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54화. 둥청 시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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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둥청 시장(3)
차오츠는 눈앞에 서 있는 저 최룡이란 녀석이 살짝 맛탱이가 간 놈이라고 생각했다. 흑룡회가 심양에서는 제법 이름을 날리고 있다지만 북경에서도 중심부에 속하는 둥천 상업지구를 장악하고 있는 홍련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런데 웬 촌놈이 둥청 시장에 똬리를 틀고 앉아 홍련에게 도전장을 내민단 말인가?
쿠우우욱!
차오츠가 두 주먹에 힘을 불어넣자, 주먹 주변으로 백색 기광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도 무공을 익혀 발경의 고수에 이른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실력으로 눈앞에 건방지게 서 있는 촌놈 따윈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네놈을 오른팔을 잘라 흑룡회로 보내주마!”
차오츠가 최룡을 향해 바람처럼 짓쳐가며 주먹을 날려갔다. 최룡도 마주 달려오며 주먹을 날렸다.
쐐애애애액!
기가 팽팽하게 실린 두 사람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며 날카로운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꽈앙!
마침내 두 사람의 주먹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두 사람은 주먹을 맞댄 채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굳어 있었다.
‘크흐흐흐! 내공을 익힌 나에게 정면승부를 건 것이 네놈의 최대 실수였다!’
차오츠는 발경의 고수인 자신의 승리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자신의 주먹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우드드득!
“크아악!”
차오츠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뒤쪽으로 정신없이 뒷걸음질을 쳤다.
설마 내가 힘에서 밀린 건가? 이, 이럴 리가 없는데!
그럼 저 최룡이란 놈은 설마 발경의 경지를 뛰어넘은 고수?!
고통과 혼란을 느끼며 정신없이 뒷걸음질을 치는 차오츠를 노리고 최룡이 쏜살같이 짓쳐갔다. 땅바닥을 밟고 차오른 그가 차오츠의 얼굴을 노리고 무릎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쯔거억!
“우웩!”
앞니와 핏물을 함께 흩날리며 차오츠가 뒤쪽으로 천천히 넘어갔다. 땅바닥에 뒤통수를 처박으며 기절하는 순간까지 그의 두 눈은 의혹과 불신으로 얼룩져 있었다. 자신이 홍련이 아닌 다른 조직원에게 당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
차오츠가 끌고 온 홍련개발의 조직원 스무 명이 벙찐 표정으로 기절한 자신들의 팀장 앞에 서 있는 최룡을 바라보고 있었다.
최룡이 그들을 향해 도발하듯이 히죽 웃었다.
“홍련이란 조직은 왜 이리 물렁하니? 너희들은 대장이 쓰러졌는데 병신처럼 구경만 하고 있을 거니?”
그의 도발은 즉각 효력을 발휘하여 조직원들이 일제히 주먹을 쳐들고 덤벼들었다.
“우와아악! 저 새끼 죽여!”
“차오츠 팀장님의 원수를 갚아!”
최룡이 유쾌한 듯 웃으며 조직원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으하하하! 그렇디! 그렇게 나와야 정상이디!”
빠바바바바바박!
최룡이 허공을 날아다니며 주먹과 발을 날릴 때마다 조직원들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공중을 누비며 조직원들을 줄줄이 박살 내버리는 최룡의 모습은 마치 액션 영화의 주인공처럼 보이기도 했다.
“우와아아……! 진짜 잘 싸운다.”
“저 사람 저거 홍련개발 깡패들을 마치 어린애처럼 가지고 노는구만!”
둥청 시장 상인들과 상인연합회 회장 첸 씨가 입을 떡 벌리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촤룡을 지켜보고 있었다.
쩌걱!
“케헤헥!”
마침내 스무 명째 조직원이 최룡의 정권에 안면이 함몰되며 벌러덩 넘어갔다. 스물이나 되는 조직원들을 순식간에 해치워 버린 최룡이 손바닥을 탁탁, 털며 첸 씨와 상인들을 향해 다가갔다.
“어떻습네까, 첸 씨? 이제 둥청 시장을 보호해주겠다는 저의 말을 믿으시겠습네까?”
“……!”
입을 헤 벌린 채 싱글벙글 웃고 있는 최룡의 얼굴을 바라보던 첸 씨가 간신히 내뱉었다.
“다, 당신의 실력은 잘 봤어. 하지만 홍련에는 당신 같은 고수가 수십 명도 넘어. 그런데 당신 혼자 어떻게 우리 전부를 지켜주겠다는 거지?”
“제가 언제 혼자라고 했습네까? 저는 흑룡회라는 조직의 소속이라고 하지 않았습네까?”
“그러니까 내 말이!”
첸 씨가 갑자기 목청을 높이며 최룡의 말을 끊었다. 그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최룡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흑룡회라는 듣도 보도 못한 조직에 당신 같은 고수들이 몇 명이나 있겠냐는 거야?”
최룡이 첸 씨의 눈을 들여다보며 씨익 웃었다.
“내레 흑룡회에서 열 손가락 안에도 들지 못합네다. 우리 회장님은 나보다 최소 열 배는 강하고, 조직원 중에도 나보다 센 고수가 족히 수십은 됩네다.”
“당신 회장이란 사람이 당신보다 최소 열 배는 강하다고? 그리고 흑룡회에 당신보다 강한 고수가 수십이나 된다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묻는 첸 씨를 향해 최룡이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네다!”
“……!”
벙찐 표정으로 최룡의 얼굴을 바라보던 첸 씨가 고개를 휙휙 가로저었다.
“나, 난 도저히 못 믿겠어! 그런 허황된 말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나?”
따아악!
“아 진짜! 왜 이리 사람 말을 믿지 못하는지 모르갔네.”
답답한 듯 손바닥으로 이마를 때리던 최룡이 첸 씨에게 얼굴을 바싹 들이밀고 물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우리 말을 믿어 주시겠습네까?”
잠시 고민하던 첸 씨가 박살 난 입언저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져 있는 차오츠를 가리키며 말했다.
“해룡건설 팀장인 차오츠가 당했으니, 오늘이 가기 전에 해룡건설 영업부장 핑동이 부하들을 이끌고 쳐들어올 거요. 만약 당신들이 핑동마저 쫓아낸다면 그땐 흑룡회를 우리 둥청 시장의 경비업체로 선정해주겠어.”
“핑동이란 말이디요? 차오츠처럼 시장 바닥에 재워드릴 테니, 아무 염려 마시라요”
최룡이 자신만만하게 말했지만 첸 씨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핑동은 차오츠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진짜 무시무시한 괴물이란 말이지……!’
* * *
그날 저녁, 해룡건설 십오 층에 위치한 영업부장실에는 불이 이미 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투우욱! 데구르르르……!
사무실 한복판에 서서 미니 골프 코스를 향해 퍼팅을 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영업부장 핑동이었다. 핑동은 이미터에 육박하는 장신에 유도선수처럼 탄탄한 체격을 자랑하는 삼십 대 초반쯤의 남자였다. 두터운 가슴에 꼭 맞추어 입은 와이셔츠를 뚫고 근육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올 정도로 그는 온몸으로 강렬한 기세를 발산하고 있었다.
“이런 젠장……!”
골프공이 아슬아슬하게 홀컵을 비껴가자, 그는 골프채를 와락 움켜쥐며 나직이 욕지기를 내뱉었다. 그가 미간에 깊은 고랑을 만들며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이래서 골프는 평정심이 중요하다는 거야. 병신 같은 새끼들 때문에 속에서 천불이 나는데, 공이 제대로 들어갈 리가 있나?”
그러면서 핑동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바로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차오츠를 돌아보았다. 둥청 시장에서 최룡의 일격을 맞고 기절까지 했던 차오츠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해룡건설로 달려왔다. 그리고 직속 상관인 핑동에게 둥청 시장 상인들이 심양의 흑룡회를 끌어들여 자신들에게 조직적으로 저항하고 있다는 급보를 전했다.
물론 둥청 시장 상인들이 정말로 흑룡회와 손을 잡았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실책을 만회하기 위해 최대한 흑룡회와 상인들 간의 밀착과 저항을 부풀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영업부장 핑동의 분노를 다스릴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핑동이 착 가라앉는 소리로 차오츠를 불렀다.
“차오츠.”
“네, 부장님!”
터진 입술과 그곳에서 흘러내린 피에 젖은 와이셔츠도 갈아입지도 못한 차오츠가 벌벌 떨며 고개를 숙였다.
“둥청 시장에서 너를 작살낸 게 흑룡회라고 했니?”
“네! 그 최룡이란 놈이 자신이 흑룡회 간부라고 똑똑히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네놈은 스무 명이나 되는 부하들을 끌고 가서 쪽팔리게 상인들이 모두 지켜보는 앞에서 흑룡회 소속의 최룡이란 단 한 놈에게 피떡이 되도록 얻어터진 것이고?”
“그, 그게 상인 놈들이 흑룡회를 끌어들여 저희 뒤통수를 치려고 계획하고 있었던지라…….”
애써 변명하는 차오츠의 얼굴을 한심한 듯 바라보던 핑동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 혹시 흑룡회가 어떤 조직인지 알고는 있니?”
“심양을 지배하고 있는 제법 큰 조직이라고 들었습니다.”
“흑룡회는 얼마 전까지 우리 홍련에 자발적으로 편입됐던 조직이야. 전 보스인 리우캉이 우리 보스 앞에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했었단 말이다.”
“그,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금시초문이라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는 차오츠의 얼굴을 핑동이 골프채 끝으로 가리켰다.
“이 병신 같은 새끼야! 그런 허접한 흑룡회한테! 그것도 거기에 속한 한 놈한테 피 터지게 처맞고 왔다는 게 말이 되느냔 말이다!”
“죄,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다면 반드시 그놈들을…….”
“오랜만에 드라이브샷 연습이나 해볼까?”
“헉!”
핑동이 골프채를 바꿔 들며 씨익 웃자, 차오츠는 움찔했다. 겁에 질려 부르르 몸을 떠는 핑동을 가리키며 핑동이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뭐하고 있냐, 차오츠? 이리 와서 내 샷 연습 좀 도와달라니까.”
“제발……, 제발 한 번만…….”
양손을 모아 쥐는 차오츠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한가득이었다. 하지만 핑동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골프채 끝으로 발밑을 툭툭, 두드리며 재촉했다.
“어허! 빨리 오라니까. 딱 한 번만 도와주면 돼.”
“으흐흐흑!”
차오츠가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며 무릎걸음으로 핑동의 발 앞으로 다가갔다. 그런 다음,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상사의 앞에 넙죽 엎드렸다.
“이제 고개를 쳐들어야지.”
쿡! 쿠욱!
핑동이 골프채로 등을 찌르자, 차오츠가 공포에 질린 얼굴을 천천히 쳐들었다.
쉬이이익!
순간, 핑동의 양손으로 움켜쥔 골프채를 힘차게 휘돌렸다. 그리고 큼직한 헤드는 정확하게 차오츠의 뒤통수에 작렬했다.
빠아아악!
“꺼흑!”
고통으로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차오츠의 이마에서 핏물이 콸콸 쏟아졌다. 앞쪽으로 천천히 스러지던 차오츠가 바닥에 얼굴을 처박으며 그대로 절명해 버렸다.
쿠웅!
“나이스 샷!”
핑동은 한 방에 사람을 때려 죽여놓고도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다. 그는 원래 그렇게 무자비한 인간이었던 것이었다. 핑동이 스윽 고개를 돌려 부동자세로 서 있는 세 명의 팀장들을 돌아보았다.
“뭣들하고 있어? 지금 당장 영업부 직원들 전원 소집해. 내가 직접 가서 그 최룡이란 놈과 둥천 시장 상인들을 쓸어 버릴 것이다.”
“알겠습니다, 부장님!”
팀장들이 우렁차게 소리치며 후다닥 부장실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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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끼이이익!
다섯 대의 미니버스가 불을 환하게 밝힌 둥청 시장 입구에 정지했다. 그리고 문이 열리며 한 대에 이십 명씩 총 백여 명의 조직원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상점이든 좌판이든 다 때려 부수고, 최룡이란 놈을 찾아서 내 앞으로 끌고 와!”
“우와아아아!”
핑동의 명령을 받은 조직원들이 함성을 지르며 시장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거기 딱 멈추라우, 간나 새끼들아!”
첸 씨를 비롯하여 겁에 질린 상인들 앞에 버티고 서 있는 사람은 바로 최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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