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 경찰-61화 (61/75)

〈 61화 〉 61화. 한밤의 혈투

* * *

61화. 한밤의 혈투

“후우우웁……!”

늦은 밤, 동하는 상가연합회 건물의 옥상에 홀로 앉아 운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전신의 혈맥을 통해 기를 돌리고 있는 그의 피부를 뚫고 수십 가닥의 가느다란 기광이 아지랑이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후우우우우웅!

이 실 같은 기광들이 그의 머리 위에서 천천히 합쳐지는가 싶더니, 눈부신 기의 덩어리를 만들어냈다. 동하가 눈을 질끈 감은 채 기를 더욱 빠르게 돌리자, 기의 덩어리가 이리저리 비틀리며 하나의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것은 기광으로 형상화된 금빛 모란이었다. 동시에 동하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라면 마음만 먹는다면 하늘을 훨훨 날아다닐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마음이 고요해지며 모든 것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마치 무릉도원에 정좌를 하고 앉아 있는 것처럼 동하는 무안한 편안함과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완벽한 무아지경에 빠져 있는 동하의 귓가에 이진산의 감격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오……! 장하구나, 정말 장해! 동하 네놈이 드디어 옥예금화의 경지에 다다랐구나!]

동하가 천천히 눈을 뜨며 물었다.

‘옥예금화요……? 그게 높은 오룡봉성보다 높은 경지인 겁니까?’

[당연하지, 이놈아! 네놈이 단숨에 두어 단계의 경지를 뛰어넘어 완숙한 초절정의 경지에 도달했던 말이다. 이제 두어 단계만 더 뛰어넘으면 생전 노부의 경지에 이를 수도 있겠다.]

‘으음……! 그렇단 말씀이죠?’

하지만 동하는 기뻐하기보단 깊은 신음을 흘렸다. 그의 마음을 알아차린 이진산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

[네놈의 경지가 높아졌다는데 좋아라 날뛰지는 못할망정, 어째서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이냐?]

‘어르신, 솔직히 저는 걱정이 앞섭니다.’

[걱정이라니? 또 무슨 걱정?]

동하가 착 가라앉은 소리로 대답했다.

‘예전에는 무공을 한 단계 상승시키기 위해선 부단한 노력과 기나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별로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저의 무공이 저절로 높아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제가 제 몸의 주인이 아니라 마치 다른 누군가에 의해 끌려가고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동하의 날카로운 지적에 이진산이 급 당황하며 대답했다.

[나 원, 별 시덥지 않은 소리를 다 들어보겠구나? 네 몸의 주인이 네가 아니면 대체 누구란 말이냐? 그리고 무공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야. 처음 입문하여 어느 수준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힘들지만, 일단 일정한 경지에 도달하고 나면 그때부턴 가속도가 붙어 무공을 체득하는 시간도 그만큼 단축된다는 말이다.]

’마치 고속도로가 깔린 것처럼요?‘

[오냐! 말 한번 잘했다. 네놈 말대로 고속도로가 깔린 것처럼!]

’그래도 이건 빨라도 너무 빠릅니다. 솔직히 겁이 날 정도라니까요.‘

[시끄럽다, 미련곰탱이 같은 놈아! 무공이 안 늘어서 걱정이지, 무공이 일취월장하고 있는데, 대체 무에 걱정이란 말이냐?]

’흐음……,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요?‘

[괜찮고말고! 쓸데없는 걱정일랑은 접어두고 일단 선인도수나 한 번 펼쳐봐라. 이미 옥예금화의 경지에 다다랐으니,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되지 않을까 싶다.]

’네에……, 까라면 까야지 별수 있겠습니까?‘

동하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몸 안에서 빠르게 돌리던 기를 양쪽 발바닥으로 집중시켰다. 그런 다음 두 발로 옥상 바닥을 힘차게 차고 올랐다.

“선인도수!”

피유우우우웃!

순간 동하의 몸이 쏜살같이 밤하늘로 치솟았다.

“이얍!”

밤하늘 드높이 솟구친 동하가 기합을 불어넣으며 균형을 잡았다. 이번엔 양쪽 발바닥으로 보낸 기의 양이 달라 몸이 기울어지거나 하지 않았다. 이 상태라면 무협영화의 주인공처럼 밤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의 마음을 알아차린 이진산이 유혹하듯 속삭였다.

[그래, 밤하늘을 마음 내키는 대로 훨훨 날아보아라.]

’알겠습니다, 어르신! 이야압!‘

동하가 허공에서 엎드리는 자세를 취하는 것과 동시에 다시 양쪽 발바닥에 기를 집중시켰다.

쉬이이이익!

“으아아아!”

동시에 그의 몸이 바람을 가르며 쏜살같이 앞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슈퍼 히어로가 따로 없었다.

그래, 하늘을 막 날아다닐 수도 있고 강해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

어르신의 말씀처럼 괜한 걱정하지 말고 강함을 즐기도록 하자.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동하는 스스로에 대한 걱정을 떨쳐내고 있었다.

“응? 저건 쿤동이 아니냐?”

저공비행으로 날고 있던 동하의 눈에 시장 뒷골목을 따라 숨 가쁘게 내달리고 있는 쿤동의 모습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야밤에 운동이라도 하고 있나 보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모자를 깊이 눌러써서 얼굴을 가린 남자 스무 명 정도가 쿤동을 득달같이 쫓고 있었다.

“홍련의 습격이로구나!”

슈와아아악!

재빨리 상황을 파악한 동하가 쿤동을 향해 쏜살같이 하강하기 시작했다.

* * *

“허억……, 허어억……! 아 씨발, 좆됐다.”

막다른 골목을 등지고 서서 쿤동은 자신을 향해 흉흉한 살기를 뿜으며 다가오는 정확히 열아홉 명의 남자들을 절망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같이 모자를 깊이 눌러써서 얼굴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모자챙 밑으로 시퍼런 안광을 내뿜고 있는 남자들의 기세는 살벌했다.

쿤동이 선두에서 다가오는 체격이 가장 좋은 중년 남자를 가리키며 외쳤다.

“너희들! 홍련에서 보낸 자객이지?”

남자가 쿤동을 향해 기광이 선명하게 맺혀 있는 손바닥을 내뻗으며 소리쳤다.

“그래, 우린 홍련에서 온 저승사자들이다! 그러게 왜 겁도 없이 우리 홍련을 건드렸느냐?”

“크흑!”

쿤동이 남자의 손에 자신의 목이 힘없이 부러지는 상상을 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그의 앞으로 뚝 떨어지며 남자의 손을 튕겨냈다.

“왕젠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또 기어 왔느냐?!”

파아앙!

“크흐흑!”

동하의 주먹을 손바닥으로 막아내며 뒤쪽으로 대여섯 걸음을 정신없이 물러선 사람은 바로 홍련의 전무 왕젠린이었다.

쿤동이 자신을 살려준 동하의 믿음직한 등을 보며 반색했다.

“강 보스님, 와주셨군요!”

동하가 눈물까지 글썽이는 쿤동을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당연히 와야지. 쿤동이야말로 우리 조직에 꼭 필요한 보석 같은 존재인걸.”

“감사합니다, 보스……!”

감동을 주체하지 못한 쿤동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동하가 쿤동에게서 시선을 거둬들여 자신 앞에서 천천히 모자를 벗고 있는 왕젠린과 열여덟 명의 살수들을 쳐다보았다.

“일단 이놈들부터 해치운 다음에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고.”

말을 그렇게 했지만 동하는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왕젠린이 자신과 맞먹는 강기의 고수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가 데려온 열여덟 명의 사내들도 왕젠린 못지않은 기세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거 좀 난처하게 됐는걸.

왕젠린과 일대일로 싸운다면 이길 수 있겠지만, 그와 비슷한 고수가 열여덟 명이나 더해진다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지거든.

동하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일까?

왕젠린이 등 뒤의 부하 열여덟을 가리키며 씨익 웃었다.

“이 아이들은 홍련십팔살이라고 한다. 내가 심혈을 기울여 키운 우리 홍련 내 최고의 살수팀이지. 하나같이 의기의 고수들로 강동하 네놈이 강한 건 알고 있지만, 나와 홍련십팔살의 합공을 당해낼 순 없을 것이다.”

다행히 왕젠린과 같은 강기의 고수들은 아니었지만, 의기의 고수가 열여덟이라면 확실히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마음 같아서는 선인도수를 써서 일단 몸을 피하고 싶었지만 쿤동이 있으니,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동하는 일단 한 성깔 하는 왕젠린을 도발하기로 마음먹고 히죽 웃으며 말했다.

“거참, 왕젠린 저 작자는 말도 많아.”

“뭐, 뭣?”

“왕젠린 너는 싸움을 주로 입으로 하는 모양이지? 뭐 실력보다는 입이 앞서는 작자이니, 지난번에도 나한테 그렇게 털린 거겠지만 말이야.”

“저 새끼가 감히 누구한테……!”

동하의 예상대로 화를 참지 못하고 뿌드득 이를 갈아붙이던 왕젠린이 동하를 향해 무작정 돌진했다.

“으아아아! 네놈의 사지를 끊어 벌레처럼 몸부림치다 죽게 만들겠다!”

쉬쉬쉬쉬쉬쉬쉭!

왕젠린의 갑작스런 공격에 당황한 홍련십팔살도 황급히 달려 나왔다. 하지만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미처 합격진을 제대로 갖추지도 못한 상태였다. 동하는 적들이 완벽하게 공격태세를 갖추기 전에 그 일부를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차올랐다.

“왕젠린!”

동하가 왕젠린의 옆얼굴을 노리고 기가 팽팽하게 실린 발을 휘둘렀다. 왕젠린이 얼굴 옆에서 팔뚝을 세워 동하의 발을 막아냈다.

빠아아악!

“끄흐흑!”

하지만 충격을 완전히 흡수하지 못한 왕젠린이 옆쪽으로 붕 튕겨 나갔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동하가 선두에서 달려드는 살수 둘을 향해 연이어 주먹을 날렸다. 동하가 주먹에 기를 잔뜩 불어넣자, 선명한 권강이 그의 주먹을 뚫고 날아갔다.

끼우우우우웅!

두 살수도 동하의 주먹을 쳐내려고 황급히 주먹을 내질렀다.

우직! 우지끈!

“으악!”

“크아아악!”

동하의 권강에 주먹이 으스러진 살수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이미 전력을 상실한 그들을 뒤로한 채 동하가 다시 선두에서 덤벼드는 세 명의 살수들을 향해 양손을 연이어 내질렀다. 순간 강력한 수강이 살수들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갔다.

“우웩!”

“꾸웩!”

“케헤헤헥!”

수강에 얼굴이 으깨어지고, 가슴이 쪼개진 살수들이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우와아아악!”

“저 새끼 죽여!”

동하가 자신을 노리고 달려드는 나머지 살수 열셋을 처리하려고 양손 열 손가락을 활짝 펼쳤다. 그의 열 손가락 마디마다 백색 지강이 선명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동하가 막 살수들을 향해 지강을 퍼부으려는 순간, 등 뒤에서 왕젠린의 노호성이 들려왔다.

“강동하 이 새끼야! 이 왕젠린은 보이지도 않는단 말이냐?!”

“!”

동하가 황급히 돌아서서 밀영환보를 밟았다. 하지만 왕젠린이 날린 권강은 이미 그의 가슴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푸우우욱!

“우웁!”

권강이 명치에 쑤셔박히며 동하가 볼을 잔뜩 부풀렸다.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은 동하가 뒤쪽으로 대여섯 걸음을 정신없이 물러섰다. 기회를 잡은 왕젠린이 그런 동하를 득달같이 쫓으며 예닐곱 개의 권강을 속사포처럼 내질렀다.

팡! 팡! 팡! 팡! 팡! 팡!

동하도 정신없이 권강을 날려 왕젠린의 권강을 흩어놓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적지 않는 충격을 받으며 그의 몸이 휘청거렸다.

쐐애애애애액!

순간 동하의 등 뒤에서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려왔다.

“이, 이런……!”

힐끗 뒤를 돌아보면 동하는 기겁하고 말았다. 살아남은 열세 명의 살수들이 일제히 어른 팔뚝 만한 길이의 단검을 뽑아 검기를 길게 쏘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옘병! 앞쪽에는 왕젠린의 권강! 뒤쪽에는 살수들의 검기!

이거 까닥하면 오늘 관짝을 짜고 드러눕게 생겼구만!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