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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경찰-47화 (47/75)

〈 47화 〉 47화. 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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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걸방

유명한 빈민촌 리차오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탕시린은 동하를 걸방으로 안내했다.

“걸방은 밝음을 극도로 싫어해. 그리고 어둠을 끔찍이 좋아하지. 그래서 날이 밝을 때는 그들을 찾아갈 수도 없고, 찾아가서도 안 돼.”

거미줄처럼 구불구불한 좁은 골목길을 앞장서 걸어가며 탕시린은 나직이 설명했다. 동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배어 있는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 그렇게 천방지축이더니, 걸방을 찾아갈 때만은 긴장을 하는군.

대체 걸방이 얼마나 무서운 조직이기에 저러지?

동하도 절로 온몸이 긴장되는 것을 느끼며 그녀를 따라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탕시린을 놓치면 미로처럼 복잡한 이 골목 안에서 꼼짝없이 길을 잃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윽! 이 지독한 악취는 뭐야?”

그렇게 그들이 한참 만에야 도착한 곳은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쓰레기 산이었다. 좁은 골목을 빠져나오자 갑자기 운동장처럼 탁 트인 널찍한 공터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공터 한복판에 TV, 냉장고, 세탁기 등의 폐가전과 옷가지, 가구, 냄비 등등의 온갖 생활 쓰레기가 쌓여 있는 거대한 산이 나타난 것이었다.

군데군데 빈민촌에 사는 주민들에 아무렇게나 내다 버린 음식물 쓰레기까지 섞여 그것들이 썩어가며 풍기는 악취가 정신을 멍하게 만들 정도였다.

“이런 곳에 걸방이 있단 말이오?”

손가락 두 개로 코를 감싸 쥐는 동하를 뒤로하고 탕시린이 앞장서 걸음을 내디뎠다.

“조용히 하고 따라오기나 해.”

“하! 이거야 원, 정보상인지 쓰레기상인지 모르겠군.”

동하도 툴툴거리며 그녀를 따라 다시 걸음을 옮겼다.

축축하고 악취가 풍기는 쓰레기 산을 기어올라 탕시린과 동하는 산 정상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그곳에는 버려진 쓰레기들을 얼기설기 엮어 만든 작은 움막 같은 게 하나 있었다.

“설마…… 여기요?”

“맞아.”

탕시린이 움막 앞에 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걸방이라고 하더니만, 정말 거지처럼 해놓고 사는군. 이런 곳에서 정말 쓸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거요?”

“믿지 못하겠으면 지금이라도 그냥 하산하시든가.”

“끄응……!”

신음을 삼키며 못마땅한 눈초리로 움막의 입구를 뚫어져라 보고 있던 동하가 그녀를 지나쳐 걸음을 내디뎠다.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갈 수야 없지.”

“기다려!”

순간 탕시린이 재빨리 동하의 팔을 붙잡았다.

“아! 왜 또?”

그녀가 긴장된 눈으로 움막의 입구를 쳐다보며 말했다.

“저곳에 함부로 들어가려고 했다가는 꼬챙이에 꿰인 꼬치 산적이 되는 수가 있거든.”

“그건 또 무슨……?”

의아한 표정을 짓는 동하 옆에서 탕시린이 작은 돌멩이 하나를 주워 움막의 입구를 향해 휙 던졌다.

투욱! 데구르르……!

움막 앞에 떨어진 돌멩이가 입구를 향해 천천히 굴러가는 순간, 갑자기 땅바닥에서 날카로운 칼날 십여 개가 솟구쳐 올랐다.

츄츄츄츄츄츅!

“허억!”

아닌 게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움막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가는 적어도 발바닥은 만신창이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동하는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그나저나 저 더러운 쓰레기더미 밑에서 잘도 은신해 있군.

에퉷퉷퉷! 걸방이란 놈들 참으로 더러운 놈들이 아닌가!

동하가 찜찜한 표정으로 침을 탁 뱉고 있을 때, 탕시린이 움막 입구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방주님, 저 시린이에요. 방주님께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왔는데, 잠깐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을까요?”

“…….”

하지만 어두컴컴한 움막 안쪽에서는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탕시린이 좀 더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숙부님, 저를 기억하지 못하시나요? 제가 어렸을 때, 숙부님이 목마를 태워 주시곤 했잖아요.”

“…….”

한동안 더 침묵이 이어지다가 움막 안쪽에서 드디어 쇠를 긁는 듯한 기분 나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탕양양의 여식이라고?”

“네, 맞아요.”

“클클클클! 아비가 피똥을 싸놓으며 키워놓은 죽림방을 채 일 년도 지나지 않아 개차반으로 망쳐놓은 철부지 계집년이 왔구나.”

“윽!”

노골적으로 탕시린을 모욕하는 목소리가 들리자, 동하가 움찔하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평소의 불같은 성정으로 미루어 그녀가 당장이라도 움막 안으로 돌진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만은 웬일인지 탕시린은 빙글빙글 미소까지 지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이이~~ 숙부님께선 예나 지금이나 짓궂으시다니까. 이 어린 조카를 꼭 그렇게 놀려먹으셔야겠어요?”

아이잉~~ 이 조카딸을 꼭 그렇게 놀려먹고 싶으셔용?

탕시린의 흉내를 내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참느라 동하는 어금니에 힘을 콱 주었다.

그때 움막 안쪽에서 다시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에 서 있는 그 멀대 같은 놈은 누구냐? 보아하니 리차오 주민 같지는 않은데, 감히 낯선 외지인을 우리 걸방으로 끌어들였단 말이냐?”

방주의 목소리에서 노기를 느낀 탕시린이 동하를 가리키며 재빨리 변명했다.

“이 사람은 심양 흑룡회의 새로운 보스에요. 그리고 그는 우리 죽림방과 형제의 연을 맺었어요. 그러니 완전 외지인이라곤 할 수 없죠”

“심양 흑룡회의 새로운 보스라고……?”

그제야 걸방 방주의 목소리에서 노기가 옅어지고, 호기심이 배어 나왔다. 그가 좀 더 생기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니까 이번에 심양의 지배자 리우캉을 깨뜨리고 흑룡회를 접수한 그 강동하란 말이지?”

“!”

순간 동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 냄새 나는 움막 안에서 걸방 방주라는 작자는 심양에서 벌어진 격변을 훤히 꿰뚫고 있던 것이다.

으음……, 이래서 이진산 어르신이 북경으로 진출을 하려면 반드시 리차오를 장악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군.

[리차오는 참으로 재미있는 동네다. 옛 무림으로 치자면 사파나 마교에 해당하는 온갖 범법자들과 악인들이 모여 사는 악인굴이라고나 할까? 리차오에는 걸방처럼 북경 권력자들에 대한 온갖 정보를 사고파는 정보상도 있고, 중국 공산당에서 수천만 위안의 현상금을 걸 정도의 해커도 있으며, 현재의 동하 너조차 손짓 몇 번으로 때려죽일 수 있는 은둔 고수들이 곳곳에 박혀 있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리차오를 너의 땅으로 만들어라. 그리고 그곳에 숨어 있는 온갖 괴물들이 너에게 충성을 바치도록 만들어라. 그리만 할 수 있다면 네놈은 리차오를 발판으로 북경은 물론 중원 전체를 집어삼킬 수 있을 것이니라.]

동하가 새삼 이진산의 당부를 떠올리고 있을 때, 다시 방주의 목소리가 귓전을 파고들었다.

“클큭클클! 그래서 존귀하신 흑룡회의 방주께서 이 냄새 나는 쓰레기 산까지 어인 일로 행차하셨을꼬?”

동하가 조금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걸방은 북경 최고의 정보상이라고 들었소. 정보상에 정보를 사러 왔지 설마 자동차를 사러 왔겠습니까?”

“클클클클! 재미있는 녀석이로군. 그런데 우리 걸방은 정보료가 몹시 비싼데 감당할 수 있을까?”

“일단 흥정이나 해봅시다.”

동하는 좀 세게 나가기로 마음먹고 아랫배에 힘을 콱 주었다.

그런 동하의 동태를 살피는 듯 잠시 침묵하고 있던 방주가 입을 열었다.

“일단 나와 마주하는 가격이 500만 위안이다.”

“500만 위안?!”

금액을 듣는 순간, 동하는 단단히 준비하고 있었음에도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500만 위안이면 우리 돈으로 거의 10억에 육박하는 거금이다. 그런 거금을 정보료도 아니고 단지 방주와 마주 앉는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숨이 턱 막히는 게 사실이었다.

아 씨, 이거 초장부터 너무 세게 나오는데?

이걸 콜을 해야 하나 아니면 다이를 외쳐야 하나?

잠시 고민한 동하는 처음 마음먹었던 대로 더 세 개 밀고 나가기로 했다.

“흐흐흐흐! 그래도 명색이 첫 거래인데, 그 정도로 되겠습니까? 걸방과 저희 흑룡회의 첫 거래를 기념하기 위해 시원하게 1000만 위안을 쏘도록 하겠습니다.”

“1000만 위안?!”

방주도 적잖이 놀랐는지 움막 안쪽에서 큰소리가 터져 나왔다.

탕시린도 동하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500만 위안도 그냥 한 번 떠보려고 한 소리야. 그런데 1000만 위안이라니? 미쳤어?”

“저희가 앞으로도 걸방과 쭉 좋은 관계를 맺고 싶거든요. 그게 가능하다면 1000만 위안쯤은 큰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동하가 움막 안쪽에서도 충분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목청 높여 말했다. 동시에 안쪽에서 방주의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린, 손님을 안쪽으로 모시도록 해라.”

“네, 숙부님.”

탕시린이 동하를 흘겨보며 마지못해 고개를 숙였다.

‘우웨엑! 쓰레기 산의 악취는 애들 장난이었군. 이건 뭐 숨만 쉬고 있는데도 절로 구역질이 치밀어!’

탕시린과 함께 움막 안으로 들어온 동하는 코를 찌르는 악취에 구토를 참기 위해서 어금니를 질끈 깨물어야 했다. 움막 안은 너무 어두워서 그 안에 몇 명이나 있는지 분간조차 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천천히 시야가 트이며 동하는 다시 한번 숨을 훅 들이마시고 말았다.

“헉! 서, 설마 저 사람이 걸방 방주……?!”

걸방 방주는 정상인이 아니었다. 걸방이란 이름에 걸맞게 몇 달 동안 목욕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듯 때가 꼬질꼬질하고 군데군데 기운 흔적이 역력한 누더기를 걸치고 있는 거지 노인은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그냥 의지하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미국의 유명한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처럼 비스듬한 목과 비틀린 두 팔을 휠체어에 설치된 기구에 의지한 채였다.

루게릭병이라고 했던가? 걸방 방주도 비슷한 병을 앓고 있는 게 분명했다.

으아아! 저런 몰골을 하고 어떻게 유명한 정보조직을 세울 수가 있었지?

몸도 성치 않은 노인네가 재주도 좋네, 재주도 좋아.

하지만 동하의 의문은 머지않아 풀렸다.

걸방 방주의 눈!

비록 오체불만족의 사지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의 두 눈만은 깊은 동굴 속에서 횃불이 타오르듯 심연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동하는 새삼스레 이 걸방이라는 조직과 저 방주라는 노인인 만만찮은 존재라는 사실을 느끼며 옷매무새를 고쳤다.

걸방 방주가 눈짓으로 자신 앞쪽의 바닥을 가리켰다.

“그렇게 서 있지들 말고 그쪽으로 앉으시게.”

“네, 감사합니다.”

동하가 탕시린과 나란히 방주 앞에 정좌했다.

“흐으음……!”

방주가 마치 동하라는 인물의 무게를 가늠하듯 한동안 은은하게 빛나는 눈으로 그의 얼굴을 응시했다. 동하도 피하지 않고 노인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한동안 그렇게 동하와 시선을 섞고 있던 걸방 방주가 피식 실소했다.

“이거, 이거 내가 노망이 나려는 모양이군.”

“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네의 눈빛이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작자와 너무 흡사하게 느껴져서 말일세.”

“그게 대체 누구인데요?”

“…….”

잠시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던 방주가 낮게 깔리는 소리로 내뱉었다.

“자네 혹시 이진산이라고 알고 있나?”

‘헉!’

동하는 하마터면 입 밖으로 신음을 뱉을 뻔했다. 저 노친네가 내 속에 이진산 어르신이 들어와 있다는 걸 설마 눈치챈 건가?

이어진 방주의 반응으로 보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클클클클! 자네의 눈을 마주 보고 있자니, 왠지 그 노괴와 마주 앉아 있는 기분이 들지 뭔가?”

동하가 시치미를 뚝 떼고 물었다.

“그분은 대체 어떤 분이신데요?”

“그가 어떤 사람이냐면 말이지…….”

잠시 골똘히 생각하던 방주가 누런 앞니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천하의 간웅이지.”

“간웅이오?”

“그래, 영웅은 난세를 구하고 간웅은 그 난세를 이용하여 세상을 자신의 발아래 두려 하지. 그것이 바로 이진산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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