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41화. 흑룡회 접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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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흑룡회 접수(1)
“그러니까 장춘 공안청에 잡혀 있다가, 이곳으로 끌려왔단 말이지?”
동하가 회장실 소파에 앉아 바닥에 무릎이 꿇린 리길상을 향해 물었다.
“똑같은 말을 몇 번이나 물어보네? 내레 이미 다 말하지 않았니?”
동하가 리길상의 불만을 무시하고 다시 물었다.
“흑룡회로부터 배신자로 낙인 찍혀 고문까지 당했고?”
“아 씨발! 왜 자꾸 물었던 걸 또 물어보고 지랄이네?!”
리길상이 버럭 고함을 지르자, 동하가 손바닥을 확 쳐들며 눈을 부라렸다.
“이게 은근슬쩍 도망쳤다가 딱 걸린 주제에 뭘 잘했다고 큰소리야? 일단 몇 대 맞고 시작할까?”
“이런 쓰으……!”
뿌드득 이를 갈아붙이며 동하를 노려보던 리길상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도 방금 전에 피떡이 되어 이곳 회장실에서 실려 나가는 리캉우와 두 명의 이사를 똑똑히 보았던 것이다.
리캉우가 누구인가? 중국 동북방 최대의 도시 심양을 지배하던 흑룡회의 총보스로 자신 같은 떨거지는 감히 눈조차 마주칠 수 없는 고수였다. 그런 리캉우마저 동하의 손에 쓰러진 것이다.
저 괴물 같은 존간나 새끼는 대체 얼마나 강한 거이야?
저 주먹에 제대로 한 방 걸렸다가는 염라대왕과 독대할 각이구나야!
리길상이 꼬랑지를 내리자, 동하도 쳐들었던 손바닥을 내리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흑룡회 내부 사정에 대해 뭐 좀 아는 게 있어?”
바깥은 이미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이제 곧 외부로 나갔던 흑룡회 조직원들과 중간간부들이 회사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제압하고 흑룡회를 접수하려면 조직 내부에 대한 정보가 절실했다.
그런 동하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 리길상이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여기 갇혀 있는 동안 들은 이야기가 조금 있지 않겠니?”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데?”
자신 쪽으로 상반신을 기울이며 흥미를 보이는 동하를 향해 리길상이 영악하게 눈을 빛냈다.
“내가 정보를 주면 넌 나한테 뭘 줄 거니?”
“뭐?”
“강동하는 너는 흑룡회를 접수할 생각이라고 하지 않았니?”
아까 은서가 최룡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기 전에 동하와 나눈 대화를 엿들은 리길상이 이때다 싶어 협상을 시도하고 있었다.
“내가 바라는 건 딱 한 가지뿐이야. 지금 이 자리에서 날 풀어주는 것! 그럼 대도시의 빈민가 같은 곳에 꼭꼭 숨어 다시는 네 눈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이야. 어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간?”
“…….”
비굴하게 웃고 있는 리길상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동하가 그의 이름을 나직이 불렀다.
“길상아.”
“응? 와 그러니?”
“너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은데, 니 새끼가 우리 어머니를 살해했어.”
“그, 그건……!”
동하가 급 당황하는 리길상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또박또박 힘주어 내뱉었다.
“너는 이 팀장님과 함께 한국으로 귀국하게 될 거야. 그리고 한국의 감옥에서 오래오래 죗값을 치르며 살아가게 될 거야. 내 말 알아듣겠냐, 이 씨발놈아.”
“……!”
벙진 눈으로 동하의 살기 어린 시선을 마주하고 있는 리길상이 고개를 푹 떨구며 입을 열었다.
“나를 감시하던 흑룡회 조직원들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여기 이사들 중에 쑨웬이라는 인물이 있다고 하지 않겠니? 쑨웬은 굉장히 고지식한 인물인가 보더라. 일 년쯤 전에 흑룡회가 북경의 어느 거대 조직 밑으로 들어가기로 결정됐는데, 쑨웬이 흑룡회는 독립 조직으로 남아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했다나 봐.”
“그래서?”
“그래서긴 뭐가 그래서이야?”
리길상이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총보스 리우캉의 눈 밖에 나서 완전 한직으로 밀려나지 않았겠니? 그런데 쑨웬은 옛날부터 큰 싸움이 나면 늘 선봉에서 앞장서고, 평상시에도 부하들을 먼저 챙기고 해서 조직원들의 신망이 엄청 두터웠다고 히더라.”
“그러니까 쑨웬을 포섭하면 흑룡회를 접수하기가 쉬워질 거란 뜻이지?”
“그래, 바로 그거이야!”
리길상이 동하를 가리키며 씨익 웃었다.
“흐음……! 쑨웬……, 쑨웬이란 말이지……?!”
동하는 동하대로 턱을 매만지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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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 주식회사 흑룡의 지하주차장에는 외부로 나갔던 차량들이 속속 돌아오고 있었다. 수십 대의 승용차와 밴에서 내린 조직원들의 숫자는 무려 오백이 넘었다.
그들에게도 자신들이 밤새 찾아 헤매던 강동하가 오히려 회장실을 점거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당연히 적을 몰아내기 위해 회장실로 쳐들어가야 했지만, 그들은 선뜻 본관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리캉우 회장 이하 이사들이 전원 강동하에게 당했다는 소식도 함께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리캉우 총보스께서 강동하에게 당하셨다고?”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 가셨다나 봐.”
“하! 그 강동하란 한국 놈이 그렇게 강했었나?”
“나도 회장님께서 당하셨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아.”
조직 생활을 하는 자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강자에게 굴복하는 습성이 있었다. 그들이 리캉우 회장에게 절대복종했던 이유도 탄기의 고수인 그가 누구도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절대강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하가 그런 리캉우를 한 방에 때려눕혔다고 하지 않는가.
흑룡회 조직원들이 숫자를 떠나 동하에게 두려움을 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동하가 리캉우 회장을 쓰러뜨린 후에 보인 행적은 그들에겐 더더욱 충격적이었다. 동하는 도망치기는커녕 회장실에 버티고 앉아 흑룡회를 접수하겠노라 선언했다. 그 당당한 태도는 흑룡회 조직원들의 두려움을 더욱 두텁게 했고, 어떤 경외심마저 품도록 만들고 있었다.
“지금 당장 회장실로 올라가 총보스의 복수를 해야 하지 않겠나?”
“그게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끼리 과연 놈을 상대할 수 있을까?”
“강동하는 혼자고 우린 오백이 넘어! 그깟 놈쯤은 단숨에 쓸어 버릴 수가 있다고!”
“하지만 총보스 뿐만 아니라 이사님들과 백 명이 넘은 형제들을 혼자 쓸어 버린 놈이야. 섣불리 덤빌 일이 아니다.”
조직원들이 혼란에 빠져 있는 그때 누군가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내가 직접 강동하란 남자를 만나보겠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조직원들이 반색하며 소리쳤다.
“오, 쑨웬 따거!”
“따거께서 나서주신다면 안심입니다!”
“리캉우 총보스가 안 계신 지금 저희가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은 쑨웬 따거 뿐이십니다!”
쑨웬이 오른 주먹을 번쩍 쳐들며 목청을 높였다.
“단! 한 가지만 약속해줄 수 있겠나?”
“무엇을 말입니까?”
“말씀만 해주십시오, 따거!”
날카롭게 빛나는 눈으로 조직원들을 둘러보던 쑨웬이 낮게 깔리는 소리로 말했다.
“내가 어떤 결정들 내리든 그 결정에 너희 모두 따르겠다고 약속해다오. 내가 강동하와 싸우겠다고 하면 너희들도 나와 함께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고, 내가 강동하를 새로운 총보스로 모시겠다고 하면 너희들도 나와 함께 그를 섬기는 것이다. 어떤가? 약속해줄 수 있겠나?”
“강동하와 죽을 때까지 싸운다고?”
“그게 아니면 강동하를 새로운 보스로 모신다고?”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던 조직원들이 앞다퉈 외치기 시작했다.
“네, 약속하겠습니다!”
“강동하와 싸우든 강동하를 모시든 따거께서 결정하신 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러니 어서 강동하를 만나주십시오, 따거!”
쑨웬이 결연한 얼굴로 본관 출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래, 지금 강동하를 만나러 가겠다!”
* * *
“후우우우……!”
동하는 회장실 소파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동하도 최룡 못지않게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었다. 오룡봉성의 경지에 오른 이후, 그는 원하는 만큼의 기를 마음껏 운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웬만한 상처는 이렇게 차분하게 운기를 하는 것만으로 저절로 치료가 되었다.
후우우우우웅!
동하의 등 뒤에서 서서 그의 몸 윤곽을 따라 기광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모습을 리길상이 긴장감 속에 지켜보고 있었다.
‘강동하 저 간나 새끼! 잘은 모르지만 처음 봤을 때보다 최소 두세 배는 강해졌어. 대체 어떻게 저리 빠르게 발전할 수가 있니?’
리길상은 내심 기회가 생기면 다시 동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궁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하가 보여준 상상 이상의 수준은 그런 마음이 깨끗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일단은 나 죽었소 하고 넙죽 엎드려 있는 게 상책이갔어.’
리길상이 통박을 굴리고 있을 때, 누군가 회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흑룡회의 이사 중 한 명인 쑨웬이 동하와 만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쑨웬도 운기에 집중하고 있는 동하를 발견하고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동하의 몸 윤곽을 따라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는 기광을 그도 똑똑히 보고 있었다. 그 자신도 무공을 익힌 몸으로 동하의 경지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리캉우 회장님께서 당하신 이유가 있었구나. 강동하는 결코 가볍이 볼 고수가 아니다.’
동하도 쑨웬을 조용히 살펴보고 있었다. 삼십대 중반이나 되었을까? 침착하면서도 나름 강단이 있어 보이는 남자였다.
‘아마도 저 남자가 리길상이 언급했던 쑨웬이라는 인물 같군. 조직원들의 신망을 받는 자이니, 그들을 대표하여 나와 협상을 하러 왔겠지. 그렇다면 이쪽의 힘을 확실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겠군.’
결심을 굳힌 동하가 온몸으로 돌리는 기의 양을 두 배로 증가시켰다. 그러자 그의 어깨 위로 사나운 기광이 불길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키우우우우우웅!
“허억!”
불길처럼 맹렬하게 타오르는 기광을 보며 쑨웬은 경악했다. 지금 동하가 보여주고 있는 기세는 리캉우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쑨웬은 무공의 고수가 얼마나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오래전에 자신이 모시던 보스 리캉우가 상대 조직원 백여 명을 혈혈단신으로 쓰러뜨리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그였다.
‘저 정도의 내공을 가진 고수라면 우리 오백이 모두 덤빈다 해도 쓰러뜨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쑨웬은 일단 숫자를 앞세워 동하의 기를 꺾어놓으려는 계획부터 포기했다.
그가 옷매무시를 고치며 동하를 향해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흑룡회의 이사 쑨웬이라고 합니다.”
“후우우우……!”
동하가 그제야 호흡을 길게 내뱉으며 온몸을 휘감고 있던 사나운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그가 쑨웬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바로 앞에 멈춰 서서 손을 내밀었다.
“쑨웬 이사에 대해선 말씀을 많이 들었소. 강동하라고 하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쑨웬이 황송하다는 듯 동하가 내민 손을 잡았다.
쿠우욱!
순간 동하가 손아귀에 힘을 불어넣으며 강력한 기를 흘려보냈다.
“크흡!”
손바닥을 통해 감당하기 힘든 기운이 밀려들자, 쑨웬은 움찔했다. 어쩔 수 없이 그도 기를 끌어올려 동하의 힘에 맞섰다. 하지만 애당초 동하의 힘은 쑨웬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끄으으으……!”
이질적인 기운이 쑨웬의 체내를 휘저으면서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쑨웬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어금니를 질끈 깨물고 저항했다.
‘이건 나의 기를 꺾으려는 의도다! 여기서 밀리면 나와 아우들은 이 남자에게 완전하게 굴복하는 수밖에 없다!’
우우우우우웅!
동하와 쑨웬이 동시에 기를 끌어올리자, 두 사람의 옷자락이 흩날리며 둥근 기광이 커다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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