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33화. 독호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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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독호지주
새벽이 뿌옇게 밝아올 때까지 은서와 최룡은 동하의 곁을 지켰다.
“후우욱…… 후우우욱……!”
온몸에 기다란 침을 꽂은 채 광혜원의 침상에 누워 거친 숨을 몰아쉬는 동하의 상태는 몹시 위중해 보였다. 얼굴은 점점 흑빛으로 변해갔고, 전신을 뒤덮은 굵은 핏줄은 점점 팽팽해져 당장이라도 펑 하고 터져 버릴 것 같았다.
“동하 씨를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어요. 당장 장 의원을 불러줘요.”
은서가 다급하게 말했지만 최룡은 곤혹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벌써 몇 번이나 와달라고 요청했지만 요지부동입네다. 날이 완전히 밝을 때까진 뾰족한 수가 없으니, 그냥 내버려 두라는 겁네다.”
결국 은서가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에잇! 내가 직접 가봐야지 안 되겠어요!”
씩씩대며 광혜원의 앞마당을 걸어가는 은서를 최룡이 황급히 쫓아갔다.
“장첸우 의원은 제멋대로의 골통으로 유명합네다. 공산당 고위인사가 치료를 부탁해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치료를 거부하는 버팅기는 그런 인물입네다. 지금 그 작자의 비위를 건드리면 동하 형님을 치료하지 않겠다고 나올지도 모른다는 말입네다.”
최룡이 다급히 설득했지만 은서는 장 의원의 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이대로 두면 동하 씨가 살아날 가능성은 사라져요! 지금 당장 멱살을 잡아서라도 장첸우를 끌고 와야 한다고요.”
“하! 내레 미치갔구만.”
최룡이 끝까지 말렸지만 은서는 기어이 장 의원의 방문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벌컥!
“장 의원님!”
침상에 누워 단잠에 빠져 있던 장첸우가 기겁하며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으악 누, 누구야?
은서가 신발을 신은 채 거침없이 침상으로 다가갔다.
“환자의 용태가 심상치가 않습니다! 지금 당장 가서 치료를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에이 씨~ 이것들이 왜 이리 사람을 귀찮게 하지? 내가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어, 안 했어?”
최룡이 장첸우의 말을 통역해 주었지만 은서는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환자의 상태가 기다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니까요! 지금 당장 가셔야 합니다!”
“아, 몰라! 나 치료 안 해! 아니, 못해! 그러니까 당장 그 송장새끼 짊어지고 우리 의원에서 꺼져 버려!”
발작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장첸우가 이불을 덮고 돌아누워 버렸다.
“끄으으으……!”
뿌드득 이를 갈아붙이며 늙은 의원을 등짝을 노려보던 은서가 다짜고짜 그의 뒷덜미를 와락 움켜잡았다.
“환자가 죽어가는데 잠만 퍼자겠다고? 당신이 그러고도 의원이야? 지금 당장 가잔 말이야!”
“으아악! 이년이 미쳤나?!”
쿠우웅!
침상 아래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장첸우가 성난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은서는 버둥거리는 의원을 개처럼 질질 끌고 나갔다.
“가자고! 당장 가! 당신이 의원이라면 죽이든 살리든 환자를 돌봐야 할 것 아니냐고?”
“아 참! 이거 일이 복잡하게 돌아가는구만 기래.”
은서의 서슬에 질려 최룡도 더 이상 말리지 못했다.
은서에 의해 방문 앞까지 끌려간 장첸우가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알았다, 알았어! 갈 테니까 제발 이것 좀 놓고 얘기해라!”
“정말 가는 거죠?”
은서가 그제야 슬그머니 뒷덜미를 풀어주자, 장첸우가 황당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뭐 이런 미친년이 다 있지?”
“가겠다고 약속했으니 빨리 가시죠.”
“갈 때 가더라도 그 송장 새끼를 살릴 약은 챙겨가야 할 것 아니냐, 이년아?!”
장첸우가 빽 소리를 지르자, 은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 약이 있어요? 강 순경을 살릴 약이?”
“바로 저것이다.”
장첸우가 손가락을 들어 선반 쪽을 가리키자, 은서와 최룡이 흠칫 쳐다보았다. 그곳에 입구를 천으로 막아놓은 항아리가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저 항아리에 강 순경츨 치료할 약이 있다는 겁니까?”
회망 섞인 표정으로 묻는 은서를 뒤로하고 선반 앞으로 걸어간 장첸우가 소중하게 항아리를 들어 올렸다.
“그렇다.”
장첸우가 자신의 앞으로 돌아오자, 은서가 급한 마음에 항아리를 덮은 천을 걷어내려고 했다.
“대체 항아리 안에 뭐가 들어 있는데요?”
“어허! 부정 타게 어딜?!”
장첸우가 항아리를 치우며 눈을 부라리자, 은서가 움찔했다. 그런 은서를 쏘아보며 늙은 의원이 으르렁거렸다.
“이 항이리를 함부로 열었다간 네 동료를 살릴 방법은 영영 사라져 버릴 테니, 그런 줄 알거라.”
“꿀꺽~”
의원의 협박이 제대로 먹혔는지 은서가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 * *
“끄어어어……, 으어어어어……!”
항아리를 안은 장첸우와 은서 그리고 최룡이 방으로 돌아왔을 때, 동하는 다기 가슴을 격하게 들썩이며 발작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장 의원이 그런 동하를 가리키며 다급히 외였다.
“침을 꽂은 상태로 발작을 일으키면 저 새끼는 즉사야! 빨리 옴짝달싹 못하게 찍어눌러!”
“아, 알겠어요!”
은서와 최룡이 달려들어 동하의 사지를 억지로 찍어눌렀다.
“으아아악! 크아아아아악!”
그래도 동하는 고개를 쳐들고 심장이라도 찢어지는 듯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은서와 최룡이 그런 동하를 안타깝게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동하 씨, 조금만 더 참아요!”
“형님, 제발 기운을 내시라요!”
바로 그때 장첸우가 음산하게 웃으며 항아리의 입구를 개봉했다.
“자, 이제부터 마지막 치료를 시작할 테니 꽉 잡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장첸우가 항아리의 입구를 동하의 가슴을 향해 조심스럽게 기울였다. 덕분에 항아리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 은서와 최룡이 동시에 새된 소리를 질렀다.
“허어억!”
“꺄악! 저, 저게 뭐야?”
항아리 안에서 동하의 가슴을 향해 천천히 기어나오고 있는 것은 어른의 주먹 두 개를 합쳐놓은 것처럼 커다란 거미였다. 등짝에 호랑이 무늬가 선명하고, 여덟 개의 검고 기다란 다리를 따라 흰 털이 숭숭 돋아난 거미는 한눈에도 위험천만한 독거미로 보였다.
은서가 살짝 맛이 간 사람처럼 두 눈을 희번덕거리고 있는 장첸우를 향해 질린 듯이 물었다.
“저, 저거 설마 독거미 아니에요?”
“큭큭큭큭! 왜 아니겠느냐? 세계에서 유일하게 운남의 정글 지대에서 서식하고 있는 독호지주라는 무시무시한 맹독을 가진 독거미다.”
“다 죽어가는 환자에게 독거미를 풀어놓다니, 당신 미쳤어?!”
은서가 빽 소리를 질렀지만 장첸우는 콧방귀를 뀌었다.
“귓구멍을 열고 잘 들어라, 멍청한 년놈들아. 네 동료는 현재 주화입마에 빠진 상태야. 주화입마란 자신의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기를 무리하게 운용하다가 정신과 육신에 마기가 깃들어 전신의 혈맥이 뒤엉키고 오장육부가 제자리를 이탈한 상태를 말한다. 주화입마에 빠진 사람은 기본적으로 온몸에 뜨거운 화기가 넘치게 되어 있어. 결국 혈맥을 넓혀 이 화기를 배출시키지 못하면 체내의 혈관과 장기가 죄 녹아 버려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 그런데요?”
간신히 묻는 은서의 얼굴을 노려보며 장첸우가 눈을 번뜩했다.
“그런데 독호지주의 독은 강력한 산 성분으로 혈맥을 급속도로 넓힐 수가 있어. 한 마디로 주화입마로 발생한 화기를 단숨에 배출시킬 수도 있다는 뜻이지. 그러니까 독호지주의 독을 너희들 동료의 몸에 주입하는 것만이 이 반송장을 되살릴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이란 말이다. 알아듣겠냐?”
“……!”
벙진 표정으로 장첸우의 얼굴을 바라보던 은서가 가까스로 물었다.
“그, 그럼 이 독호지주라는 거미에게 쏘였을 경우, 강 순경이 살아날 확률이 얼마나 되는데요?”
“글쎄다…….”
턱을 긁적이며 통박을 굴리더 장첸우가 은서를 향해 히죽 웃었다.
“아주 높게 잡으면 한 일 할쯤 되겠구나. 흐흐흐흐!”
“일 할? 고작 십프로 밖에 안 된다고요?! 그게 무슨 치료에요? 그냥 이 사람을 죽이겠다는 소리잖아요?”
“어허! 어차피 이놈이 살아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 그런데 독호지주의 독을 이용하면 그 가능성이 열 배는 높아진단 말이다. 그런데 그게 왜 치료가 아니란 말이야.”
“안 돼요! 이런 위험한 도박은 할 수가 없어요!”
완강하게 고개를 흔드는 은서의 얼굴을 쏘아보며 장첸우가 나직이 내뱉었다.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없다. 이제 한 시간 정도만 지나면 네 동료의 숨이 완전히 끊어져 버릴 것이야. 그런데도 마지막 희망을 뿌리치겠다는 것이냐?”
“아아……! 이건 말도 안 돼.”
절망적인 신음을 흘리는 은서를 향해 최룡이 급히 말했다.
“최 경위님! 그러지 말고 한 번 해보자고요. 어차피 다른 방법이 없지 않습네까?‘
”그래도 이건 아니에요. 이건 너무 무모해요. 그러다 동하 씨가 정말 죽어 버리기라도 한다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은서를 향해 최룡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형님을 살리려면 다른 방법이 없지 않습네까? 그러니까 어서 결단을 내리시라요!“
“나, 나는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은서가 혼란에 빠져 있는 그 순간, 이진산은 필사적으로 동하를 깨우고 있었다.
[동하야 인마! 강동하! 빨리 일어나라! 빨리 일어나지 않으면 네놈이 죽게 생겼단 말이다!]
“으음…….”
하지만 이진산이 아무리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동하는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진산이 그의 머릿속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더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독호지주는 독은 인간의 신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특히 너처럼 아직 단련이 될 된 몸은 독이 스며드는 순간 오장육부가 녹아내려 고통 속에 뒤지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어서 일어나 장첸우 저 미친 의원 새끼를 말려! 저 광인이 너를 상대로 생체실험을 하려 하고 있단 말이다!]
“…….”
하지만 동하의 의식은 여전히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식은땀을 흘리며 갈등하던 은서는 마침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야 말았다.
“아, 알겠어요. 그럼 독호지주의 독을 동하 씨의 몸에 주입하도록 하세요.”
“클클클클! 자알 생각했다.”
장첸우가 흡족하게 웃으며 기다란 침을 하나 끄집어냈다. 그리고 침의 끝으로 독호지주의 엉덩이를 살짝 찔렀다.
푸욱!
캬아아악!
동시에 독거미가 성난 소리를 지르며 동하의 목을 으득 깨물었다. 등짝의 호랑이 문양이 더욱 화려하게 빛나며 움찔거리는 폼이 동하의 몸에 독을 깡그리고 쏟아붓고 있는 것 같았다.
“흐어어억!”
동시에 동하게 입을 떡 벌렸다.
“끄윽……, 크허허헉!”
찢어져라 부릅뜬 두 눈이 온통 시뻘건 핏줄로 뒤덮인 동하가 가래 끓는 소리를 뱉으며 푸들푸들 경련하기 시작했다.
그런 동하의 얼굴을 내려다보면 은서가 장첸우를 향해 급히 물었다.
“어떻게 되고 있는 건가요? 치료가 되고 있는 거 맞나요?”
순간 장첸우가 옆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다……! 이건 내가 기대한 반응하고 영 다른 것 같구나.”
“이런 씨발! 뭐가 어쩌고 어째요?”
은서가 늙은 의원의 멱살을 잡으려고 손을 내뻗는 순간, 동하가 침상에서 박차고 일어나며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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