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 경찰-59화 (59/75)

〈 59화 〉 59화. 여론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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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여론전(1)

그날 오후에 동하는 둥청 시장 상가연합회에서 마련해준 경비업체 사무실에 앉아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소파의 상석에 앉은 동하를 중심으로 최룡, 쑨웬, 탕시린, 창첸, 우레이 등이 심각한 얼굴로 둘러앉아 있었다.

동하가 간부들을 둘러보며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부터 홍련에서 어떻게 나올까?”

탕시린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걸 몰라서 물어? 양즈체가 박살 나고 홍련개발이 무너졌으니, 오늘이라도 당장 조직원들을 총동원하여 대대적으로 공격해오겠지.”

“과연 그럴까?”

턱을 매만지며 의문을 표하는 동하를 향해 최룡도 고개를 끄덕였다.

“홍련은 우리에 비해 월등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습네다. 탕 보스의 말대로 힘으로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할 것 같습네다.”

쑨웬까지 동의하고 나섰다.

“저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특히, 둥청 상업지구에 속해 자신들에게 보호비를 내고 있는 상인들이나 기업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우리를 철저하게 짓밟으려고 할 겁니다.”

“흐음……! 역시 그렇군. 그렇다면 우리가 홍련의 총공세를 막아낼 확률은 얼마나 될까?”

“…….”

순간 좌중이 모두 입을 굳게 다물고 사무실엔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동하가 심각한 간부들의 얼굴을 둘러보며 피식 웃었다.

“역시 현재 우리의 전력만으론 막아내기 힘들다는 얘기로군.”

쑨웬이 동하를 돌아보며 급히 말했다.

“그래서 심양에 있는 흑룡회 조직원들을 전원 이곳으로 불러들일 생각입니다. 그럼 어느 정도는 해볼 만할 것으로…….”

“아니, 그렇다고 해도 홍련의 전 전력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일 거야.”

동하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가 홍련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홍련 수뇌부와 우리 간부진이 직접 대결을 펼쳐 승리하는 방법뿐이야.”

동하가 자신 앞에 앉아 있는 간부들을 가리키며 힘주어 말했다.

“우리 간부들 개개인의 능력은 홍련 수뇌부에 비교해도 절대 뒤처지지 않을 테니까.”

탕시린이 다시 코웃음을 치고 나섰다.

“홍련의 총회장 차잉원은 영악하고 냉철하기로 유명한 인간이야. 그가 바보가 아닌 이상 우리를 손쉽게 찍어 누를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을 놔두고, 수뇌부끼리의 대결 따윌 받아들일 리가 없잖아? 이게 무슨 삼국시대의 일기토도 아니고 말씀이야.”

동하가 그런 탕시린의 얼굴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들면 되지.”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든다고? 대체 어떻게?”

황당해하는 탕시린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동하가 대답했다.

“여론전을 이용하는 거야.”

“여론전이라면……?”

“현재 거대 삼합회 조직인 홍련이 둥청 시장의 힘없는 상인들을 겁박하여 그들의 재산을 강탈하려는 믿기 힘든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 만일 이런 사실이 언론을 통해 중국 인민들에게 알려진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홍련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그들로서도 전력을 동원하여 우리를 치는 게 부담스러워지지 않을까?‘

”거참, 모르는 소리하고 계시네.“

탕시린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동안 홍련개발이 둥청 시장에서 그렇게 분탕질을 쳤는데도 그 흔한 공안 한 번 출동하지 않았어. 왜일까? 상인들이 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니, 상인들은 수십, 수백 번 신고를 했어. 그래도 공안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상인들의 피해를 단 한 번도 보도하지 않았어. 이게 무얼 뜻하는지 정말 모르겠어?”

“홍련이 이미 공안과 언론을 자기 멋대로 주무르고 있다는 뜻이겠군?”

쑨웬이 탕시린을 거들고 나섰다.

“홍련의 총회장 차잉원이 북경의 공산당 수뇌부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비밀이 아닌 비밀이었습니다. 여론전을 통해 홍련을 견제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두가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지만 동하는 물러서지 않았다.

“물론 주류 언론을 통해서는 홍련을 견제하는 게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기득권에 대한 저항의식이 뚜렷한 인터넷 언론 등 비주류 언론을 이용한다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비주류 언론이라고요……?”

동하가 자신을 향해 되묻는 쑨웬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우리 한국에서도 그런 비주류 언론들이 심심찮게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터뜨리곤 하거든.”

“흐음……. 저희 중국에도 그런 비주류 언론인들이 있긴 합니다. 주로 공산당이나 재벌에 부정적인 대학생들로 너튜브나 베이스톡을 이용해 자신들이 취재한 내용을 퍼뜨리곤 하죠.”

“그런 비주류 언론인들을 이용하자는 거야.”

고개를 크게 끄덕이는 동하의 얼굴을 바라보던 탕시린이 골똘히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

“강 보스의 말을 들으니 마침 떠오르는 녀석이 한 놈 있긴 있는데…….”

동하가 반색하며 탕시린을 돌아보았다.

“오! 그런 녀석이 있어?”

“응! 리차오에 그런 녀석이 하나 있어. 주로 공산당이나 재벌들의 비리를 파헤쳐서 그걸 인터넷에 퍼뜨리는 녀석이지. 덕분에 공안에 의해 일급 수배령이 내려졌고, 지금은 빈민촌에 꽁꽁 숨어서 지내고 있어.”

“그 친구를 지금 만나볼 수 있을까?”

“방금 말했다시피 수배령이 내려졌기 때문에 웬만하면 리차오를 떠나려고 하지 않을 텐데?”

“하지만 그 친구도 오랫동안 쉬었으니, 큰 건을 한 건 터뜨리고 싶어 근질근질할걸. 홍련에게 핍박받고 있는 둥청 시장 상인들의 사정을 들으면 분명 관심을 보일 테니까, 일단 말이나 한번 해봐.”

“알았어. 지금 당장 가서 얘기해볼게.”

성격 급한 탕시린이 즉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 * *

탕시린이 리차오로 떠난 후에 동하는 최룡과 쑨웬 그리고 창첸과 우레이를 거느리고 둥청 시장을 둘러보았다. 이제 제법 낯이 익은 상인들이 동하를 향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날씨가 참 좋지요, 강 보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강 보스.”

“강 보스! 이리 와서 이 국수를 좀 맛보고 가요.”

홍련의 조직원들에게 오랜 시간 괴롭힘을 당해왔던 상인들은 자신들을 지켜줄 뿐만 아니라 늘 깍듯하게 대하는 동하와 흑룡회 조직원들에게 적지 않은 친밀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동하도 자신이 근무하던 대림동 중앙시장 상인들이 떠올라 모처럼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나저나 이은서 경위님은 잘 지내고 계시려나……?’

문득 그리운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회상에 잠겨 있는 동하의 귀에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꺄아아악! 홍련의 조폭들이 쳐들어온다!”

동하가 퍼뜩 상념에서 깨어나며 비명이 들려온 쪽을 돌아보았다.

“이게 무슨 소리야?”

“보스! 저길 보십시오!”

최룡이 가리키는 방향을 쏘아보며 동하가 으득 이를 갈아붙였다.

콰앙! 콰앙! 콰아앙! 콰아아앙!

네 대의 대형 버스가 시장 입구로 밀고 들어와 좌판과 상점들을 사정없이 들이받고 있었다. 한창 장사를 하고 있던 상인들과 손님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고 있는 게 보였다.

덜컥! 덜컥! 덜컥! 덜컥!

버스의 옆문이 열리며 홍련의 전문이사 왕젠린이 이끄는 조직원 삼백여 명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하나같이 만만찮은 기세를 풍기는 조직원들은 홍련에서도 가장 호전적인 왕젠린 전무가 이끄는 정예 중의 정예들이었다.

왕젠린이 이열로 늘어서는 조직원들의 앞으로 나서며 겁에 질려 서 있는 상인들을 향해 살벌하게 물었다.

“강동하는 어디에 있나?”

순간 상인들을 헤치고 동하와 최룡, 쑨웬, 창첸, 우레이가 나섰다.

동하가 눈앞에 서 있는 왕젠린을 향해 가슴을 쭉 펴며 말했다.

“내가 강동하다. 그러는 너는 누구냐?”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홍련의 전무이산 왕젠린이라고 한다. 홍련 총회장님의 명에 따라 강동하 네놈의 시체를 끌고 가려고 왔다.”

순간 동하의 옆에 서 있던 최룡이 왕젠린을 향해 주먹을 움켜쥐고 짓쳐나갔다.

“존간나 새끼야! 네놈부터 시체로 만들어주갔어?!”

“최룡, 돌아와!”

왕젠린이 고수임을 알아차린 동하가 다급히 외쳤지만 최룡은 멈추지 않았다.

파아앙!

“흥!”

최룡이 날린 주먹을 왕젠린이 고개를 살짝 젖혀 피했다.

파파파파파팡!

최룡이 연달아 내지르는 양손 주먹을 때론 막고 때론 피하는 왕젠린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쳐흘렀다.

“이 새끼야! 지금 나랑 장난을 치니?!”

격분한 최룡이 주먹을 확 쳐드는 순간, 왕젠린의 주먹이 한 발 앞에서 그의 안면에 작렬했다.

빠아악!

“우웩!”

피를 뿌리며 넘어가는 최룡을 노리고 왕젠린이 흉흉한 살기를 뿜으며 달려들었다.

“네놈부터 없애주마!”

“왕젠린, 멈춰!”

동시에 동하와 쑨웬, 창첸, 우레이가 달려나갔다. 그리고 그때부터 왕젠린이 이끄는 홍련 조직원들과 동하가 이끄는 흑룡회 조직원들 간에 치열한 격투가 시작되었다.

“우와아아아!”

사방에서 피가 튀고 비명이 난무하는 살벌한 싸움이었다. 처음에는 대등해 보였던 싸움의 양상은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흑룡회 조직원들이 밀리기 시작했다. 왕젠린의 부하들 대부분은 무공을 익힌 무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 대부분은 초보적인 발경의 경지였지만 일반인인 흑룡회 조직원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게다가 머리수도 그들의 세 배 넘게 많지 않은가.

“아악! 내 팔! 내 팔!”

“크아악! 내 다리!”

“끄아아악!”

팔과 다리를 감싸 안고 나뒹구는 조직원들 사이를 동하와 쑨웬, 창첸, 우레이가 누비고 다니며 전력의 열세를 만회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홍련 조직원들의 수가 너무 많았고, 단 몇 사람이서 그들 모두를 막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방어선을 뚫고 진입한 홍련 조직원들이 상점을 부수고, 상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기 시작했다.

우장창창! 쾅! 쾅! 콰아앙!

“아악!”

“꺄아악!”

“도, 도망쳐!”

홍련 조직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는 상인들을 끝까지 쫓아가 잘근잘근 짓밟았다.

“죽어! 죽어, 이 새끼들아!”

“그러게 왜 우리 홍련한테 저항을 하느냔 말이다!”

“죽고 싶지 않으면 상가를 포기하고 당장 떠나, 이 병신들아!”

바로 그때 상가연합회가 있는 건물의 옥상에서 상인들을 잔인하게 짓밟는 홍련 조직원들을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는 청년이 있었다. 스물두어 살이나 되었을까? 얼마나 오랫동안 물을 대지 않았는지 떡 지고 기름진 머리가 햇빛을 받아 반질거리고 있었다. 수염이 까칠한 얼굴에 때 국물이 줄줄 흐르는 파란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청년은 한눈에 오타구처럼 보였다.

하지만 청년이 백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거느린 너튜브 고발방송 ‘쿤동의 사건수첩’의 진행자라 쿤동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탕시린이 흥미진진하게 촬영에 집중하고 있는 쿤동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때? 이 정도면 인터넷에서 사람들의 반응이 좀 나오겠어?”

“흐흐흐흐! 이거 완전 대박이에요. 시린 누나. 오늘 밤 홍련이란 이름으로 인터넷이 발칵 뒤집힐 겁니다.”

“그래,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탕시린의 눈에 주먹을 쳐들고 서로를 향해 달려들고 있는 동하와 왕젠린의 모습이 들어왔다.

“응?”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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