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53화. 둥청 시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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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화. 둥청 시장(2)
“크허어억!”
기가 잔뜩 실린 최룡의 주먹에 제대로 얻어맞은 뱁새눈이 피를 뿌리며 처박혔다. 최룡이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놀라 멍하니 굳어 있는 십여 명의 조직원들을 둘러보며 씨익 웃었다.
“뭐 하고 있니, 간나들아? 대장이 처맞고 쓰러졌는데, 계속 구경만 하고 있을 거니?”
“우와아악! 저 새끼 죽여!”
그제야 조직원들이 최룡을 향해 주먹과 발을 어지럽게 날리며 덤벼들었다. 하지만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 조직원들이 현기의 고수인 최룡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 싸울 맛이 나지 않갔니?”
최룡이 양손 주먹에 기를 팽팽하게 불어넣으며 조직원들을 향해 마주 달려 나갔다.
“악!”
“크흑!”
“우웨엑!”
백색 기광이 일렁이는 최룡의 주먹에 허공을 가를 때마다 조직원들이 비명을 토하며 날아갔다. 그렇게 열 명의 조직원들을 해치우는데 채 일분도 걸리지 않았다.
“끄어어어……! 터, 턱이 돌아갔어.”
“으아아아! 내 코... 코뼈가 부러진 것 같아.”
상가연합회 사무실 바닥에 널브러져 고통스럽게 꿈틀거리는 조직원들을 굽어보며 최룡이 서늘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뒤질 만큼 치지는 않았으니까 날래 일어나서 꺼지라우.”
“끄아아아……!”
“셋 셀 동안 발딱 일어나지 않으면 아예 팔다리를 한 짝씩 아작내주갔어.”
“흐어억! 가, 갑니다! 가요!”
조직원들이 거짓말처럼 발딱발딱 일어나 다리를 절룩거리며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아무리 그래도 이대로 도망치기엔 억울했는지 뱁새눈이 코피가 콸콸 쏟아지는 콧구멍을 틀어막고서 최룡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네가 누굴 건드렸는지 알아? 곧장 돌아와서 피떡으로 만들어줄 테니까,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
최룡이 손바닥으로 제 가슴팍을 짚으며 히죽 웃었다.
“여기 둥청 시장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 날래 돌아오라우.”
“개자식, 언제까지 웃을 수 있나 보자!”
뱁새눈이 뿌드득 이를 갈아붙이며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조직원들이 사라지자마자 최룡이 아직도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상가연합회 회장 첸 씨를 향해 손바닥을 탁탁, 털며 돌아섰다.
“많이 놀라셨습네까?”
잠시 멍청하게 최룡의 얼굴을 바라보던 첸 씨가 간신히 내뱉었다.
“빨리 도망치시오.”
“네? 무슨 말씀이십네까?”
여유 있게 되묻는 최룡을 향해 첸 씨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투로 말했다.
“저놈들이 누군지 모르죠? 저놈들 홍련개발이에요! 홍련개발!”
“네, 홍련개발 소속의 조폭들이란 거 알고 있습네다.”
최룡이 끝까지 태연하게 말하자, 첸 씨는 오히려 조급증을 내었다.
“어허, 이 사람이 정말 왜 이리 여유를 부리나? 그럼 홍련개발이 이곳 둥청 지역을 지배하고 있는 북경의 삼대 삼합회 조직 홍련에 속한 회사라는 건 모르죠?”
“그것도 역시 잘 알고 있습네다.”
여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최룡을 보며 첸 씨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그걸 알면서도 저놈들을 두들겨 팼다는 겁니까?”
“네, 뭐 문제 있습네까?”
“허허허!”
기가 막힌 듯 헛웃음을 흘리던 첸 씨가 문득 정색했다.
“홍련을 두려워하지 않는 당신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이오?”
최룡이 품속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 공손하게 내밀었다.
“인사가 늦었습네다. 저는 이런 사람입네다.”
명함을 들여다보며 첸 씨가 고개를 갸웃했다.
“주식회사 흑룡 전무이사 최룡……?”
첸 씨가 명함을 내려놓으며 최룡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흑룡이 뭐 하는 회사요?”
자신들도 삼합회라고 밝히면 첸 씨가 경계할 것 같아 최룡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그때 보스인 동하가 신신당부하던 말이 떠올랐다.
“둥천 시장 상인들에게 접근할 땐 무조건 솔직해야 해. 그래야 상인들의 신뢰를 받을 수가 있어.”
최룡은 존경하는 형님이자 보스의 당부를 따르기로 결심했다.
“저희도 흑룡회라는 삼합회 조직입네다. 물론 활동무대가 저 멀리 심양이라 잘 모르시겠지만 말입네다.”
“어쩐지 홍련개발의 조직원들을 한주먹에 때려눕히더라니……, 츱!”
첸 씨가 눈살을 찌푸리며 소파 테이블에 명함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최룡이 그런 첸 씨와 마주 앉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오늘 이렇게 둥천 시장 상가연합회 회장님을 찾아뵌 것은 한 가지 제안을 하기 위해섭니다.”
“제안이라니? 무슨 제안?”
첸 씨가 노골적으로 경계심을 드러냈지만 최룡은 포기하지 않고 말했다.
“둥천 시장 상인들이 홍련개발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흑룡회를 둥천 시장의 경비업체로 선정해주신다면 홍련개발로부터 상인 분들을 지켜드리겠습니다.”
“됐네요, 됐어! 홍련개발만으로도 골치 아파죽겠는데 새로운 조직까지 끌어들이란 말이오?”
진저리를 치는 첸 씨는 향해 최룡이 진지하게 말했다.
“저희 흑룡회와 홍련은 다릅네다.”
“그래봤자 다 같은 삼합회 조직인데 뭐가 얼마나 다를까?”
코웃음을 치는 첸 씨를 똑바로 쳐다보며 최룡이 힘주어 말했다.
“홍련은 둥친 시장을 무력으로 집어삼키려고 하지만 저희는 이 시장에 아무런 욕심이 없습네다.”
“그런데 왜 우리를 돕겠다는 거요?”
“그건 말입네다…….”
말끝을 흐리며 잠시 뜸을 들이던 최룡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저희는 홍련을 집어삼키는 게 목적이기 때문입네다……!”
“홍련을 집어삼킨다고……?!”
황당한 듯 입을 떡 벌리는 첸 씨의 얼굴을 바라보며 최룡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네, 그렇습네다.”
“으하하하! 당신들 제정신이 아니구만! 방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홍련은 북경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거대 조직이야! 그런데 심양 촌구석에서 올라온 작은 조직 따위가 홍련을 삼키겠다고? 지나가던 개도 웃을 소리!”
기가 막힌 듯이 웃어젖히는 첸 씨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던 최룡이 손바닥으로 소파 테이블을 짚었다.
“이얍!”
우지끈!
그가 그 상태로 손바닥에 기를 집중시키자, 튼튼한 테이블이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이, 이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네다. 저희 보스께서는 저보다 최소한 열 배는 강하신 분입네다. 그러니 안심하고 저희에게 둥천 시장을 지켜달라고 요청하십시오.”
“하, 하지만…….”
“왜요? 홍련의 보복이 두려워 망설여지십네까? 그렇다면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삶의 터전인 시장에서 쫓겨나시갔습네까?”
“……!”
벙찐 표정으로 강렬하게 눈을 빛내는 최룡의 얼굴을 응시하던 첸 씨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당신이 곧이어 밀려올 홍련개발 놈들까지 물리친다면 한번 생각해보리다.”
“후회하지 않으실 겁네다, 첸 회장님.”
* * *
“이 병신새끼들이 감히 홍련의 이름에 똥칠을 하고 다녀?!”
홍련개발 영업1팀 팀장 챠오츠는 부하들의 보고를 받자마자 고함부터 터뜨렸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그가 코뼈가 뭉개져 있는 뱁새눈을 향해 다가갔다.
“다시 한번 말해봐. 둥천 시장에 상인연합회 회장을 압박하러 갔다가 웬 낯선 놈한테 되려 처맞았다고? 너희들 열 명이 딱 한 놈한테?”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놈이 워낙 고수인지라…….”
“닥쳐, 병신아!”
쩌걱!
“크아악!”
챠오츠가 이미 부러진 코뼈에 정권을 쑤셔 박자, 뱁새눈이 죽는 소리를 지르며 나뒹굴었다. 챠오츠가 겁에 질린 얼굴로 나란히 서 있는 나머지 조직원들의 정강이를 차례로 걷어차며 꽥꽥 소리쳤다.
“우리는 홍련이란 말이다, 홍련! 우리 홍련의 조직원들이 다른 곳도 아니고 앞마당인 둥천에서 처맞고 다닌다는 게 말이 되느냔 말이야!”
“끄으으으……!”
발경의 고수인 그의 발에 걷어차인 조직원들이 하나같이 정강이를 끌어안고 뱁새눈 옆에서 뒹굴었다. 챠오츠가 그런 조직원들을 핏발선 눈으로 쏘아보며 뿌드득 이를 갈아붙였다.
“내가 직접 둥천 시장으로 가겠다. 그리고 오늘이야말로 상인들의 포기각서를 받아내고야 말겠다!”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어갈 무렵, 챠오츠가 스무 명이나 되는 조직원들을 이끌고 둥친 시장 입구에 나타났다.
“양고기가 사세요! 싱싱한 양고기가 있어요!”
“향어가 싱싱합니다! 팔딱팔딱 뛰는 향어 보고 가세요!”
“양배추가 있어요! 파릇파릇한 고수도 있습니다!”
퇴근 시간을 맞아 시장은 저녁거리를 사려는 직장인들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목청 높여 손님을 부르는 상인들을 가리키며 챠오츠가 목청 높여 명령했다.
“저것들 싹 다 쓸어버려!”
“네, 알겠습니다!”
조직원들이 우렁차게 대답하며 상인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쾅! 콰앙! 콰아앙!
그리고 다짜고짜 좌판을 들러 엎고, 상점을 부수기 시작했다.
“으아악! 조, 조폭들이다!”
“꺄악! 조폭들 간의 싸움이다! 도망쳐!”
“아악! 누가 공안을 좀 불러요!”
“이 악귀 같은 새끼들아! 차라리 우릴 죽여라!”
손님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상인들은 자신들의 좌판과 상점을 때려 부수는 조직원들의 멱살을 붙잡고 늘어졌다. 하지만 조직원들은 그런 상인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어이쿠!”
“아악! 내 머리!”
“꺄아악! 이놈들이 사람 잡는다!”
조직원들에게 짓밟히는 상인들을 향해 상가연합회 회장 첸 씨가 급히 달려왔다.
“이게 무슨 짓이오? 우리 상인들이 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럽니까?”
절규하는 첸 씨를 향해 챠오츠가 오른손을 번쩍 쳐들며 반가운 척을 했다.
“여어~ 첸 씨, 오랜만이야?”
챠오츠를 알아본 첸 씨가 이를 갈아붙였다.
“챠오츠 팀장……! 당신이란 사람은 애비에미도 없소?”
“응! 나는 어려서 부모한테 버림받아서 애비에미가 없어.”
“뭐, 뭐요?”
“그래서 언젠가 나를 버린 그 작자들을 만나면 이 주먹으로 작살을 내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챠오츠가 첸 씨를 노리고 도약하며 일갈했다.
“오늘은 특별히 첸 씨 당신을 내 애비라고 생각하고 조져주겠어!”
“어어……!”
챠오츠의 발이 첸 씨의 턱을 걷어차려는 순간, 등 뒤에서 누군가의 손이 그의 뒷덜미를 잡아 확 끌어당겼다.
“첸 회장님, 뒤로 물러나 계시라요!”
부아아악!
첸 씨를 밀어내고 눈앞에 떠 있는 챠오츠의 복부를 노리고 주먹을 내지르고 있는 사람은 바로 최룡이었다.
퍼어억!
“우웁!”
최룡의 주먹이 복부에 꽂히자, 챠오츠가 고통스럽게 입을 떡 벌렸다.
우당탕탕!
땅바닥으로 떨어져 몇 바퀴 나뒹굴던 챠오츠가 이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챠오츠가 첸 씨의 앞을 가로막은 채 빙글빙글 웃으며 서 있는 최룡을 가리키며 이를 갈아붙였다.
“상인연합회에서 우리 아이들을 쥐어팼다는 게 바로 니 새끼구나?”
“최룡이라고 한다.”
“최룡? 어디서 굴러먹던 새끼냐?”
피이잉!
최룡이 대답 대신 손가락을 튕겨 챠오츠의 미간을 향해 명함을 흩날렸다.
타아악!
‘저 새끼, 무공을 익혔구나!’
최룡이 기를 실어 날린 명함을 낚아채며 챠오츠는 내심 긴장했다. 명함에 적힌 최룡의 소속을 읽으며 그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흑룡회 전무이사……?! 흑룡회라면 설마 심양의 그 흑룡회를 말하는 거냐?”
“그래, 바로 그 흑룡회가 맞다.”
와작!
“심양 촌구석의 흑룡회 따위가 감히 우리 홍련에 도전한다고? 혹시 미친 거냐?”
“내가 미친놈이라는 건 어찌 알았니, 엉?!”
쉬이이익!
최룡이 기광이 일렁이는 주먹을 쳐들고 챠오츠를 향해 짓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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