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39화. 심양의 혈투(3)
* * *
39화. 심양의 혈투(3)
빠바바바바바박!
리캉우의 주먹과 동하의 손바닥이 허공에서 연이어 부딪치며 기의 파편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처음에는 주먹과 손바닥이 팽팽하게 호각을 이루는 듯했으나, 이내 기가 팽팽하게 실린 주먹이 장영들을 차례로 부수며 동하를 압박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크흐흐흐! 네놈이 아무리 날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의 원숭이라니까!”
리캉우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그동안 자신을 골탕먹였던 이 한국인 순경 놈을 어떻게 죽일지에 대한 생각만이 꽉 들어차 있었다. 그래서 수라십팔장의 손 그림자가 모두 사라지고 정신없이 뒷걸음질을 치는 동하를 뒤쫓는 그의 움직임은 자신감에 차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그만 죽어랏!”
콰아아앗!
당혹감으로 일그러진 동하의 얼굴이 눈앞으로 닥쳐드는 순간, 리캉우가 자신이 끌어올릴 수 있는 최대치의 기가 실린 주먹을 강하게 내질렀다.
“수라십팔장 제 이장 수라낙인!!”
바로 그 순간 동하도 자신이 끌어올릴 수 있는 최대치의 기가 실린 손바닥을 내질렀다. 백색 기광이 일렁이는 리캉우의 주먹과 동하의 손바닥이 서로를 노리고 날아갔다.
쑤아아아악!
리캉우의 주먹 밖으로 기가 뻗쳐 나와 탄환처럼 쏘아졌고, 동하의 손바닥 밖으로도 기가 뻗쳐 나와 살처럼 쏘아졌다.
‘강동하 저놈도 이미 탄기의 경지에 오른 것인가?!’
동하도 탄기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리캉우는 긴장했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여전히 승리를 확신하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저놈은 기껏해야 탄기의 초입에 가까스로 도달한 게 분명해.
그렇다면 이번 싸움의 승자는 바로 나다!
투화아아아악!!
마침내 리캉우의 주먹과 동하의 손바닥이 부딪치며 백색 기광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이 각각 주먹과 손바닥을 맞붙인 채 체내의 기를 최대한 끌어내어 상대방에게 쏟아붓고 있었다.
“이이익!”
“끄으으윽!”
리캉우와 동하 모두 이를 악물며 버티고 있었다. 동하의 입언저리에서 검붉은 핏물이 주르륵 흐르는 것을 보고 리캉우는 자신의 승리를 더욱 확신했다.
큭큭큭큭! 나름 훌륭한 승부였다.
열심히 싸운 대가로 네놈의 시신만은 고이 묻어주도록 하마.
와드드득!
“흐억!”
하지만 자신의 주먹 뼈가 으스러지는 끔찍한 소리를 들으며 리캉우가 입가에서 순식간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리캉우가 의혹과 불신으로 찢어져라 눈을 부릅뜨고 피투성이로 변해 있는 동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우우우우웅!
피 칠갑을 해놓은 듯한 동하의 어깨 위로 백색 기광으로 만들어진 다섯 마리의 용이 희미하게 꿈틀거리는 모습을 확인하며 리캉우는 경악했다.
“서, 설마 오룡봉성……?!”
리캉우는 자신의 말을 끝맺을 수가 없었다. 동하의 손바닥이 그의 너덜너덜해진 주먹을 밀어내고 가슴 한복판에 쑤셔박혔기 때문이다.
푸우우욱!
“우웁!”
순간 리캉우가 온몸을 덜컥 진동하며 볼을 잔뜩 부풀렸다.
“끄어어어……!”
그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가슴 깊숙이 쑤셔 박혀 있는 동하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 손바닥을 통해 가슴 안쪽으로 물밀 듯이 밀려 들어온 기가 리캉우의 내장을 휘저으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네놈……, 네놈이 어떻게 오룡봉성의 경지에 도달할 수가……?!”
“글쎄, 그냥 운이 좋았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겠군.”
스르르륵!
동하의 손바닥이 마침내 리캉우의 가슴에서 떨어졌다. 그제야 리캉우는 똑똑히 확인할 수가 있었다. 자신의 가슴 한복판에 선명하게 찍혀 있는 수라 모양의 손자국을!
“중원인도 아닌 반도의 순경 따위가 어떻게 오룡봉성의 경지에 오를 수가……?! 이, 이건 사기다!”
흑룡회 총보스가 핏물이 차오르는 눈을 들어 동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동하는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이 동하를 향해 의문이 아니라 리캉우 스스로를 향한 의문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웨에엑!”
촤아아악!
리캉우가 입에 머금고 있던 핏물을 토하면서 동하의 얼굴과 상반신으로 튀었다. 하지만 동하는 얼굴에서 흐르는 핏물을 닦아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짙은 의혹이 어린 얼굴로 뒤쪽으로 천천히 넘어가는 리캉우를 향해 동하가 나직이 작별을 고했다.
“잘 가라. 나름 멋진 승부였다.”
쿠우웅!
마침내 리캉우가 사무실 바닥에 뒤통수를 세차게 처박으며 혼절했다. 리캉우의 상태로 보아, 운 좋게 살아난다 해도 다시는 무공을 사용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동하 씨, 괜찮아요……?”
너무도 처절하게 싸움을 벌인 동하가 두려운 듯 은서가 선뜻 다가오지도 못하며 물었다. 동하가 피 칠갑한 얼굴로 그녀를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네, 저는 괜찮습니다.”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그제야 은서가 동하를 살며시 안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조심하세요. 옷에 피가 묻습니다.”
“괜찮아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가늘게 떨리는 은서의 은서의 어깨를 안아주려고 손을 내뻗던 동하는 복도 쪽에서 들려오는 함성에 멈칫했다.
“우와아아아아아!”
활짝 열린 방문을 통해 끊임없이 몰려드는 수백 명의 흑룡회 조직원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최룡의 뒷모습이 보였다. 최룡도 동하처럼 온몸이 이미 피투성이로 변한 상태였다.
“덤비라우! 싹 다 덤비라우! 오늘 이 최룡이가 흑룡회의 간판을 떼어주갔어!”
졸지에 동생이 하나 생겼는데, 제법 믿음직하단 말씀이야.
동하가 피식 웃으며 은서를 살짝 떼어놓았다. 그리고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최룡을 향해 절룩절룩 다가갔다.
“어! 형님?!”
자신의 옆에 우뚝 버티고 서는 동하를 최룡이 주먹을 날리려다 말고 휘둥그레진 눈으로 돌아보았다.
“그럼 리캉우 그 간나 새끼는……?”
“아마 다시는 무공을 사용할 수 없을 거다.”
동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최룡의 안색이 환해졌다.
“오! 역시 우리 형님! 리캉우마저 해치우셨구만요.”
“으아아아!”
바로 그때 흑룡회 조직원 하나가 최룡을 향해 발차기를 날리며 달려들었다. 동하가 앞으로 나서서 조직원의 발을 살짝 밀어내며 가슴에 손바닥을 쑤셔 박았다.
뻐어어억!
“우웨엑!”
핏물을 왈칵 토하며 뒤쪽에서 누군가 끌어당기기라도 한 듯이 날아가던 조직원이 복도 바닥으로 정신없이 나동그라졌다. 핏물을 꿀럭꿀럭 토하며 길게 뻗어 버린 그를 질린 듯이 내려다보며 나머지 조직원들이 순간적으로 공격을 멈추었다.
“……!”
동하가 그런 조직원들을 향해 당당하게 외쳤다.
“리캉우은 이미 내 주먹에 쓰러졌다! 너희들까지 해치고 싶진 않으니 순순히 길을 열어라!”
총보스가 당했다는 소식에 조직원들이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총보스께서 당하셨다고?!”
“거짓말! 그럴 리가 없다!”
“그런데 강동하 저놈이 어떻게 회장실에서 두 발로 걸어 나올 수가 있지?”
“저, 정말 당하신 건가?”
동하가 반신반의하는 조직원들을 노려보며 기세를 한껏 끌어올렸다.
“정 못 믿겠다면 확인시켜주는 수밖에!”
키우우우우우웅!
리캉우와의 혈투 중에 완벽하게 탄기의 경지에 다다르게 된 동하의 몸 윤곽을 따라 기광이 불길처럼 피어올랐다. 백색 기광을 활활 불태우며 시퍼런 안광을 발하고 있는 동하의 모습은 그야말로 위압적이었다.
동하의 기세에 질린 조직원들이 감히 덤벼들 엄두를 못 내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저 강동하란 자식의 몸에서 일렁이고 있는 게 기광이 맞지?”
“일반인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기를 발산할 수 있는 고수란 말인가?”
“그, 그럼 리캉우 총보스님께서 놈에게 당하셨다는 말 역시 사실일 수도 있다는 거야?”
동하는 잘하면 자신의 기세만으로 흑룡회 조직원들을 제압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저들의 보스인 리우캉을 쓰러뜨리지 않았는가. 머리가 잘렸으니 수족이 떨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우와아아악! 저 새끼 죽여!”
“한국인 순경에게 흑룡회의 무서움을 보여줘라!”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이백이 넘는 조직원들이 악을 지르며 달려들자, 동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오잉? 저것들이 미쳤나?”
최룡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군요. 두목이 쓰러지면 조직원들은 보통 싸움을 포기하기 마련인데 말입네다.”
“그런데도 저렇게 악을 쓰고 달려든다는 건……?”
동하와 최룡의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동시에 중얼거렸다.
“리캉우의 배후에 누군가 더 무서운 인물이 있다는 뜻이로군!”
그런 동하의 얼굴을 노리고 조직원 하나가 주먹을 날리며 덤벼들었다.
“살아서는 이 빌딩을 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거 지금 나한테 한 소리냐?”
쩌걱!
“우웩!”
동하가 비웃음을 흘리며 주먹을 내지르자, 조직원이 콧잔등이 무너지며 붕 날아갔다.
그것을 시작으로 동하와 최룡 대 흑룡회 조직원 이백 간의 육탄전이 시작되었다.
“최룡! 오늘 밤 원 없이 싸워보자!”
“으하하하! 형님과 함께라면 저야 늘 환영입네다!”
쩍! 쩍! 쩍! 쩍! 쩍!
“으악!”
“크아악!”
“웨에에엑!”
기가 팽팽하게 실린 동하와 최룡의 주먹이 번뜩일 때마다 흑룡회 조직원들이 피를 뿌리며 붕붕 튕겨 날아갔다.
“우와아아……! 저건 뭐 어른과 유치원생들 간의 싸움 같잖아.”
막 회장실 밖으로 나오던 은서가 흑룡회 조직원들을 날려 버리고 있는 동화와 최룡을 바라보며 절로 감탄사를 발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싸움의 양상은 너무도 일방적이었다. 흑룡회 조직원들은 괴성을 지르며 전속력으로 동하와 최룡에게 돌진했다가, 고강도 스프링이 달린 펀치에 얻어맞은 것처럼 길게 날아갔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조직원들이 펀치가 날아오는 무슨 오락기를 향해 돌진했다가 차례로 튕겨 나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우와아아악!”
“저 두 새끼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
그 정도로 일방적인 싸움이었음에도 흑룡회 조직원들은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덤벼들고 있었다.
동하가 한 명씩 때려눕히기 귀찮아진 듯 양손 손바닥을 펼치며 기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후우우웁……!”
동하의 양손 손바닥 위로 눈부신 기광이 분수처럼 뿜어지는가 싶더니, 그가 양손을 내지르며 맹렬하게 기합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 수라십팔장 제 일장 훈푼연환장!!”
동시에 동하에게서 수십 가닥의 장영이 뻗쳐나가 득달같이 덤벼들던 조직원들의 가슴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빠바바바바바바박!
“끄아아아악!”
조직원 수십이 한꺼번에 피를 뿌리며 너울너울 날아가기 시작했다.
쿵! 쿠쿵! 쿠우웅!
천장까지 떠올랐다가 세차게 등을 처박는 동료들을 보며 이제 오십여 명 정도 밖에 남지 않은 조직원들이 더 이상 덤벼들지 못하고 멈칫거렸다.
“누구든 죽는 게 소원이라면 계속 덤벼도 상관없다.”
“으으으……! 도저히 안 되겠어.”
“이, 일단 물러나자.”
“강동하 이 새끼! 두고 보자!”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며 물러나는 나머지 조직원들을 보며 동하가 피식 실소했다.
“두고 보자는 새끼들 무섭지 않더라. 그렇지, 최룡?”
최룡을 돌아보던 동하가 움찔했다. 최룡이 앞쪽으로 스르륵 허물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터어억!
“최룡, 정신 차려!”
동하가 황급히 최룡을 부축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