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38화. 심양의 혈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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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심양의 혈투(2)
“으으윽!”
현기의 절정에 오른 칭룽의 발에는 확실히 강한 기가 실려 있었다. 그리고 그 발에 옆구리를 강타당한 동하는 허리가 꺾이는 고통을 느끼며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왕샤우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런 동하의 머리 위로 차오르며 앞차기를 날렸다.
콰앙!
“크흑!”
동하가 머리 위에서 두 팔을 교차시켜 왕샤우의 공격을 가까스로 막아냈다. 하지만 공격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번엔 칭룽이 바람처럼 파고들어 그의 아랫배에 주먹을 쑤셔 박았기 때문이다.
“우웁!”
퍼퍼퍼퍼퍼퍽!
휘청거리는 동하의 얼굴과 가슴을 노리고 칭룽의 주먹과 왕샤우의 발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이 작자들의 협공이 장난이 아니야! 한두 번 손발을 맞춰본 사이가 아닌 것 같단 말이지!
“이 새끼들아! 우리 형님 건드리면 나한테 죽는 거이야!”
수세에 몰린 동하를 구한 것은 최룡이었다. 최룡이 기가 팽팽하게 실린 주먹을 쳐들고 동하의 옆구리를 노리고 있는 왕샤우를 향해 덤벼들었다.
퍼퍽!
최룡과 왕샤우가 날린 주먹이 서로의 어깨를 때렸다. 둘 다 몸을 비틀어 충격을 최소화시켰지만 충격에서 완전히 비껴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충격의 강도는 왕샤우에 비해 내공이 딸리는 최룡 쪽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크흐흑!”
“최룡! 너 같은 하수 새끼가 낄 판이 아니야!”
왕샤우가 비틀거리는 최룡을 노리고 주먹을 날리며 달려들었다.
뻐버버버버버벅!
최룡과 왕샤우가 그 자리에 우뚝 버티고 서서 단숨에 수십 합을 주고받았다. 왕샤우와 주먹을 부딪힐 때마다 손가락 뼈가 모조리 으스러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최룡은 어금니를 질끈 깨물고 버텼다.
내레 여기서 밀리면 동하 형님도 당하는 거이야!
우리 형님은 내레 지켜드려야 하는 거이지!
최룡은 주먹이 너덜너덜해진다 해도 물러설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푸우욱!
“흐억!”
그리고 최룡의 이러한 분전은 결과적으로 동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칭룽과 일대일로 맞붙게 된 동하가 곧 전세를 역전시켰기 때문이다.
동하의 주먹이 명치 깊숙이 꽂히자, 칭룽이 입을 떡 벌리며 주르륵 밀려났다.
“이 건방진 새끼야!”
칭룽이 악을 지르며 기를 최대치로 끌어 모은 주먹을 날려왔다. 동하도 오룡봉성의 경지에 오른 이후 고속도로처럼 뻥 뚫린 혈관을 통해 최대한 많은 기를 쏟아 부으며 주먹을 날렸다.
슈와아아아악!
살벌한 기세가 실린 두 사람의 주먹이 서로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우지끈!
“꾸웩!”
간발의 차이로 동하의 주먹이 먼저 칭룽의 턱을 부쉈다. 동하의 주먹과 칭룽의 주먹은 거의 같은 속도로 날아갔으나, 동하의 주먹에서 기가 뻗쳐 나와 칭룽의 턱을 박살내 버렸던 것이다.
“응? 강동하 저놈이 설마 탄기의 경지에 다다른 것인가?!”
순간, 싸움을 느긋하게 관망하고 있던 리캉우의 미간이 와락 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탄기의 고수란 아무나 오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흑도의 세계에서도 일반인과 초인을 가르는 기준이 되는 경지가 바로 이 탄기의 경지였던 것이다.
리캉우가 새삼 살기를 끌어올리며 중얼거렸다.
“강동하 저놈……, 절대로 살려둬서는 안 될 놈이다……!”
한편, 칭룽을 제거한 동하는 최룡을 몰아붙이고 있는 왕샤우를 향해 짓쳐갔다.
“최룡, 내가 간다!”
“헉!”
동하의 가세에 놀란 왕샤우가 황급히 몸을 돌리며 발차기를 날렸다. 동하가 고개를 살짝 숙여 공격을 흘려보내며 왕샤우의 허벅지 안쪽을 이진산의 독문지법인 혈응지로 깊숙이 찔렀다.
쿠우욱!
“끄아아악!”
허벅지가 끊어지는 끔찍한 고통을 느끼며 왕샤우가 정신없이 뒷걸음질을 쳤다. 동하가 그런 왕샤우의 머리 위로 주먹을 젖히며 차올랐다.
꽈아앙!
“우웩!”
동하의 주먹에 처박히며 왕샤우의 안면이 움푹 함몰되었다.
“끄어어어……!”
쿠아앙!
이빨과 핏물을 뿌리며 천천히 넘어가던 왕샤우가 바닥에 세차게 뒤통수를 처박았다.
“후우욱…… 후우욱……!”
피를 흘리며 사무실 바닥에 널브러진 칭룽과 왕샤우를 숨을 헐떡이며 내려다보던 동하가 최룡을 돌아보며 물었다.
“최룡, 괜찮나?”
“끄떡없습네다.”
최룡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힘차게 대답했지만 왼쪽 뺨이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고, 가슴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그래, 괜찮다니 다행이다.”
동하가 안쓰러운 마음을 누르고 고개를 끄덕이며 리캉우를 향해 돌아섰다.
키우우우우웅!
두 부하의 패배에 분노가 극에 달했는지 리캉우는 이미 온몸으로 무시무시한 기세를 발산하고 있었다. 한동안 이글거리는 눈으로 동하를 바라보던 리캉우가 착 가라앉은 소리로 물었다.
“강동하, 너 정말 순경이 맞냐?”
“그래, 대한민국 순경이다.”
“순경이 한국 경찰 중에 가장 하위직인 것도 맞고?”
“아 진짜! 대체 몇 번이나 같은 대답을 반복하게 만드는 거야? 너희들은 왜 다들 그렇게 내 직급에 관심이 많지?”
리캉우가 동하의 얼굴을 가리키며 씁쓸하게 내뱉었다.
“그야 순경 따위가 너처럼 강하다는 게 말이 되질 않으니까. 너처럼 강한 말단 순경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니까.”
동하가 리캉우의 시선을 마주한 채 히죽 웃었다.
“하지만 이렇게 존재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이제 그만 현실로 받아들여라.”
“큭큭큭큭! 네놈이 지금 우리 이사 둘을 쓰러뜨렸다고 자신만만해 하고 있구나? 착각하지 마라, 이놈아. 그래봤자 내 눈에는 네놈이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날뛰고 있는 원숭이로 보일 뿐이다.”
“호오, 그래? 그럼 오늘 흑룡회의 총보스께서 원숭이한테 처맞으시는 날인가?”
동하의 도발에 격노한 리우캉이 사납게 짓쳐 나왔다.
“그 주둥이부터 찢어줘야겠구나!”
피유웃!
달려오는 탄력을 이용해 리캉우가 앞차기를 날렸다. 하얀 기광이 맺힌 발이 총알처럼 쏘아오자 동하는 기겁했다.
‘헉! 뭐가 이렇게 빨라?!’
파아앙!
“으윽!”
반사적으로 고개를 비틀어 피했지만 왼쪽 뺨에 선명하게 혈선을 그어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네놈은 이제 죽은 목숨이야!”
팡! 팡! 팡! 팡! 팡! 팡!
그때부터 리우캉의 파상공격이 이어졌다. 사방에서 기를 팽팽하게 머금은 리우캉의 발과 주먹이 날아들었다. 그의 공격은 너무 빠르고 너무 변화가 심해 도무지 피할 수가 없었다. 동하로선 양팔 가드를 최대한 올리고 충격을 최대한 흡수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수비적인 대응에도 한계가 있었다. 리우캉의 타격력은 방금 전에 동하의 주먹에 쓰러졌던 칭룽이나 왕샤우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리우캉의 주먹이나 발에도 칭룽이나 왕샤우처럼 백색 기광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동하는 리우캉도 그들처럼 현기의 고수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무언가 확실히 달랐다. 리우캉은 단순히 기를 주먹이나 발 밖으로 띄워 올리는 정도가 아니라, 주먹이나 발 밖으로 기를 내쏘아 동하에게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증거는 머지않아 동하의 눈앞에서 펼쳐졌다.
“네 발로 스스로 나를 찾아온 것이 결정적인 실수였다!”
슈와아아악!
이미 피투성이로 변한 동하의 얼굴을 노리고 리캉우가 주먹을 날리며 들이닥쳤다. 동하는 정신없이 밀영환보를 밟으며 리캉우의 주먹을 피하려고 했다. 그리고 확실하게 주먹의 타격점에서 벗어났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슈우우우웅!
동하를 놓치고 허공을 때린 리캉우의 주먹에서 빛이 번쩍하는가 싶더니, 주먹 끝에서 백색 기광이 레이저처럼 뻗쳐 나오는 것이 아닌가!
뻐어어억!
“우웩!”
기광에 가슴을 강타당한 동하가 리캉우의 주먹에 맞은 것과 똑같은 통증을 느끼며 뒤쪽으로 붕 날아갔다.
핏물을 뿌리며 너울너울 날아가는 동하의 머릿속에서 이진산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정신 똑바로 차려, 이놈아! 리캉우 이놈은 탄기의 고수다! 권각 밖으로 기를 내쏘아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경지란 말이다!]
‘주먹이나 발 밖으로 기를 내쏠 수 있다고요? 옘병! 어쩐지 계속 피해도 계속 처맞더라니!’
우당탕탕탕!
한참이나 날아가던 동하가 사무실 바닥으로 정신없이 나뒹굴었다.
“동하 씨, 괜찮아요?”
“나, 난 괜찮으니까 그대로 있어요!”
동하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려는 은서를 향해 손바닥을 내뻗으며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은서는 입구 쪽에 서 있었고, 그 자리에 있는 게 자신이 당했을 때 조금이라도 도망칠 가능성이 높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와아아아아!”
하지만 입구 밖 복도 쪽에서 들려오는 함성에 동하의 마지막 기대마저 산산이 깨어지고 말았다. 자신들을 찾으려고 시내로 향했던 조직원들이 속속 복귀하여 회장실로 몰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최룡!”
동하가 소리쳐 이름을 부르자, 최룡이 씨익 웃으며 복도로 향했다.
“저 아새끼들은 내레 책임질 테니, 마음 푹 놓고 싸우시라요. 어차피 대가리만 잡으면 아무리 쪽수가 많아도 싸움은 끝나는 겁네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최룡의 응원에 애써 기운을 내며 동하가 리캉우를 향해 돌아섰다. 하지만 동하의 몰골은 처참했다. 얼굴은 이미 피투성이로 변해 있었고, 가슴과 두 팔에는 시커먼 멍 자국이 가득했다.
“허억……, 허어억……!”
가쁜 숨을 몰아쉬는 동하의 얼굴을 가리키며 리캉우가 잔인하게 웃었다.
“어때, 이제는 스스로 나를 찾아온 게 후회가 되지 않나?”
동하가 씨익 웃으며 응수했다.
“아니, 왜 진즉 찾아오지 않았나 후회하고 있었는데!”
리캉우가 기세를 더욱 사납게 끌어 올리며 동하를 향해 달려갔다.
“네놈이 눈알이 뽑히고 목이 부러져야 후회라는 걸 할 모양이구나!”
파파파파파파팡!
기가 잔뜩 실린 발과 주먹이 잔뜩 웅크린 동하에게로 쏟아졌다. 동하는 때론 자신도 주먹을 날려 막아내고, 때론 밀영환보를 밟으며 피해냈다. 하지만 그때마다 리캉우의 주먹과 발에서 기가 쏘아져 동하에게 타격을 입혔다.
“가드가 내려갔잖아, 멍청아!”
뻐어억!
“크흡!”
리캉우의 주먹이 동하의 양팔 가드를 뚫고 안면에 쑤셔 박혔다. 골이 흔들릴 정도로 충격을 받은 동하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이번만은 진짜 목을 내놔야겠다!”
리캉우가 무방비 상태로 휘청거리는 동하를 끝장내겠다는 듯이 바닥을 차고 날아올랐다.
‘권각 밖으로 기를 내쏠 수 있는 탄기의 고수란 말이지? 그렇다면 오룡봉성의 경지에 오른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리캉우를 꺾으려면 해야만 한다!’
후우우우우우웅!
이를 악물고 최대치로 기세를 끌어올리는 동하의 전신에서 눈부신 기광이 폭발하듯 터져나왔다.
“우와아아아악!”
쑤와아아아아악!
괴성과 함께 동하가 양손을 빠르게 교차시키며 내지르자, 리캉우를 향해 수십 개의 잔영을 그리며 손바닥이 날아갔다. 이진산의 독문장법이 수라십팔장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동하가 이전에 펼쳤던 수라십팔장과는 확연히 달랐다. 손바닥 하나하나에 범상치 않은 기광이 일렁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 한 번의 공격에 모든 것을 걸겠다!’
동하의 두 눈이 독기로 번질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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