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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경찰-64화 (64/75)

〈 64화 〉 64화. 시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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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시험(1)

“……!”

한동안 경악의 시선으로 동하의 얼굴을 바라보던 곽치상이 간신히 입술을 달싹였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나? 당장 그를 만날 수 있게 해주게.”

“죄송하지만 당장은 만나실 수가 없습니다.”

동하가 천천히 고개를 흔들자, 곽치상의 얼굴이 실망으로 일그러졌다.

“만날 수 없다니? 어째서지?”

“그분의 상태가 현재 정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상이 아니라면……? 역시 깊은 내상을 입은 겐가? 그래서 그가 죽었다는 소문이 퍼진 거였어?”

“그렇게 생각하시는 게 편하실 겁니다.”

“으으음……!”

동하를 응시하는 곽치상의 눈빛에 의심이 피어올랐다.

“자네의 말을 어떻게 믿지? 자네가 나를 속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않나?”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 두 분만 알고 있는 그 암호를 말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곽치상은 재빨리 과거를 회상했다.

시린핑 주석을 위시로 현 중국공산당을 이끌고 있는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아직 비주류로 머물러 있을 때, 그는 상대 세력에 의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었다. 무시무시한 고수였던 살수에 의해 경호원들이 모조리 도육을 당하고, 자신마저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때에 이진산이 홀연히 나타나 살수를 너무도 쉽게 죽여 버리고 그의 목숨을 구해주었었다. 그런 다음 반드시 은혜를 갚겠노라 맹세하는 그에게 문제의 그 암호를 가르쳐주었던 것이다.

곽치상이 눈을 가늘게 뜨고 동하의 얼굴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저 녀석의 말이 거짓일 리는 없지. 이 강동하란 녀석은 이진산이 보낸 인물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무조건 이 녀석을 도와줘야 한다. 그 암호를 가지고 찾아오는 놈은 그게 누가 되었든 자신처럼 생각하고 도와주라는 것이 이진산과의 약속이었으니까.’

결론을 내린 곽치상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일단 이 공안청에서 나갈 수 있게 해주십시오.”

“자네가 가져온 암호의 무게에 비해 너무도 가벼운 청이로군.”

“물론 그게 다는 아닙니다.”

동하가 히죽 웃으며 말하자, 곽치상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또 무슨 부탁을 하고 싶은 건가?”

“저는 지금 홍련과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홍련이 권력을 이용해 저를 핍박하지 못하도록 서기님께서 저의 정치적 배경이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나보고 자네와 자네 조직의 배경이 되어 달라?”

“네, 그렇습니다.”

곽치상이 이번만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건 들어주기 힘든 부탁이로군.”

“어째서입니까?”

“홍련이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조직이기 때문일세.”

동시에 동하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그들이란……,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

천하의 곽치상 서기의 얼굴이 긴장감으로 물드는 것을 지켜보며 동하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슬며시 움켜쥐었다.

마침내 곽치상 서기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그들이란 천중천을 의미하는 것일세.”

“천중천이면……, 하늘 위의 하늘이란 뜻입니까?”

곽치상이 두려움마저 느껴지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천하에서 가장 무서운 고수들로 이루어진 집단이 바로 천중천이지. 그들은 무협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고수들로 실제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장풍과 강기로 수천, 수만의 현대적인 군대조차 초토화시킬 수 있는 그런 괴물들일세.”

동하의 눈빛이 더욱 짙어졌다.

“그 천중천이란 조직이 혹시 이진산 어르신께서 세우신 조직입니까?”

“그렇다네.”

“아……!”

곽치상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동시에 동하는 낮은 탄식을 흘렸다. 중국의 삼합회를 일통하고, 공산당조차 두려워할 절대조직을 세웠다는 이진산의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음이 밝혀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미처 감동의 여운을 음미할 짬도 주지 않고 곽치상이 심각하게 내뱉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세 제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조직일세. 그리고 이진산이 떠난 후에 천중천은 더욱 강하고 잔인한 조직으로 변모했지. 우리 공산당 수뇌부들조차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말일세.”

“그렇군요…….”

동하가 낮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주억였다. 곽치상이 말하는 뉘앙스로 보아 홍련은 천중천이 움직이고 있는 하부조직이 분명했다. 그리고 곽치상을 비롯하여 공산당 수뇌부는 가공할 무력을 지닌 천중천을 깊이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니 아무리 이진산의 암호를 가진 전인이라고 해도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동하는 이미 이진산과의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논의하고 대책을 세워두고 있었다.

동하가 곽치상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며 나직이 물었다.

“서기님께서 이번에 저를 도와주신다면 저도 서기님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자네가 나를 도와준다라……?”

곽치상이 피식 실소했지만 동하는 정색하며 말을 이었다.

“아니, 서기님 뿐만 아니라 시린핑 주석님 이하 현 공산당 수뇌부 전체에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순간 곽치상의 눈꼬리라 하늘로 치솟았다.

“자네 상당히 오만방자한 말을 지껄이는군. 자네 같은 일개 삼합회 조직의 두목 따위가 무슨 힘이 있어 공산당 수뇌부 전체를 돕겠다는 겐가?”

“물론 저에게 권력 같은 것은 없습니다.”

동하가 눈을 번쩍 빛내며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서기님과 서기님의 동지들을 무력으로 겁박하고 있는 천중천을 제압할 수 있는 무공은 있습니다.”

“뭐라고? 자네가 천중천보다 더 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단 말인가……?!”

물론 동하는 이진산에 버금가는 고수들이라는 그의 세 제자들을 이길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이진산이 무조건 천중천을 없애 버리겠노라 큰소리를 땅땅 치라고 신신당부했기에 이렇게 배짱을 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허어……!”

가슴을 쫙 펴고 있는 동하를 기가 막힌 듯 바라보던 곽치상이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 천중천이 얼마나 강한 줄이나 알고 그런 말을 지껄이는 건가?”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실력으로 그들을 세상에서 지워 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진산 어르신께서 저의 경지가 이미 그들을 초월했다고 말씀하셨으니까요.”

“이진산이 직접 그렇게 얘기했다고? 그게 사실인가?”

“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

곽치상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동하의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하지만 무조건 믿지 않을 수도 없지 않은가? 이 친구는 어찌됐든 세계에서 가장 강했던 그 남자의 전인이니까.’

내적 갈등으로 미간을 깊은 주름을 만들고 있던 곽치상이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일단 지금 즉시 자네를 이곳에서 빼내 주겠네.”

“감사합니다, 서기님.”

“하지만 자네의 정치적 배경이 되어주는 건 섣불리 결정할 문제가 아닐세. 나의 결정은 곧 시린핑 주석동지 이하 우리 정치국 상무국 전체의 결정으로 이어질 테니까.”

“네,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서 자네를 본격적으로 도울지 말지 결정하기 전에 한 가지 시험을 하려고 하네.”

“시험이라면 어떤……?”

의아한 동하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곽치상이 말했다.

“천안문광장 인근에 우리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에서 관리하고 있는 안가가 한 채 있다네. 나는 오늘 밤을 그곳에서 보낼 생각이야. 그러니 날이 밝기 전에 안가 안으로 나를 만나러 와주게. 자네가 무사히 나를 만날 수 있다면 그땐 자네와 자네의 조직을 지속적으로 돕기로 하겠네.”

동하가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물었다.

“물론 그 안가에는 엄청난 수의 무장 경호원들이 배치되어 있겠군요?”

“당연한 걸 묻고 있군.”

“잘 알겠습니다. 새벽 첫닭이 울기 전에 반드시 서기님과 마주 앉도록 하겠습니다.”

“안가를 지키고 있는 무장 경호원들은 대부분 인민군 최정예 특수부대 출신의 전사들일세. 너무 확신하지 말게나.”

“여부가 있겠습니까?”

자신만만하게 미소 짓는 동하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곽치상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럼 이제 나가도록 하지!”

“네, 그러시죠.”

* * *

중화인민공화국 인민대회당 등 정치적 건물들이 즐비한 천안문 광장 서쪽 외곽에 팔 층짜리 정체가 불분명한 빌딩 한 채가 서 있었다. 무슨 철옹성처럼 두터운 콘크리트 외벽에 유난히 좁은 창문이 그나마 단 몇 개만 설치되어 있는 그 건물은 무슨 수용소처럼 보이기도 했다. 주변을 경비하는 공안들도, 매일 그곳을 지나 출근하는 시민들도 그곳이 뭐 하는 건물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새벽이 가까운 시간이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문제의 건물에선 오늘도 불빛 한 점 새어 나오지 않고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그런데 이때 누군가 그 수상한 건물의 현관문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가는 사람이 있었다. 굳게 닫힌 현관 유리문 앞에 우뚝 멈춰서는 남자는 바로 동하였다.

탕! 탕! 탕! 탕!

동하가 주먹으로 유리문을 두드렸지만 안쪽에선 아무 반응도 없었다.

스르르륵!

현관 위쪽에서 설치된 감시카메라만 그의 얼굴을 향해 방향을 바꾸는 게 보였다. 동하가 감시카메라를 향해 히죽 웃으며 문을 열라는 손짓을 했다. 하지만 선약도 되어 있지 않고, 정체조차 불분명한 불청객에게 문을 열어줄 리는 만무했다.

“안 열어주겠다는 이거지? 그럼 직접 열고 들어가는 수밖에!”

후우우웅!

동하가 기가 팽팽하게 맺힌 오른 손바닥을 어깨너머로 확 젖혔다. 그리고 유리문을 향해 힘껏 내뻗었다.

투화아아악!

손바닥이 닿지도 않았는데, 견고한 유리문이 활짝 열어젖혀졌다.

저벅! 저벅! 저벅!

동하가 컴컴한 건물 로비가 빠르게 걸어 들어갔다.

탕! 탕! 탕! 탕!

그가 몇 걸음 옮기지도 않았는데, 안쪽에서 섬광이 연이어 번뜩였다. 일 층 로비를 지키고 있던 경호원들이 다짜고짜 권총을 발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파파파팟!

동하는 냅다 몸을 굴려 아슬아슬하게 총알을 피했다. 그리고 쏜살같이 박차고 일어서며 권총을 겨누고 있는 네 명의 경호원들을 향해 차올랐다.

빠바바박!

“커헉!”

“우웩!”

“크흐흑!”

동하가 허공에서 양발을 연달아 내뻗자, 경호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넘어갔다.

처어억!

한쪽 무릎을 꿇고 착지하며 동하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로비를 슥 훑어보았다.

오른쪽에 둘! 왼쪽에 셋!

기둥 뒤에 숨어 있는 경호원들을 확인한 동하가 몸 안에서 돌리던 기를 오른손 다섯 손가락에 집중시켰다.

“이얍!”

쐐애애애액!

그리고 손가락을 뻗어 다섯 개의 지풍을 흩날렸다. 그의 의지가 담긴 지풍들이 길게 호선을 그리며 날아가 기둥 뒤에 숨어 있는 경호원들의 팔과 다리를 꿰뚫었다.

“악!”

“끄흑!”

“아악! 내 다리!”

콘크리트 기둥이 자신들을 보호해줄 것이라며 안심하고 있던 경호원들이 영문도 모른 채 고꾸라졌다.

“곽치상 서기님, 저를 시험하고 싶으시다면 이 정도론 안 되실 겁니다.”

동하가 씨익 웃으며 정면으로 보이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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