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21화. 동북회 보스 최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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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동북회 보스 최룡
안타깝게도 동하의 부정적인 생각들이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장춘시에 도착하고 거의 일주일이 흘렀건만, 수사팀은 변변한 단서 하나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왕치성 국장과 휘하의 공안들 역시 도움을 주겠다며 법석을 피웠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없었다.
그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이은서 팀장이 묵었던 호텔과 주변의 유흥업소를 탐문하는데 소비했다. 은서가 어느 유흥업소에선가 술을 마시다가 우발적인 범행의 희생양이 된 것으로 몰아가려는 눈치였다.
결국 참다 못한 동하가 왕치성을 찾아가 따지기에 이르렀다.
“왕치성 국장님,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어디까지나 예의를 차리는 왕치성의 눈을 똑바로 보며 동하가 말했다.
“지금 공안의 수사는 이은서 경위의 실종을 사적인 문제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건 처음부터 수사 방향이 잘못된 거 아닙니까?”
“아아……! 우리 공안도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하고 있으니까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손사래를 치며 얼버무리려고 하는 왕치성에게 동하가 훅 치고 들어갔다.
“그렇다면 왜 동북회에 대한 수사는 하지 않는 겁니까?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서 설마 동북회가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저희 이 경위님은 다른 건도 아니고 바로 그 동북회를 수사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왔는데요?”
“……!”
동하의 날카로운 지적에 늘 냉철했던 왕치성마저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왕치성이 갑자기 노기를 드러내며 동하의 얼굴을 지그시 쏘아보았다. 동하도 피하지 않고 그의 시선을 받아냈다.
한동안 동하와 눈싸움을 벌이던 왕치성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듣던 대로 강동하 순경님은 배포가 대단하시군요.”
“왕 국장님께서 제 얘기를 들으셨다고요? 대체 누구한테서요?”
“글쎄……, 누구일까요?”
왕치성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것을 보고 동하는 움찔했다.
“설마……?!”
“마침 말이 나왔으니 알려드리죠. 실은 강동하 순경님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십니다.”
동하가 착 가라앉은 소리로 되물었다.
“그 사람이 혹시 제가 생각하는 그 사람입니까?”
“네! 동북회의 회주 최룡이 강 순경님을 정중하게 초대했습니다.”
“……!”
* * *
동하는 최룡의 초대를 즉각 수락했다. 은서를 구하기 위해선 다른 방법이 없었다.
“미쳤어요? 너무 위험해요!”
강영철 형사가 반대하고 나섰지만 동하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대로 시간만 낭비하고 있을 순 없습니다. 일단 최룡을 만나 이 경위님의 안전이라도 확인해야 합니다.”
“갈 때 가더라도 무슨 대책이라도 세워두고 가야…….”
동하가 강영철 형사를 향해 피식 실소했다.
“이미 장춘시 공안국장까지 동북회에 넘어간 마당에 무슨 대책이 필요하겠습니까?”
“저녁 여섯 시 경에 호텔로 차를 보내겠습니다. 그 차를 타고 약속장소까지 가시면 됩니다.”
왕치성의 지시대로 동하는 호텔 자신의 방에서 차분하게 약속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물론 그냥 기다리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남는 시간 동안 최대한 집중하여 운기를 했다.
터엉! 터엉! 터어엉!
오늘도 기를 모아 몸의 대칭되는 죄우 지점의 임독양맥을 두드려보았지만, 그 견고한 벽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왜 최룡이란 놈과 맞붙을 생각을 하니 똥줄이 타느냐? 그래서 서둘러 임독양맥을 뚫어보려고?]
‘네, 뭐라도 해봐야죠.’
[아서라, 이놈아. 임동양맥은 그렇게 막 뚫을 수 있는 게 아니야. 오랜 시간을 두고 운기를 거듭해야 간신히 뚫을 수 있을까 말까 한 것이다.]
‘그래도 뭔가는 해봐야죠. 왠지 이번에 만날 최룡이란 작자는 만만치가 않을 것 같습니다.’
[하긴 지난번 대림동 차이나타운에서 만났던 박광성이란 놈도 만만치가 않았으니…….]
삐리리링!
이진산이 말끝을 흐리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프런트에서 걸려온 전화로 호텔 입구에 동하를 태우고 갈 차가 대기 중이라고 했다. 동하는 알았다고 대답하고 조용히 객실을 빠져나갔다.
“안녕하십네까, 강 순경님!”
호텔 현관 밖으로 나와 보니, 머리를 짧게 깎은 청년 하나가 아우디 승용차를 세워두고 허리를 깊숙이 조아렸다. 고개를 드는 청년은 눈매가 날카로웠고, 각진 턱은 완강해 보였다.
동하가 청년을 향해 물었다.
“최룡 회주께서 보내신 겁니까?”
“예, 그렇습네다.”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보려다가 동하는 그냥 차에 올라탔다. 동하를 태운 청년이 서둘러 호텔을 빠져나갔다.
* * *
아우디는 폐차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썬루프를 통해 라고 큼직하게 적힌 아치형 간판이 보였다.
“다 왔습니다. 내리시죠.”
폐차장 한복판에 차를 세운 청년이 동하가 앉아 있는 뒷좌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동하는 순순히 내렸다.
순간 운동장처럼 널찍한 폐차장의 곳곳에서 해머와 전기톱 등으로 차량들을 해체하고 있는 십수 명 청년들의 모습이 보였다.
드르르륵! 드르르르륵! 쾅! 쾅! 쾅! 쾅!
무서운 기세로 자동차를 부수고 있는 청년들은 동하를 태우고 온 청년보다도 훨씬 난폭해 보였다.
‘지금은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있지만 최룡의 명령이 떨어지면 일제히 돌아서서 저 해머와 전기톱으로 날 해체하려고 덤벼들겠지?’
동하가 긴장된 눈으로 땀으로 번질거리는 청년들의 근육질의 등판을 바라보았다.
동하를 태우고 온 청년이 정중하게 말했다.
“안쪽으로 모시겠습네다.”
“네? 아, 네!”
동하가 청년을 따라 폐차장 끝자락에 있는 삼 층짜리 사무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청년은 그를 건물의 맨 꼭대기 층으로 데려갔다. 양쪽으로 열리는 미닫이문을 힘차게 열어젖힌 청년이 방안을 가리켰다.
“들어가시죠.”
“!”
방안으로 들어서던 동하가 움찔했다. 붉은 카펫이 깔린 넓은 방 한복판에는 기다란 식탁이 배치되어 있었다. 식탁 위에는 낯선 중국요리들이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요리들에서 풍기는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묘하게 식욕을 자극했다.
‘이렇게 긴장한 상태에서도 식욕이 당기는 걸 보니, 저 요리들은 하나같이 초일류 주방장이 요리한 것 같은데.’
쿠우웅!
“!”
등 뒤에서 문이 닫히자, 동하가 흠칫 놀라 돌아보았다. 다시 문을 열고 청년을 부르려다가 말고 동하는 조용히 식탁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맞은편 빈 의자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 시각, 최룡도 동하를 보고 있었다. 동하의 바로 옆방에서 CCTV 화면을 통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으으음……!”
한동안 동하를 뚫어져라 지켜보던 최룡의 입술을 비집고 신음이 새어 나왔다. 동하가 개인 접시에 음식을 덜어 먹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거리낌 없이 맛있게 요리를 먹던 동하가 식탁 복판에 놓여 있는 고량주 병을 들어 올렸다.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병을 딴 동하가 작은 잔에 술을 따랐다. 그리곤 음미하듯 천천히 마셨다.
“대담한 남자다!”
최룡이 동하에 대해 내린 첫 평가였다.
박광성이 동하에게 당했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는 분노가 치밀어 당장이라도 동하를 때려죽이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분노는 점차 궁금증으로 바뀌었다. 동하는 한국 경찰 중에서도 최하위 계급인 순경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런 찌질이에게 당할 정도로 박광성은 약하지가 않았다.
그렇다면 동하가 박광성 이상으로 강하다는 뜻인데, 그런 남자가 순경이나 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이해하기 힘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의문은 커졌고, 최룡은 동하를 치기 전에 일단 그가 어느 정도의 남자인지 직접 한 번 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적진 한복판에 데려다 놓은 동하는 긴장하기는커녕 자기 집 안방에서처럼 편안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찌나 맛깔스럽게 먹고 마시는지 맛집 탐방이라도 나온 사람처럼 보였다.
동하의 그 여유로움이 묘하게 최룡의 신경을 긁었다.
“역시 직접 만나서 확인해보는 수밖에 없는 건가?”
결심을 굳힌 최룡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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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똑! 똑!
노크 소리가 들리자, 막 돼지고기 튀김을 입에 넣으려던 동하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네, 들어오세요.”
딸칵!
문이 열리며 동하와 비슷한 또래의 훤칠한 청년이 들어왔다. 비록 작업복 차림이었지만 청년의 얼굴에선 귀티가 흘렀다. 그리고 그의 눈은 깊고도 진중했다.
청년이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동하를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강동하 순경님이십네까?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그럼 당신이 바로……?”
“예, 제가 바로 최룡입니다.”
최룡의 신분을 확인한 동하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쑥스럽게 웃었다.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배가 너무 고파서 주인의 허락도 없이 먼저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닙네다. 오히려 손님을 기다리게 만든 저의 불찰이지요. 어떻게? 요리는 입에 맞으셨습니까?”
“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특히 이 가지 튀김과 돼지고기 볶음이 일품이더군요.”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
동하가 잠시 말을 멈추고 최룡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예의 바른 미소를 머금은 그의 얼굴에서 가식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저 사람이 정말 길림파를 사주해 대량의 마약을 유통시킨 동북회의 보스가 맞아? 그리고 그를 수사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온 이은서 팀장을 납치한 납치범이 확실하고?’
동하의 눈에 비친 최룡은 삼합회의 보스가 아니라 어느 명문가의 귀공자처럼 보였다. 그래서 동하는 혼란스러웠다.
최룡이 그런 동하를 향해 불쑥 술병을 내밀었다.
“귀한 손님에게 한 잔 따라드리고 싶습니다만.”
“아, 네. 고맙습니다.”
최룡이 두 손으로 공손하게 술을 따랐고, 동하도 두 손으로 받았다.
“자, 건배하시겠습네까?”
“네, 좋습니다.”
채앵!
도자기 술잔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딪쳤고, 두 사람은 기꺼이 잔을 비웠다.
그때부터 동하와 최룡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먹고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최룡은 시종 예의가 발랐고, 여러 주제를 적절하게 섞으며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어갔다. 짧은 시간 대화를 나눴을 뿐인데도 동하는 최룡에게 깊은 호감을 느꼈다.
‘이런 남자라면 친구로 삼아도 괜찮을 것 같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가 끝이 났다. 동하가 아랫배를 문지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아아……!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하하!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흔쾌하게 웃으며 최룡이 몸을 일으켰다.
“덕분에 저도 모처럼 즐겁게 식사를 했습니다. 오늘 밤은 폭 쉬시고 내일 아침에 다시 말씀을 나누시죠.”
“저기…….”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혹시 한국 경찰에서 파견 나온 이은서 경위가 이곳에 있습니까?”
“……!”
동시에 최룡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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