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36화. 대범한 역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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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대범한 역발상
“백 명이나 끌고 가서 강동하 그 한 놈한테 깡그리 당했단 말이지……?”
주식회사 흑룡의 회장실 한복판에 무릎 꿇은 장더이 이사를 바라보는 회장 리우캉의 눈빛은 서늘했다.
“강동하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최룡도 함께 있었습니다!”
리우캉의 전신에서 뿜어지는 살기가 두려워 장더이는 황급히 변명했다. 하지만 이 궁색한 변명은 오히려 리우캉의 분노에 불을 지르고 말았다.
“이 병신 같은 놈아! 최룡은 우리가 키우던 개에 불과하질 않더냐?”
다른 네 명의 이사들과 함께 소파에 앉아 있던 리우캉이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 무릎 꿇고 있는 장더이를 향해 손바닥을 내뻗었다. 순간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리우캉의 손이 닿지도 않았는데, 장더이가 무언가에 큰 타격을 받은 듯 뒤쪽으로 붕 튕겨 나갔던 것이다.
“크흐흑!”
우당탕탕!
정신없이 나뒹구는 장더이를 향해 리우캉이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장더이 앞에 우뚝 버티고 서며 차갑게 내뱉었다.
“강동하 그 자식을 죽이지 못하면 이번에는 네가 죽게 될 것이라고 했지?”
“사, 살려주십시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반드시 놈을 없애겠습니다!”
쿵! 쿠웅!
장더이가 후다닥 무릎을 꿇으며 바닥에 연신 이마를 처박았다. 리우캉이 바닥에 이마를 처박고 있는 장더이의 뒤통수를 향해 오른손 검지를 내뻗으며 살기가 짙게 베인 미소를 흘렸다.
“아니, 너 같은 놈은 그냥 죽어주는 게 낫겠다.”
피유우웃! 퍼어억!
“커흑!”
순간 리우캉의 손가락 끝에서 한 줄기 가느다란 빛이 쏘아지더니, 장더이의 뒤통수를 꿰뚫었다. 동시에 장더이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이미 숨이 끊어진 듯 미동도 하지 않은 장더이의 얼굴 주변으로 검붉은 핏물이 서서히 번지기 시작했다.
‘탄기다……, 회장님께선 이미 탄기의 경지에 오르셨구나……?!’
장더이는 기를 신체 밖으로 띄워 올려 주먹이나 발을 발경보다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는 현기의 고수였다. 그리고 리우캉은 그 경지를 뛰어넘어 기를 신체 밖으로 내쏘아 주먹이나 발이 직접 닿지 않아도 상대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는 탄기의 고수였다.
흔히, 무협영화에 나오는 장풍이나 지풍이 모두 이 탄기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리우캉은 한 마디로, 영화에서나 볼 법한 그런 막강한 고수였던 것이다.
그런 리우캉이 소파에 부동자세로 앉아 있는 네 명의 이사들을 돌아보며 싸늘하게 명령했다.
“심양 밖으로 나가는 길은 공항이든, 철도든, 고속도로든 모조리 틀어막아! 강동하 그 쥐새끼 같은 놈이 심양을 빠져나가기 전에 붙잡아 반드시 목을 비틀어 버리고 말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네 명의 이사들이 자신들의 총보스에 대한 경외심과 두려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입을 모아 외쳤다.
* * *
“이런 젠장! 이쪽 길도 막힌 것 같습네다!”
빵빵!
고속도로 입구에서 길게 줄을 지어 경적음을 길게 울리고 있는 차량 행렬을 바라보며 최룡이 운전대를 잡은 채 낭패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최룡과 은서 그리고 동하는 승합차를 몰고 심양을 빠져나가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오후 내내 세 군데의 고속도로 입구를 들렀지만 그때마다 검은 정장을 입은 흑룡회 조직원들이 길을 막고 검문을 실시하고 있었다. 동하와 일행은 차를 돌릴 수밖에 없었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에 마지막으로 들른 고속도로 입구에서조차 승합차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어떡하면 좋죠?”
갓길에 잠시 차를 세워두고 동하와 최룡, 은서는 회의를 시작했다. 걱정스럽게 묻는 은서의 얼굴을 바라보며 최룡이 말했다.
“고속도로는 모조리 막힌 게 확인됐으니, 어디 외진 국도로라도 빠져나갈 길을 찾아봐야 하지 않겠습네까?.”
동하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국도라도 그냥 놔뒀을까? 그곳도 이미 막혀 있을 거야.”
“그건 동하 씨의 예상이 맞을 것 같네요.”
“그럼 어떡하면 좋디요?”
곤혹스런 표정을 짓는 최룡의 얼굴을 마주 보며 동하가 눈을 반짝 빛냈다.
“차라리 철도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빠져나가는 게 어떨까? 철도는 이용하는 승객이 워낙 많으니까 그 중에서 우리를 찾아내는 게 쉽지는 않을 거야.”
“그것도 괜찮은 생각 같긴 합네다만…….”
똑! 똑!
최룡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와 차창을 두드렸다.
“이런 씨앙!”
최룡이 이를 악물고 돌아보니, 검은 정장을 입은 흑룡회 조직원 셋이 다가와 있었다. 최룡이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며 차창을 내렸다.
“무슨 일이십네까?”
“어디로 가는 길이오?”
승합차 안쪽에 앉아 있는 동하와 은서를 힐끔거리며 묻는 조직원을 향해 최룡이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무순으로 가는 길입네다.”
“무순으로?”
“네, 그렇습네다. 무순에 직장이 있거든요.”
조직원이 의심스럽게 눈을 빛내며 다시 물었다.
“그럼 당신 셋은 어떤 사이요?”
“우리는 그러니까네…….”
최룡이 당황하며 자신들을 돌아보자, 동하가 재빨리 은서의 팔짱을 꼈다.
“우린 부부 사이입니다!”
“당신 둘이 부부라고……?”
“네, 그렇습니다.”
“흐음, 그렇구만. 그럼 이 남자와는 어떤 사이요?”
“윽!”
조직원이 최룡을 가리키며 불쑥 묻자, 동하는 급 당황했다. 우물쭈물하던 그가 급한 김에 아무렇게나 소리를 질렀다.
“이 사람은 제 아내의 전 남편이오!”
“뭐라고……?”
황당한 표정을 짓던 조직원이 더욱 의심스러워진 표정으로 추궁했다.
“현 남편과 전 남편이 함께 여행 중이란 말이오?”
“왜요? 전현직 남편이 함께 여행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답니까?”
“으음……!”
눈을 가늘게 뜨고 어색하게 팔짱을 끼고 있는 동하와 은서 그리고 최룡을 훌어보던 조직원이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이 손가락을 까닥였다.
“당신들 셋 다 잠깐만 내려보시오.”
“아니, 왜요?”
“내리라면 내려! 우리가 꼭 강제로 끌어내려야겠나?”
조직원이 버럭 고함을 지르자, 세 사람은 결국 승합차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차에서 내리며 동하와 최룡은 급히 시선을 교환했다.
“당신들 일단 신분증 좀 봅시다.”
“신분증이오?”
“그래, 신분증! 빨리 신분증을 내놓으란 말이야!”
동하를 향해 손바닥을 내리는 조직원의 목소리는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동하가 겁에 질린 듯한 표정으로 품속에 손을 밀어 넣었다.
“알겠습니다. 신분증 보여드릴 테니, 너무 무섭게 그러지 맙시다.”
쉬이이익!
하지만 동하의 품속에서 빠져나온 것은 신분증이 아니라 기가 팽팽하게 불어 넣어진 그의 손가락이었다.
푸우욱!
“크흑!”
이진산의 독문지법인 혈응지가 펼쳐지자, 눈을 부라리고 있던 조직원이 가래 끓는 소리를 뱉으며 벌러덩 넘어갔다. 그의 등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머지 두 조직원이 주먹을 쳐들고 동하에게 덤벼들었다.
“너 이 새끼!”
“네놈이 강동하였구나!”
동하가 그런 조직원들의 머리 위로 쏜살같이 차올랐다. 그리고 역시 이진산에게 배운 독문각법인 탈영각으로 둘의 얼굴을 동시에 강타했다.
뻐벅!
두 조직원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새끼들이 까불고 있어.”
손바닥을 탁탁 털어대는 동하를 향해 최룡이 다급히 말했다.
“곧 흑룡회 조직원들이 개떼처럼 몰려올 겁네다! 빨리 피하셔야 합네다, 형님!”
“그럼 어서 차에 타자고!”
승합차에 타려는 동하의 팔을 최룡이 붙잡았다.
“사방에서 CCTV가 우릴 감시하고 있습네다! 이 차는 이제 버리는 게 좋을 것 같습네다!”
“젠장, 이거 피곤하게 됐군! 알았으니까 어서 가자고!”
동하와 최룡 그리고 은서는 승합차를 버리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도심을 향해 달려갔다.
* * *
하지만 도시의 어둠도 세 사람을 숨겨주지는 못했다. 밥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가도 감시의 눈길이 번뜩이고 있었고, 호텔에 들어가 방을 잡으려고 해도 카운터에서 어디론가 급히 전화를 거는 것 같아 무작정 도망쳐야 했다.
그렇게 밤새 쫓고 쫓기며 동하와 은서와 최룡은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이대로 도망만 쳐서는 결국 당하게 될 것 같아!”
빈민가의 뒷골목 노상 카페에 앉아 김빠진 캔맥주로 갈증을 달래며 동하가 무언가 결심한 얼굴로 말했다.
은서가 그런 동하를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대로 도망가지 않으면요? 지금으로선 도망치는 것 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잖아요.”
“하지만 이대로 날이 밝으면 우린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어차피 발각되게 되어 있어요.”
동하가 최룡을 스윽 돌아보자, 그도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형님의 말씀이 맞습네다. 이곳 심양에서 흑룡회의 감시망을 피해 숨을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습네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하자는 거예요?”
약간은 히스테릭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은서를 향해 동하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차라리 아직 힘이 남아 있을 때, 흑룡회 본부로 쳐들어가 총보스 리우캉을 쓰러뜨리는 겁니다.”
“네에……? 그걸 지금 작전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야말로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들겠다는 거잖아요.”
“그래도 지금은 그 방법이 최선입니다!”
확신에 차서 말하는 동하의 얼굴을 기가 막힌 듯이 바라보던 은서가 최룡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최룡 씨도 좀 말려봐요. 동하 씨가 지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잖아요.”
“아뇨, 저는 형님의 생각이 대범한 역발상이라고 생각합네다!”
“엥? 이건 또 무슨 소리예요?”
황당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은서와 확고한 동하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최룡이 말했다.
“지금 흑룡회는 저희 셋을 찾기 위해 천여 명에 이르는 거의 전 조직원을 심양 시내에게 쫙 풀어놓았습네다. 당연히 흑룡회 본부에 대한 경비는 느슨해질 수밖에 없는 상태일 겁네다. 이럴 상태에서 우리가 총보스 리우캉을 노리고 쳐들어간다면 뜻밖의 성과를 올릴 수도 있다는 말입네다!”
“역시 최룡 아우는 내 생각을 정확하게 읽고 있군.”
투욱!
“괜히 형님의 아우가 아니지 않겠습네까?”
동하가 내민 주먹에 최룡이 자신의 주먹을 부딪치며 씨익 웃었다.
은서가 신뢰 어린 눈빛을 주고받는 두 남자를 향해 탁자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항의했다.
탕! 탕! 탕!
“이봐요! 지금 그런 눈빛이나 주고받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요! 흑룡회 본부로 쳐들어가는 그런 황당한 작전 말고 좀 더 그럴싸한 계획을 세워보란 말이에요. 제발 쫌!”
끼이익! 끼이이익!
전조등을 환하게 밝힌 검은색 밴 두 대가 세 사람이 앉아 있는 탁자 앞에 급정지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밴의 옆문이 열리며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도를 풍기는 흑룡회의 조직원 스물이 뛰어내렸다.
“이 쥐새끼들이 이런 곳에 숨어 있었구만……!”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는 조직원들을 향해 동하와 최룡도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마주 걸어나갔다.
“이거 참, 마침 적당한 순간에 딱 적당한 녀석들이 걸려들었네! 큭큭큭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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