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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경찰-22화 (22/75)

〈 22화 〉 22화. 최룡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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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최룡의 분노

안색을 굳힌 채 한동안 동하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던 최룡이 한참만에야 나직이 입을 열었다.

“괜찮으시다면 그 이야기도 내일 아침에 나누는 게 어떻겠습네까?”

“…….”

에이 씨! 그냥 안 괜찮다고, 지금 얘기하자고 확 질러 버려?

잠시 망설이던 동하는 마지못해 고개를 까닥였다.

“네, 그러시죠.”

“그럼 내일 아침에 뵙겠습네다. 모쪼록 편안한 밤 보내시라요.”

동하에게 정중하게 인사까지 하고 나서 최룡이 방을 빠져나갔다.

타악!

닫히는 방문을 바라보며 동하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으음……! 최룡의 태도로 보아 이은서 경위가 이곳에 잡혀 있는 게 확실한 것 같은데.”

동하가 문득 생각난 듯이 이진산을 불렀다.

‘어르신! 그런데 왜 이리 조용하세요? 최룡을 보셨으면 강하다느니, 약하다느니 한 말씀 하실 줄 알았는데요.’

[…….]

‘어르신?’

[도망쳐라!]

‘네?’

이진산의 긴장한 목소리를 들으며 동하의 표정이 어리둥절하게 변했다.

“뜬금없이 도망치라뇨? 갑자기 왜요?”

[저 최룡이란 놈은 진짜 고수 급이다! 그러니까 이 머나먼 타지에서 개죽음당하고 싶지 않거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치란 말이다!]

‘어르신……?!’

이진산의 뜻밖의 반응에 당황하던 동하가 고개를 휙휙 가로저었다.

“아뇨! 이은서 경위와 함께 가는 게 아니라면 저는 떠나지 않겠습니다.”

[이 등신 머저리 같은 놈아! 이번엔 진짜 죽는다니까!]

이진산이 버럭 고함을 질렀지만, 동하는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러셔도 소용없습니다. 죽으면 죽었지 혼자서는 떠나지는 않을 거니까요.’

[진짜 미치겠네! 실력도 없는 새끼가 뭘 믿고 이리 똥고집을 부리지? 너 그러다 진짜 죽어, 인마!]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저는 먼저 자보도록 하겠습니다.’

동하가 방 한 구석의 침대로 가서 벌러덩 누워 버렸다.

[야! 야! 강동하, 이 미련곰탱이 같은 새끼야! 네가 정말 뒤지고 싶어서 빽을 쓰고 있냐, 엉?]

이진산이 꽥꽥 소리를 질러댔지만 동하는 애써 무시하며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반주까지 한 잔 곁들여서였을까? 동하는 그날 밤 모처럼 푹 잤다.

물론 이진산이 밤새 최룡은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느니, 최룡과 맞붙으면 십중팔구 모가지가 날아갈 거라느니 소리를 질러댔지만 그는 애써 무시하며 내처 잠만 잤다.

꿈속에서 동하는 임동양맥이 극적으로 뚫려 최룡을 때려눕히고 은서를 구하는 꿈을 꾸었다. 꿈을 꾸는 내내 그의 입가에는 뿌듯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 * *

“으하아암~~ 자알 잤다!”

햇살이 환하게 비추는 침실에서 동하가 기지개를 쭉 켜며 일어났다. 침대 아래로 사뿐히 내려서며 동하의 입가에는 기분 좋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잠을 잘 자서 그런지 몸이 가뿐하네. 일단 가볍게 운기를 좀 해볼까나.”

동하가 침대 옆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운기를 시작했다. 이내 혈관을 타고 기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운기의 속도를 조금씩 조금씩 높여가던 동하가 가속도가 붙은 기운을 두 갈래로 나누어 몸의 대칭되는 양쪽 지점에 위치한 임동양맥을 향해 휘몰아쳤다.

투웅! 투우웅!

그리고 임동양맥을 힘껏 두드려보았지만 이번에도 그 견고한 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젠장! 꿈은 어디까지나 꿈일 뿐이로군.”

동하가 피식 실소하고 있을 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네, 들어오세요.”

동하가 몸을 일으키며 대답하지, 어제 그를 태우고 왔던 청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강 선생님, 안녕히 주무셨습네까?”

“네, 덕분에 잘 잤습니다.”

“…….”

청년이 의아한 표정으로 동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제 얼굴에 뭐라고 묻었습니까?”

“그게 아니라 강 선생님 안색이 너무 편안해 보여서 살짝 놀랐습네다.”

“왜요? 제가 편안하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요?”

“그런 건 아닙네다만…….”

말끝을 흐리던 청년이 다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저희 회주님께서 강 선생님과 아침 식사를 함께 하시려고 기다리고 계십네다. 제가 안내할 테니, 가시디요.”

“네, 그러시죠!”

동하가 씩씩하게 청년을 따라나섰다.

청년을 따라 한동안 걸은 끝에 동하는 복도 끝에 위치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청년이 방문을 열어주며 머리를 살짝 숙였다.

“이 방입네다. 들어가시라요.”

“고맙습니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동하의 입에서 새된 소리가 흘러나왔다.

“헉!”

방안에는 오늘도 아침 식사가 먹음직스럽게 차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식탁에는 놀랍게도 최룡과 은서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동하를 발견한 은서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강 순경님, 오랜만이에요?”

“……!”

벙진 표정으로 은서의 얼굴을 바라보던 동하가 간신히 물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습니까?”

“네, 보시다시피 저는 멀쩡해요.”

최룡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자신의 맞은편 자리를 가리켰다.

“일단 앉으시라요. 이러다 음식이 다 식겠습네다.”

“아, 네…….”

동하가 은서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며 자리에 앉았다.

“자, 다들 모였으니 식사부터 하실까요?”

최룡이 권하자 동하와 은서가 차례로 젓가락을 들었다.

어제 저녁 식사 못지않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식사가 시작되었다. 최룡이 자연스럽게 동하에게 말을 걸었고, 동하도 친근하게 대화에 응했다. 간간이 웃음까지 터뜨리며 마치 오랜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은서가 신기하다는 듯이 지켜보았다.

‘강 순경님은 설마 내가 납치당했다는 걸 모르고 있나?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리 태연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지?’

은서의 의문 속에 식사가 끝이 났다.

최룡이 손수 동하에게 차를 따라주며 물었다.

“어떻게, 식사는 입에 맞으셨습네까?”

“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어제 저녁이 기름지고 든든했다면 오늘 아침은 담백하고 가벼워서 좋았습니다.

“만족하셨다니 다행이군요. 자, 그럼 슬슬 일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그러실까요?”

두 남자의 기도가 순식간에 변하는 것을 느끼며 은서도 바짝 긴장했다.

‘드디어 시작되는 건가……?’

먼저 최룡이 은서를 가리키며 동하에게 물었다.

“강동하 순경님은 여기 이은서 경위님을 모셔가려고 오셨겠디요?”

“네, 그렇습니다.”

“제가 왜 이은서 경위님을 강제로 모셨는지 혹시 알고는 계십네까?”

“아뇨, 전혀 모릅니다.”

“실은 강 순경님을 중국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였습네다.”

“저를요……?!”

뜻밖의 대답에 놀란 동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한국에 있는 누군가가 강 순경님이 이은서 경위님과 매우 친밀한 관계라고 알려주었거든요. 말인즉슨, 이은서 경위님의 신병을 확보해두면 강 순경님이 이 경위님을 구하려고 중국으로 들어올 것이라는 말이었습네다.”

“대체 누가 그런 말을 해줬다는 겁니까?”

“궁금하시다면 직접 만나게 해드겠습네다.”

짝! 짝!

덜컥!

최룡이 손바닥을 두드리자, 방문이 열리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최룡에게 다가와 허리를 숙이는 남자를 알아보고 동하와 은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헉! 다, 당신은……?”

“이 교활한 새끼! 그새 또 꼼수를 부렸구나!”

리길상이 몸을 바로 세우며 동하를 향해 비릿하게 웃었다.

“크흐흐흐! 그러게 중국으로 따라와 나를 보호해달라는 요청을 거절하지 말았어야지. 강동하 네놈의 보호도 없이 중국으로 들어왔다간 개죽음을 당할 게 뻔한데, 그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았겠니? 그래서 여기 최룡 회주님에게 전화를 걸어 너를 중국으로 끌어들일 묘책을 알려드렸지.”

“리길상이……, 니 새끼가 아직 매를 덜 맞았구나?”

“윽!”

동하의 눈빛이 변하자, 리길상이 움찔했다.

최룡의 옆으로 바싹 다가서는 리길상을 가리키며 동하가 섬뜩하게 경고했다.

“내 앞에서 한 번만 더 잔머리 굴렸다간 뒤진다고 말했지? 기대해. 이번에야말로 진짜 지옥을 구경시켜줄 테니까.”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동하를 바라보던 리길상이 가소롭다는 듯이 웃어젖혔다.

“푸하하하! 그 전에 강동하 네가 여기 최룡 회주님에게 박살이 날 거이야! 회주님이야말로 길림성을 대표하는 진짜 고수시란 말이다!”

“리길상 너 이 새끼……!”

뿌드득 이를 갈아붙이며 리길상을 노려보던 동하가 최룡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런 수고를 감수하면서까지 저를 중국으로 불러들인 이유가 뭡니까?”

“혹시 박광성이란 이름을 기억하십네까?”

“박광성이라면……?!”

움찔하는 동하를 똑바로 보며 최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네다. 강 순경님에게 당하고 사경을 헤매고 있는 제 부하입네다. 다들 광성이를 저의 오른팔이라고 불렀지만 저는 늘 아니라고 했습네다. 왜냐하면 광성이는 그냥 부하 정도가 아니었으니까요.”

최룡의 눈가에 순간적으로 살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광성이는 저에게는 친아우 그 이상이었습네다. 우리는 북조선에서 함께 탈출한 꽃제비 출신으로 같이 울고, 같이 웃으며 여기까지 왔습네다. 그런 소중한 친구를 처참하게 망가뜨린 강 순경님에게 제가 어드레 신세를 갚지 않을 수가 있었겠습네까?”

“으음…….”

동하가 냉기를 풀풀 풍기는 최룡의 얼굴을 긴장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참만에야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최룡 회주님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같은 상황이었다면 저부터도 복수를 생각했을 테니까요.”

“이해해주시니 감사합네다.”

표정이 살짝 풀리는 최룡을 향해 동하가 급히 말했다.

“우리가 맞붙기 전에 한 가지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말씀해 보시라요.”

동하가 은서를 힐끗 쳐다보았다.

“만약 제가 이곳에서 죽게 되더라도 이은서 경위님만은 한국으로 무사히 돌려보내 주십시오.”

“으음…….”

최룡이 동하의 부탁을 받아들이겠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 방문이 벌컥 열리며 방금 전 동하를 안내했던 청년이 급히 뛰어 들어왔다.

“따거, 큰일 났습네다!”

“큰일이라니?”

“한국의 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둘째 대형께서 방금 돌아가셨답네다!”

“뭐이 어드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최룡의 얼굴이 무참하게 일그러졌다. 충격을 받은 것은 최룡만이 아니었다. 동하의 얼굴에서도 핏기가 싹 가셨다.

“아……! 결국 그렇게 되었구나.”

최룡이 떨리는 소리로 동하를 불렀다.

“강동하 순경.”

“네? 아, 네.”

“당신이 잘못돼도 이은서 경위만은 무사히 보내달라는 방금 전의 그 부탁은 들어줄 수 없을 것 같습네다.”

“……!”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한동안 멍청하게 최룡을 응시하던 동하가 살짝 갈라지는 소리로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최룡이 무시무시한 눈초리로 동하를 쏘아보며 씹어뱉었다.

“당신이 죽으면 이은서 경위도 죽을 겁네다.”

“헉!”

“당신이 당신의 여자를 구하지 못하고, 절망에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모습을 봐야 불쌍한 내 아우의 한이 조금이라도 풀릴 테니 말입네다.”

“결국 하나의 죽음이 또 다른 죽음을 부르는군요.”

동하가 씁쓸한 얼굴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자, 누가 죽고 누가 살든 이제 결판을 지으러 나갑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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