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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경찰-44화 (44/75)

〈 44화 〉 44화. 일월합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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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일월합벽

“으아아아아악!”

동하는 자신이 선인도수를 펼쳐 솟구쳐 올랐던 흑룡회 빌딩 옥상을 향해 추락하며 비명을 질렀다.

[뒤지고 싶지 않으면 기를 돌리란 말이다, 미련곰탱이 같은 새끼야아­­!]

이진산의 다급한 외침을 들으며 동하는 필사적으로 기를 돌렸다. 그리고 몸 안을 몇 바퀴 돌면서 더욱 강해진 기를 발바닥으로 흘려보냈다. 발에 힘이 실리자 동하는 이진산의 독문신법인 선인도수를 다시 펼쳤다.

바바바바박!

발바닥을 통해 기를 발산하며 동하가 허공을 밟았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두 발을 굴러도 추락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아, 안 돼!”

쿠아아앙!

단발마의 외침과 동시에 동하가 옥상 한복판에 처박혔다.

후우우우……!

어찌나 세게 처박혔는지 옥상 바닥이 움푹 파이며 흙먼지가 풀풀 피어올랐다. 한동안 죽은 듯이 엎어져 있던 동하가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힘겹게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끄으으으……!”

우득! 우드득!

그의 온몸 구석구석의 관절이 뒤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옘병!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는 것 같군.

그래도 저 높이에서 떨어지고도 살아남은 게 어디냐?

“후우우웁……!”

가까스로 일어서서 길게 숨을 토하는 그의 머릿속에서 다시 이진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용케 살아남았구나.]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어쨌든 살았으니 되었다. 자, 다시 한 번 선인도수를 펼쳐봐라.]

‘네? 그 무지막지한 신법을 또요?’

동하가 정신없이 손사래를 쳤다.

‘싫습니다. 싫어요. 방금 죽다 살아난 거 안 보셨습니까?’

[아직 모르겠느냐? 네놈 거의 성공할 뻔했어.]

‘네?’

황당해하는 동하를 향해 이진산이 말했다.

[노부도 네놈에게 선인도수는 아직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복잡한 경신법을 난생처음 펼친 주제에 그렇게 높이까지 차올랐다가 죽지 않고 살아난 놈은 처음 봤다.]

‘그러니까 저의 첫 선인도수가 썩 나쁘지는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바로 그 말이다. 너란 놈은 보면 볼수록 참 묘한 구석이 있거든. 언뜻 보면 재능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할 수 없는 천하의 둔재처럼 보이다가도 막상 시켜보면 또 어찌어찌 해낸다는 말이지. 그것이 운빨이든 무엇이든!]

‘그거 혹시 칭찬 맞습니까?’

[그래, 칭찬이라고 해두자.]

‘이거 감격스러운데요. 어르신을 만난 후에 칭찬 비스무레한 걸 들어본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기왕 칭찬까지 받았으니 어여 선인도수나 펼쳐봐, 이놈아.]

‘칭찬 받은 값을 하라는 말씀이군요?’

동하가 고개를 주억이며 길게 심호흡을 했다. 중단전에서 더 많은 양의 내공을 끌어낸 그가 그것을 온몸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키우우우우웅!

힘차게 운기를 하는 그의 몸 윤곽을 따라 백색 기광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동하는 점점 더 빠르고 강하게 돌고 있는 기를 발바닥으로 집중시켰다. 그렇게 발바닥이 뜨거워지는 느낌을 받는 순간, 땅을 차고 날아올랐다.

“우와악! 선인도수!”

피슈우우우웅!

동하의 몸이 다시 로켓처럼 밤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으으윽!”

아까와 비슷한 높이에서 우뚝 멈춰선 동하가 좌우편 발바닥으로 보내는 기의 양을 동등하게 배분하려고 노력하며 가까스로 균형을 잡았다. 그제야 동하의 시야에 탁 트인 도심의 전경이 들어왔다.

도심의 밤하늘 한복판에 날개도 없이 서 있는 것은 황홀한 경험이었다. 마치 영화 속의 히어로가 된 기분이랄까

세상을 발아래 둔다는 게 이런 기분이었군.

무공을 익히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드네.

짜릿한 기분이 과했던 것일까? 아차 하는 순간, 동하는 오른 발바닥에 더 많은 기운을 보내고 말았다.

“으아앗!”

균형을 잃은 동하가 다시 옥상을 향해 곤두박질을 쳤다.

기를 돌려라! 기를 돌려라!

동하는 이진산에게 배운 대로 최대한 많은 양의 기를 돌려 몸을 최대한 가볍게 했다. 하지만 옥상 바닥에 등짝부터 처박히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쿠아앙!

“크아아악!”

흙먼지가 풀풀 피어오르는 가운데 꿈틀대며 고통을 흡수하고 있던 동하가 한숨을 길게 몰아쉬었다.

“후우우우……!”

고통이 잦아들며 그의 눈에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이 들어왔다. 방금 전 자신이 저 하늘 한복판에 떠 있었다는 사실이 꿈속에서의 일인 양 느껴졌다.

“킥……!”

그의 입술을 비집고 문득 웃음이 새어나왔다.

“큭큭큭큭!”

가슴을 들썩이며 웃는 그를 향해 이진산이 물었다.

[처녀 불알이라도 보았느냐? 왜 혼자 비실비실 쪼개고 있어?]

‘그냥 재미있어서 그럽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데?]

‘무공을 익힌다는 게 재미있는 일인지 몰랐습니다. 이 주먹 하나로 삼합회 조직원 수백을 굴복시키고, 슈퍼 히어로처럼 하늘을 막 날아다니고.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못했던 일들을 경험하는 게 너무 신이 납니다.’

[크흐흐흐! 네놈이 드디어 강해지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구나.]

‘강해지는 재미라고요?’

[남자라면 누구나 강해지고 싶은 욕망을 품고 있지. 하지만 진정으로 강해질 수 있는 남자로 수십만, 수백만 중의 한 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동하 네놈은 무공을 통해 그런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일단 강해져본 사람은 알고 있지. 강해지고 싶은 욕망은 마약과도 같아서 점점 더 강해지기 위해 필사적이 된다는 사실을! 너도 이제 절대강자를 향한 욕망의 열차에 올라탔다는 말이다.]

‘절대강자를 향해 욕망의 열차라고요……?!’

이진산의 말을 되뇌며 동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진산의 말처럼 자신이 어느 순간부터 더 강해지고 싶은 욕망을 느끼기 시작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더 강해지고 싶으면 냉큼 일어나 운기에 집중해라. 흑룡회를 이끌고 북경으로 진출하기 전에 최대한 힘을 키워놔야 할 것이 아니냐.]

동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흑룡회를 이끌고 북경으로 진출한다고요?’

[흑룡회를 배후에서 조종했던 그 정체불명의 조직은 반드시 동하 네놈을 제거하려 할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우리가 먼저 북경으로 진출하여 쓸 만한 조직들을 흡수한 후, 그 조직을 먼저 치자는 것이다. 한 마디로, 수세적 입장에서 공세적 입장으로 전환을 하자는 것이지.]

‘그게 과연 가능할까요?’

[가능하다. 왜냐하면 동하 너에게도 흑룡회라는 조직이 생겼고, 너 자신이 본격적으로 강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지. 그렇게 삼합회 조직들을 하나씩 접수하며 힘을 키운다면 너도 언젠가는 중원의 삼합회를 일통하고, 절대강자의 권좌에 올랐던 노부의 길을 따르게 될 것이니라.]

‘솔직히 제게 그만한 힘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불안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동하를 향해 이진산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러니까 어서 정좌하고 운기를 시작해, 이놈아! 이번엔 몇날며칠이고 운기에 집중해보란 말이다.]

‘아, 알겠습니다.’

이진산의 요구대로 며칠 동안 동하는 운기에 집중했다. 최룡과 쑨웬에게 조직의 정비를 맡겨둔 채 동하는 옥상에서 잠시도 내려오지 않았다. 한여름 땡볕이 살을 태울 듯이 작렬하고, 사나운 폭풍우가 몸을 때려도 동하는 정좌를 풀지 않고 새로운 경지를 향해 매진했다.

초반에는 최룡이 음식을 가져다주었지만 동하는 이마저도 거절했다. 운기에 집중한지 열흘쯤 지나자 배고픔조차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보름쯤 지났을 때, 동하는 자신에게 큰 변화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동하가 수도승처럼 편안한 얼굴로 이진산을 불렀다.

‘어르신.’

[말해라.]

‘제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긴 것 같습니다.]

[뭐가 어떻게 변한 것 같으냐?]

‘이전의 저는 중단전에서 더 많은 기를 끌어올려 혈맥을 통해 더 빠르게 돌리는데 주력했습니다.’

[그것이 운기의 기본원리가 아니더냐?]

‘그런데 그 원리에 약간의 변화가 생긴 것 같습니다.’

[흐음……, 어떻게?]

‘굳이 많은 기를 끌어올리지 않고 훨씬 적은 기를 천천히 돌려도 훨씬 큰 힘을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호오, 계속해봐라.]

‘중요한 것은 기의 많고 적음도 아니고, 빠름과 느림도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몸 구석구석으로 균형 있게 흐르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균형을 이룰 수만 있다면 적은 기로도 열배, 백배의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크흐흐흐! 옳거니! 네놈이 드디어 오룡봉성을 넘어 일월합벽의 경지에 이르렀구나.’

동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일월합벽이오?’

[정은 달이 되고, 기는 태앙이 되어 태극을 이룬다. 음양의 기운이 서로 한곳에 치우쳐 균형을 깨지 않고 서로 잘 조화되는 상태를 말한다. 즉, 자신의 내공을 제어하는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음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네놈이 이제 완숙한 절정의 고수가 되었다는 뜻이니라.]

‘제가 완숙한 절정의 고수라고요?’

[그렇다. 주먹에 내공을 주입시켜 보아라.]

우우우우웅!

동하가 오른 주먹에 내공을 주입하자마자, 주먹 밖으로 백색 기광이 확연하게 떠올랐다.

“허억!”

그 강렬한 기세에 동하는 저도 모르게 숨을 훅 들이마셨다.

이진산이 그런 동하의 머릿속에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흐흐흐흐! 완숙한 절정고수의 경지에 이름과 동시에 너의 무공 또한 완벽한 탄기의 수준에 도달했다. 이제 얼추 준비가 갖춰졌으니, 북경으로 진출하자.]

‘드디어 북경으로 가는 겁니까……?!’

* * *

북경 변두리에 리차오라는 악명 높은 빈민촌이 있었다. 나무판자로 대충 지은 판자집 수천 채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고, 그 사이로 좁은 골목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리차오는 해가 지면 남자들조차 마음 놓고 외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험악한 동네였다.

온갖 종류의 범죄자들, 불량배들, 밀입국자들, 약쟁이들이 리차오라는 거대한 미로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리차오를 지배하고 있는 조직이 있었다.

죽림방!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 조직원 수십 년 이래 리차오의 모든 이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한때 북경 중심부로의 진출까지 노리던 죽림방이 몰락한 것은 전대 보스가 상대조직의 칼을 맞고 숨을 거두고, 그의 딸이 조직을 물려받으면서부터였다.

그녀의 이름은 탕시린.

빼어난 미모와 웬만한 남자 수십은 단숨에 피투성이로 만들 정도의 싸움실력을 가진 그녀였지만 조직 관리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그녀는 일단 조직의 주력사업인 마약 유통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그리고 무허가 판잣집에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빈민들로부터 거둬들이던 보호비도 더 이상 받지 않았다. 그녀에겐 죽림방을 합법화시켜 더 거대한 조직으로 키우겠다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하지만 조직의 주요 수입원이었던 두 사업에서 손을 떼자, 죽림방은 자금난에 직면했다. 중간간부들이 들고일어나 마약사업을 재개하고, 빈민들로부터 보호비도 다시 거둬야한다고 아우성쳤지만 탕시린은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그 결과 조직원들이 하나둘 떠나고 리차오를 지배하던 호랑이 죽림방은 고작 조직원 십수 명을 거느린 고양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 그녀 앞에 식전부터 웬 불청객이 찾아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탕시린 보스님. 심양 흑룡방의 보스 강동하라고 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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