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15화. 수색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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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수색영장
“이런 빌어먹을……!”
양씨 일가가 당했다는 소식은 최룡에게도 적지 않게 충격이었는지 그는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한참만에야 그가 살짝 갈라지는 소리로 물었다.
“한국에 대체 뉘가 있길래 일급 살수들인 양씨 일가를 제압할 수 있었단 말이니? 혹시 리길상이가……?”
박광성이 피식 실소했다.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 마시라요. 리길상 간나가 양씨 일가의 상대가 된단 말입네까?”
“그럼 대체 뉘기야?”
박광성이 한숨을 눈을 치켜뜨며 답했다.
“강동하이라고……, 길림파가 터를 잡고 있던 대림동 지구대의 순경이랍네다.”
“순경? 순경이라면 한국 경찰에서 얼마나 높은 직급이니?”
“직급은 무신 직급입네까! 한국 경찰 중에 계급이 가장 낮은 신참이랍네다.”
최룡의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아새끼가 양씨 일가를 제압했단 말이니? 이게 무신 말도 안 되는 소리니?”
“양씨 일가뿐이 아닙네다. 알고 보니 이번에 길림파를 박살냈다는 간나 새끼가 바로 그 순경 놈이랍네다.”
“뭐이야……?!”
최룡의 미간이 좁혀지며 눈가에 살기가 감돌았다.
“으음……!”
턱을 매만지며 심각하게 고민하는 최룡을 향해 박광성이 말했다.
“어쨌든 이대로 두면 어렵게 뿌리내린 한국 내 거점들이 초토화될 겁네다.”
“그럼 우리도 문책을 피할 수가 없지 않겠니?”
“그러니까 지금 당장 조치를 취해야 된단 말입네다.”
“조치를 취한다라…….”
신음을 흘리던 최룡이 결심을 굳힌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광성이 네가 직접 한국으로 가라!”
“내가요?”
“그래, 지금 당장 한국행 비행기 타고 대림동으로 가라. 한국 경찰에 빌붙은 리길상이 마약 가공공장의 위치를 불기 전에 설비와 작업자들을 제2의 은신처로 옮기라.”
박광성이 눈을 희번덕하게 빛내며 물었다.
“만약 그 전에 한국 경찰이 들이닥치면 어찌합네까?”
“그건…….”
다시 한번 짧게 고민하던 최룡이 결심을 굳힌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 경찰에 우리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경고를 한 번 보내주는 것도 괜찮지 않겠니?”
“흐흐흐흐! 그 말씀을 기다렸습네다!”
* * *
왱왱왱왱왱왱왱왱!
다음날 새벽, 경광등을 번쩍이며 마약 수사팀 형사 여섯과 형사기동대 형사 스무 명을 태운 차량들이 영등포경찰서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대림동 중앙시장에 있는 장씨의 마라탕집을 급습하기 위해서였다.
대규모 수사팀을 이끌고 있는 책임자는 이은서 팀장이었다. 그녀의 옆자리에는 동하가 앉아 있었고, 그 뒤에는 리길상이 앉아 있었다.
동하가 리길상의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힐끗 쳐다보았다.
“왜 쳐다보니? 구경났니?”
리길상이 시비조로 묻자, 동하도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은팔찌가 잘 어울려 보여서?”
“아새끼 지금 뚫린 입이라고 말을 함부로 지껄이니?”
“응, 시비 거는 거 맞아. 하하! 니 얼굴만 보면 왜 자꾸 시비를 걸고 싶어지는 걸까?”
“…….”
리길상이 더 이상 대거기를 하지 않고 동하의 얼굴을 지그시 쏘아보았다.
“눈 깔아라. 한 대 처맞기 전에!”
“…….”
하지만 리길상은 독기 어린 눈으로 동하의 얼굴을 끝까지 노려보았다.
영등포경찰서에서 대림동은 지척이었으므로 수사팀 차량들은 곧 목적지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끼익! 끼이익!
아직 이른 시간인지라 인적이 없는 시장 한복판에 차량들이 줄지어 멈춰 섰다. 이은서와 동하, 리길상 그리고 스무 명이 넘는 형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긴장된 눈으로 즐비한 중국어 간판들을 둘러보던 은서가 마라탕집 간판을 가리키며 빽 소리쳤다.
“저 집이다!”
형사들이 우르르 달려가 굳게 잠긴 문을 두드려대기 시작했다.
“이봐요! 경찰입니다!”
“당장 이 문 열어요! 이봐요!”
동하에게 팔이 잡혀 있던 리길상이 수갑이 채워진 양손을 들어 보이며 히죽 웃었다.
“어이~ 이은서 경위! 이 수갑 좀 풀어주지. 여차하면 나도 같이 싸워야 되지 않겠니?”
“차라리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게 낫지!”
“어어……! 강 순경 이 새끼야, 이거 못 놓겠니?”
동하가 버둥거리는 리길상의 뒷덜미를 잡고 억지로 마라탕집 앞으로 끌고 갔다.
그리곤 오른발로 잠긴 문을 냅다 걷어차 버렸다.
“여기서 날 샐 때까지 기다릴 겁니까?”
우장창창!
동하의 발길질 한 번에 강화유리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헐……!”
자신을 황당한 듯 쳐다보는 은서를 향해 동하가 경고했다.
“당장 진입하지 않으면 안에 있는 놈들이 증거를 싹 다 태워 버릴 텐데요?”
“지, 지금 당장 진입한다!”
은서와 형사들이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장 씨가 나타나 두 팔을 벌리고 출입구를 가로막았다.
“당신들 뭐야?”
은서가 앞으로 나서서 장 씨에게 수색영장을 들이밀었다.
“마라탕집 사장 장태봉 씨 맞죠? 여기 수색영장을 가져왔으니, 순순히 수색에 응하세요.”
“여기는 내 집이야! 수색영장이고 나발이고 아무도 못 들어온다!”
“당장 비키지 않으면 공무집행 방해죄로 체포할 겁니다!”
은서가 으름장을 놓았지만 장 씨는 오히려 뒷춤에서 시퍼렇게 날 선 중식도를 뽑아 들었다.
“여기는 내 집이라고 하지 않았니? 누구든 우리 집에 침입하는 아새끼는 멱을 따버리갔어!”
붕! 붕! 붕!
장 씨가 중식도를 마구잡이로 휘두르자, 은서와 형사들은 감히 말릴 엄두도 못 내고 주춤주춤 물러섰다.
“큭큭큭큭! 한국 경찰 꼬라지가 참 가소롭지 않니?”
“닥쳐, 새끼야!”
리길상에게 핀잔을 주고 앞으로 나선 동하가 장 씨를 불렀다.
“장 씨 아저씨!”
“응? 너, 너는 대림지구대 강 순경이 아니니?”
“칼 내려놓으세요, 아저씨. 이럴수록 아저씨만 불리해집니다.”
“내는 잘못한 게 없지 않갔니? 그런데 왜 때문에 한국 경찰이 떼로 몰려와 내한테 이러는 거니?”
“그건 조사해보면 알 겁니다. 그러니까 그 칼 저한테 주시고 물러나세요.”
“끄으으으……!”
이를 갈아붙이며 동하를 노려보던 장 씨가 중식도를 확 쳐들고 달려들었다.
“죽으면 죽었지 그리는 못 한다!”
“이건 아저씨가 자초한 일입니다.”
쩌걱!
“꾸웩!”
동하가 살처럼 내찌른 정권이 인중에 처박히자, 장 씨가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넘어갔다.
기절한 장 씨를 지나쳐 은서와 동하 그리고 리길상 등이 마라탕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건 뭐 그냥 평범한 마라탕집이잖아……?”
마라탕집을 샅샅이 뒤졌지만 수상한 흔적조차 찾지 못한 은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리길상을 돌아보았다.
리길상이 한쪽 입술을 들어 올리며 야비하게 웃었다.
“킥킥킥! 글쎄, 아마도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거 아니겠니?”
“헛소리 말고 비밀통로가 어디 있는지 빨리 불어, 새끼야!”
빠아악!
“커헉!”
동하가 그런 리길상의 뒤통수를 힘껏 후려갈겼다. 리길상이 성난 수탈처럼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동하를 향해 악을 질렀다.
“이 아새끼 지금 내 뒤통수를 갈겼니? 나이도 어린놈의 새끼가 어디 싸가지 없이…….”
리길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동하가 그의 명치를 노리고 더 강하게 정권을 내질렀다.
푸우욱!
“우웩!”
정확하게 급소에 주먹이 깊숙이 꽂히자, 리길상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웩! 우웩!”
꽈악!
“길상아! 네가 우리한테 협조할 생각이 없는 모양인데, 그럼 일단 좀 맞고 시작하자.”
헛구역질을 하는 리길상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동하가 주먹을 확 쳐들었다. 그제야 리길상이 손가락을 들어 작은 식료품 창고의 문을 가리켰다.
“저, 저기 창고 안에 지하의 비밀공장으로 내려갈 수 있는 통로가 있지 않갔니! 왜 뒤져보지도 않고 나한테 지랄이니!”
“고맙다, 길상아.”
“커흐흑!”
동하가 머리채를 놓아주자, 리길상이 바닥에 엎어졌다.
“여기 있는 식재료들 당장 치워요!”
“네, 알겠습니다!”
은서의 지시를 받은 형사들이 달려들어 무와 양파 그리고 고수 등의 식재료들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식재료들을 다 걷어내고 나자 창고 바닥에 널찍한 널빤지가 나타났다.
“꿀꺽!”
덜커덩!
은서가 마른침을 삼키며 널빤지를 들어 올리자, 희미하게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지하실로 통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자, 내려갑시다!”
은서와 형사들이 지체 없이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동하도 리길상의 뒷덜미를 잡아끌며 맨 마지막으로 내려갔다.
“이거 부숴요! 빨리!”
지하실 입구에 단단하게 채워진 큼직한 자물쇠를 가리키며 은서가 명령했다. 덩치 큰 형사 하나가 미리 준비해온 해머로 자물쇠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하지만 어찌나 튼튼한지 여러 방을 내리쳤는데도 자물쇠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에이 씨! 이게 왜 이리 안 부서지지?”
초조해하는 은서를 지켜보며 리길상이 다시 키득거렸다.
“큭큭큭큭! 이러다 비밀공장에 진입하기도 전에 날이 새겠구나. 재밌는 볼거리다, 야!”
결국 보다 못한 동하가 해머를 든 형사를 옆으로 밀치고 앞으로 나섰다.
“후우우웁……!”
그리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운기를 시작했다. 머지않아 그의 오른 주먹에서 전기가 통한 듯 찌릿한 감각이 느껴졌다.
주먹을 확 쳐들었던 동하가 자물쇠를 노리고 힘껏 내리쳤다.
쩌어어엉!
동하의 주먹이 처박히는 순간,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날아갔다.
“와우……!”
은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동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시선에 쑥스러워진 동하가 발로 철문을 냅다 걷어찼다.
콰앙!
“자, 이제 정말 진입합시다!”
은서가 권총을 뽑아 들며 앞장서 지하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다들 동작 그만! 경찰이다!”
호기롭게 외치던 그녀는 숨을 훅 들이마시고야 말았다.
“허억!”
어림잡아 오십은 넘을 듯한 조선족 청년들이 마치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던 듯 창고 복판에 버티고 서서 시퍼런 살기를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에 취한 듯 눈이 반쯤 풀린 채 헤실거리고 있는 청년들의 손과 손에는 손도끼와 사시미 등이 쥐어져 있었다.
처척!
“뒤지고 싶지 않으면 다들 흉기 내려놓고 엎드려, 씨발새끼들아!”
은서가 양손으로 권총을 고쳐 잡으며 청년들을 향해 호기롭게 외쳤다.
“우와아아아아!”
“짭새 새끼들, 싹 다 담가 버리라우!”
“간나 새끼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쳐들어오네?”
손도끼와 사시미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청년들을 바라보며 은서와 경찰들이 입을 떡 벌렸다.
“이 미친 새끼들이 총 앞에서도 쫄지를 않네……?!”
잠시 당황하던 은서의 표정이 독하게 변했다.
“이 씹새끼들아, 한국 경찰이 우스워 보이지?!”
타아앙!
“흐억!”
은서를 노리고 손도끼를 쳐들고 덤벼들던 청년이 허벅지에 총알을 맞고 고꾸라졌다.
그것을 시작으로 형사들이 약에 취해 달려드는 청년들을 향해 일제히 발포하기 시작했다.
타타타타타탕!
“으악!”
“커헉!”
“끄아아악!”
하지만 초반에 발포하지 못 하고 잠시 머뭇거리는 바람에 청년들과 형사들의 거리는 이미 너무 가까워져 있었다. 선두에서 달려들던 청년들은 총을 맞고 쓰러졌지만 곧이어 달려든 청년들이 형사들에게 덮쳐들어 육박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육박전에선 약에 취한 채 도끼와 칼로 무장한 조선족 청년들이 훨씬 유리했다.
“꾸웩!”
“으허허헉!”
한 청년이 내리친 손도끼가 마약과 형사의 정수리에 꽂혔고, 다른 청년이 찌른 사시미는 강력반 형사의 복부에 박혔다.
장 씨의 마라탕집 음습한 지하실에서 곧 선혈이 낭자한 육박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 쓰레기 조폭새끼들아! 너희들은 이제 싹 다 죽었어!”
“간나 짭새새끼들! 너희들이야말로 다 뒤졌어!”
“아악! 내 다리! 내 다리!”
“끄아악! 이 씨발놈이 눈을 찔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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