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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경찰-32화 (32/75)

〈 32화 〉 32화. 환생 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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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환생 화타

끼익!

늦은 밤, 심양시 변두리의 전통 의원 광혜원 앞에 승합차 한 대가 조용히 정지했다.

중국 전통의 사합원 형태로 지어진 낡은 건물의 대문 기둥에 의원을 뜻하는 등이 걸려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최룡과 조수석의 은서가 긴장된 눈으로 굳게 닫혀 있는 광혜원의 대문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이곳이 그 광혜원이란 말이죠?”

“네, 맞습네다.”

고개를 끄덕이는 최룡을 은서가 의아한 듯 돌아보았다.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왜 들어가지 않고 지켜만 보고 있는 거죠?”

“그거이……, 이곳이 심양이기 때문입네다.”

“네? 그게 무슨?”

눈을 동그랗게 뜨는 은서를 돌아보며 최룡이 긴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심양은 우리에게 샤이롱과 리펑을 보낸 흑룡회의 본거지입네다. 이 심양시에서는 아무리 후미진 변두리라도 흑룡회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디요. 내상을 입은 동하 형님을 광혜원으로 모셨다가 까닥하면 흑룡회에게 발각될 수도 있다 이 말입네다.”

은서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서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거군요. 하지만 무작정 기다리기엔 동하 씨의 상태가…….”

은서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승합차의 뒤 칸을 돌아보았다. 의자들을 눕혀 침대처럼 만든 좌석에 동하가 똑바로 드러누워 있었다.

“헤엑…… 헤에엑……!”

사지가 비틀리고 얼굴과 온몸에 굵은 핏줄이 툭툭 불거진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동하는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중해 보였다.

은서와 함께 동하의 심각한 상태를 살펴보던 최룡이 결심을 굳힌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흑룡회에게 발각당할 걱정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형님을 광혜원 안으로 모셔야겠습네다.”

* * *

“이것들 이거 완전히 미친 년놈들이구만. 이미 죽어 나자빠진 송장을 데려다 살려달라고 하면 어떡해? 너희 년놈들 눈깔에는 내가 정말 화타쯤으로 보이는 게냐?”

동하를 진맥한 광혜원의 원장 장첸우는 침상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최룡과 은서를 향해 눈부터 부라렸다. 이마에 고랑처럼 깊은 주름이 파이고, 신선처럼 희고 긴 눈썹 밑에서 두 눈동자가 기분 나쁘게 번질거리고 있는 노인은 강팍하면서도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최룡이 장첸우를 향해 급히 말했다.

“의원님의 별명이 환생 화타 아닙네까?”

“그거야 인마! 그냥 별명일 뿐이고!”

“내상을 입은 환자입네다! 그리고 이 넓은 대륙에서 내상을 입은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장 선생님뿐인 걸로 알고 있습네다! 부디 외면하지 말고 치료해 주시라요.”

“아, 글쎄! 나로서도 이미 죽은 새끼를 살려낼 재주는 없다니까. 귀찮게 하지 말고 저 송장 데리고 빨리 꺼져버려!”

퉁명스럽게 내뱉고는 돌아서려는 장첸우의 팔을 은서가 붙잡았다. 중국말을 할 줄 모르는 그녀였지만 노인이 동하에 대한 치료를 포기하려 한다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제발 도와주세요! 이 사람을 살릴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습니다!”

“하! 이것들 정말 끈질기네.”

짜증스럽게 은서의 얼굴을 쏘아보던 장첸우가 오른손 중지와 엄지를 둥글게 말아 보였다.

“너희들 말이야, 이거는 넉넉하게 있냐?”

은서가 최룡을 휙 돌아보았다.

“무슨 말이죠?”

“치료비는 넉넉하냐고 묻고 있는 겁네다.”

“저희들한테 아직 출장비가 조금 남아 있어요. 싹 다 긁어모으면 한 천만 원쯤 될 것 같은데…….”

최룡이 피식 실소하며 대답했다.

“이 영감이 중국 고위층의 말기 암 환자들을 치료하며 받아낸 돈이 두당 수억 원이 넘습네다. 그 정도 돈으론 침 한 방조차 놓아주려 하지 않을 겁네다.”

“아……! 그럼 어떡하죠?”

울상을 짓는 은서를 최룡이 달랬다.

“돈이라면 저한테도 조금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요.”

최룡이 품속에서 통장 하나를 꺼내 장첸우에게 내밀었다. 장춘시의 노동자과 자동차회사들로부터 상납받은 자금을 관리하는 조직의 통장이었다.

“우리 형님을 낫게만 해주신다면 그 통장에 있는 돈을 다 드릴 수도 있습네다.”

“지랄을 한다. 대체 얼마나 들었기에 그리 자신만만한……, 허억!”

비웃음을 흘리며 통장을 들여다보던 장첸우의 눈이 커다래졌다.

“오, 오십 억……?!”

“왜요? 부족하십네까? 그럼 더 드릴 수도 있습네다.”

“이, 이것보다 더 줄 수 있다고?!”

찢어져라 눈을 부릅뜨고 최룡의 얼굴을 바라보던 장첸우가 착 가라앉은 소리로 물었다.

“여기 누워 있는 놈이 통배권에 당한 것도 그렇고……, 네놈들 삼합회냐?”

최룡이 낮게 깔리는 소리로 대답했다.

“그게 중요합니까?”

“물론 그건 중요하지 않지. 결국 중요한 건 돈이니까.”

통장을 흔들며 이죽거리던 장첸우가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좋아! 한 번 시도는 해보지. 하지만 이놈이 살아날 확률은 채 일 할도 되지 않는다.”

“그 정도 가능성이면 충분합니다.”

“내가 만약 환자를 치료한다면 이 통장에 들어 있는 돈 전부를 넘겨다오. 그리고 환자가 죽더라도 절반은 챙겨줘야겠다.”

최룡이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환자가 죽더라도 말입네까?”

“그래!”

“으음…….”

잠시 망살이던 최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네다. 그렇게 하시디요.”

“푸흘흘흘! 그럼 지금 당장 치료를 시작하마!”

좌르르르르륵!

장첸우가 침상 옆에 놓인 받침대 위에 침통을 능숙하게 펼쳐놓았다.

“허억! 이, 이게 사람의 몸에 놓는 침이라고요?!”

침통을 들여다보며 은서는 저도 모르게 새된 소리를 질렀다. 침통 안에는 성인 남자의 팔뚝보다도 기다란 대침들이 열 개도 넘게 꽂혀 있었던 것이다.

장첸우가 그 중에서도 가장 긴 침을 꺼내며 은서와 최룡을 힐끗 돌아보았다.

“내가 침을 놓으면 이 녀석이 몸부림치기 시작할 것이다. 그 와중에 침을 잘못 놓으면 즉시 골로 갈 수도 있으니, 단단히 붙잡고 있어라.”

“네, 네! 알겠습니다.”

은서와 최룡이 달려들어 동하의 두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클클클클! 그럼 일단 백회혈부터 조져볼까나?”

쿠우욱!

장첸우가 음산하게 웃으며 동하의 정수리에 침을 꽂기 시작했다. 은서는 너무도 기다란 침이 동하의 정수리 안으로 쑥쑥 들어가는 걸 지켜보는 게 힘들어서 질끈 눈을 감아 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그때까지 고목처럼 가만히 누워 있던 동하가 미친 듯이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으아아악! 우워어어억!”

“동하 씨, 진정해요! 제발 진정해요!”

“형님! 마음을 단단히 먹으시라요!”

은서와 최룡이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동하의 몸부림은 멈추지 않았다.

“크아아아아악!”

그러거나 말거라 장첸우는 동하의 이마와 인중 그리고 가슴과 하복부를 거쳐 두 다리와 발바닥에까지 기 길고 섬뜩한 침을 계속 꽂아댔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침을 꽂고 나서야 동하는 잠잠해졌다.

그제야 장첸우도 침술을 멈추고 이마의 땀을 닦았다.

“후우우우……! 그 새끼 참, 미친개가 따로 없구만.”

최룡이 그런 창첸우를 향해 다급히 물었다.

“어떻습네까? 차도가 좀 있을 것 같습네까?”

“우물가에 가서 숭늉을 내놓으라고 해라, 새끼야.”

“죄송합네다. 마음이 조급해서 그럽네다.”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하는 최룡을 째려보며 장첸우가 말했다.

“네 형이란 놈은 이 침으로 치료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야.”

”그럼 어찌해야 합네까?“

”일단 이 침으로 체내에서 폭주하고 있는 기를 틀어막아 놓기는 했다. 이 상태로 내일 아침까지 경과를 보았다가 본격적인 치료를 시작할 예정이다.“

”본격적인 치료라 하심은……?“

”그건 내일 아침이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일이다. 그럼 아침에 보자.“

알쏭달쏭한 말만 남기고 장첸우가 휑하니 방을 나가 버렸다.

둘만 남겨진 최룡과 은서는 아직도 흑빛을 띄고 있는 동하의 얼굴을 걱정스럽게 내려다보았다.

”형님이 어떻게든 쾌차를 하셔야 할 텐데요.“

”동하 씨는 꼭 다시 일어날 거예요. 꼭!“

* * *

빵— 빵빵­­!

중국 동북방의 대도시 심양 거리는 아침을 맞아 출근하는 차량들과 인파가 뒤섞여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거대한 빌딩들이 줄지어 서 있는 심양의 도심에서도 가장 높은 빌딩의 맨 꼭대기에 –??會? ??­이라는 로고가 큼직하게 박혀 있었다.

적어도 심양시의 시민이라면 주식회사 흑룡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흑룡사는 자동차, 중공업, 백화점, 호텔업에 진출하고 있는 심양시를 대표하는 대기업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유명한 대기업이 중국 동북방을 지배하는 최고의 삼합회 조직 흑룡회의 총본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 주식회사 흑룡의 맨 꼭대기 층 회장실에서 그룹의 회장이자 흑룡회의 총보스인 리우캉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회의용 테이블의 상석에 앉아 있었다.

회사의 임원들인 동시에 흑룡회의 중간보스를 겸하고 있는 중역들이 아침부터 불편한 리우캉의 눈치를 살피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동안 무거운 정적이 흐르는 회의 테이블을 응시하고 있던 리우캉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샤이롱에 이어 리펑까지 당했다지?“

”네? 아, 네! 그렇습니다.“

리우캉의 명으로 동하와 최룡을 척살하는 임무를 전담하고 있던 이사 장더이가 황망히 대답했다.

리우캉이 섬뜩한 눈초리로 장더이를 쳐다보았다.

”네, 그렇습니다아?“

”죄,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쿵!

테이블에 이마를 처박는 장더이 이사를 지그시 노려보다가 리우캉이 간신히 화를 누르는 목소리로 물었다.

”리펑은 우리 흑룡회가 자랑하는 최고의 통배권 고수였다. 대체 누가 있어 그런 리펑을 꺾을 수가 있단 말이지? 혹시 최룡인가?“

”최, 최룡에겐 그만한 실력이 없습니다.“

”그럼 대체 어떤 새끼야?!“

콰앙1

“!”

리우캉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치자, 정더장은 물론 다른 임원들의 안색도 하얗게 질려 버렸다.

장더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보고했다.

“회장님께서도 강동하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강동하라면 한국에서 우리가 공급한 마약을 유통시키는 임무를 맡았던 조선족 조직 길림파를 와해시켰다는 그 순경을 말하는 건가?”

“네, 맞습니다.”

“고작 한국의 순경 놈이 리펑을 때려눕혔다는 거냐? 나 보고 그 말을 믿으라고?”

장더이가 식은땀을 흘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분명 사실입니다. 중국으로 건너온 강동하가 최룡과 샤이롱에 이어 리펑까지 쓰러뜨렸습니다.”

“하……! 한국 경찰 중에서도 계급이 가장 낮은 순경 따위가 우리 흑룡회의 고수들을 연이어 격파했다? 이거 정말 믿기기 힘이 드는군.”

장더이는 더 이상 변명하지 않고 다시 테이블에 이마를 처박았다.

쿵!

“모두 저의 불찰입니다! 죽여 주십시오, 따거!”

“으으음……!”

정말 장더이를 죽여 버리기라도 할 듯 사납게 노려보던 리우캉이 고저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그 강동하란 순경 놈은 현재 어디에 있나?”

장더이가 땀범벅으로 변한 얼굴을 가까스로 쳐들며 말했다.

“리펑과의 싸움 중에 내상을 입고 광혜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걸로 압니다.”

“광혜원? 환생 화타의 그 광혜원 말인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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