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30화. 통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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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통배권
쿠웅!
“으응……! 이게 무슨 소리지?”
동료가 땅바닥에 처박히는 소리를 듣고 또 다른 조선족 청년이 눈을 떴다. 최룡이 거느리고 있는 청년들 가운데 가장 덩치가 좋고 힘이 센 청년이었다.
“이런 종간나 새끼가……?!”
그런 청년이 피투성이가 되어 널브러져 있는 동료들 한복판에 서서 시퍼렇게 눈을 빛내고 있는 리펑을 발견하고 뿌드득 이를 갈아붙였다.
리펑의 덩치도 컸지만 청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청년은 리펑을 향해 자신 있게 주먹을 쳐들고 달려들 수가 있었다.
“으아아아! 죽여 버리갔어, 간나 새끼!”
쉬이이익!
자신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드는 청년의 주먹을 향해 리펑도 주먹을 날렸다. 리펑의 주먹에선 파란빛이 일렁이고 있었지만 청년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 발견했다 하더라도 주먹을 빼내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후였다.
투우우웅!
“!”
리펑의 주먹과 자신의 주먹이 충돌하는 순간, 청년이 움찔했다.
피피피피핏!
리펑과 주먹을 맞대고 있는 팔소매가 갈가리 찢어지는 것을 보고도 청년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차리지 못했다.
터어엉!
“우웨에엑!”
잠시 후, 가슴이 쪼개지는 통증과 함께 피를 한 말이나 토하고 나서야 청년은 자신이 절대로 맞붙어서는 안 될 고수에게 대적했음을 알아차렸다.
“사, 살려……!”
두 눈에서 피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청년이 자신의 앞에서 비릿하게 웃고 있는 리펑에게 애원했다.
리펑이 짐짓 안타깝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나도 온몸의 장기가 갈가리 찢어진 사람을 살려낼 재주란 없거든.”
“이, 이런 씨이발……!”
쿠아아앙!
앞쪽으로 천천히 쓰러지던 청년이 폐차장 바닥에 세차게 얼굴을 처박았다.
“흐음……, 바깥쪽은 대충 정리된 셈인가?”
리펑이 중절모의 챙을 슬쩍 들어 올리고 널찍한 폐차장을 휘 둘러보았다. 서른 명이 넘는 청년들이 하나같이 눈, 코, 잎에서 피를 흘리며 나뒹굴고 있었다. 폐차된 차량들 사이에서 처참하게 나뒹굴고 있는 청년들의 모습은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자, 그럼 이제 강동하와 최룡을 잡으러 가볼까?”
리펑이 음산하게 웃으며 폐차창 관리사무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흐어어억!”
최룡은 악몽을 꾸다가 깨어났다.
꿈속에서 그는 열두 살이었고, 가족들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탈북을 시도하고 있었다. 오랜 가뭄에 강의 수위가 현저히 낮아져 있었고, 그와 가족들은 그 중에서도 가장 낮은 지점을 골라 도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길을 잘못 잡은 것일까? 그보다 세 살 어린 남동생이 갑자기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최룡과 부모는 어떻게든 동생의 손을 잡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 새하얀 손은 마치 미끄러운 물고기의 비늘처럼 가족들의 손을 안타깝게 빠져나가고 말았다.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쫓아가려는 최룡의 입을 부모님이 틀어막았다.
야! 야! 여기서 소리치면 초소에서 총알이 날아들 기야! 룡아, 너라도 살아라! 너만은 반드시 살아야 하지 않겠니?
그렇게 최룡을 강둑으로 밀어붙인 부모님은 동생을 따라 강물 속으로 사라졌다.
최룡은 그 끔찍했던 과거로 돌아가 검푸른 강물 속에서 유난히 하얗게 빛나던 동생의 손을 잡으려고 허우적거리다 깨어났다.
“허억……, 허어억……! 오늘처럼 좋은 날에 무슨 꿈이 이리 지랄 같니?”
얼굴이 땀투성이로 변한 최룡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응?”
순간 최룡이 자신의 방 밖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기세를 느끼고 방문을 휙 돌아보았다. 동료 중에 이만한 기세를 풍길 수 있는 사람은 그의 의형인 강동하가 유일했다.
“하지만 형님이 이런 살기를 풍기실 리가 없지 않겠니? 결국 침입자가 있다는 뜻이겠지.”
최룡이 긴장된 얼굴로 침대에서 스윽 몸을 일으켰다.
“이거이 뭐이야……?”
방문을 열고 복도 나온 최룡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를 따르는 조선족 청년 두 명이 피를 흘리며 복도에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종간나 새끼가 우리 앞마당에서 이런 개 같은 짓거리를 한 거이야!”
분통을 터뜨리며 청년들을 향해 다가가던 최룡이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청년들이 쓰러져 있는 바로 옆쪽 방문 안쪽에서 심상치 않은 기세를 느꼈기 때문이다. 최룡이 반쯤 열려 있는 방문을 노려보며 나직이 내뱉었다.
“쥐새끼처럼 숨어 있지 말고 빨리 나오라우.”
“…….”
“거기 숨어 있는 거 다 아니까 빨리 나오란 말이다, 간나 새끼야!”
그제야 리펑이 방에서 나오며 최룡을 향해 씨익 웃었다.
“호오……! 동북회의 따거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건가?”
빌어먹을! 내가 감당하기 힘든 고수 같군.
최룡이 어금니를 지그시 리펑을 가리켰다.
“넌 뭐 하는 새끼네?”
“내 이름은 리펑이라고 한다.”
“통배권의 리펑……?!”
리펑이 정체를 알게 된 최룡은 절로 눈을 부릅떴다.
동북회를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있던 심양의 흑룡회에는 두 명의 유명한 고수가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장춘시 공안청에서 강동하와 최룡의 협공을 받고 쓰러진 당랑권의 고수 샤이롱이었고, 나머지 한 명이 통배권의 고수 리펑이었다.
최룡도 리펑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짧고 굵은 소문을 들어오고 있었다.
샤이롱이 열을 합친 것보다 리펑 한 명이 강하다!
굳이 소문이 아니더라도 최룡은 통배권이 얼마나 무서운 권법인지 잘 알고 있었다.
통배권은 중국의 전통 무공 중 가장 패도적인 권법 중 하나로 체내의 기를 주먹을 통해 순간적으로 격발시켜 상대의 정기를 파손하는 무시무시한 실전 격투술이었다.
국공 내전 이후 대륙에서 통배권을 익힌 무인이 거의 사라졌는데, 그 이유가 바로 대련 상대 대부분을 죽여 버리는 잔인성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저 아이들도 소생하기는 틀린 것 같군.’
아직도 눈, 코, 입에서 검붉은 피를 꿀럭꿀럭 흘리고 있는 두 청년을 최룡이 씁쓸하게 바라보았다. 검은 피는 내장이 손상됐음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최룡이 노여움이 실린 눈으로 리펑을 쏘아보며 말했다.
“흑룡회주가 내 목을 가져오라고 했니?”
리펑이 흰 이를 드러내며 대답했다.
“최룡 네놈 목이야 당연한 것이고, 강동하와 한국 경찰들의 목까지 싹 다 가져오라고 하셨다.”
“네깟 놈이 우리 형님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릴 수 있을 것 같으냐?!”
파파파팟!
최룡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리펑을 향해 쇄도했다.
부러 고함을 지른 것은 투지를 끌어올리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동하가 깨어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형님의 도움이 필요해! 나 혼자서는 도저히 리펑을 감당할 수가 없다!’
파아앙!
최룡이 기를 모아 내지른 주먹을 리펑이 고개를 살짝 비틀어 피했다.
“으아아아! 아우들의 원수를 갚아야갔어!”
팡! 팡! 팡! 팡! 팡!
최룡이 속사포처럼 내지르는 양손 주먹을 리펑이 유려한 몸놀림으로 모조리 피해냈다. 꼭 씨름선수처럼 생긴 리펑이었지만 보법을 밟는 모습은 한 마리 물찬 제비였다.
“언제까지 도망만 다닐 거니?”
“딱 여기까지만!”
슈와아아아악!
최룡과 리펑이 서로의 가슴을 노리고 주먹을 강하게 내질렀다.
뻐벅!
두 사람의 주먹이 서로의 가슴에 꽂혔다.
“……!”
두 사람은 한동안 그렇게 서로의 가슴에 주먹을 박은 채 뚫어져라 쏘아보고 있었다.
“끄으으으……!”
주르르륵!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최룡의 입언저리로 검붉은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우우웁!”
터져 나오려는 핏물을 목구멍 안쪽으로 가까스로 삼키며 최룡은 정신없이 뒷걸음질을 쳤다.
통배권! 과연 듣던 대로 무섭고도 잔인한 권법이구나!
자꾸만 감기려는 눈을 가까스로 치켜뜨며 최룡이 자신을 노리고 쇄도하는 리펑을 바라보았다.
“최룡! 배신의 대가는 목숨으로 갚아라!”
“우와아악! 동하 형님, 아우는 먼저 갑네다!”
최룡이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리펑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악!
“가긴 누구 마음대로 간다는 거야?”
바로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의 손이 최룡의 뒷덜미를 낚아채 확 끌어당겼다.
“도, 동하 형님!”
자신을 끌어당긴 사람이 동하임을 알아차린 최룡의 얼굴이 환해졌다. 동하가 그런 최룡을 뒤쪽으로 밀쳐놓으며 급히 달려나갔다.
“그 형님 소리 좀 안 하면 안 되나?”
그 와중에도 투덜거리며 동하는 황급히 손바닥을 내뻗었다.
파아아앙!
“끄흑!”
리펑이 날린 주먹을 손바닥으로 막아내며 동하가 신음을 삼켰다.
찌릿…… 찌릿…… 찌릿……!
손바닥을 통해 전해진 강렬한 통증이 체내로 스며들어 내장을 쥐어뜯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푸하하하! 네놈이 강동하구나! 만나서 반갑다, 강동하!”
리펑이 시끄럽게 웃으며 다시 주먹을 확 쳐들었다.
아 씨발! 저 주먹을 계속 상대하다간 그냥 골로 가겠는데?!
어떻게든 리펑의 주먹질을 늦춰야겠다고 판단한 동하가 얼마 전 이진산에게 배운 탈영각을 펼쳤다.
빠아아악!
“크흑! 이, 이 새끼가?!”
동하의 로우킥이 정강이를 강타하자, 리펑이 주먹을 날리려다 말고 움찔했다.
순간적으로 자세가 흐트러지는 리펑의 얼굴을 노리고 동하게 시원하게 오른 주먹을 휘둘렀다.
“넌 이제 뒤졌어, 새끼야!”
“흥!”
리펑이 코웃음을 치며 동하의 주먹을 간단하게 흘려보냈다.
“이게 진짜다, 병신아!”
푸우우욱!
오른손을 허초로 사용한 동하가 기가 팽팽하게 실린 왼손 주먹을 리펑의 명치에 깊숙이 쑤셔 박았다.
푸우우욱!
“허어억!”
리펑이 충격을 제대로 받은 듯 입을 떡 벌리며 순식간에 십여 걸음을 후퇴했다. 그 기회를 놓칠 리가 없는 동하가 주먹을 쳐들고 바람처럼 쫓아갔다.
우적!
“크아악!”
동하의 주먹이 아구통에 꽂히자, 리펑의 얼굴이 뽑혀질 듯 휙 돌아갔다. 다급해진 리펑이 공격을 포기하고 두 팔을 들어 얼굴과 가슴을 단단히 방어했다.
“리펑이라고 했나? 이제부터 니 이름은 샌드백이다!”
뻐버버버버버버벅!
동하가 기가 팽팽하게 실린 양손 주먹으로 리펑의 가드 위를 인정사정없이 두드려댔다.
큭큭큭큭! 지금은 어찌어찌 막아내고 있다만 계속 처 맞다보면 가드는 결국 내려갈 수밖에 없을 거야.
그리고 그 순간이 리펑 니 새끼가 골로 가는 순간이지!
동하는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임독양맥이 뚫린 후에 온몸의 혈관을 타고 기가 강물처럼 흐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막대한 기를 양손에 실어 공격을 퍼부으니, 자신감이 생기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끄어어어……!”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오래지 않아 벌겋게 부어오른 리펑의 두 팔이 살짝 벌어졌다.
“그렇지! 당연히 그렇게 나와야지!”
동하가 기가 실려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주먹을 리펑의 가드 사이로 내질렀다.
투우웅!
“흐억!”
동하의 주먹이 리펑의 얼굴에 닿기 직전에 가슴이 쪼개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그는 멈칫했다.
“이, 이런 옘병할……?!”
힐끗 아래쪽을 내려다본 동하는 자신의 가슴에 리펑의 주먹이 닿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저도 모르게 욕지기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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