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35화. 불길한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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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불길한 예언
“이 자식은 대체 뭐지……?”
동하와 처음으로 대적하면서 흑룡회의 이사 장더이가 느낀 첫 감정은 의문이었다. 그도 동하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어오고 있었다.
조직에서 오랜 시간 공을 들여 한국 대림동에 심어놓은 조선족 조직 길림파를 깨뜨린 장본인! 그리고 배후에서 길림파를 조종하도록 만들어놓은 중간조직 동북회까지 무너뜨린 정체불명의 한국 순경!
언제부터인가 조직 내에서 강동하라는 이름이 유령처럼 떠돌아다녔지만, 장더이는 한 번도 그 이름이 갖는 무게감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 봤자 약해빠진 조선족 조폭 몇을 쓰러뜨린 애송이일 뿐이지!’
그는 딱 그 이상도 그 이하도 강동하란 이름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주먹을 막고 있는 동하가 내뿜는 기세는 그의 이러한 평가를 단숨에 뒤집어놓을 만큼 만만치가 않은 것이었다.
장더이 본인은 체네의 기를 신체 밖으로 띄울 수 있는 현기의 고수였고, 이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고수는 흑룡회 내에서도 몇 명 되지가 않았다. 그런데 동하는 그런 자신의 주먹을 아무렇지도 않게 막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건방진 새끼가!”
동하에 대한 의문과 불안을 떨쳐내기 위해 장더이가 고함을 지르며 주먹을 빼내려고 했다.
“억!”
그런데 동하의 손에 잡혀 있는 그의 주먹은 꼼짝도 하지를 않았다. 오히려 동하는 시퍼런 안광을 발하며 그의 주먹을 움켜쥐고 있는 손아귀에 힘을 불어넣었다.
쿠우우욱!
“끄흐흡!”
주먹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장더이는 당황했다.
‘이 새낀 뭐지? 설마 현기를 뛰어넘는 그 이상의 고수란 말인가? 아니야! 절대 그럴 리가 없다!’
한국 경찰 중에서도 가장 직급이 낮은 순경 따위가 그런 경지에 오를 리가 없다고 확신하며 장더이가 동하의 발목을 노리고 발차기를 날렸다.
“건방 떨지 마라, 애송이 새끼야!”
빠아악!
장더이의 로우킥이 동하의 발목을 강타했다. 그제야 동하는 장더이의 주먹을 놓고 슬쩍 물러섰다.
“넌 이제 죽었어!”
장더이는 자신의 일격에 동하가 충격을 제대로 받았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마음 놓고 동하를 향해 차오를 수 있었다.
빠바바바바바박!
양팔을 들어 얼굴을 가린 동하에게 장더이가 자신의 장기 중 하나인 연환각을 순식간에 십여 방 쑤셔 박았다. 발이 꽂힐 때마다 동하의 몸이 덜컥덜컥 진동했고, 장더이는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럼 그렇지! 별것도 아닌 자식한테 괜히 쫄았던 거야!
뻐어어억!
“허억!”
장더이의 발이 옆구리에 꽂히는 순간, 동하가 신음을 흘리며 가드를 살짝 벌렸다.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장더이가 가드 사이로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이제 그만 쓰러져라!”
순간 장더이는 똑똑히 보았다. 동하가 흰 이를 드러내고 히죽 웃는 것을!
‘젠장, 함정이었나?’
장더이는 재빨리 주먹을 회수하며 수비 동작으로 전환하려고 했다. 하지만 동하가 조금 더 빨랐다.
“용호십삼권 제 이초 맹호포효!”
푸우우욱!
“으허헉!”
동하의 정권이 명치 깊숙이 쑤셔 박히며 장더이의 입이 떡 벌어졌다. 동하의 주먹을 통해 뻗쳐나온 강력한 기가 내장을 휘저으며 장더이는 끔찍한 고통을 맛보았다.
“우웨에엑!”
장더이가 핏물을 왈칵 토하며 대여섯 걸음을 정신없이 후퇴했다. 그런 장더이를 노리고 동하가 기광이 확연하게 일렁이는 주먹을 쳐들며 달려들었다.
‘저 자식도 현기의 고수가 분명해!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리우캉 총보스께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그러나 장더이는 자신의 보스에게 동하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할 수가 없었다. 동하의 주먹이 그의 콧잔등을 함몰시키며 쑤셔박혔기 때문이다.
우적!
”크아악!“
장더이가 핏물을 뿌리며 뒤쪽으로 붕 튕겨 날아갔다. 한참이아 날아가던 그가 광혜원 앞마당에 세차게 등을 처박았다.
쿠우웅!
”……!“
그때까지 기세등등하게 달려들던 흑룡회의 조직원들이 일제히 공격을 멈추고 핏물을 꿀럭꿀럭 게워내며 혼절한 장더이를 충격과 공포 속에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계속 공격을 해야할지 아무면 기절한 이사를 데리고 도망쳐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듯했다.
동하가 그들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툭 내뱉었다.
”너희들도 똑같은 꼴이 되고 싶지 않거든 가라.“
”…….“
”내 말이 안 들리나? 살고 싶으면 너희 두목을 데리고 썩 꺼지란 말이다!“
동하의 벼락같은 고함에 정신을 차린 조직원들을 장더이를 들춰 업고 황급히 광혜원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큭큭큭큭! 새끼들이 결국엔 도망칠 거면서 말이야.“
썰물처럼 광혜원을 빠져나가는 흑룡회 조직원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키득거리고 있는 동하의 머릿속에서 이진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분이 어떠냐?]
’네?‘
[고수가 된 기분이 어떠하냔 말이다.]
’고수요? 제가 고수가 된 겁니까?‘
[으흐흐흐! 당연하지, 이놈아. 네놈이 고수가 되지 않았다면 어찌 백 명씩이나 되는 삼합회 조직원 놈들이 너의 호령 한 마디에 줄행랑을 칠 수가 있겠느냐?]
’으음……! 듣고 보니 어르신 말씀이 맞는 것도 같군요.‘
동하가 아직도 백색 기광이 일렁이는 주먹을 들여다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고수가 된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요. 왠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그래, 바로 그 기분 때문에 사람들은 고수가 되고 싶어 하는 거란다. 누구든 꿇릴 수 있고, 무엇이든 이룰 수가 있는 그 자신감 때문에 말이다.]
’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만하지 말고 더더욱 수련에 집중해야 한다.]
이진신의 목소리에서 갑자기 긴장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네놈이 상대했던 적들은 진정한 의미의 고수가 아니었다. 네가 강해진 만큼 이제 슬슬 네 앞에 중원의 진정한 고수들이 모습을 드러낼 게야. 그들은 정말로 하늘을 날며 산을 무너뜨리고, 바다를 가르는 그런 괴물들이지.]
’무협영화에 등장하는 그런 고수들처럼요?‘
[그래, 바로 그런 무지막지한 고수들이 네놈 앞에 나타나기 시작할 거다.]
’저도 그런 고수가 될 수 있을까요?‘
[흐음…… 글쎄다.]
잠시 고민하던 이진산이 말했다.
[솔직히 네놈의 자질만 봐서는 불가능한 알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네놈에겐 자질로만 평가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는 것 같더구나. 그게 운빨일 수도 있고, 기질일 수도 있는데 너에게는 재능을 뛰어넘어 성취를 이룰 수 있는 무언가가 확실히 있는 것 같다. 그러니 노력하고 또 노력해라. 그럼 진정한 고수가 되어 하늘을 날고, 대해를 가르는 멋진 경험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어르신.‘
이진산과 모처럼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하를 향해 은서와 최룡이 다가왔다.
”동하 씨, 괜찮아요?“
”형님, 어디 상하신 데는 없습네까?“
동하가 두 사람을 향해 돌아서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괜찮아요. 제가 정신줄을 놓고 있는 동안 절 위해 노력해주신 두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동하가 정색하며 머리를 숙이자, 은서와 최룡이 황망히 손사래를 쳤다.
’에이이~ 우리 사이에 무슨 그런 말을 해요!”
“형님, 왜 자꾸 존댓말을 하고 그러십네까? 이 아우는 불편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네다.”
동하가 친근한 시선으로 은서를 바라보았다.
“아뇨.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죠.”
다음으로 동하의 시선이 최룡에게로 향했다.
“최형에게도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아 진짜! 아우한테 최형이 뭡네까! 최형이! 제발 말씀 좀 낮추시라요!”
“으음……!”
세상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코 평수를 넓힌 채 씩씩대고 있는 최룡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던 동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최형의 뜻이 정 그렇다면 앞으론 하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최형을 제 동생처럼 생각하겠습니다.”
“정말이십네까, 형님? 야! 이제야 제가 형님의 진정한 아우가 되는 거이구만요! 이거 이거 눈물이 앞을 가리려고 합네다!”
세 사람이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장첸우 의원이 표정을 굳힌 채 다가왔다.
“야, 이놈들아! 지금 히히덕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아, 의원님!”
동하가 장첸우를 향해서도 머리를 숙였다.
“의원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인사치레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니까.”
“네?”
“이곳 심양은 흑룡회의 도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야. 게다가 흑룡회의 총보스 리우캉은 집념이 강한 인간이지.”
장첸우가 손가락으로 동하의 얼굴을 가리키며 눈을 번쩍 빛냈다.
“장더이가 당한 걸 알면 천여 명에 이르는 전 조직원을 동원해서 네놈을 잡아 죽이려고 들 게야.”
“그렇군요.”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심양을 벗어나라. 심양에서 싸우면 네놈이 살아날 가능성은 눈곱만큼도 없다.”
최룡이 장첸우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
“장 의원님의 말씀이 맞습네다! 지금 즉시 심양에서 벗어나야 합네다!”
“좋아, 그렇게 하자고. 장 의원님, 나중에라도 꼭 다시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장첸우가 휘휘 손사래를 치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도 다 돈 받고 한 일이니, 너무 그렇게 인사를 따질 필요 없다. 그보다 네가 꼭 대단한 고수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솔직히 독호지주의 독을 주입하면서 네놈이 살아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주화입마를 치료하는 것은 물론 단숨에 오룡봉성의 경지에 오르는 걸 보니 나도 은근 기대가 되는구나. 네놈이 혹시 내가 알고 있는 중원 최고의 고수 이진산 만큼 강해지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지, 지금 이진산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맞다. 너도 혹시 이진산이란 이름을 알고 있느냐?”
“네, 이름 정도만 들어 알고 있습니다!”
동하가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장 의원님께서 알고 계시는 그분은 대체 어떤 분이셨습니까?”
“그는 흑도인들의 세계에선 전설과도 같은 고수였지. 고대 무림에서 존재했었다고 전해지는 하늘을 날고, 바다를 거니는 입신의 경지에 오른 고수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 바로 이진산이다. 하지만 그는 그 고강한 무공에 비해…….”
갑자기 말끝을 흐르는 장첸우를 향해 동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말씀을 하다가 마십니까? 끝까지 말씀을 해주십시오.”
“아니다. 이진산에 대해 깊이 얘기하자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니, 나중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일단은 서둘러 떠나도록 해라.”
“하지만…….”
찜찜한 마음에 머뭇거리는 동하의 팔을 최룡이 잡아끌었다.
“그렇게 하시디요, 형님. 지금은 정말 시간이 없습네다.”
“그래, 일단 떠나도록 하자. 어르신 그럼 나중에 꼭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래, 어서 가라! 어서 가!”
은서와 최룡과 함께 서둘러 대문 밖으로 뛰어나가는 동하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장첸우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네가 쓰는 무공을 보니 이진산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게 분명해 보이는구나. 하지만 그 인간을 너무 믿었다간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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