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42화. 흑룡회 접수(2)
* * *
42화. 흑룡회 접수(2)
“그, 그만하십시오! 제가 졌습니다!”
쑨웬은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버텼다간 기혈이 뒤틀려 피를 토하며 쓰러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제야 동하가 쑨웬의 손을 풀어주며 나직이 말했다.
“내가 흑룡회의 보스 리캉우를 쓰러뜨렸소.”
“아, 알고 있습니다.”
“조직의 보스를 쓰러뜨렸으니, 이제 흑룡회를 접수하는 게 순리라고 생각하오만.”
“으음…….”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는 쑨웬을 향해 동하가 위협적으로 눈을 빛냈다.
“만약 쑨웬 이사와 나머지 조직원들이 대결을 원한다면 기꺼이 받아줄 것이오.”
“…….”
쑨웬은 잠시 입을 굳게 다물고 동하와 싸우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러나 방금 전 동하가 보여준 무위는 흑룡회의 남은 전력을 총동원한다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아니지, 아니야!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쪽이 전멸당할 확률이 훨씬 높겠지.
냉정하게 전세를 판단한 쑨웬이 동하를 향해 물었다.
“만약 흑룡회를 접수한다면 어떻게 조직을 이끌 생각이십니까?”
동하가 눈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
“무엇보다 나는 흑룡회를 독립적인 조직으로 만들 거요. 리캉우 총보스는 북경의 어느 거대 조직의 휘하로 흑룡회를 끌고 들어갔다고 들었소.”
쑨웬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그때부터 조직이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죠. 불문율처럼 절대 손대지 않던 마약을 대규모로 유통시키고, 그걸 또 한국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알고 있소. 그래서 다시는 그런 불합리한 사건에 휘말리지 않도록 흑룡회를 완벽하게 독립된 조직으로 만들겠다는 거요.”
쑨웬이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우리 흑룡회를 휘하에 거느렸던 그 조직은 북경의 공산당 지도부와도 연결되어 있는 막강한 조직이라고 들었습니다. 우리가 독립을 선언한다면 그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물론 가만히 있을 리가 없겠지.”
동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조직 전체가 하나로 똘똘 뭉쳐 맞선다면 충분히 그들을 상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오. 원래 조직의 세계란 강자만 살아남고 약자는 도태되는 그런 세계가 아니오? 나와 쑨웬 이사 그리고 조직원들이 하나가 되어 힘을 키운다면 그 어떤 대단한 조직이 덤벼도 흑룡회는 살아남을 수 있을 거요.”
“아……!”
쑨웬의 반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신음이 새어나왔다. 자신이 리캉우 총보스를 설득하기 위해 해왔던 말을 동하가 그대로 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이런 사람이라면 우리를 이끌만하다!
털썩!
쑨웬이 동하 앞에 허물어지듯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목청 높여 외쳤다.
“저와 흑룡회의 전 조직원은 강동하 형님을 새로운 총보스로 모시겠습니다! 부디 아우들을 잘 이끌어주시길 바랍니다!”
동하가 쑨웬의 어깨에 손을 얹고 뿌듯하게 미소 지었다.
“고맙소, 쑨웬 이사. 흑룡회가 더 강한 조직이 되고, 조직원들 한 명 한 명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나도 최선을 다하리다.”
“감사합니다, 보스!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동하를 올려다보는 리캉우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다.
이 남자가 말하는 충성은 진심이다.
흑룡회를 접수한 것도 중요하지만 쑨웬이란 남자를 거두게 된 것도 적지 않은 수확이야.
동하가 쑨웬의 팔을 잡고 일으켜주었다.
“자! 이제 그만 일어납시다.”
“전 조직원들을 불러들여 총보스의 즉위식을 거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다.”
쑨웬의 팔을 두드리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 동하를 리길상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일개 순경에 불과한 강동하가 조직원이 천여 명에 이르는 흑룡회의 총보스가 되다니, 이거야말로 천지가 개벽할 일 아니겠니?’
* * *
오후가 되자 은서와 최룡이 돌아왔다. 어느새 검은 정장을 입고 회장실에 서 있는 동하를 보고 두 사람은 상황이 정리됐음을 알아차렸다.
“형님! 흑룡회를 성공적으로 접수하신 겁네까?”
“그래,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정리가 되었어.”
동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옆에 서 있는 쑨웬을 가리켰다.
“여기 있는 쑨웬 이사의 도움이 결정적이었지.”
“과찬이십니다, 보스.”
동하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쑨웬을 보며 은서와 최룡은 동하가 흑룡회를 완전히 접수했음을 실감했다.
고개를 든 쑨웬이 동하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보스, 이제 슬슬 대강당으로 이동하시죠.”
“그곳에서 총보스의 취임식이 열리는 겁니까?”
“네! 조직원 천여 명이 이미 모여 있습니다.”
“그럼 갑시다.”
앞장서 걸음을 옮기던 동하가 우뚝 멈추었다. 그리고 엉거주춤 서 있는 리길상을 휙 돌아보았다.
“따라오지 않고 뭐하고 있어?”
“가, 가면 되지 않니.”
리길상이 불만스런 표정으로 동하를 엉거주춤 따라갔다.
* * *
실내운동장 만큼 널찍한 강당 안은 검은 정장을 입은 조직원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보스, 이쪽으로 오십시오.”
동하는 쑨웬의 안내를 받으며 조직원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단 위로 올라갔다. 동하가 단의 앞쪽에 서고, 그의 등 뒤로 쑨웬과 은서, 최룡 그리고 리길상이 나란히 섰다. 동하가 천 명에 육박하는 조직원들이 모였지만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고요한 강당 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자신을 주시하는 조직원들의 시선에는 불안감과 기대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들의 불안감을 지우고 기대감을 높여주고 싶었지만 한 번도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 나서본 경험이 없는 동하로선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잠시 머뭇거리고 있던 동하가 이진산을 불렀다.
‘어르신, 거기 계십니까?’
[그럼 내가 여기 콕 박혀 있지 어딜 가겠느냐?]
‘어르신, 이럴 땐 대체 뭐라고 해야 하는 겁니까?’
[이런 한심한 놈을 봤나? 이놈아, 노부가 아니라 네놈이 한 조직의 보스가 되는 것이다. 당연히 어떤 말로 조직원들을 휘어잡을지도 네놈이 결정해야지.]
‘하지만 어르신이 흑룡회를 접수하라고 하셔서 이 자리에 서게 된 아닙니까? 그러니 무슨 말을 할지도 어르신이 정해주는 게 맞죠.]
[나는 모르겠으니 네놈이 하고 싶은 대로 아무 말이나 떠들도록 해라.]
‘에이이~ 그러지 말고 좀 알려주세요.’
[쯔쯧~ 이런 미련곰탱이 같은 놈을 봤나?]
한심한 듯이 혀를 차던 이진산이 불쑥 말했다.
[일단 가슴을 쫙 펴봐라.]
‘네?’
[가슴을 펴라고! 이제 한국말도 못 알아듣냐?]
‘아, 알겠습니다.’
동하가 시키는 대로 가슴을 쫙 펴자, 이진산이 다시 말했다.
[자, 그 상태에서 너의 부하가 될 천 명의 기세를 느껴보는 거다.]
‘기세를 느껴보란 말이죠……?’
동하가 가슴을 쫙 펴고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천 명의 조직원들을 다시 둘러보았다. 그러자 그들의 호흡과 그들이 내뿜는 땀 냄새까지 고스란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원하고 있을 한 마디가 그의 머릿속에서 불현 듯 떠올랐다.
동하가 오른 주먹을 번쩍 쳐들며 벼락처럼 일갈했다.
“우리는 흑룡회다!”
“……!”
순간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숨 막힐 듯한 침묵이 조직원들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젠장, 역시 좀 더 길게 말할 걸 그랬나?
동하는 후회했지만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빠, 빨리 아무 말이라도 지껄여 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뜨려야…….’
동하가 새로운 말을 찾으려고 진땀을 흘리고 있는 그 순간, 조직원들이 그를 따라 주먹을 번쩍 쳐들며 우렁차게 외쳤다.
“우리는 흑룡회다!”
외침은 곧 거대한 함성이 되어 천 명의 조직원들 사이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와아아아아!”
“우리는 흑룡회다!”
“우리는 흑룡회다!”
“우리는 흑룡회다!”
“우리는 흑룡회다!”
그제야 동하도 안심하고 조직원들을 따라 주먹을 흔들며 입을 모아 외쳤다..
“역시 우리 형님은 희대의 영웅이십네다.”
그런 동하를 지켜보며 뿌듯하게 미소 짓는 최룡 옆에서 은서가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아……! 동하 씨는 정말 흑룡회의 보스가 되었군요.”
그녀의 눈에는 흑룡회 총보스 동하의 모습이 마치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었을 때처럼 자연스러워 보였고, 그 자연스러움이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동하 씨가 다시 지구대 순경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저 남자는 이미 자신의 길이 아닌 길로 너무 멀리 와 버린 것은 아닐까?
불안감에 떨고 있는 그녀를 향해 취임식을 끝낸 동하가 다가왔다.
“이 팀장님.”
“네? 아, 네!”
“오늘 밤에 귀국하실 예정이라고요?”
“네, 그래요.”
동하가 친근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먼저 돌아가 계세요. 저도 곧 따라가겠습니다.”
“글쎄요……. 과연 곧 돌아올 수 있을지는…….”
동하의 등 뒤 강당을 가득 메우고 있는 천 명의 조직원들을 보며 은서는 말끝을 흐렸다. 잠시 씁쓸하게 동하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녀가 애써 웃는 얼굴로 말했다.
“서에 복귀하자마자 동하 씨의 휴직처리부터 해놓을 게요.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돌아와야 해요.”
“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약속할 게요.”
“하지만…….”
자신을 안심시키려는 동하의 미소에 은서가 울컥하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지금이라도 동하에게 자신과 함께 귀국하자고 조르고 싶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대량의 마약을 유통시킨 배후의 조직을 색출하여 어머니의 복수를 마무리 짓고 싶어 하는 마음을 잘 알기에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은서가 동하를 향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은서가 내민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동하가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이 팀장님도 부디 건강하시길.”
동하와 은서는 그렇게 손을 맞잡은 채 한참동안이나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 * *
그날 저녁, 은서가 리길상에게 수갑을 채워 공항으로 떠난 후에 동하는 흑룡회 회장실에서 최룡, 쑨웬과 마주앉아 있다.
동하는 아까부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고, 두 사람은 보스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기다렸다.
한참만에야 동하가 입을 열었다.
“최룡.”
“네, 형님!”
“동북회의 아우들은 언제쯤 도착하지.”
“내일 새벽이면 도착할 것 같습네다.”
“그 친구들은 어디에 배치할 생각인가?”
“아무래도 회장 비서실에 배속시켜 형님의 경호를 맡겨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 그건 그렇게 처리하면 되겠군.”
동하가 이번엔 쑨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쑤웬 이사.”
“네, 보스!”
“쑨웬 이사를 사장으로 승진시킬 생각이오.”
“저, 저를 말씀입니까?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스!”
황송한 듯 고개를 숙이는 쑨웬을 향해 동하가 계속 말했다.
“최룡은 전무로 임명할 생각이니, 앞으로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조직을 잘 이끌어주시오. 나는 주로 무공 연마에 힘쓰고 조직의 사업에 직접 관여하는 일은 거의 없을 테니.”
“회장님이 무공 연마에 집중하실 수 있도록 최룡 전무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소.”
부우우우!
동하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소파 테이블 위에 놓아둔 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은서의 번호를 확인한 그가 급히 전화를 받았다.
“이 팀장님! 이제 비행기에 탑승하는 겁니까?”
“큰일 났어요, 동하 씨! 공항에서 리길상이 도주했어요!”
은서의 다급한 외침을 들으며 동하가 눈을 부릅떴다.
“뭐라고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