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 45화. 북경 진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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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북경 진출(1)
동하의 눈에 비친 탕시린의 첫인상은 매력적인 젊은 여자라는 것이었다. 늘씬한 다리에 꼭 끼는 청바지에 봉긋한 가슴이 돋보이는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그녀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풍기는 죽림방 사무실이 아니라, 북경 시내에서 만났다면 평범한 여대생처럼 보였으리라.
와 씨! 눈빛 한번 살벌하네.
독오른 암살쾡이의 눈빛이 저럴까?
이건 뭐 사람을 눈빛으로 압살할 기세로군.
동하가 자신을 쏘아보는 탕시린의 눈빛에 질려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려는데, 그녀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유명한 흑룡회의 보스께서 빈민촌의 작은 조직까지 어인 용무로 행차하셨을까?”
동하가 마른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흠흠……! 실은 저희 흑룡회가 북경에 지부를 하나 설치하려고 합니다.”
“호오, 그런데요?”
늘씬한 한쪽 다리를 꼬고 앉는 그녀를 힐끔거리며 동하가 말을 이었다.
“심양의 조직이 북경으로 진출하려면 아무래도 현지 조직의 도움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계속해봐요.”
“그래서 죽림방과 우리 흑룡회의 연합을 제안하러 왔습니다.”
“연합이라……, 연합…….”
탕시린의 한쪽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것을 보며 동하는 초조해졌다. 당장이라도 그녀가 주변에 서 있는 부하들에게 자신을 공격하라고 명령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는 그는 자신에게 북경 진출의 교두보로 리차오의 죽림방부터 흡수하라고 귀띔한 장본인인 이진산으로부터 전해 들은 정보들을 급히 풀어놓기 시작했다.
“근래 죽림방이 자금난에 봉착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희 흑룡회가 자금적으론 여유가 좀 있으니, 저희가 죽림방에 자금을 지원하고 죽림방은 저희가 리차오에 근거지를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서로에게 윈윈이 되지 않겠습니까?”
“윈윈이 아니라 너희들에게만 좋은 일을 시키는 꼴이 되겠지!”
쾅!
“흐억!”
탕시린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치자, 동하는 저도 모르게 숨을 훅 들이마셨다. 동시에 그가 우려했던 대로 사무실 벽 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직원 십여 명이 일제히 동하를 노리고 주먹과 발을 날려왔다.
“저 새끼 꿇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순간 동하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최룡이 차올랐다.
“이 존간나들이 손님을 이따위로 대하는 거니?”
퍼퍼퍼퍼퍽!
곧 최룡과 죽림방 조직원들 간에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다. 하지만 일반인인 죽림방 조직원들이 기를 다룰 줄 아는 최룡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으악!”
“커헉!”
“우웨엑!”
최룡의 주먹을 맞고 차례로 쓰러지는 조직원들을 탕시린이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았다. 하지만 결코 두려워하거나 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오히려 두 눈에 미세하게 핏발이 번지며 지독한 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이거, 이거, 조용히 넘어가긴 글렀군.
동하가 골치 아픈 듯 머리를 쓸어넘기고 있을 때, 탕시린이 최룡을 향해 쏜살같이 치고 나갔다.
“최룡이라고 했나? 너는 이제 죽은 목숨이야!”
“너나 뒤지고 싶지 않으면 몸 사리라우, 에미나이야!”
탕시린과 최룡이 서로를 노리고 주먹을 날리며 달려들었다.
빠아아악!
두 사람이 주먹이 허공에서 맞부딪치며 기의 파편이 하얗게 부서졌다.
동하가 눈을 크게 뜨며 질린 듯이 중얼거렸다.
“헉! 저 여자도 무공을 익혔구나!”
빠바바바바바박!
그때부터 최룡과 탕시린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마주 서서 단숨에 십수 합을 주고받았다. 주먹과 주먹이 부딪힐 때마다 기의 파편이 흩날리는 살벌한 싸움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탕시린은 최룡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탕시린 저 여자도 최소한 현기급의 고수라는 이야긴데……!’
동하도 점점 흥미롭게 싸움의 양상을 관찰하고 있는 그때 탕시린의 몸이 갑자기 아래쪽으로 푹 꺼져버렸다.
후우우웅!
그 바람에 최룡의 주먹이 덧없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탕시린이 바닥을 쓸 듯이 발을 휘두르며 그의 정강이를 강타했다.
뻐어억!
“으윽!”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는 최룡을 향해 탕시린이 독 오른 살모사처럼 솟구쳤다. 그리고 기기 팽팽하게 실린 니킥으로 그의 안면을 때렸다.
빠아악!
다행히 최룡이 양팔을 세워 탕시린의 무릎을 막아냈다. 하지만 충격이 적지 않았던 듯 단숨에 대여섯 걸음이나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탕시린은 이런 기회를 놓칠 여자가 아니었다. 힘이 잔뜩 실린 탕시린의 정권과 발이 최룡을 노리고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빠바바바바박!
“크흐흑!”
최룡이 일부는 막고 일부는 피했지만, 충격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수세에 몰린 사람들이 늘 그렇듯 그도 무리하게 반격을 시도하고 말았다.
“이 간나야, 그만 좀 설치라우!”
“흥!”
꽈아악!
탕시린이 콧방귀를 날리며 최룡이 내쏜 회심의 주먹을 양손으로 낚아챘다. 그녀가 최룡의 팔을 확 끌어당기며 팔꿈치를 강하게 휘둘렀다.
우직!
“끄흑!”
그녀의 팔꿈치가 처박히며 최룡의 얼굴에서 핏물이 확 터졌다. 탕시린이 연속 동작으로 최룡의 가슴에 정권을 깊숙이 쑤셔 박았다.
푸우욱!
“꺼어어어……!”
털썩!
최룡이 입을 떡 벌린 채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이 병신 같은 새끼들아! 리차오가 어떤 곳인 줄 알고 함부로 기어들어 와?”
탕시린이 자신 앞에 무릎 꿇은 최룡의 얼굴을 노리고 주먹을 확 쳐드는 순간, 동하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쯤하시오.”
“!”
성난 눈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탕시린에게 다가가며 동하가 착 가라앉은 소리로 말했다.
“예의를 갖추고 싶었으나, 그쪽에서 우리의 실력을 시험하고 싶다니 응할 수밖에.”
“저 병신이 뭐래니?”
탕시린이 동하를 향해 돌아서며 피식 실소했다.
그녀와 마주 서는 동하의 얼굴을 어느새 진지하게 변해 있었다.
“솔직히 나는 죽림방과 친구가 되고 싶어서 왔소. 그런데 탕시린 보스께서 친구는 필요 없다고 하시니, 이쪽 세계의 룰대로 힘으로 굴복시키는 수밖에 없을 것 같소.”
탕시린이 손가락으로 동하의 얼굴을 가리키며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너 새끼가 날 힘으로 굴복시킬 수 있다고?”
“당연하오.”
“방금 네 부하가 만신창이가 되는 걸 보고도 그런 헛소리가 나와?”
“나는 최룡보다 최소 세 배는 강한 사람이오.”
“최소 세 배라고……?!”
그제야 탕시린의 입가에서 비웃음이 사라졌다.
“흐으음……!”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동하의 전신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의 말이 허세인지 아닌지 확인해보려는 듯했다.
그때 탕시린의 등 뒤에 무릎 꿇고 있던 최룡도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형님! 제가 방심했습네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라요.”
“아니, 내가 직접 상대하겠다.”
“하지만 형님!”
억울한 듯 소리치는 최룡을 향해 동하가 눈을 치켜떴다.
“방심했든 어쨌든 패한 건 패한 것이다. 그러니 얌전하게 물러나 있어.”
“아, 알겠습네다.”
최룡이 못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최룡이 물러서자마자 동하가 탕시린을 향해 오른 주먹을 스윽 내밀었다.
“뭐 하자는 수작이야?”
미간을 확 찌푸리는 그녀를 향해 동하가 정색했다.
“단순히 당신을 쓰러뜨리기만 해서는 나에게 굴복하려 하지 않겠지? 그러니 이 주먹 딱 한 방으로 당신을 쓰러뜨려 보이겠소. 이 정도의 압도적인 힘을 보여줘야 탕 보스도 나에게 진심으로 굴복할 테니까 말이오.”
“지금 장난해? 그래서 두 번째 주먹을 쓰게 되면 어쩔 건데?”
“그럼 내가 패한 것으로 인정하고, 나 자신이 탕시린 보스의 휘하로 들어가겠소. 물론 흑룡회 조직 전체도 죽림방의 밑으로 들어가게 될 거요.”
“하! 나보고 그런 헛소리를 믿으라고?”
코웃음을 치는 탕시린을 똑바로 보며 동하가 눈을 번쩍 빛냈다.
“내가 헛소리나 하는 사람으로 보이시오?”
“……!”
형형하게 빛나는 동하의 눈을 마주하고 있던 탕시린이 예고도 없이 짓쳐 나왔다.
“오냐! 네 덕분에 우리 죽림방을 단숨에 큰 조직으로 키울 수 있겠구나!”
피유우웃!
그녀가 살처럼 날려오는 앞차기를 동하가 고개를 살짝 비틀어 피했다.
슈슈슈슉!
연이어 네 개의 잔영을 그리며 날아드는 주먹을 동하가 허리를 좌우로 흔들어 역시 모조리 피했다.
“이 새끼가 어디서 장난질을?!”
연이은 공격 실패에 열이 뻗친 탕시린이 로우킥으로 그의 정강이를 노렸다. 하지만 동하는 그마저도 훌쩍 물러서서 피했다.
“아악! 진짜 죽여 버릴 테다!”
분노가 극에 달한 탕시린이 미친 듯이 발과 주먹을 날렸다.
훙! 훙! 훙! 훙! 훙! 훙!
하지만 동하는 한결 능숙해진 밀영환보를 밟으며 소나기처럼 퍼부어지는 그녀의 공세를 모조리 피해냈다.
“으아아! 제발 좀 맞으란 말이다!”
그런 다음, 악을 지르며 강하게 주먹을 날려오는 그녀의 품속으로 번개처럼 파고들었다.
적에게는 멀게! 나에게는 가깝게!
밀영환보의 기본원리가 교과서처럼 완벽하게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뻐어어억!
찰나의 순간, 동하가 약속했던 딱 한 방의 주먹이 탕시린의 가슴 깊숙이 꽂혔다.
“어, 어떻게……?!”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찢어지게 눈을 부릅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탕시린을 향해 동하가 한쪽 입술을 슬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약속대로 딱 한 방이었소.”
동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탕시린이 핏물을 토하며 뒤쪽으로 붕 날아갔다.
“우웨엑!”
우당탕탕!
탕시린이 몇 바퀴나 구르며 나동그라졌다.
“끄으으…… 으으으윽……!”
코와 입으로 계속 핏물을 게워내며 고통스럽게 꿈틀대는 탕시린을 향해 동하가 급히 다가갔다.
“젠장, 주먹에 기를 너무 많이 실었나? 뒤틀린 기혈을 빨리 풀어주지 않으면 평생 불구로 살 수도 있다.”
동하가 서너 걸음을 내딛기도 전에 사무실 문을 박차고 칼과 쇠파이프로 무장한 죽림방 조직원 십수 명이 쏟아져 들어왔다.
“보스께서 당하셨다!”
“와아악! 저 새끼 저거 죽여!”
“이런 망할! 시간이 별로 없는데!”
동하가 조직원들을 제압하려고 돌아서는 순간, 탕시린이 힘겹게 상반신을 일으키며 빽 소리쳤다.
“동작 그만!”
“!”
동하를 향해 덤벼들다 말고 우뚝우뚝 멈추는 조직원들을 향해 그녀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너, 너희들의 상대가 아니다. 괜히 덤벼봤자 피해만 늘어날 뿐이야.”
“하, 하지만…….”
“다들 불구가 되고 싶지 않으면 말 들어!”
탕시린이 버럭 고함을 지르자, 그제야 조직원들이 차례로 무기를 내려놓았다.
“콜록! 콜록! 콜록!”
숨 가쁘게 기침을 토하는 탕시린과 마주 앉으며 동하가 감사를 표했다.
“싸움을 막아줘서 고맙소, 탕 보스.”
“너 새끼가 예뻐서가 아니야. 우리 새끼들 다칠까 봐 그런 거지.”
거참, 여자가 입 한번 걸쭉하네.
이런 사나운 여자를 어떤 새끼가 데려갈지 벌써부터 걱정이 되는군.
동하가 속으로 혀를 차며 이진산을 불렀다.
‘어르신.’
[왜 불러, 이놈아?]
‘이 여자, 내상을 입은 거 맞죠?’
[딱 보면 모르냐? 네놈이 제대로 한 방 먹였다.]
‘가슴 쪽에 울혈이 뭉쳐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풀어주면 됩니까?’
[어떡하긴 뭘 어떡해? 가슴에 손바닥을 대고 기를 흘려 넣어 막힌 혈맥을 뚫어줘야지.]
순간 동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에? 가슴에 손바닥을 데라굽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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