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20화. 주화입마
* * *
20화. 주화입마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 번의 두드림으로 뚫릴 임동양맥이 아니었다.
“크흡!”
몸이 대칭되는 좌우 지점의 벽에 부딪혔다가 튕겨 나오는 기를 힘겹게 붙잡은 동하가 그 두 갈래의 기운을 다시 온몸으로 빠르게 휘돌렸다. 그렇게 두 갈래의 기운을 몇 바퀴 돌리며 속도를 높인 동하가 다시 양쪽 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세찬 흐름이 견고한 벽을 두드릴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진동음이 울려 퍼졌다.
일곱 번! 여덟 번! 아홉 번! 열 번!
하지만 벽은 너무도 단단하여 도무지 뚫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익!”
동하가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최대한 많은 양의 기를 끌어모았다. 그리고 그 덩어리를 빠르게 휘돌리다가 가속도까지 이용하여 벽을 향해 메다꽂아 버렸다.
터어어엉!
굉음이 울리며 동하는 가슴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으허헉!”
동하가 두 손으로 가슴을 감싼 채 옥상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그의 이마엔 굵은 핏줄이 뱀처럼 꿈틀거리고 있었고, 눈동자는 뒤로 넘어가 흰자위만 희번덕했다.
“으아아아악!”
사지가 비틀리고 온몸의 뼈마디가 어긋나는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동하는 몸부림쳤다.
이진산의 급박한 외침이 들여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빨리 일어나서 자세를 잡아, 미련곰탱이 같은 놈아! 네놈은 지금 주화입마에 빠지기 일보 직전이란 말이다!]
“끄극…… 끄그극……!”
하지만 입가로 침을 질질 흘리며 동하는 일어나질 못했다. 그런 동하의 머릿속에서 이진산이 꽥꽥 소리를 질렀다.
[일어나! 일어나! 평생 무공을 익히지도 못하는 불구로 살고 싶지 않으면 냉큼 일어나 앉으란 말이다!]
“크흐흐흑!”
동하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간신히 자세를 잡고 앉았다.
[자, 이제 의념으로 실타래처럼 뒤엉킨 기혈을 풀어내는 거다!]
“크아아아!”
이진산의 지시에 따라 동하는 어떻게든 정신을 집중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끔찍한 고통이 그의 집중을 방해했다. 그는 오히려 정신줄을 놓아 버리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다.
아! 이 지독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차라리 죽어도 좋으리!
[포기하지 마라! 이제 조금만 더하면 된다! 조금만 더 집중을 해, 이놈아!]
이진산의 도움을 받아 동하는 가까스로 달아나려는 의식의 끝자락을 움켜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구잡이로 뒤엉켜 있는 기혈을 조금씩, 조금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상상불허의 고통이 뒤따르는 힘든 과정이었다.
“으어어억!”
쿵!
마침내 엉켰던 기혈이 풀어지는 것을 느끼며 탈진한 동하가 옥상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허억…… 허억…… 허어억……!”
동하가 뜨거운 바닥에 엎드린 채로 등을 들썩이며 거칠게 호흡을 했다.
[이 미련한 놈아, 너 방금 죽다 살아났어!]
‘어르신께서 저를 두 번이나 살리셨군요. 고맙습니다.’
[고맙다는 말은 됐고! 조심해, 이놈아! 네놈이 주화입마에 빠져 무공을 익힐 수 없는 불구의 몸이 되어 버리면 노부의 염원도 산산조각이 난단 말이다!]
‘네! 앞으로 각별히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동하가 땀범벅으로 변한 얼굴로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있을 때, 양 순경이 옥상으로 헐레벌떡 뛰어 올라왔다.
“강 순경! 강 순경! 소식 들었어?”
“헉헉……! 소식이라뇨? 무슨 소식 말입니까?”
“어! 너 얼굴이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소식이라뇨?”
“행방불명됐대!”
“네? 누가요?”
“거 왜 리길상을 앞세우고 중국 장춘으로 출장을 떠났던 이은서 팀장 말이야! 리길상과 함께 장춘 시내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는데!”
“뭐, 뭐라고요……?!”
충격을 받은 동하가 찢어져라 눈을 부릅떴다.
* * *
며칠 후, 동하는 영등포경찰서 마약수사팀의 강영철 형사와 함께 장춘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하고 있었다. 강영철과 동하 그리고 마약팀의 또 다른 형사 셋이 팀을 이뤄 장춘에서 사라진 이은서 팀장을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동하가 동행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강영철 형사 덕분이었다. 강 형사는 이은서 팀장을 구하려면 동하도 꼭 함께 가야 한다고 윗선에 고집을 부렸다고 했다.
좁은 창문을 통해 뭉게구름이 유유히 흘러가는 하늘을 내다보는 동하의 표정은 시종 어두웠다.
“중국 출장 무사히 마치고 돌아올게요. 그때 우리 다시 만나 식사라도 해요.”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고 하얗게 웃던 은서의 얼굴이 자꾸만 어른거렸다.
‘왜 같이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을까? 만약 내가 따라갔다면 그녀가 행방불명되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후회와 자책이 동하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이때 옆 좌석에 앉아 있던 강영철 형사가 말을 걸었다.
“역시 동북회의 소행이겠죠?”
“네?”
“이은서 팀장님이 행방불명된 거요. 십중팔구 동북회 새끼들이 납치해간 거겠죠?”
동하는 애써 담담하게 대답했다.
“글쎄요……. 일단은 우리 영사관 직원과 공안 측의 얘기부터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중국 공안을 어떻게 믿습니까? 그 새끼들도 삼합회 놈들과 짝짝꿍이 되어 있을 텐데요.”
“정말 그럴까요?”
“틀림없다니까요. 이 팀장님도 장춘시 공안청과 공조수사를 벌이다가 당했다고요. 우리 이 팀장님 벌써 무슨 변을 당한 건 아니신지……, 크흐흑!”
눈물까지 글썽이는 강영철 형사를 향해 동하가 정색을 했다.
“강 형사님.”
“네?”
“우리 섣부른 추측은 하지 말죠.”
“그게 무슨……?”
“강 형사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 이은서 경위님은 강한 분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제 한 몸을 지켜낼 수 있는 분이라 이겁니다.”
“…….”
벙찐 눈으로 동하의 얼굴을 바라보던 강영철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럼요! 그렇고말고요! 우리 이 팀장님은 그런 분이시죠. 이 팀장님 빠이팅!!”
두 주먹을 불끈 쥐는 강영철을 향해 동하가 억지로 미소 지었다. 겉으론 아닌 척했지만 강영철보다 불안해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동하 자신이었다. 그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제발 포기하지 말고 조금만 더 견뎌요. 그럼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구해줄게요.’
머릿속에서 이진산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조심해야 한다.]
‘네?’
[대륙에는 네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고수들이 숱하게 널려 있어.]
‘아, 네……!’
[지금부터 죽기 살기로 무공을 연마하지 않으면 네놈 따위는 언제 어디서든 죽을 수가 있다는 뜻이다.]
‘네, 죽기 살기로 한 번 해보겠습니다.’
[끌끌~ 몸 안에 저 바다처럼 거대한 내공이 쌓여 있음에도 그걸 사용할 수가 없으니, 원!]
‘어르신은 중국으로 돌아가는 게 기쁘지 않으세요?’
[네놈이 덧없이 죽어 버려 노부의 꿈도 산산조각이 날까 봐 불안하여 기쁜지도 모르겠다.]
‘아, 네. 죄송합니다.’
이진산의 핀잔에 이래저래 심란해진 동하가 스르륵 눈을 감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걱정들이 겹쳐 잠은 쉬 오지 않았다.
* * *
공항에 내린 동하와 일행은 영사관 직원의 영접을 받았다. 그는 곧장 동하와 형사들을 장춘시 공안청으로 안내했다.
차를 타고 가면서 동하는 장춘시의 풍경을 유심히 관찰했다. 작은 야산 하나 보이지 않는 광활한 평야 지대에 로고만 봐도 회사 이름을 알 수 있는 유명한 자동차공장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노동자들의 숙소로 보이는 아파트들이 규격을 맞춘 상자처럼 배치되어 있었고, 중간중간에 역시 노동자들을 위한 유흥가도 보이곤 했다.
‘이 장춘이란 도시는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획하에 만들어진 것 같네.’
장춘 시내를 둘러보며 동하는 왠지 좀 갑갑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틀에 꼭 맞춘 듯한 도시를 어둠 속에서 지배하는 그 누군가가 은서를 납치해간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이 도시에서 그녀를 되찾는 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자, 공안청에 도착했습니다. 다들 내리시죠.”
상념에 빠져 있던 동하는 영사관 직원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의 안내를 받으며 으리으리한 공안청 청사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장춘시 공안국장 왕치성이라고 합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을 나지 않을 것 같은 냉철한 인상의 공안국장이 영사관 직원의 통역을 받으며 강영철을 비롯한 형사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왕치성이 마지막으로 동하의 손을 잡았다.
“이 분은 성함이……?”
“헉!”
순간 동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영사관 직원이 아직 통역을 해주지도 않았음에도 왕치성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큭큭큭큭! 이놈아, 노부로 말할 것 같으면 한국에서 산 날보다 중국에서 보낸 날이 훨씬 많은 사람이다. 당연히 중국어에 능통하지 않았겠니? 그런 내가 네 안에 들어와 있으니, 너도 중국어를 좔좔 읊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고!]
“아하!”
이진산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주억이는 동하를 향해 왕치성이 의아한 듯 물었다.
“혹시 뭐 잘못된 거라도 있습니까?”
“아, 아닙니다. 저는 순경 강동하라고 합니다.”
“오! 중국말이 아주 유창하시군요?”
“네? 아, 네!”
“혹시 중국에 유학한 적이 있으시던가요?”
“아, 아닙니다. 그냥 독학으로 배웠습니다, 독학으로! 하하하!”
어색하게 웃는 동하의 얼굴을 왕치성이 이채를 띄고 바라보았다.
“아, 그러시군요. 독학으로 배운 것치곤 중국어가 너무 능숙해서 놀랐습니다.”
놀라기는 강영철과 다른 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동하가 중국어까지 능통한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응?”
순간 자신의 손을 잡은 왕치성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동하가 움찔했다.
뭐야? 지금 나한테 힘자랑하는 거야?
에이, 설마 아니겠지?
쿠우욱!
하지만 왕치성은 손을 풀지 않고 손아귀에 더 강한 힘을 불어넣었다.
‘이 작자가 지금 한 번 해보자는 거야?’
동하도 열이 뻗쳐 힘을 불어넣고 시작했다. 둘이 동시에 힘을 불어넣으면서 동하와 왕치성의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제야 둘 사이의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감지한 강영철과 다른 형사들도 긴장된 눈으로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끄으으으……!’
자신이 점점 왕치성에게 밀리고 있음을 직감한 동하가 재빨리 하단전에 쌓여 있는 기를 끌어올려 혈관을 통해 손아귀로 흘려보냈다.
‘어디 한 번 당해 봐라!’
꾸우우욱!
발경이 이루어져 차돌처럼 단단해진 손으로 왕치성의 손을 옥죄다가 동하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기가 잔뜩 실린 자신의 손아귀 힘에도 왕치성이 밀리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설마 왕치성 이 작자도 무공을 익한 거야?’
순간 왕치성이 동하의 손을 풀어주며 언제 힘자랑을 했냐는 듯 싱긋 미소 지었다.
“일단 이쪽 소파로 앉으셔서 차라도 한 잔씩들 하시죠.”
“네? 아, 네! 감사합니다.”
그때부터 왕치성과 형사들 간에 형식적인 대화가 오고 갔다. 형사들은 사라진 이은서 팀장을 찾기 위해 장춘시 공안청의 전폭적인 지원을 부탁했고, 왕치성은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노라 약속했다.
환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하지만 동하는 모든 것이 말뿐이고, 은서를 찾을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하기만 했다.
가끔 왕치성이 자신을 유심히 쳐다보며 보내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도 부담스럽기만 했다.
‘정말 이런 식으로 이은서 팀장님을 찾아낼 수 있을까? 아니지, 아니야. 수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부정적인 생각부터 하지는 말자.’
가슴 저 밑바닥에서 새록새록 피어오르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떨쳐내려고 동하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