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29화. 의형제
* * *
29화. 의형제
그날 오후에 최룡의 폐차장에서 파티가 벌어졌다.
동하에게 깨졌던 조선족 청년들이 드렁통을 잘라 만든 대여섯 개의 바비큐통에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그리고 독한 고량주를 내와 폐차장 한복판에 놓인 기다란 테이블에 둘러앉은 동하와 은서 그리고 강영철을 비롯한 형사들의 잔을 차례로 채웠다.
치이이이익!
고기를 굽는 매캐한 연기가 하늘로 치솟는 것을 지켜보던 동하가 옆자리의 은서에게 나직이 속삭였다.
“이 자식들, 아예 돼지를 몇 마리 잡을 기세인데요.”
“아마도 우릴 대접하고 싶은 모양이에요.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강 순경님을 대접하고 싶은 거겠죠.”
“저를요? 대체 왜요?”
동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자, 은서가 턱짓으로 테이블의 상석에 앉아 있는 최룡을 가리켰다.
“그야 저 남자 때문이겠죠.”
“최룡 때문이라고요……?”
동하가 더욱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최룡을 돌아보았다.
윽! 저 자식이 사람을 왜 저리 빤히 쳐다보고 그러지?
어라? 거푸 술을 처마셔서 그런지 얼굴까지 살짝 붉히고 있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나한테 고백이라도 하려고 하는 줄 알겠어.
괜스레 쑥스러워진 동하가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는 순간, 최룡이 술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 여기를 주목해 주시라요!”
“넵, 따거!”
순간 고기를 굽고 있던 조선족 청년들이 일제히 최룡을 향해 돌아서며 우렁차게 외쳤다.
“…….”
술잔을 든 채 한동안 동하의 얼굴을 그윽하게 바라보던 최룡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래 최룡은 지금까지 살면서 누군가를 형님으로 모시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드랬소. 그런데 오늘 진심으로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 분을 만나게 되었소. 그분은 이 최룡이 형님으로 받들 만큼 용감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분이셨소. 나는 이제 이 형님을 모시고 우리 동북회를 심양의 흑사회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킬 결심이오.”
“우와아아아아!”
최룡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선족 청년들이 고개를 굽던 집게를 휘두르며 환호성을 질렀다.
동하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은서에게 물었다.
“최룡이 형님으로 모시고 싶다는 사람이 대체 누구일까요? 이 경위님은 혹시 짐작 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예요?”
“아, 참! 당연히 모르니까 묻죠.”
“헐……! 우리 강 순경님 눈치가 완전 꽝이시네.”
순간, 최룡이 동하를 가리키며 버럭 소리쳤다.
“저기 계신 강동하님이 이 최룡의 형님이 되실 분이시오!”
“헉! 설마 의형제를 맺고 싶다는 사람이 바로 나?!”
황당한 표정을 짓는 동하의 주위로 조선족 청년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주먹을 흔들며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강동하!”
“강동하!”
“감동하!”
“강동하!”
급 당황한 동하가 그런 청년들을 향해 손사래를 쳤다.
“이, 이봐. 이러지들 마. 나랑 최룡이랑 비슷한 또래인데 무슨 의형제를 맺겠어?”
이때 최룡이 다가와 동하애게 술잔을 내밀었다.
“동하 형님, 이 아우의 술잔을 받으시라요.”
“하하! 최룡 너 왜 이래? 너랑 나랑 나이 차이도 안 나는데 형은 무슨 얼어 죽을 형이야.”
동하가 억지로 웃으며 손사래를 쳤지만 최룡은 물러설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우리 세계에서 형과 동생은 나이가 아니라 주먹으로 결정되는 겁네다. 그리고 저는 형님의 주먹에 보기 좋게 뻗어 버렸디요. 어디 그뿐입네까? 형님은 장춘시 공안청에서 샤이롱과 왕치성 국장에게 당할 뻔했던 저를 구해주셨습네다. 이런 은인을 형님으로 모시지 않는다면 과연 누구를 형님으로 모실 수가 있단 말입네까?”
“허, 참……!”
듣고 보니 맞는 말인 것도 같아 동하는 단호하게 쳐내지 못하고 망설였다.
순간 술잔을 내민 상태로 최룡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했다.
“만약 제가 내민 형제의 잔을 거부하신다면 방법은 한 가지뿐입네다.”
“그 방법이란 게 설마……?!”
불안한 표정으로 묻는 동하의 눈을 들여다보며 최룡이 목소리에 더욱 힘을 실었다.
“맞습네다. 저희 둘이 다시 결투를 벌여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결판을 내는 수밖에 없다는 겁네다.”
헐! 이건 뭐 의형제 맺든지 뒤질 때까지 싸우든지 양자택일을 하라는 소리군.
요청이 아니라 완전 협박이네, 협박이야.
이 경위님은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동하가 기가 막힌 듯이 은서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은서는 어서 술잔을 받으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번 마약 사건에 상상 이상으로 큰 중국 조직이 연루되어 있는 것 같아요. 이 사건을 본격적으로 파헤치려면 우리도 중국 내 거점을 확보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최룡의 동북회는 우리에게 훌륭한 거점이 되어줄 거예요.’
은서의 반짝이는 눈은 대충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원래 은둔형 외톨이 출신으로 누군가와 사적 관계를 맺는 것을 극도로 부담스러워하는 동하는 마지막으로 이진산을 불러보았다.
‘어르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곧 동하의 머릿속에서 이진산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뭘 어떻게 생각해, 이놈아?]
‘내가 일면식도 없었던 조선족 조폭과 의형제인가 뭔가를 맺는 게 합당하다고 생각하시냐고요?’
[원래 강호란 그런 곳이다. 목숨을 걸고 박 터지게 싸우던 남자들이 서로에게 반해 주먹 대신 술잔을 부딪치며 의리를 다지는 훈훈한 세계란 말이다. 그러니까 쪽팔리게 주접떨지 말고 어서 술잔을 받도록 해라.]
‘아, 네. 제가 지금 주접을 떨고 있는 거였군요.’
이진산까지 이렇게 나오자, 동하는 어쩔 수 없이 최룡이 내민 술잔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오, 형님! 이 아우의 술잔을 받아주시는 겁네까?”
“뭐 다들 받으라고 난리니 안 받을 수도 없고…….”
동하가 떨떠름하게 대답했지만 최룡은 개의치 않고 잔이 넘치도록 고량주를 따랐다.
“감사합네다, 형님! 이 최룡,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형님을 받들겠습네다!”
“아하하하! 고, 고마워서 눈물이 나려고 하네.”
동하가 쑥스런 표정을 숨기려고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크으으~ 무슨 술이 이렇게 쓰냐?”
최룡이 그런 동하를 향해 두 손을 공손하게 내밀었다.
뭐? 왜 또? 술잔 싹 다 비웠는데 대체 뭘 어쩌라고?
최룡을 뜨악하게 쳐다보는 동하의 귓가에 대고 은서가 속삭였다.
‘아마 자기한테도 한 잔 내려달라고 하는 것 같아요.’
‘아하, 그거였어? 옛다! 너도 한 잔 받아라.’
동하가 빈 술잔을 돌려주자, 최룡이 그야말로 황송한 표정으로 받았다. 동하가 그런 최룡의 잔에 고량주를 역시 넘치도록 따라주었다.
쪼르르륵!
고개를 돌리고 술잔을 비우는 최룡을 보며 동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래도 어디서 예절을 배우긴 배운 모양이네.
술잔을 깨끗이 비운 최룡이 머리 위에서 빈 잔을 털며 큰소리로 선언했다.
“이것으로 동하 형님과 나 최룡은 태어난 날은 달라도 한날한시에 죽기로 맹세한 의형제가 되었다!”
“와아아아아아!”
동시에 조선족 청년들이 주먹을 흔들며 미친 듯이 함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그야말로 광란이 도가니였다. 밤이 깊어질 때까지 동하와 은서와 그리고 강영철을 비롯한 형사들은 최룡과 조선족 청년들이 앞다퉈 따라주는 술을 마시고, 또 그들이 구워주는 고기를 정신없이 받아먹었다.
“으하하하! 정말이지 유쾌한 밤이다!”
“푸하하하! 오늘은 밤이 새도록 먹고 마시는 거다!”
밤하늘로 고기를 굽는 매캐한 연기와 조선족 청년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여 울려 퍼졌다. 그렇게 정신없이 먹고 마시던 최룡과 조선족 청년들 그리고 동하와 형사들은 폐차장 곳곳에 쓰러져 차례로 잠이 들었다.
동하와 최룡 등이 막 잠에 빠져들고 있는 그 시간에 장춘시 공안차 한 대가 소리 없이 폐차장 앞에 정지했다.
딸칵! 딸칵!
그리고 조용히 문이 열리며 왕치성 국장과 정절모를 눌러쓴 뚱뚱한 중년사내가 내렸다.
온몸으로 범접하기 힘든 중압감을 풍기는 중년사내가 철문이 굳게 닫혀 있는 폐차장을 힐끗 올려다보며 물었다.
“이곳이 동북회의 근거지인가?”
“네, 그렇습니다!”
사내가 누구인지 잔뜩 겁을 집어먹은 왕치성이 허리가 부러져라 숙였다. 중년사내가 그런 왕치성을 돌아보며 짧고 단호하게 통보했다.
“최룡과 그의 부하들은 말살하라는 상부의 명령이다.”
“아! 역시 그렇게 결정되었습니까?”
꿀꺽, 마른 침을 삼키는 욍치성을 돌아보며 사내가 시퍼런 안광을 발했다.
“더불어 한국에서 우리의 계획을 모조리 망쳐 버린 그 강동하라는 순경 이하 함께 파견 나온 경찰관들도 전원 말살시키기로 한다!”
왕치성이 흠칫 고개를 쳐들었다.
“헉! 한국 경찰까지 말입니까? 그렇게 되면 엄청난 외교적 분쟁을 피할 수가 없을 텐데요?”
사내가 가소롭다는 듯이 씨익 웃었다.
“우리 중국이 한국 같은 소국을 두려워해야 하나?”
“무, 물론 그건 아닙니다만…….”
“그리고 장춘시 공안청에서 강동하나 한국 경찰이 죽었다면 한국 정부에서 항의를 할 수 있겠지만, 조선족 조폭의 근거지에서 조폭들과 술판을 벌이다 죽었다면 과연 항의할 수 있을까?”
“오오……! 그럼 그래서 강동하와 최룡 등을 즉시 석방시키라는 지시가 내려왔던 거로군요.”
“미련한 놈! 그 정도 눈치도 없으면서 공안국장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었단 말이냐?”
“죄, 죄송……!”
황망히 고개를 숙이는 왕치성이 꼴도 보기 싫다는 듯 중년사내가 빙글 돌아서 버렸다. 그리고 굳게 닫힌 출입문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두꺼운 철로 만든 출입문 앞에 서 있던 사내가 오른 주먹을 눈앞으로 들어 올렸다.
끼우우웅……!
동시에 사내의 주먹에서 새파란 불길이 일렁이는 것처럼 보였다.
“이얍!”
투화아악!
사내가 그 주먹을 철문에 슬며시 갖다 대는 순간, 엄청난 힘에 떠밀린 듯 출입문이 양옆으로 활짝 열어 젖혀졌다.
“밤도 깊었으니 슬슬 사냥을 시작해볼까나?”
산보라도 하듯 천천히 폐차장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내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왕치성이 긴장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역시 흑룡회의 최고수 리펑답다. 중국 최고의 통배권 고수가 왔으니, 강동하와 최룡 너희 둘 다 이젠 뒤질 일만 남았군.”
* * *
“으으으……! 물……, 누가 물 좀 줘……!”
밤새 퍼마시고 폐차장 바닥에 쓰러져 자고 있던 조선족 청년 하나가 목을 감싼 채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런 청년의 눈에 자신을 향해 산책이라도 하듯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리펑의 모습이 들어왔다.
리펑의 동작이 너무 자연스러웠으므로 청년은 그가 분명 동료일 거라고 착각하며 손을 내밀었다.
“이봐, 혹시 물이 어디 있는지 알아?”
“왜? 목이 마른가?”
리펑이 청년 앞에 멈춰 서서 히죽 웃었다. 청년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응! 아무래도 지난 밤에 너무 마신 모양이야.”
“앞으로 목이 마를 일은 없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응? 그게 무슨 소리지?”
“이제 곧 뒤질 놈이 목마름을 느낄 시간이 어디 있겠나?”
투우웅!
“우웨엑!”
리펑이 주먹을 가슴에 슬쩍 갖다 대자, 청년이 왈칵 핏물을 토하며 덜컥 진동했다.
몸 안의 강력한 기를 주먹 끝에서 격발시켜 상대의 장기를 파괴하는 대륙이 자랑하는 전통권법 통배권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