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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경찰-19화 (19/75)

〈 19화 〉 19화. 무공을 익히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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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무공을 익히는 재미

[시간과 공을 들여 더더욱 수련에 집중하도록 해라. 노부도 최선을 다해 네가 한시라도 빨리 임독양맥을 타동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니라.]

“넵! 감사합니다, 어르신!”

머지않아 고수가 될 수 있다는 말에 동하가 신이 나서 대답했다.

하지만 정작 이진산은 동하의 임동양맥을 쉬 뚫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임동양맥을 뚫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고수의 반열에 오른다는 의미였다. 수많은 무인들이 임독양맥을 뚫으려고 도전했으나, 그 경지를 이룬 이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이것만 봐도 임독양맥을 뚫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재능이 특출 나지도 않은 동하에게 어떻게 단숨에 그런 경지를 기대할 수가 있단 말인가!

[앞으로 한 십 년 정도 죽기로 수련한다면 임독양맥에 바늘구멍만한 구멍이라도 뚫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이진산은 자신의 생각을 동하에게 말해주지는 않았다.

“지금 누구랑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

갑작스런 목소리에 동하는 깜짝 놀라 입구 쪽을 돌아보았다.

은서가 이마의 땀을 훔치며 옥상 위로 올라오고 있는 게 보였다.

아……! 저 여자는 어떻게 땀을 훔치는 모습까지 섹시하냐?

저도 모르게 헤벌쭉 웃는 동하 앞에 서서 은서가 수상쩍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방금 누군가와 중얼중얼 얘기하고 있었잖아요.”

“아아, 그거요? 그냥 혼잣말을 좀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원래 혼잣말을 궁시렁거리는 버릇이 있거든요. 하하하!”

“흐으음……!”

뒤통수를 긁적이며 둘러대는 동하의 얼굴을 은서가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동하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연락도 없이 갑자기 어쩐 일이십니까?”

“아 참! 내 정신 좀 보게. 실은 부탁이 있어서 왔어요.”

“또 무슨 부탁을……?”

살짝 불안한 표정을 짓는 동하에게 은서가 얼굴을 바싹 들이밀었다.

“저랑 같이 중국여행 가지 않을래요?”

“뜬금없이 중국여행이라뇨?”

은서에게서 풍기는 아찔한 향수냄새를 맡으며 동하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대림동 차이나타운에 숨겨져 있던 길림파의 비밀 마약 가공공장에서 엄청난 양의 마약이 발견된 건 알고 계시죠?”

“그거야 물론 알고 있죠.”

“중국 장춘에 있는 동북회가 길림파에게 마약의 원재료인 무주초산을 공급해온 상급조직이란 사실이 밝혀졌어요. 강 순경님한테 패하고 지금 병원에 누워 있는 박광성도 그 동북회 소속이죠.”

“아! 박광성도 말입니까?”

은서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제가 동북회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리길상을 앞세우고 장춘으로 출장을 가려고 해요. 이미 장춘시 공안청으로부터 수사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공문도 받았고요. 그런데 딱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데…….”

“왜요? 리길상이 그 자식이 또 제가 함께 가지 않으면 협조하지 않겠답니까?”

“헉! 강 순경님 혹시 점쟁이세요? 그걸 어떻게 아셨대?”

눈을 동그랗게 뜨는 은서의 깜찍한 얼굴을 동하가 황당한 듯 쳐다보았다.

이런 옘병! 화를 내야 하는데 왜 이리 예쁘냐?

동하가 흠흠,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리길상은 중국으로 향하는 자신의 안전을 걱정했을 겁니다. 당연히 우리 경찰에 협조하는 조건으로 안전보장을 요구했겠죠. 그러면서 저를 경호원으로 붙여달라고 요청했을 테고요.”

덤덤하게 설명하는 동하를 향해 은서가 엄지를 척 세웠다.

“와우! 강 순경님, 정말 돗자리 깔아도 되겠는데요.”

“거절하겠습니다!”

“네?”

동하가 단호하게 내뱉자, 은서는 급 당황했다. 동하의 거절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 씨! 쪽팔려서 어떡해?’

은서가 동하의 거절을 예상하지 못한 이유는 나름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처럼 그 역시 자신에게 적지 않은 호감을 갖고 있으리란 확신! 그래서 자신 있게 중국여행을 가자고 말했던 것인데, 일언지하에 거절당하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꼭 같이 갔으면 했는데 아쉽네요.”

섭섭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그녀를 향해 동하가 착 가라앉은 소리로 말했다.

“이은서 경위님은 가끔 리길상이 저의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잊으시는 것 같군요.”

“이……!”

동하의 힐난에 은서가 찔끔했다. 솔직히 그녀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떻게든 리길상을 설득하여 길림파를 앞세워 한국에 엄청난 양의 마약을 쏟아 부은 동북회를 일망타진하고야 말겠다는 일념에 조선족 조폭에게 어머니를 잃은 동하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

딱딱하게 굳어 있는 동하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던 은서가 머리를 깊숙이 숙였다.

“죄송해요. 진심으로 사과할 게요. 어머니를 잃은 동하 씨에게 원수인 리길상을 경호해달라고 한 건 완전 미친 짓이었어요.”

“으음……!”

동하는 낮은 신음을 흘릴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대답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색한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은서가 일어섰다.

“저는 이만 가볼 게요. 사흘 후에 출국할 예정이니, 어차피 중국에 다녀와서 봐야겠네요. 그럼 그때까지 안녕히…….”

도망치듯 돌아서는 은서를 동하가 불러 세웠다.

“저기요, 이 경위님!”

“네?”

그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돌아보는 은서를 향해 동하가 쑥스럽게 말했다.

“조심히 잘 다녀오시라고요. 중국.”

“아……!”

무언가 대단히 감동적인 말을 들은 사람처럼 입을 반쯤 벌리고 있던 은서가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고마워요, 강 순경님.”

동하는 그녀의 이가 참 희고 가지런하다고 생각했다.

* * *

최룡은 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공장에 나와 땀을 뻘뻘 흘리며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자동화의 결정체인 자동차공장답게 로봇 팔에 매달린 차체들이 줄을 지어 이동하는 작업구간에 서서 충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때 폐차장에서 일하는 부하 하나가 헐레벌떡 공장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따거! 따거!”

“아이씨, 뭐야? 넌 또 무슨 일이니?”

원래 작업시간에 사적인 일을 보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최룡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저어…… 그, 그것이 말입네다…….”

“빨리 말하고 나가라. 지금 작업 중인 거 안 보이니?”

“당, 당하셨다고 합네다.”

“당하다니? 누가 누구한테 당했단 말이니?”

“크흑! 둘째 따거가 강동하란 순경 놈한테 당하고 한국경찰에 체포되셨답네다!”

“이런 씨앙! 뭐가 어드레?!”

순간 최룡은 저도 모르게 빽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동시에 드넓은 작업장에서 자동차를 조립하고 있던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았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최룡은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흉포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평소 냉철하고 신중하기로 유명한 그가 다른 장소도 아니고 노동자들 앞에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강동하 순경……, 그 간나가 대체 얼마나 세기에 광성이마저 당했단 말이니?”

이를 갈아붙이던 최룡이 급히 명령했다.

“오늘 중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

“오늘 당장 말입네까?”

“그래, 오늘! 지금 당장!”

“하지만 오늘 저녁에 장춘시 당서기님과 오찬이 잡혀 있으시지 않습네까?”

“취소하라! 그깟 거 당장 취소하라! 그 강동하란 아새끼를 죽이고, 광성이를 데려오는 게 최우선이야.”

“아, 알겠습네다.”

부하가 황급히 돌아서는 순간, 최룡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부우우우우!

액정화면을 들여다보며 최룡이 고개를 갸웃했다. 한국에서 걸려온 국제전화였기 때문이다. 발신지가 발신지인 만큼 최룡은 전화를 받았다.

“여보시라요?”

“어이쿠~ 그간 안녕하셨네까, 따거?”

“누구십네까?”

“그새 제 목소리까지 잊으신 겁네까? 이거 섭섭합네다. 저, 길림파의 리길상입네다!”

“리길상, 이 종간나 새끼가……?!”

발신자의 신원을 확인한 최룡의 인상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작업장을 빠져나가려던 부하도 걸음을 멈추고 최룡을 힐끗 돌아보았다.

최룡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핸드폰에 대고 으르렁거렸다.

“쥐새끼 같은 배신자 아새끼가 무슨 볼일이 있어 내게 전화를 다 걸었니?”

“배신자라니요? 그런 섭섭한 말씀일랑 거두어주시라요.”

“비밀공장이 털리고 광성이마저 쓰러졌어. 그게 너의 배신 때문이 아니라고 할 거이야?”

“동북회에서 먼저 청부업자들을 보내 저를 제거하려고 하지 않았습네까? 배신은 따거께서 먼저 하신 것 같은데 말입네다. 흐흐흐흐!”

“으음……!”

말문이 막혀 신음을 흘리던 최룡이 낮게 깔리는 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대체 뭐이야?”

“따거, 저와 거래를 하지 않으시겠습네까?”

“하……! 지금 거래라고 했니? 리길상 너한테 무슨 밑천이 있다고 거래를 한단 말이니?”

“따거께선 지금 아우인 박광성이의 원수를 갚으려고 가장 빠른 한국행 비행기 표를 알아보고 계셨디요?”

“!”

리길상이 자신의 속내를 정확하게 짚어내자, 최룡은 적잖이 놀랐다.

입을 꾹 다문 최룡의 귀에 리길상의 유혹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광성이가 당한 것만 봐도 아시겠지만 강동하 순경은 절대로 무시해선 아니 되는 놈입네다. 중국도 아니고 적지인 한국에서 이런 강적을 상대한다는 것은 따거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일 겁네다.”

“본론만 짧게!”

짜증이 치민 최룡이 버럭 고함쳤다. 잠시 침묵하던 리길상이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강동하를 대형의 앞마당인 장춘으로 불러들일 묘책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네까?”

“뭐이야? 강동하를 장춘으로……?!”

* * *

이은서 팀장이 중국으로 출국한 후에 동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본청에서는 곧 인원을 보강해주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실제로 지구대원 숫자를 늘려주지 않았기에 동하와 양 순경 둘이서 복마전 같은 대림동 전체를 관리해야했기 때문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대림지구대로 오고 싶어 하는 인원이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에 파견을 하려도 할 수가 없다는 형편이라고 했다.

“젠장! 본청 인원들은 우리 대림지구대로 오느니 차라리 사표를 쓰겠다고 한다나 뭐라나.”

양 순경이 툴툴거렸지만 동하는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순찰을 돌고, 출동을 나갈 뿐이었다. 한여름의 시장통을 걷다보면 절로 땀이 줄줄 흘렀지만 그 또한 불평하지 않았다. 길림파도, 흑룡강파도 사라진 차이나타운과 중앙시장에서 하루하루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상인들을 지켜보는 것은 적지 않은 즐거움이었다.

“후우우우……! 고단하지만 보람찬 하루였어.”

그날도 힘든 하루 일과를 마무리한 동하는 지구대 옥상 위로 올라왔다. 뜨거운 열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옥상 복판에 서서 황혼에 물들어가는 하늘을 한동안 말없이 보고 있었다.

이은서 경위는 중국에서 잘 지내고 있으려나?

상념에 잠겨 있던 동하가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눈을 지그시 감으며 운기를 시작했다.

요즘 들어 그는 무공을 익히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한 인간으로서, 한 남자로서 자신이 조금씩 강해지는 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찌릿한 경험이었다.

게다가 임동양맥만 뚫으면 고속도로가 뻥 뚫린 것처럼 이진산 영감의 어마무시한 내공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강해지겠어!’

동하는 정신을 집중하며 하단전에 쌓여 있는 기를 혈관을 통해 온몸 구석구석으로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기를 움직이던 동하는 그 도도한 흐름을 두 갈래로 나눠 몸의 대칭되는 좌우편 지점에 위치한 임독양맥을 힘차게 두드렸다.

쿠쿵!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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