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68화. VVIP로부터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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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VVIP로부터의 초대
홍련이 무너졌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둥청 상업지구는 물론 북경 전체로 퍼져나갔다. 동하와 그가 이끄는 흑룡회는 하루아침에 중국에서 가장 유력한 신흥 삼합회 조직으로 부상했다.
다음 날 아침부터 둥청 상업지구에 위치한 수많은 기업가들과 상인들이 둥청 시장에 있는 흑룡회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들은 홍련을 대신하여 자신들을 보호해줄 새로운 조직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동하는 그들 모두를 정중하게 대했다. 그리고 홍련이 그들로부터 거둬들였던 기본 보호비의 절반 이하의 가격으로 새로운 계약을 체결했다.
“그렇게 헐값에 계약해주면 우리는 뭐가 남아? 조직원들을 먹이고 입히는 등 조직 운영에 얼마나 많은 자금이 투입되는지 몰라?”
탕시린이 불만을 터뜨렸지만 동하는 웃는 얼굴로 달랬다.
“박리다매라는 말도 있잖아. 우리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고객들의 이익을 높여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보호받고 싶어할 거란 말이지.”
“나 참, 무슨 춘병을 파는 것도 아니고 보호비를 받는데 웬 박리다매 타령이람?”
탕시린이 끝까지 툴툴거렸지만 동하는 끝까지 낮은 보호비를 고수했다. 그 바람에 흑룡회는 기업가나 상인 등 보호 대상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조직이라는 소문이 퍼지며 둥청 지구는 물론 다른 지역에서까지 보호를 요청해왔다. 동하는 그들 모두를 받아들이면서 빠르게 세를 확산해 나갔다. 그리고 심양에 있는 천 명이 넘는 조직원들을 모두 자신들이 근거지로 삼고 있는 빈민촌 리차오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수뇌부를 잃고 내분에 휩싸인 홍련의 지부들을 하나씩 흡수하며 급속도로 팽창하는 구역의 관리를 맡겼다.
그렇게 정신없이 몇 주일이 흐른 어느 날, 오전에 사무실로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곽치상 서기님이 아니십니까……?!”
최룡과 쑨웬 그리고 탕시린, 창첸, 우레이 등 간부들과 회의를 진행하고 있던 동하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곽치상을 발견하고 놀란 얼굴로 일어섰다.
“오랜만이군.”
“연락도 없이 갑자기 어쩐 일이십니까?”
황당한 표정으로 묻는 동하를 향해 곽치상이 빙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왜? 내가 못 올 곳이라도 왔는가?”
“물론 그건 아닙니다만…….”
최룡이 경호원도 없이 불쑥 들어온 곽치상을 흘겨보며 물었다.
“회장님, 이 영감탱이는 누굽네까?”
“말조심해라, 최룡!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곽치상 서기님이시다!”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라고요……?!”
아무리 정치에 관심이 없다 해도 중국 공산당의 모든 당원들을 감사할 수 있는 기율검사위원회의 막강한 권력을 잘 알고 있는 최룡과 쑨웬 그리고 탕시린과 창첸, 우레이가 눈을 부릅뜨고 곽치상을 쳐다보았다.
곽치상이 동하를 향해 짐짓 섭섭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자넨 손님이 왔는데도 앉으란 소리조차 하질 않는군.”
“아, 죄송합니다.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동하가 재빨리 자신이 앉아 있던 상석을 가리키자, 곽치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앉았다.
“차를 한 잔 올릴까요? 아니면 커피를 드시겠습니까?”
동하가 물었지만 곽치상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보다는 자네와 긴히 할 말이 있는데…….”
곽치상이 말끝을 흐리자, 동하는 간부들에게 재빨리 나가라는 눈짓을 보냈다. 쑨웬과 탕시린 그리고 창첸과 우레이가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다. 눈치 없이 떡하니 버티고 앉아 있는 최룡의 귓불을 탕시린이 잡아당겼다.
“으이그~ 웬수야! 빨리 안 나오고 뭐 해?”
“아야야~ 이거 놓고 얘기하라우!”
가벼운 소동을 벌이며 간부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사무실 안에는 동하와 곽치상만 남게 되었다.
동하가 곽치상의 얼굴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실 말씀이란 게 무엇인지……?”
“자네, 지금 시간이 괜찮은가?”
“네, 시간은 괜찮습니다만.”
“그럼 나와 함께 누굴 좀 만나러 가세나.”
“그 누구가 대체 누굽니까?”
“지금은 말해줄 수 없으니 일단 가세.”
“네, 알겠습니다.”
곽치상이 몸을 일으키자, 동하도 의아한 표정으로 따라 일어섰다.
* * *
곽치상의 차를 타고 동하는 북경 시내를 달려가고 있었다. 두 사람을 태운 차량을 출발하자마자, 어디선가 두 대의 검은색 세단이 나타나 앞뒤로 호위하며 함께 달렸다. 동하는 곽치상이 자신을 누구에게 데려가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다만, 곽치상의 긴장한 옆얼굴을 힐끔거리며 그 누군가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인물일 것이라고 상상할 뿐이었다.
끼이이익!
한참을 달리던 차량들이 성벽처럼 높은 담장에 둘러싸인 저택의 철대문 앞에 정지했다. 대문 앞에는 무장한 군인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었다.
“여긴 대체 어딥니까?”
동하가 물었지만 곽치상은 대답 대신 차창을 살짝 내리고, 신분을 확인하는 장교를 향해 짧게 말했다.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의 곽치상 주석일세.”
“아, 네! 어서 들어가십시오.”
곽치상의 신원을 확인한 장교가 재빨리 팔을 흔들자, 철대문이 양옆으로 천천히 열렸다.
부우우웅!
세 대의 차량이 빠르게 안쪽으로 달려 들어갔다.
한참을 달려 들어간 차량들이 수목이 우거진 거대한 장원 한복판에 정지했다.
딸칵! 딸칵!
경호원들이 재빨리 달려와 문을 열어주자, 곽치상과 동하가 차례로 내렸다.
“이곳이 대체 뭐 하는 곳인지……?”
의아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동하의 눈에 사다리를 놓고 나무에 올라가 정원가위로 곁가지를 쳐내고 있는 웬 초로의 사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추레한 작업복에 밀짚모자를 눌러쓴 남자는 그냥 평범한 정원사처럼 보였다.
그런데 어디선가 꽃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낯이 익단 말이지.
동하가 고개를 갸웃하며 곽치상을 따라 초로의 남자에게 다가왔다. 곽치상이 나무 아래에 멈춰 서서 남자를 향해 깍듯하게 머리를 숙였다.
“말씀드렸던 강동하를 데려왔습니다.”
“!”
순간 새로운 가지를 잘라내려던 남자가 멈칫했다. 동하를 힐끗 돌아본 그가 기어이 가지를 잘라내며 물었다.
딸칵!
“자네, 가지치기를 해본 적이 있나?”
“네, 몇 번 해본 적이 있긴 합니다.”
자신이 근무하던 지구대 뒷마당의 소나무를 소장의 명령으로 몇 번인가 가지치기를 해봤던 동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초로의 남자가 다시 새로운 가지를 자르며 질문을 던졌다.
“그럼 가지치기를 왜 해주는지도 알고 있겠군?”
“잔가지들을 쳐줘야 나무가 더욱 곧고 튼튼하게 자라기 때문입니다.”
“호오, 어디서 주워들은 풍월은 있나 보군. 그렇다면 한 가지만 더 묻겠네.”
“네, 말씀하십시오.”
“아무리 정성 들여 가지를 쳐주고, 거름을 주고, 철마다 약을 뿌려 해충을 쫓아줘도 제대로 크지 못하고 엇나가는 나무가 있다고 쳐보세. 그런 나무는 대체 어찌하면 좋겠는가?”
“…….”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동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 나무는 가지가 아니라 밑동을 잘라내는 게 낫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한 번 엇나가기 시작한 나무는 아무리 정성을 쏟아부어도 제대로 크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동하는 지구대에서 소나무를 키워본 경험을 바탕으로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런 나무들은 가지를 쳐주고, 해충을 잡아주고, 비료를 뿌려줘도 한 번 엇나가기 시작한 방향으로 계속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주위의 다른 나무들에까지 안 좋은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니 이 아름다운 정원을 지키고 싶으시다면 그런 병든 나무는 완전히 잘라내고, 차라리 새로운 나무를 심으시는 게 나을 겁니다.”
“……!”
초로의 남자가 이채를 띄고 동하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잠시 동하의 눈을 뚫어져라 응시하던 그가 사다리를 밟고 천천히 내려왔다. 그리고 동하와 마주 서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내가 말한 그 엇나간 나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 눈치로군.”
“혹시 천중천을 말씀하시는 거 아닙니까?”
초로의 남자가 은은한 노기를 일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보았네. 나는 정성을 들여 천중천을 키웠어. 그들은 처음에는 훌륭한 재목처럼 보였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제멋대로 엇나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도저히 손을 써볼 수 없는 골칫거리로 전락했다네.”
동하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제가 그런 쓸모없는 나무는 잘라 버리는 게 낫다고 말씀드렸던 겁니다.”
“그들을 잘라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나무를 심으라 이건가?”
“네, 그렇습니다.”
초로의 남자가 동하의 얼굴을 가리키며 눈을 반짝 빛냈다.
“자네가 말한 새로운 나무란 바로 자네의 흑룡회를 뜻하는 것이겠군.”
“외람되지만 감히 그렇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시린핑 주석님.”
그제야 초로의 남자가 누구인지 확신한 동하가 정중하게 머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시린핑 주석도 밀짚모자를 벗으며 동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자네의 조언은 잘 들었네. 만나서 반갑군, 강동하 보스.”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동하가 양손으로 시린핑의 내민 손을 잡았다. 시린핑이 정원 한복판 연못가의 그림 같은 정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 저쪽으로 가서 대화를 나누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동하와 마주 앉아 시린핑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동하의 크기를 가늠하듯 그의 눈만 뚫어져라 응시할 뿐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앉은 곽치상도 말이 없었고, 동하는 더더욱 입을 열 수가 없는 처지였다.
한참 만에야 시린핑 주석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그래서 자네에겐 그 엇나간 나무를 잘라낼 능력이 있는가?”
“!”
순간, 동하는 움찔하며 대답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천중천을 이끌고 있는 이진산의 세 제자들의 실력조차 정확히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뭇거리는 동하를 주시하는 시린핑 주석의 눈빛이 추궁조로 변했다.
“다시 한번 묻겠네. 자네에겐 자신을 키워준 주인을 오히려 겁박하고 있는 천중천이라는 엇나간 나무를 잘라낼 능력이 있는가?”
“저, 그것이…….”
계속 머뭇거리는 동하의 머릿속에서 이진산의 성난 외침이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멍청한 놈아! 어서 천중천이든 뭐든 단번에 쓸어 버릴 힘과 능력을 갖추고 있노라 대답하지 않고 뭘 망설이고 있어?]
‘하지만 어르신! 저는 천중천의 힘이 얼마나 되는지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함부로 대답할 수가 있겠습니까?’
[내 제자 놈들의 실력은 노부가 가장 잘 알고 있어! 너라면 충분히 그놈들을 제압할 수가 있으니 어서 대답부터 하란 말이다! 어서!]
‘하지만…….’
[어허, 이 미련곰탱이 같은 놈이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려고 하나? 썩 대답하지 못할까?!]
이진산의 재촉에 동하는 결국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네……! 저에게는 천충천이라는 썩은 나무둥치를 잘라낼 힘과 의지가 있습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누구 앞이라고 감히 거짓을 아뢰겠습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동하의 얼굴을 주시하던 시린핑 주석이 천천히 웃옷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우선 이걸 좀 해결해줄 수 있겠는가?”
“그, 그것은……?”
웃옷을 벗은 시린핑 주석의 가슴 한복판에 찍혀 있는 시커먼 손도장을 발견하고 동하는 입을 떡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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