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 55화.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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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계약
우득…… 우드드득……!
핑동이 온몸의 근육을 부풀리며 조직원들의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상인들의 맨 앞줄에 서 있는 최룡을 가리켰다.
“네가 최룡이라는 놈이냐?”
“기래, 내가 바로 최룡이야. 그러는 너는 해룡건설 영업부장 핑동이겠구나?”
핑동이 와이셔츠 앞섶이 뜯어질 정도로 가슴을 쫙 펴며 대답했다.
“맞아, 내가 바로 핑동이다! 살고 싶으면 둥청 시장에서 손을 떼고, 스스로 팔 한쪽을 잘라 바치고 물러가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마.”
“흐흐흐흐! 핑동 네가 한 말을 그대로 돌려주갔어. 그동안 너희들이 괴롭혔던 둥청 시장 상인들에게 무릎 꿇고 사죄한 다음 꺼지라우. 그럼 나도 너희들을 살려는 주갔어.”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날뛰는 미친놈이라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군. 대체 뭘 믿고 그리 건방을 떠는 것이냐?”
최룡이 비릿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 나야 물론 우리 조직과 보스를 믿고 있디.”
“심양 촌구석에서 굴러먹던 흑룡회 따위가 어디서 감히……!”
뿌드득 이를 갈아붙이던 핑동이 최룡의 등 뒤에 숨어 있는 첸 씨를 발견하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어이, 첸 씨!”
“네? 네, 네!”
겁에 질린 첸 씨가 자라목이 되어 대답했다. 핑동이 그런 첸 씨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으르렁거렸다.
“설마 그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 하나를 믿고 우리 홍련에 맞서겠다는 건가? 지금이라도 남은 상인들 전원 상가 포기각서를 들고나와 무릎을 꿇지 않는다면 오늘 밤은 정말이지 상인 몇 놈은 모가지가 날아가게 될 거다.”
“히익!”
모가지가 날아간다는 말에 첸 씨가 저도 모르게 양손으로 자신의 목을 감쌌다. 그가 울상을 지으며 최룡을 돌아보았다.
“이봐요. 이제 어떻게 할 거요? 핑동의 말대로 설마 당신 혼자 저 많은 인원을 상대할 생각은 아니겠지?”
“내레 왜 혼자입네까? 우리 강동하 보스께서 이미 이곳에 와 계십네다.”
최룡이 씨익 웃으며 머리 위로 주먹을 번쩍 쳐들었다.
“와아아아!”
순간 등 뒤에서 함성이 울려 퍼지자, 핑동과 조직원들이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저 젖비린내 아는 애새끼는 또 뭐야……?!”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는 핑동의 시야에 시장 입구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오는 동하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리고 동하의 뒤를 탕시린과 창첸, 우레이와 오십 명쯤 되는 흑룡회 조직원들이 따르고 있었다.
자신과 열 걸음쯤의 거리를 두고 우뚝 멈춰 서는 동하를 쏘아보며 핑동이 나직이 물었다.
“너는 또 누구냐?”
“내 이름은 강동하. 저기 서 있는 최룡의 형이자, 흑룡회의 보스다.”
핑동이 동하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듯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하! 네가 바로 리캉우를 꺾고 흑룡회를 집어삼켰다는 그 한국인 순경 놈이구나?”
“호오, 나에 대해 제법 잘 알고 있는 것 같군.”
“물론 잘 알고 있지. 우리 회장님께서 네놈의 죽이라고 리캉우에게 직접 지시를 내렸는데, 어찌 모를 수가 있겠나?”
”그럼 너희 회장이 왜 나를 죽이라고 했는지도 알겠군?”
”당연히 그것도 알지.“
”그럼 대답해봐. 너희는 회장은 왜 길림파와 동북회 그리고 흑룡회 등을 동원해 한국에 대량의 마약을 유통시키려고 했을까? 그리고 그걸 막은 나를 왜 기어이 죽이려고 했을까?“
”크흐흐흐! 정말 알고 싶으냐?“
”그래, 미칠 정도로 이유를 알고 싶군.“
핑동이 제 얼굴을 가리키며 비릿하게 웃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나? 네놈이 나를 쓰러뜨린다면 이유를 알려주마.“
”그거야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운 일이지!“
쉬이이잇!
동하가 밀영환보를 밟으며 순식간에 핑동의 목전으로 닥쳐들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핑동의 입가에서 순식간에 웃음기가 싹 가셨다. 하지만 핑동의 당혹감이 분노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핑동이 무방비 상태로 달려드는 동하의 안면을 노리고 기가 팽팽하게 실린 정권을 내질렀다.
”네놈이 죽고 싶어 안달이 났구나!“
키우우우웅!
현기의 고수인 그의 주먹을 뚫고 백색 기광이 가닥가닥 뻗쳐 나오고 있었다. 동하도 백색 기광이 확연하게 일렁이는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그는 주먹과 주먹이 맞부딪치기 직전, 주먹 한가운데서 중지만 쭉 내뻗었다. 이진산의 독문지법인 혈응지가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푸우욱!
마치 송곳이 나무를 뚫고 박히듯이 동하의 손가락이 핑동의 주먹을 꿰뚫으며 박혀 버렸다.
”끄아아악!“
동사에 핑동의 입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악! 내 손! 내 손이!“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핑동의 관자놀이를 노리고 동하가 기가 팽팽하게 실린 주먹을 휘둘렀다.
우적!
”꾸웨엑!“
동하의 주먹에 고개가 뽑혀질 듯 돌아가며 핑동이 눈을 허옇게 까뒤집었다. 입과 코로 핏물을 뿌리며 옆쪽으로 붕 날아가던 핑동이 지저분한 시장 바닥에 그대로 처박혀 버렸다. 동하의 단 한 방에 기절해 버린 자신들의 보스를 바라보는 홍련개발 조직원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동하가 그들 앞에 버티고 서서 낮고 위압적인 목소리로 명령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 꿇어라.“
”……!“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는 조직원들을 향해 동하가 이번엔 버럭 고함을 질렀다.
”살고 싶으면 꿇으란 말이다!“
처처처처처척!
순간 첸 씨와 상인들의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호랑이보다 무서웠고, 승냥이보다 잔인했던 홍련의 조직원 백 명이 동하 앞에 일제히 무릎을 꿇어 버렸던 것이었다.
“하……! 세상이 전부 자기들 것인 양 날뛰던 놈들이 어찌 저리 고양의 앞의 쥐처럼……?”
기가 막힌 듯 중얼거리는 첸 씨를 돌아보며 최룡이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분이 바로 우리 흑룡회의 강동하 보스이십네다. 어떻습네까? 이래도 저희를 믿지 못하겠습네까?”
첸 씨가 최룡의 손을 덥석 잡으며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당장 계약을 체결합시다! 이제부터 흑룡회가 우리 둥천 시장을 지켜주는 경비업체가 되어주시오!”
* * *
잠시 후, 홍련개발 조직원들이 기절한 핑동을 싣고 물러가고 동하와 최룡 등은 동청 시장 상가연합회 사무실에 첸 씨를 비롯하여 몇몇 상인 대표들과 마주 앉아 있었다.
첸 씨가 경비업체 선정 계약서에 사인하고 나서 맞은편에 앉아 있는 동하를 향해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이 조건으로 되겠습니까? 이 계약서 대로하면 흑룡회에서 세운 경비업체 흑룡실업은 우리 시장을 지켜주는 대가로 월에 5만 위안 밖에 지급받지 못할 텐데요?”
5만 위안으로 한국 돈으로 채 1천만 원이 되지 않는 돈이었다. 많다면 많을 수도 있는 금액이었으나, 수십 명의 조직원을 동원하여 홍련과 전쟁까지 치러야 하는 흑룡회가 받을 대가치곤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동하는 흔쾌하게 대답했다.
“홍련개발의 횡포 때문에 둥천 시장의 상인분들이 오랫동안 장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상인분들의 입장에선 5만 위안도 적은 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가가 적다는 이유로 우릴 적극적으로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끝내 의심을 지우지 못하는 첸 씨와 상인들을 바라보며 동하가 확고하게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와 저희 조직의 명예를 걸고 반드시 홍련으로부터 둥천 시장을 지켜낼 테니까요.”
“아……!”
그제야 첸 씨와 상인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첸 씨가 두 손으로 동하의 손을 와락 움켜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이지 뭐라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흑룡회가 우리에게 신의를 보여준다면 우리 둥청 시장 상인들 역시 끝까지 회장님을 믿고 따르겠습니다.”
“네! 방금 그 말씀으로 보상은 충분합니다.”
* * *
순조롭게 계약을 끝내고 동하는 최룡, 탕시린, 창첸, 우레이와 함께 시장을 시찰했다. 흑룡회의 조직원 오십이 다섯씩 조를 이뤄 시장 곳곳을 삼엄하게 지키고 있었다. 조폭이라면 이가 갈리는 상인들이었지만, 자신들을 지켜주면서도 깍듯하게 예의를 지키는 흑룡회 조직원들에게 호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동하가 최룡을 힐끗 돌아보며 말했다.
“상인들에게 더욱 예의를 갖추라고 조직원들에게 다시 한번 당부하도록.”
“네, 잘 알겠습니다.”
탕시린이 살짝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넓은 시장을 지켜주는 대가치곤 용역비를 너무 조금 부른 거 아닌가?”
“글쎄, 나는 5만 위안이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데?”
“적당하긴 뭐가 적당해? 그 정도론 아이들이 한 달 밥값으로 다 날아가겠구만.”
동하가 우뚝 걸음을 멈추고 탕시린과 최룡, 창첸, 우레이를 돌아보았다.
“물론 둥청 시장만이 목표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곳 둥청 시장을 시작으로 우리가 벌어들일 돈을 생각한다면 그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가 있어.”
“이곳 둥청 시장을 시작으로 돈을 벌어들인다고? 그건 또 무슨 소리지?”
동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는 탕시진의 얼굴을 바라보며 설명했다.
“우리가 만약 홍련을 상대로 둥청 시장을 지켜낸다면 그건 이 지역 전체에 획기적인 뉴스가 되겠지?”
“그야 당연히 그렇겠지. 수년째 이 지역을 꽉 잡고 홍련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셈이니까.”
“그 말이 맞아. 그런데 둥청 상업지구에서 홍련에게 부당하게 이권을 빼앗기거나, 무리하게 보호비를 뜯기고 있는 상가나 기업이 둥청 시장밖에 없을까?”
“아……!”
그제야 탕시린이 동하의 의도를 알아차린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녀가 동하의 얼굴을 가리키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강 보스의 말인즉슨, 우리가 홍련을 물리치고 둥청 시장을 지켜낸다면 그 소문이 둥청 상업지구 전체로 퍼질 것이고, 그럼 수많은 상가나 기업에서 우리에게 자신들을 지켜달라고 손을 내밀 거란 말이지?”
동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씨익 웃었다.
“바로 그거야! 물론 그 새로운 의뢰인들은 둥청 시장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거금을 싸 들고 몰려들겠지.”
최룡이 진심으로 감탄한 표정을 지으며 엄지를 척 세웠다.
“역시 보스는 뭐가 달라도 다르십네다.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서 한 푼이라도 더 챙기려고 하는 소인배와는 그릇 크기가 다르시다 이겁네다.”
탕시린이 최룡을 향해 도끼눈을 떴다.
“지금 누구보고 소인배라는 거야? 나 들으라고 한 소리 맞지?”
“에미나이가 눈치 하나는 불여시 뺨치게 빠르구나, 야!”
“뭐, 뭣? 불여시? 야, 최룡! 너 나랑 맞짱 뜨고 싶냐?”
최룡이 비릿하게 웃으며 탕시린의 화를 돋우었다.
“맞짱이야 진즉에 뜨지 않았니? 물론 탕보스 네가 일방적으로 얻어터졌고 말이야.”
“꺄악!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최룡에게 달려들려는 탕시린을 동하가 재빨리 팔을 내뻗어 막았다.
“오늘처럼 좋은 날 왜 싸우고들 그러시나? 그보다 오늘 밤이 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
창첸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리 심각하십니까, 보스?”
“홍련개발의 대표 이름이 뭐라고 했지?”
동하의 물음에 탕시린이 탕시린이 재빨리 대답했다.
“양즈체라고……, 홍련의 총 보스가 총애하는 아우에 홍련 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수라고 했어.”
“오늘 밤 안으로 핑동은 그 양즈체를 찾아가 우리에 대해 보고를 하겠지? 그럼 격노한 양즈체는 날이 밝자마자 조직원들을 싹 다 거느리고 둥청 시장으로 들이닥칠 테고?”
우레이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러겠지요.”
“그러니까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 말고, 우리가 먼저 홍련개발로 치고 들어가 양즈체를 때려눕히자는 거야. 그럼 홍련 전체가 일대 혼란에 빠지지 않겠어?”
동하의 설명이 끝나자,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우레이마저 입을 떡 벌렸다.
“역시 보스는 대범하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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