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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경찰-26화 (26/75)

〈 26화 〉 26화. 샤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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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샤이롱

동하가 왕치성과 마주 앉아 취조를 받고 있는 그 시간에 최룡도 다른 취조실에 다른 누군가와 마주 앉아 있었다.

그런데 최룡의 표정이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늘 당당했던 그가 맞은편의 상대에게 잔뜩 겁을 먹은 듯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의 두 눈 또한 상대를 똑바로 보지도 못하고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최룡……!”

최룡보다 나이는 오히려 한두 살쯤 어릴까?

핏기라곤 없는 창백한 얼굴에 입술이 유난히 가늘고 붉어 잔인한 느낌을 풍기는 남자가 나직이 입을 열어 최룡을 불렀다.

“네, 넵!”

순간 최룡이 절로 허리를 빳빳이 세우며 목청 높여 대답했다. 마치 군인이 상관의 부름에 대답하는 그런 복종적인 자세였다.

깡마른 몸에 꼭 맞은 검은색 정장까지 입어 꼭 저승차사처럼 보이는 키 큰 남자의 이름은 샤이롱!

최룡이 샤이롱을 이처럼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가 동북회의 상급 조직인 심양 흑룡회의 중간간부이자, 최룡으로선 감히 똑바로 쳐다볼 수조차 없는 고수였기 때문이다.

‘샤이롱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무엇보다 그의 잔인한 성격 때문이지……!’

최룡은 새삼 샤이롱이 자신을 거역한 무송의 북만회 조직원 오십을 하루 밤새 몰살시켰다는 전설적인 소문을 떠올리고 있었다. 북만회 보스는 물론 그의 아내와 어린 두 딸까지 깡그리 척살해 버렸다는 섬뜩한 일화를 상기하며 최룡은 등줄기가 축축하게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샤이롱이 공포에 질려 있는 최룡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낮게 깔리는 소리로 말했다.

“최룡,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너 정도 되는 고수가 어떻게 한국 경찰 중에서도 가장 하위계급에 해당하는 순경 따위에게 깨질 수가 있지?”

샤이롱의 투명하게 빛나는 눈동자를 마주 보며 최룡은 저도 모르게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아……! 샤이롱은 조선족인 내가 혹시 한국 경찰과 내통하지는 않았는지 의심하고 있구나!

신중하게 대답해야 한다. 여기서 대답을 잘못하면 샤이롱의 손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최룡이 마음을 가다듬으며 최대한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는 평범한 순경이 아니었습네다. 그는 저조차도 감당하기 힘든 고수였습네다.”

“흐음……, 한국의 순경 따위가 너를 능가하는 고수였다라…….”

톡! 톡! 톡! 툭!

마치 매의 발톱처럼 뾰족하고 길게 기른 손톱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샤이롱이 눈을 가늘게 뜨고 최룡의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의 예리한 눈초리는 최룡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최룡.”

“네, 샤이롱님!”

“우리는 한국 경찰에 대해 이미 충분히 파악하고 있어. 그렇지 않나?”

“무, 물론 그렇습네다.”

“그들은 나약하고, 비겁하며, 오로지 돈만 밝히는 속물들이지. 그런 한국 경찰 중에서도 가장 낮은 계급의 순경이 그 정도로 강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는 잘 믿기지 않는구나.”

샤이롱의 눈에 의혹이 짙어지는 것을 보며 최룡이 필사적으로 외쳤다.

“아닙네다! 그는 정말 강했습네다! 저로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습네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최룡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샤이롱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좋다, 그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지! 네 말이 거짓으로 판명되면 그땐 각오하는 게 좋을 것이다, 최룡!”

“다, 당연하신 말씀입네다!”

방문을 향해 돌아서던 샤이롱이 최룡을 힐끗 돌아보았다.

“아 참, 그리고…….”

“네, 하명하시라요.”

“윗분들이 이번 사태에 대해 매우 언짢게 생각하고 계신다. 그래서 말인데, 동북회는 오늘 부로 완전히 해체시키기로 한다.”

“네? 그럼 병원에 누워 있는 제 아우들은 어드렇게 되는 겁네까?”

흠칫 고개를 쳐드는 최룡을 보며 샤이롱이 무감동하게 말했다.

“너의 아우들? 아, 그 조선족 떨거지들? 당연히 마약 유통과 폭력조직 결성혐의 등의 현행범으로 공안에 체포되어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쿠웅!

제 할 말만 하고 방문을 닫고 나가 버리는 샤이롱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최룡이 질린 듯이 되뇌었다.

“방금 엄정한 법의 심판이라고 했습네까?”

중국에서 마약사범은 십중팔구 사형을 당하게 되어 있다. 거기에 폭력조직 결성혐의까지 더해진다면 아우들 모두 목숨을 보존하기가 힘들 것이다.

저 더러운 한족 새끼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사냥개처럼 부리던 우리 조선족 조직들을 말살해 버리기로 작정을 했구나!

“종간나 새끼들아……, 우리가 너희들이 씹다 버린 개뼈다귀인 줄 아니……!”

뿌드득 이를 갈아붙이며 씹어뱉는 최룡의 얼굴에서 더 이상 공포심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 * *

“내가 최룡과 작당해 한국에 마약을 살포한 공범으로 몰려 있다고……?!”

동하가 기가 막힌 표정으로 자신 앞에 앉아 있는 왕치성을 바라보았다.

왕치성이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니까 한국대사관이나 너와 함께 파견 나온 그 이은서 경위도 네놈을 구해줄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런 씨발……!”

동하가 공안청에 끌려온 이후에도 여유를 부릴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 경찰인 자신을 중국 공안이 오랫동안 잡아두지는 못할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이거 잘못하면 일이 아주 더럽게 꼬여 버릴 것 같은데?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왕치성의 얼굴을 노려보던 동하가 한숨을 푹 내쉬며 물었다.

“그래서 나한테 원하는 게 대체 뭔데?”

“뭐?”

“나한테 원하는 게 있으니까 멀쩡한 사람을 붙잡아두고 이렇게 협박질을 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

“…….”

잠시 입을 꾹 다물고 동하의 얼굴을 응시하던 왕치성의 한쪽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강동하 순경, 우리 협상하자.”

“협상이라니, 무슨 협상?”

왕치성이 손가락으로 동하의 얼굴을 가리키며 눈을 반짝 빛냈다.

“솔직히 강 순경 네가 길림파를 깨뜨렸을 때만 해도 우리는 우연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동북회까지 공중분해 시켜버리는 것을 보고 적지 않게 놀란 게 사실이다. 허약하기로 유명한 한국 경찰 중에 너 같은 놈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

“씨발! 말을 빙빙 돌리지 말고 본론부터 말해!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대체 뭔데?”

“네가 대림동에서 길림파를 대신해다오.”

“뭐라고……?”

황당한 표정을 짓는 동하의 얼굴을 가리킨 채 왕치성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어쨌든 현직 경찰관의 신분에 너 정도의 고수가 길림파를 대신하여 마약을 유통해준다면 우리로서야 전화위복이 되지 않겠나? 물론 그에 대한 대가로 너는 평생 써보지 못할 막대한 금액을 보상으로 받게 될 것이다. 어때, 이 정도면 구미가 당기는 제안 같지 않나?”

“……!”

동하가 황당한 표정으로 왕치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왕치성이 그런 동하의 눈앞으로 손을 내밀며 씨익 웃었다.

“고민할 필요 없어. 너 정도 되는 실력자가 순경의 박봉으로 살아간다는 게 말이 되느냔 말이야?”

“맞아, 순경 월급이란 게 참 쥐꼬리만 하긴 하지.”

“그래! 그러니까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돈벼락을 맞으란 말이다.”

“돈벼락이라……, 그 말 참 달콤하게 들리네.”

“왜 아니겠나? 국적과 인종을 떠나 돈은 누구든 좋아하기 마련이지.”

“이야~ 우리 공안국장님이 아주 맞는 말만 척척 골라서 하시네!”

동하도 씨익 웃으며 왕치성이 내민 손을 잡으려는 듯 손을 내밀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왕치성도 동하의 손을 맞잡으려고 했다.

타아악!

“윽!”

하지만 동하는 손등으로 공안국장의 손을 거칠게 쳐내 버렸다. 그리곤 황당한 표정을 짓는 왕치성의 눈앞으로 오른손 중지를 척 들어 보였다.

“좆 까, 씨발아……! 돈이 아무리 좋아도 너희 같은 쓰레기들의 돈은 구린 냄새가 풍겨서 싫거든!”

“이 새끼가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분을 참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던 왕치성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야! 다들 들어와!”

벌컥!

“넵!”

순간 방문이 거칠게 열리며 건장한 무장 공안 다섯 명이 뛰어 들어왔다. 무장 공안들의 손에는 시위진압용 곤봉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왕치성이 박차고 일어나 동하를 가리키며 명령했다.

“저 새끼 저거 고분고분해질 때까지 밟아 버려!”

“알겠습니다!”

무장 공안들이 달려들어 수갑을 차고 있는 동하를 억지로 의자에서 끌어내린 다음 바닥에 무릎 꿇렸다.

“놔! 이거 안 놔, 씨발놈들아!”

거칠게 반항하는 동하의 뒤통수에 곤봉이 쑤셔 박혔다.

뻐어억!

“크흑!”

맥없이 고꾸라지는 동하의 머리와 등짝으로 다섯 개의 곤봉이 사정없이 쏟아졌다.

퍽! 퍽퍽! 퍼억! 퍼어억!

“크아아악! 이 씹새끼들아, 너희들 경찰 맞아? 경찰이 사람을 묶어놓고 이렇게 막 패도 되는 거야?!”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하며 꽥꽥 소리를 질러대는 동하의 머릿속에서 이진산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이 미련곰탱이 같은 새끼야! 그냥 처맞고 있지만 말고 냉큼 일어나서 반격해]

‘하, 하지만 중국 공안을 때리면 문제가 커질 텐데요?’

망설이는 동하를 향해 이진산이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 병신 같은 놈아! 중국 공안은 한국 경찰과는 천양지차야! 이 새끼들은 공안청 취조실에서 사람을 때려죽여도 아무런 문제 될 게 없는 놈들이란 말이다!]

‘에이~ 그래도 경찰인데 설마 멀쩡한 사람을 죽이기야 하겠어요?’

[죽인다! 네놈이 길림파를 대신해 한국에 마약을 유통시키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증거인멸을 위해서라도 네놈의 입을 영원히 틀어막으려고 할 게야.]

‘헉! 저, 정말요?!’

이진산의 심각한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동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어차피 이판사판이다!

왕치성과 공안 새끼들을 싹 다 때려눕히고 이은서 경위한테 달려가면 무언가 방법을 찾아주겠지!

“후우우웁……!”

결심을 굳힌 동하가 서둘러 운기를 시작했다. 하단전이 열리며 이전보다 훨씬 많은 내공이 혈관으로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키우우우웅!

임동양맥이 뚫린 이후, 확실히 빨라진 기의 흐름이 온몸을 강물처럼 쓸고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동하는 온몸의 혈관을 통해 몇 바퀴 휘돌린 그 세찬 기운을 양손에 집중시켰다.

그리곤 수갑이 채워져 있는 손목을 힘주어 비틀었다.

“이얍!”

우지직!

기합 한 번에 수갑이 장난감처럼 부서졌다.

“헉! 이 새끼 이거 수갑을 풀었어!”

콰아악!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노리고 곤봉을 내리치는 공안의 손목을 붙잡았다.

“경찰이란 새끼가 곤봉으로 사람의 머리를 막 후려쳐도 되는 거냐?”

우적!

“크아악!”

동하가 발경이 제대로 이루어진 주먹으로 공안의 콧잔등을 박살내자, 그가 피를 뿌리며 문밖까지 튕겨 나갔다.

“저 새끼, 죽여! 죽여 버려!”

“와아아악! 감히 공안한테 반항하는 거냐?”

왕치성이 동하를 가리키며 악을 지르자, 나머지 네 명의 공안이 곤봉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들어와, 이 새끼들아! 기왕 이렇게 된 거 한국 경찰의 매운맛을 제대로 보여줄게!

쩌걱!

“우웨엑!”

동하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주먹을 내뻗자, 선두에서 달려들던 공안의 입이 피투성이로 변하며 날아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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