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 경찰-17화 (17/75)

〈 17화 〉 17화. 이진산의 계획

* * *

17화. 이진산의 계획

파아앙!

“풀란 말이야, 이 새끼야!”

동하가 강하게 내지른 주먹을 박광성이 은서의 목을 틀어잡은 채 여유있게 피했다.

붕! 붕! 붕! 붕!

조급해진 동하가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둘렀지만 능숙하게 보법을 밟는 박광성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지금 춤 추니?”

한동안 피하기만 하던 박광성이 주먹을 쭉 내뻗었다.

뻐억!

“크흡!”

박광성의 주먹이 콧잔등을 때리며 동하의 코에서 핏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은서를 구할 생각뿐인 동하가 다시 주먹을 쳐들고 덤벼들었다.

쩍! 쩍! 쩍! 쩍!

“크흐흐흑!”

하지만 박광성이 장난치듯 툭툭 내뻗는 잽에 얼굴이 만신창이로 변한 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허억……, 허어억……!”

얼굴이 피투성이로 변한 동하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여전히 은서의 목을 틀어쥐고 있는 박광성을 노려보았다.

“케헥……, 케헤헥……!”

안색이 흑빛으로 변한 은서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다급해진 동하가 다시 이진산을 불러보았다.

‘영감님! 거기 있어요, 영감님? 나 지금 저 박광성이란 새끼한테 죽기 직전이라고요! 제발 좀 짠하고 나타나서 나 좀 구해달라고요!’

[......]

하지만 이번에도 이진산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이런 옘병! 내가 죽든 말든 쌩까시겠다?

좋아, 어차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동하가 재빨리 운기를 하여 몸에 남아 있는 마지막 힘을 끌어모으며 박광성을 향해 차올랐다.

“제발 좀 맞아라!”

파앙!

하지만 박광성은 이번에도 동하가 내지른 회심의 앞차기를 피해냈다.

흥! 그럴 줄 알았다, 깡패새끼야!

동하가 바지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뽑아냈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는 오백 원짜리 세 개가 꼽혀 있었다.

“박광성! 너 새끼에게 주는 특별선물이다!”

피이이이이잉!

동하가 기를 잔뜩 불어넣어 날린 동전들이 예리하게 궤적을 그리며 세 방향에서 박광성의 미간을 노리고 날아갔다.

“허허! 이젠 서커스 하니?”

따다당!

박광성이 손바닥을 흔들어 어렵지 않게 동전들을 튕겨냈다. 그 찰나의 틈을 이용해 동하가 박광성의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헉!”

그리고 박광성이 미처 자세를 가다듬기도 전에 놈의 안면을 노리고 섬전처럼 주먹을 날렸다.

쯔거억!

“우웩!”

장작 패는 소리가 울리며 동하의 주먹이 박광성의 코뼈를 함몰시켰다. 얼굴이 피범벅으로 변한 박광성이 은서를 던져 버리고 동하를 잡으려고 달려들었다.

“크아아아! 강동하 이 간나 새끼! 사지를 찢어발겨 버리갔어!”

고통과 분노에 눈이 뒤집힌 나머지 그는 자신의 다리가 풀린 줄도 모르고 있었다. 박광성이 휘청하는 순간, 동하가 그의 관자놀이를 노리고 기가 팽팽하게 실린 주먹을 휘둘렀다.

꽝!

“크아악!”

동하의 주먹이 관자놀이에 꽂히는 순간, 입과 코로 핏물을 토하며 박광성의 얼굴이 뽑혀질 듯 돌아갔다.

우당탕탕!

옆쪽으로 붕 날아가던 조선족 조폭이 지하실 바닥으로 정신없이 나뒹굴었다.

“끄어어어……!”

얼굴이 피투성이로 변한 박광성이 가까스로 고개를 들고 자신 앞에 서 있는 동하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동북회의 넘버 투인 이 박광성이 고작 말단 순경 따위에게…….”

쿠웅!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박광성이 뒤통수를 처박으며 기절했다.

풀썩!

동시에 탈진한 동하도 힘없이 주저앉아 버렸다.

“허억…… 허어억……!”

심장이라도 토할 듯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동하는 기절한 박광성을 보고 있었다.

그제야 이진산이 동하에게 말을 걸어왔다.

[휴우우우……! 정말이지 아슬아슬한 싸움이었다. 그렇지?]

동하는 당연하게도 버럭 화부터 냈다.

‘대체 어디 가셨다가 이제야 나타난 겁니까, 네? 박광성 저 새끼한테 거의 죽을 뻔했다고요!’

[내가 가긴 어딜 가겠냐? 네놈 안에서 네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지.]

‘그런데 왜 제가 도움을 청할 때 대답하지 않았어요?’

[그야 네놈한테 방해가 될까 봐 그랬지.]

‘그건 또 무슨 헛소리예요?!’

울컥하는 동하에게 이진산이 변명조로 말했다.

[너도 느꼈겠지만, 박광성은 현재 너의 실력으론 이기기 힘든 고수였다. 그런 고수와 목숨을 걸고 싸울 때는 어떤 조언도 도움이 되질 않아. 오직 스스로의 본능과 투지로 상대를 제압해야만 하는 것이지.]

‘그러니까 괜히 떠들었다가 저한테 방해가 될까 봐 침묵했다는 겁니까?’

[그렇지!]

이진산이 흔쾌히 대답했지만 실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진산은 동하를 상대로 살 떨리는 도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죽 관찰하며 내린 결론에 의하면 동하는 무공을 익히기에 썩 훌륭한 재목은 아니었다. 이진산 자신이 아무리 대단한 내공을 넘겨줬다 해도 그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너무 작으니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너는 애초 고수가 되긴 틀려먹은 놈이라며 포기할 수도 없었다. 유체탈혼환신으로 빠져나온 영혼이 일단 동하에게 들어온 이상 다른 놈에게 다시 옮겨가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니 죽이 됐든 밥이 됐든 어떻게 동하를 초절정 고수로 만든 후에 놈의 영혼을 몰아내고, 자신이 이 몸이 주인이 되어야 사부를 살해한 악독한 제자 놈들에게 복수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진산은 모험을 걸 수밖에 없었다.

그가 판단하기에 동하가 한계를 극복하고 고수가 될 수 있는 방법은 박광성 같은 상대와 꾸준하게 실전경험을 쌓는 수밖에 없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목숨을 내놓고 처절하게 싸우다 보면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모든 잠재력을 폭발시킬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강한 상대를 한 명, 한 명 쓰러뜨리며 한 단계씩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은 너무도 힘들고 위험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진산은 동하의 다급한 도움 요청에 응답할 수가 없었다. 오직 동하 스스로 잠재력을 폭발시켜 한 단계 성장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복불복이다, 이놈아! 네놈이 강해지든 우리 둘 다 뒤져 버리든 둘 중 하나란 말이다!]

* * *

“헉! 이, 이게 다 뭐야?”

중상을 입은 박광성이 병원으로 실려 가고, 나머지 조선족 청년들도 깡그리 체포한 후에 은서는 몇몇 형사들과 함께 지하실에 있는 쪽문을 열고 비밀공장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이삼백 평은 족히 될 듯한 널찍한 공간에 마치 화학실험실처럼 꾸며진 마약 가공 장비들과 분말이 그득 채워진 자루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맙소사……! 이 정도면 대한민국에서 일 년 동안 유통되는 마약의 총량과 맞먹겠는데!”

길림파를 통해 중국에서 마약이 밀반입되고 있다는 사실은 눈치챘지만 이 정도 규모일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은서는 자신이 길림파를 과소평가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마어마한 마약의 양도 양이었지만 경찰이 확보한 피의자를 죽이기 위해 살인 청부업자를 파견하질 않나, 실험실에 들이닥친 경찰들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급습하질 않나! 이전에는 결코 이처럼 대담한 조직을 만난 기억이 없었다.

은서가 새삼 심각하게 중얼거렸다.

“강동하 순경이 아니었으면 나를 비롯하여 오늘 출동했던 형사들이 몰살을 당했을지도 몰라.”

그제야 동하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은서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 그런데 강 순경은 왜 안 보이지?”

“헉…… 헉헉……!”

리길상은 막 아침이 밝아오기 시작하는 중앙시장 뒷골목을 달음박질쳐 달아나고 있었다. 강동하에게 처맞은 박광성이 눈이 허옇게 까뒤집으며 넘어가는 모습을 보자마자 리길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그의 손목에는 아직 수갑이 채워진 채였다.

“박광성까지 때려잡다니! 강 순경 그 새낀 완전히 괴물이야, 괴물!”

리길상이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박광성이 누구인가? 자신은 물론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김철조차 함부로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던 동북회의 2인자가 아니던가!

그런 박광성을 순경에 불과한 강동하가 아작을 내버렸으니 리길상이 경악하는 것도 당연했다.

“이제 동북회도 징글징글하고 강동하도 징글징글해. 어디 외딴 섬에 틀어박혀 잠잠해질 때까지 넙죽 엎드려 있는 거이야. 그래야 목숨을 부지할 수가……, 허억!”

말을 맺지도 못하고 리길상이 입을 떡 벌렸다.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동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막 박광성과의 사투를 끝낸 동하의 얼굴과 상반신도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온통 핏빛인 얼굴에서 두 눈만 시퍼렇게 빛나고 있는 동하는 그래서 더 섬뜩하게 보였다.

‘저 아새끼도 많이 지친 것 같은데, 지금 붙으면 때려눕힐 수 있지 않을까?’

눈을 반짝이던 리길상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요행을 바라기엔 동하가 너무 강했다. 게다가 자신은 수갑까지 차고 있지 않은가.

재빨리 태세를 전환한 리길상이 두 손을 모아 쥐고 애원했다.

“이봐, 강 순경! 나 좀 보내주라, 응? 너도 상대해봐서 알잖니. 동북회 그 새끼들 더럽게 끈질겨서 끝까지 날 포기하지 않을 거이야. 그러니까 어디 조용한 섬에 짱 박혀서리…….”

우적!

“케헥!”

동하의 주먹이 아구통에 처박히자, 리길상의 얼굴이 휙 돌아갔다.

“카아악~~ 퉤엣!”

땅바닥에 피 가래를 뱉은 리길상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했다.

“왜 때리니, 이 종간나 새끼야? 살려달라고 하지 않았니?”

“내가 경고했었지. 꼼수 부리다 걸리면 똥물을 게워낼 때까지 처맞는다고.”

“지랄하고 있네. 이거나 처먹으라!”

리길상이 중지손가락을 세우며 악랄하게 웃었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 리길상답지!”

꽝!

“크아악!”

동하의 주먹이 턱에 꽂히자 붕 튕겨 올랐던 리길상이 바닥에 세차게 등을 처박았다.

“이 간나 새끼야……, 내 이 수갑만 풀리면 널 아주 병신으로 만들어서…….”

뻐억!

“끄아아악!”

동하의 발이 옆구리를 강타하자 리길상이 숨이 끊어질 듯 비명을 질렀다.

퍽! 퍽! 퍽! 퍽! 퍽! 퍽!

그리고 리길상이 정말 똥물을 게워낼 때까지 동하의 무자비한 폭행은 계속되었다.

* * *

그로부터 며칠 후 동하는 대림동 지구대로 복귀했다. 아침 일찍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를 발견하고 혼자 지구대를 지키고 있던 양 순경이 벌떡 일어섰다.

얼마나 놀랐는지 양 순경은 얼결에 후배인 동하를 향해 경례를 올려붙였다.

“근무 중 이상 무!”

“……!”

그 상태로 동하와 양 순경이 뻘쭘하게 서로의 얼굴을 응시했다. 동하는 양 순경이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 것도 같았다. 길림파의 아지트를 쑥대밭으로 만들 당시 양 순경도 다른 선배들과 함께 출동했었다. 그리고 동하의 훨훨 날아다니며 조폭들을 박살내는 모습을 두 눈을 부릅뜨고 똑똑히 지켜봤던 것이다. 조폭들보다 몇 배 살벌했던 그 모습에 겁을 집어먹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네, 혼자 근무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동하가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자신의 책상에 앉았다. 오랜만에 자신의 자리에 앉자, 마음이 안정되며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삐리리리링!

이때 책상 위의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동하가 버릇처럼 수화기를 들고 말했다.

“대림지구대 순경 강동하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 여보세요? 여기 차이나타운인데요! 흑룡강파 새끼들이 몰려와 다 두들겨 부수며 개진상을 부리고 있습네다! 빨리 좀 와주시라요!”

“알겠습니다.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동하가 양 순경에게 물었다.

“흑룡강파는 또 뭡니까?”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