년 하나가 한국 자동차공장을 가로질러 걸어 나오고 있었다. 한국 회사라 그런지 이 공장에는 유독 조선족이 많이 근무하고 있었다.

청년을 발견한 조선족 노동자들이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숙였다.

“이제 퇴근하십니까, 따거!”

“오늘도 노고 많으셨습니다, 따거!”

“따거, 그럼 내일 또 뵙겠습니다!”

자신을 향해 머리를 조아린 조선족 노동자들 사이를 지나치며 청년이 미소를 지었다. 청년의 미소가 어찌나 선량한지 기름때 묻은 작업복만 아니었다면 사람들은 그를 존경받는 교사나 성직자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년의 진짜 정체를 안다면 사람들은 충격을 받을 게 분명했다. 청년이야말로 동북평야에 터를 잡고 있는 자동차회사들에서 근무하는 모든 노동자들이 빠짐없이 노조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동북자동차로동자공회의 조합장이자, 적어도 장춘에서 만큼은 시 당서기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삼합회 조직 동북회의 따거 최룡이었기 때문이다.

동북평야의 모든 자동차회사들은 동북회에 보호비를 상납해야 했고, 노동자들은 월급의 5%씩을 떼어 노조비로 내야 했다. 대신 회사들은 동북자동차로동자공회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노동자를 채용할 수 없었고, 노동자들은 노조의 승인 없이는 파업 등 일체의 단체행동에 나설 수가 없었다.

이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최룡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공장에 출근하여 노동자들과 함께 땀을 흘리고, 기름밥을 먹었다. 덕분에 노동자들은 최룡을 자신들을 착취하는 깡패가 아니라 친구이자 보호자로 여겼다.

퇴근하는 최룡을 바라보는 노동자들의 시선에 존경심이 가득한 이유였다.

도보로 도심을 가로지른 최룡은 시 외곽에 위치한 폐차장으로 향했다. 출입구 위쪽에 라고 큼직하게 쓰인 아치형의 간판을 지나 최룡이 축구장처럼 널찍한 폐차장 안으로 들어갔다.

드르륵! 드르르륵!

쾅! 쾅! 쾅! 쾅! 쾅!

상반신이 뱀처럼 꿈틀거리는 흉터들로 뒤덮인 조선족 청년들이 전기톱과 해머로 낡은 차들을 해체하고 있었다. 온몸이 땀투성이 변한 청년들은 꼭 전투라도 치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들 대부분은 북조선 특수부대 출신으로 굶주림에 지쳐 탈출한 군인들이었다.

최룡은 폐차장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활용하여 청년들의 폭력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퍼어어엉!

응?

갑자기 요란한 폭발음이 들리자, 최룡이 우뚝 멈춰 섰다. 2010년식 구형 BMW 한 대가 공중에서 한 바퀴 빙그르르 회전하며 날아오고 있는 게 보였다.

슈와아아악!

차가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지만 최룡은 태연하기만 했다.

그가 쏟아지는 자동차를 향해 오른손을 펼쳐 스윽 들어 올렸다. 그리고 차를 손바닥으로 받아 옆으로 사뿐히 내려놓았다.

쿠웅!

그 동작이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자동차가 아니라 공깃돌을 받았다가 내려놓는 듯했다.

“광성이 저 자식이 또……?”

쾅! 쾅! 쾅! 쾅!

미간을 좁히고 바라보는 최룡의 눈에 양손 주먹을 무지막지하게 휘둘러 자동차들을 공깃돌처럼 허공으로 띄워 올리고 있는 박광성의 모습이 들어왔다. 자신보다 목 하나쯤 큰 장대한 체형에 호랑이처럼 눈매가 부리부리한 박광성은 최룡이 가장 아끼는 심복이었다.

또한 동북회에서 최룡 다음으로 강한 고수이기도 했다. 최룡은 박광성을 깊이 신임하고 있었지만, 일단 열이 받았다 하면 저렇듯 난동을 부리는 불같은 성정만은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가 없었다.

우지끈!

“어이, 박광성이! 또 무슨 일로 심리가 뒤틀린 거니?‘

주먹을 내리쳐 자동차의 보닛을 우그러뜨리는 박광성에게 다가가며 최룡이 짐짓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제야 박광성이 주먹질을 멈추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후아아아…….! 퇴근하고 오는 길입네까?”

“그래!”

“소식 들으셨습네까?”

“무슨 소식 말이니?”

“한국으로 보낸 양씨 일가가 모조리 당했답네다.”

“뭐이야……?!”

양씨 일가는 영등포경찰서에서 동하에게 당했던 노숙자 노부부와 젊은 아들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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