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43화. 경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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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경신법
“리길상 이 새끼가 기어이……!”
동하가 핸드폰을 귀에 댄 채 부르르 몸을 떨었다. 새삼 리길상에 대한 분노가 치솟으며 그의 두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온몸으로 사나운 기세를 발산하고 있는 동하를 최룡과 쑨웬이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형님, 괜찮으십네까?”
“후우우우……!”
호흡을 길게 내뱉으며 가까스로 마음을 가라앉힌 동하가 멘붕에 빠져 있는 은서를 향해 말했다.
“리길상이 중국에 있는 한, 제가 어떻게든 다시 잡아들이겠습니다. 그러니 이 팀장님은 안심하고 귀국하십시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동하 씨.”
핸드폰 너머에서 은서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리길상의 처벌을 얼마나 간절하게 원하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였기에 더욱 미안해하고 있는 것이리라.
동하 또한 누구보다 그녀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 팀장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리길상이 어떤 놈인지 잘 알면서도 방심하고 공항까지 직접 압송하지 못한 저의 잘못이 큽니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고 어서 비행기에 탑승하세요.”
“미안해요, 동하 씨……. 흐흑!”
은서가 끝내 눈물을 터뜨리며 전화를 끊었다.
꽈아악!
핸드폰을 움켜쥔 손을 바르르 떨고 있는 동하를 향해 최룡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리길상이 또 도주한 겁네까?”
“그렇다는군.”
“그 간나 새끼, 다리몽둥이를 작신 부러뜨려놨어야 하는 거인데…….”
최룡도 새삼 분노가 치미는 듯 주먹을 벌벌 떨었다.
마음이 심란해진 동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혼자 있고 싶군. 잠시 옥상에 올라가 바람 좀 쐬어야겠어.”
* * *
빌딩 옥상으로 올라오자 불야성의 이룬 대도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동하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을 흔들었다. 그래도 동하의 꽉 막힌 가슴은 뚫릴 줄을 몰랐다.
심란해하는 그의 머릿속에서 이진산이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뭘 그리 지지리 궁상을 떨고 있는 것이냐?]
‘어르신도 리길상이 도망쳤다는 소식을 듣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똑똑히 들었지. 그런데 그게 뭐?]
‘리길상은 제 어머니를 살해한 원수입니다. 옛말에 부모를 죽인 원수와는 한 하늘 아래서 살 수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제 마음이 어떻게 편할 수가 있겠습니까?’
[어이구~ 이놈아! 그래서 네놈이 미련곰탱이라는 거다.]
‘어머니를 살해한 원수를 놓쳐서 억울해하고 있는데, 미련곰탱이라뇨?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이진산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이놈아, 너는 이미 이곳 흑룡회를 접수했다. 흑룡회를 근거로 네놈이 중원의 삼합회를 일통해 봐라. 리길상이 아무리 꽁꽁 숨어 봤자 그놈을 찾아내는 건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운 일이 아니겠느냐?]
“아……!”
그제야 이진산의 말귀를 알아들은 동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동하를 향해 이진산이 말했다.
[그건 그거고 모처럼 시간이 난 김에 경신법부터 좀 배워보자.]
‘경신법이라고요?“
동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이미 밀영환보를 배우지 않았습니까?‘
[이놈아, 그건 보법이고!”
’보법과 신법이 다른 겁니까?‘
[당연히 다르지. 보법은 말 그대로 적의 공격을 피하고, 내가 적을 용이하게 공격할 수 있도록 발을 움직이는 기술을 말한다.]
’아! 적에게는 멀게, 나에게는 가깝게……?!‘
[옳지! 그게 바로 보법의 기본원리다.]
’그럼 경신법은 무엇입니까?‘
[너도 무협영화 같은 데서 보면 높은 담장을 훌쩍 뛰어넘고, 하늘을 막 날아다니는 전설의 고수들을 본 적이 있지?]
’경신법이라는 게 설마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술입니까?‘
[그래! 초절정 고수가 되면 정말로 하늘을 날아다닐 수가 있다.]
’와! 그런 게 현실에서 정말 가능하다고요?‘
동하가 여느 무공을 배울 때보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감탄사를 발했다. 대부분의 무협 애호가들이 그렇겠지만 그도 무협지가 무협영화를 볼 때마다 하늘을 붕붕 마음껏 날아다니는 고수들이 제일 부러웠던 것이다.
이진산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운기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지.]
동하가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재촉했다.
’대체 어떻게 하면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것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네놈도 이미 오룡봉성의 경지에 올랐으니, 운기에 집중하다 보면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 아니냐?]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던 것도 같네요.‘
[운기란 결국 단전의 기를 끌어올려 혈맥을 통해 온몸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런데 고수가 되어갈수록 이 기라는 것에서 불순물이 빠지며 점점 정순해지고 가벼워지게 되어 있다. 그렇기에 더 많은 기를 돌릴수록 몸이 점점 가벼워지며 허공으로 떠오르려고 하는 것이지.]
동하가 흥분하여 소리를 질렀다.
’맞습니다! 맞아요! 얼마 전에 제가 방안에 혼자 앉아 운기에 집중하고 있는데, 엉덩이가 들썩거리며 공중으로 몇 센티 정도 부양하는 게 느껴졌다니까요.‘
[옳다! 그것이 바로 경신법의 기본원리다. 어떠냐? 생각보다 쉽지?]
’아, 네……. 뭐 꼭 쉽다기보다는 어떻게 하는지 알 건 같네요.‘
[좋아! 그럼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지금 당장 여기서 운기를 시작해보아라.]
’지금 당장요?‘
[뜸 들여서 똥 만들 일 있냐? 말 나온 김에 당장 해보라니까.]
’아, 알겠습니다.‘
동하가 얼결에 옥상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눈을 지그시 감으며 운기를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그가 의념으로 기를 뽑아내어 혈관을 통해 돌리기 시작했다. 예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내기가 그의 혈맥을 타고 세찬 강물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촤아아아아악!
흐흐흐! 오룡봉성의 경지에 다다른 이후 확실히 운기의 양과 질이 달라졌다니까.
이건 뭐 순식간에 몸 구석구석까지 막강한 기가 도는 게 느껴지는군.
뿌듯하게 미소 짓는 동하의 머릿속에서 이진산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놈아, 경신법을 펼치려면 기를 무작정 많이 돌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기에서 최대한 불순물을 제거하여 가볍게 만들어야 한단 말이다!]
’아, 알았다고요.‘
동하가 더욱 정신을 집중하며 기에 섞여 있는 불순물을 태워 버리는 데 집중했다.
파지직…… 파지지직……!
체내에서 기로 일으킨 불꽃이 불순물을 태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계속 기를 돌리며 불순물을 꾸준하게 태우자, 몸이 점점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운기에 집중했을까?
동하의 몸이 옥상 바닥으로부터 둥실 떠오르는 게 느껴졌다.
둥실~
“으앗! 어르신, 됩니다! 돼요! 제 몸이 떠오르고 있다고요!”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르던 동하는 그만 균형을 잃고 옆으로 처박히고 말았다.
쿠우웅!
“꾸웩!”
바다에 처박힌 채 꿈틀거리는 동하의 머릿속에서 이진산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미련곰탱이 같은 자식! 경신술의 요체는 정신집중이다! 집중이 흐트러지면 하늘에서 떨어져 가루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에구구~ 허리야. 죄, 죄송합니다.‘
[자! 다시 해봐!]
’넵!‘
그 이후로도 동하는 여러 차례 경신술을 시도해보았다. 하지만 몸이 허공으로 떠오를 만하면 꼭 집중력이 흐트러져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를 반복했다.
결국 이진산이 자포자기한 목소리로 이렇게 내뱉었다.
[하아……! 내 살다 살다 네놈보다 재능이 떨어지는 놈은 본 적이 없느니라. 너 같은 놈이 어떻게 오룡봉성이라는 놀라운 성취를 이루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로다.]
동하는 동하대로 볼멘소리로 항변했다.
’무조건 날아오르라고 하지 마시고 어르신이 알고 계시는 기가 막힌 경신법이 있으면 하나 알려주세요. 그럼 훨씬 쉽게 날 수가 있을 것 같지 말입니다.‘
[노부의 독문신법을 알려달란 말이냐?]
’바로 그겁니다!‘
이진산이 코웃음을 쳤다.
[이게 알려준다고 다 되는 줄 아느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아직 기초도 되어 있지 않은 놈에게 알려줘봤자 사고만 당할 뿐이니라.]
’에이이~ 괜히 알려주기 아까우니까 빼시는 건 아니고요? 솔직히 제가 용호십삼권이든 밀영환보든 가르쳐주시는 족족 뚝딱 배우지 않았습니까?‘
[이놈이 이거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을 놈이네.]
이진산이 기가 막힌 듯이 말했지만 동하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지 말고 좀 가르쳐주시죠. 금방 배울 자신이 있다니까요.‘
[으음…….]
거의 땡강 수준으로 고집을 부리는 동하를 지그시 바라보던 이진산이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정 그렇다면 노부의 독문신법인 ’선인도수‘를 가르쳐줄 테니, 단단히 외워두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어르신!‘
신이 나서 연신 빙글거리는 동하의 머릿속에서 빛바랜 무공비급이 펼쳐지더니, 무인들이 선인도수를 펼치는 장면이 연이어 나타났다. 동하는 비급에 그려진 그림들을 머릿속에 차근차근 저장하며 연신 고개를 주억였다.
’아……! 선인도수라는 게 저렇게 하는 거구나!‘
이진산이 그런 동하게 물었다.
[어떠냐? 할 수 있겠느냐?]
’네! 이거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요.‘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동하를 향해 이진산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놈이 이거 또 설레발을 치네? 경신법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이놈아!]
’에이이~ 그림만 딱 봐도 무지 간단해 보이는데요, 뭘!‘
동하의 시건방진 태도에 화가 치민 이진산이 명령했다.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 지금 당장 해보시든가!]
’그 말씀을 기다렸습니다!‘
털썩!
동하가 옥상 바닥에 다시 주저앉으며 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우웅!
첫 번째보다 훨씬 강한 기가 동하의 몸 윤곽을 따라 피어오르며 그의 머리카락과 옷깃이 어지럽게 흩날렸다. 기를 충분히 돌려 불순물을 제거한 동하가 자신의 엉덩이가 바닥에서 떨어짐과 동시에 선인도수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야압!“
슈우우우우욱!
순간 동하의 신형이 대포에서 발사된 포탄처럼 옥상 바깥의 밤하늘을 향해 쏜살같이 쏘아졌다. 이건 동하가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아니었으므로, 그는 공포에 질려 다급히 소리를 질럿다.
”끄아아악! 어르신,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살려주십시오!“
[이놈아! 그러게 아직 준비도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았는데, 선인도수와 같은 고급 신법을 함부로 사용하니까 그런 것이 아니냐?!]
우뚝!
순간 동하의 몸이 밤하늘 한복판에서 우뚝 정지했다. 그의 시야에 자신이 방금 전까지 밟고 서 있던 흑룡회 빌딩 옥상이 손바닥만큼 작게 들어왔다.
“하…… 하하……! 내가 하늘을 날긴 날았구나.”
기가 막힌 듯이 웃는 그의 머릿속에서 이진산이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기를 돌려! 땅바닥으로 추락하여 가루가 되고 싶지 않으면 빨리 기를 돌리란 말이다, 미련곰탱이 같은 놈아!]
슈우우우우욱!
이진산의 경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동하가 저 아래 불야성을 이룬 도심 한복판으로 곤두박질을 치며 째져라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악! 사, 사람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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