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18화. 임독양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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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임독양맥
“에휴~ 원래 산중에 호랑이가 사라지면 여우가 왕이라고 하잖아. 대림동을 꽉 잡고 있던 길림파가 와해되자마자 껄렁한 조선족 양아치 몇이 조직을 하나 결성했는데, 그게 바로 흑룡강파야. 그런데 이 새끼들이 점점 난폭하고 잔인해져서 오히려 길림파를 찜쪄먹고 있지.”
“일어나시죠.”
양 순경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동하가 박차고 일어섰다. 양 순경이 불안한 얼굴로 따라 일어섰다.
“꼴랑 우리 둘이 출동을 하자는 거야?”
“그럼 여기 우리 말고 또 누가 있습니까?”
“흑룡강파 새끼들 길림파 못지않게 잔인하다고 했잖아. 그러지 말고 본청에 지원요청부터 하자, 응?”
양 순경의 만류를 뿌리치고 동하가 서둘러 지구대를 빠져나갔다.
“지원요청을 해봤자 십중팔구 알아서 처리하라고 할 겁니다. 괜한 시간 낭비하지 말고 빨리 따라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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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 종간나 새끼들아! 우리가 누군 줄 아네! 우리가 바로 흑룡강성을 쥐고 흔들었던 흑룡강파야! 흑룡강파!”
“길림파한테 상납하던 보호비를 우리한테 내라는데, 왜 말귀를 못 알아듣니?”
“발모가지에 손도끼가 확 날아가 봐야 정신을 차리겠니, 엉?!”
우장창창! 쾅! 쾅! 쾅! 쾅!
하나같이 험악하게 생긴 조선족 조폭들이 차이나타운의 노점들을 그야말로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야! 이 새끼들아! 차라리 우릴 죽여……, 커허헉!”
분을 참지 못하고 덤벼들었던 몇몇 상인들이 조폭들의 발길질에 맥없이 고꾸라졌다. 곽 씨도 그런 상인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어렵사리 수입한 중국 도자기를 전시해놓은 좌판이 박살나는 것을 지켜보던 곽 씨가 눈을 까뒤집으며 흑룡강파 두목 황영식에게 덤벼들었다.
“으아아아! 너 죽고 나 죽자우!”
“이 영감탱이가 뒤지려고 환장을 했니!”
퍼어억!
“커흑!”
황영식의 주먹이 복부에 꽂히자, 곽 씨가 입을 떡 벌리며 무릎을 꿇었다.
“일어나! 일어나!”
황영식이 곽 씨의 머리채를 틀어잡고 억지로 일으켰다. 곽 씨의 얼굴을 노리고 주먹을 쳐드는 황영식의 얼굴에 잔인한 웃음이 가득했다.
“우리 흑룡강파에 반항하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봐두라!”
황영식의 무지막지한 주먹이 곽 씨의 얼굴에 처박히기 직전, 동하의 고함이 울려 퍼졌다.
“경찰이다! 다들 동작 그만!”
“응?”
황영식과 열 명이 넘는 부하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다. 순간 눈을 치켜뜨고 서 있는 동하와 그의 등 뒤에 숨어 부들부들 떨고 있는 양 순경의 모습이 들어왔다.
“하! 누군가 했더니, 한국 경찰 아니니? 주제 파악 못하고 나섰다가 피똥 싸지르지 말고 꺼지라!”
가소롭다는 듯이 손을 휘휘 흔드는 황영식을 향해 동하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런 동하에게 곽 씨는 물론 차이나타운 모든 상인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황영식 앞에 우뚝 멈춰 서서 동하가 낮게 깔리는 소리로 말했다.
“황영식 씨……. 당신을 폭행 및 공갈 협박 혐의로 긴급체포합니다!”
“이 간나 새끼가 뭐라고 아가리를 털고 있니!”
부아아악!
흑룡강파 두목 황영식이 동하의 얼굴을 노리고 냅다 주먹을 날렸다. 동하의 등 뒤에 서 있던 양 순경도, 곽 씨를 비롯한 조선족 상인들도 기겁을 했다. 그들은 곧 황영식의 주먹에 동하의 얼굴이 피투성이로 변하리라 확신했다.
꽈악!
“흐억!”
“저, 저게 뭐니?”
그래서 동하가 눈앞에서 황영식의 주먹을 움켜잡아 버렸을 때 다들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익! 이익! 이 종간나 새끼야! 뒤지고 싶지 않으면 이거 풀라!”
“…….”
황영식이 주먹을 빼내려고 용을 써봤지만 동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격노한 황영식이 나머지 한쪽 주먹을 휘둘렀다.
“넌 이제 진짜 뒤졌어!”
와드득!
“끄아아악!”
동하가 손아귀에 기를 불어넣자, 황영식의 주먹이 우그러지며 뼈 부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악! 놔라! 놔! 이거 놓으란 말이다!”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파닥거리는 황영식을 동하가 무감동하게 쳐다보았다.
이거야 원, 너무 싱겁군. 조폭새끼들이 원래 이렇게 약했었나?
김철이나 박광성에 비해 너무 약해서 상대할 기분조차 들지 않는다니까.
동하가 손아귀에서 슬그머니 힘을 빼내자, 황영식이 서너 걸음 정신없이 물러섰다.
“끄으으으……! 내 손……, 내 손이…….”
벌겋게 부어오른 손을 움켜쥐고 동하를 노려보던 황영식이 뒷춤에서 시퍼렇게 날 선 단검을 뽑아 들었다. 그것을 신호로 황영식의 부하들도 일제히 단검을 뽑아 동하를 겨누었다.
“저 새끼 담가 버리라!”
“우와아아악!”
황영식이 악을 지르자, 열 명이 넘는 부하들이 칼을 휘두르며 덤벼들었다.
조선족 조폭들이 사납게 찌르고 휘두르는 칼을 동하가 밀영환보의 보법을 밟으며 어렵지 않게 피했다.
“저, 저러다 찔리겠어! 그러게 지원부터 요청하자니까!”
곽 씨를 비롯한 상인들은 물론 양 순경까지 손에 땀을 쥐고 난무하는 칼날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있는 동하를 지켜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동하가 곧 칼에 찔릴 것처럼 보였지만, 솔직히 그렇게 위태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여유롭게 칼날을 피하며 동하가 운기를 통해 두 주먹에 기를 팽팽하게 불어넣고 있었다.
“종간나야, 너는 이제 뒤졌다!”
그리고 정면에서 칼을 찌르며 덤벼드는 조선족 조폭의 인중을 노리고 살처럼 주먹을 내뻗었다.
쩌걱!
“꾸웩!”
동하의 주먹이 꽂히자마자 조폭의 입가가 피투성이로 변했다. 그것을 신호로 동하는 속사포처럼 양손 주먹을 날렸다.
“우웩!”
“크흑!”
“케헤헥!”
“끄아아악!”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주먹이 몇 번이고 허공을 가르는가 싶더니, 조폭들이 거의 동시에 붕붕 튕겨 날아갔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양 순경이나 곽 씨 등의 눈에는 마치 특수효과를 위해 필름을 빠르게 돌린 액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끄어어어…… 이빨이 몽땅 부러졌어!”
“아악! 나는 코뼈가 주저앉아 버렸어!”
피투성이로 변한 얼굴을 감싼 채 땅바닥을 뒹구는 부하들 사이에 무심하게 버티고 서 있는 동하를 황영식이 황당한 듯 쳐다보았다. 흑룡강파 두목이 가늘게 떨리는 칼끝으로 동하의 얼굴을 겨누며 물었다.
“너어……, 그냥 순경 아니지? 너 이 새끼……, 정체가 무어야?”
“황영식 씨, 순순히 체포에 응하세요. 안 그러면 다칩니다.”
“와아아악! 아가리 닥치라!”
황영식이 폐부에서부터 끌어올린 듯한 괴성을 지르며 동하에게 돌진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동하는 태연자약했다. 그런 동하의 미간을 노리고 단검을 찔러가며 황영식은 확신했다.
‘이번만큼은 제대로 들어갔다!’
우지끈!
“으엑!”
그러나 칼날이 닿기도 전에 동하의 주먹이 황영식의 코뼈를 주저앉혀 버렸다.
‘이런 씨앙! 손이 나오는 걸 보지도 못했거늘…….’
쿠우웅!
입과 코로 피를 뿌리며 넘어가던 황영식이 세차게 등을 처박았다. 부러진 앞니 사이로 피거품을 뽀글뽀글 게워내며 황영식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어떻게…… 어떻게……?”
동하가 허리를 구부리며 그런 황영식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철컥!
“황영식 씨,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요. 불리한 진술을 거부하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가 있어요. 끙차~”
황영식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는 동하를 멍하니 지켜보던 양 순경이 저도 모르게 엄지를 척 세웠다.
“와 씨! 우리 강 순경 완전 쩐다, 쩔어!”
곽 씨와 조선족 상인들도 동하를 에워싸고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 강 순경이 우릴 살렸다!”
“강 순경이야말로 대림동의 수호신 아니겠니!”
* * *
온종일 지상의 열기를 빨아들였던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 무렵, 동하는 대림지구대로 돌아왔다. 양 순경과 함께 흑룡강파 조직원들을 유치장에 입감시키자마자, 그는 지구대 옥상으로 올라갔다.
초여름 땡볕에 노출되었던 옥상은 한증막처럼 무더웠다. 그는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오래지 않아 온몸이 후끈 달아오르며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후우우우……!”
길게 심호흡하며 동하는 마음을 다스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한 번 고조되었던 감정은 쉬 가라앉지 않았다.
길림파를 대신해 대림동을 공포에 떨게 했던 황영식과 부하들을 때려눕히면서 그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부정한다 해도 솔직히 그 순간만큼은 우쭐했었다. 그리고 악당들에게 당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응징할 힘을 준 이진산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다.
‘후우우우……! 이제 조용히 운기에 집중하자. 그래야 더 강해져서 흑룡강파 같은 놈들을 더 때려잡을 수가 있지.’
동하가 눈을 지그시 감고 본격적인 운기에 들어갔다. 이진산에게 무공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가 가장 매료된 것이 바로 이 운기조식이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의 흐름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실타래처럼 엉켜 있던 생각들이 정리되며 정신이 맑아지곤 했던 것이다.
누가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동하는 며칠이고 운기에만 집중할 자신이 있었다.
“후우우웁!”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동하가 정신을 집중했다. 한여름 저녁의 숨이 막힐 듯한 열기가 그의 몸 주변을 진공상태처럼 에워쌌다. 사위는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했다. 덕분에 동하는 평소보다 좀 더 집중할 수가 있었다.
붉은빛이었던 하늘이 검푸르게 변할 때까지 그는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도도한 기의 흐름이 그의 몸을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휘돌 때마다 그의 표정은 점점 더 평화롭게 변했다.
“응?”
순간, 동하의 미간이 꿈틀했다. 체내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던 기의 흐름이 몸의 좌우편으로 대칭되는 특정 지점을 살짝 비껴가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를 일주천 시킨다는 것은 온몸 구석구석으로 기를 한 바퀴 돌리는 것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아직도 몸의 좌우편에서 기가 통과하지 못하는 지점을 발견하자, 동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 다시 한번!”
동하가 정신을 더욱 집중하며 다시 두 지점으로 기를 흘려보냈다.
쿠웅! 쿠웅! 쿠우웅!
가속도를 붙여 힘차게 두드려봤지만 막힌 지점은 뚫릴 기미조차 없었다. 동하의 의문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대체 여기가 어디기에 이럴까?”
[큭큭큭큭! 이놈아, 그곳이 바로 유명한 임독양맥이니라!]
“임독양맥이요……?!”
이진산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동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동하의 머릿속에서 이진산의 유혹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즉시 폐쇄되는 혈맥이 바로 임독양맥이다. 우리 인간의 몸에서 가장 중요한 혈맥으로, 이 임동양맥을 뚫는다는 것은 곧 우리 몸에 고속도로가 뻥 뚫리는 것과 같은 의미다. 혈관을 통해 실어나를 수 있는 기의 양이 획기적으로 증가하며 마침내 진정한 고수의 반열에 오를 수가 있는 것이지.]
‘아하! 그러니까 제 몸 안의 좌우편에서 꽉 막혀 있는 이 임독양맥을 뻥 뚫으면 단숨에 고수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이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