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70화. 무형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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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무형검
“형님, 이제 돌아오십네까? 별일은 없으셨습네까?”
그날 저녁, 동하가 둥청 시장으로 돌아오자 눈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던 최룡이 반색하며 맞이했다.
“그래, 별일 없었다.”
최룡 뿐만 아니라 쑨웬, 탕시린, 창첸, 우레이도 궁금증이 가득한 얼굴들이었다.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장이 왜 강 보스를 데려간 건데?”
“대체 누구를 만나고 오신 겁니까?”
“궁금해 죽겠으니 저희한테도 말씀 좀 해주십시오.”
“흐음……, 이걸 말해도 되나 모르겠군.”
잠시 고민하던 동하가 목소리를 낮추며 입을 열었다.
“실은 시린핑 국가주석을 만나고 오는 길이야.”
동시에 흑룡회 간부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뭐시기? 누굴 만났다고요?”
“맙소사! 정말 시 주석을 만나셨다는 겁니까?”
“그래서 대체 무슨 대화를 나누셨습니까?”
동하는 무언가 결심한 얼굴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여러분도 알고 있어야 할 이야기이니, 말해주도록 하지.”
한동안 동하의 짧지 않은 설명이 이어졌다. 동하는 중국의 모든 삼합회 조직을 배후에서 움직이고 있는 천중천이란 조직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들이 아마도 대림동의 길림파를 통해 한국에 대규모의 마약을 유통시킨 배후로 추측된다는 사실도 말해주었다.
그리고 막강한 무공을 자랑하는 천중천에 의해 겁박을 받고 있는 시린핑 주석과 중국 공산당 수뇌부가 동하를 이용해 그들을 제압하길 원한다는 사실까지!
“……!”
너무도 충격적인 정보였는지 동하의 설명이 모두 끝났음에도 흑룡회 간부들 중 누구도 입을 떼지 못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역시 동하의 아우인 최룡이었다.
“그럼 흑룡회의 전 보스 리우캉을 움직여 우리 동북회로 하여금 한국의 길림파에 대규모 마약을 보내도록 시킨 것도 천중천입네까?”
“그렇지.”
“천중천은 대체 무슨 목적으로 그 어마어마한 마약을 한국으로 보냈을까요?”
“그야 직접 만나서 물어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지.”
동하가 결연하게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리고 정확한 대답을 들으려면 내가 천중천의 세 수뇌부인 장렌, 천룽, 왕차이를 무릎 꿇려야 할 거야. 오직 강자만이 질문을 할 수가 있고, 질문에 대답을 들을 자격이 있으니까.”
“역시 그렇겠구만요.”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최룡의 옆에서 이번엔 우레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천중천 세 수뇌부의 무위는 어느 정도나 됩니까? 설마 보스를 능가할 정도는 아니겠지요?”
“아니, 나를 능가할 확률이 높다고 봐야겠지.”
“네? 보스를 능가한다고요? 그럼 이거 큰일이 아닙니까?”
기겁하는 창첸의 얼굴을 보며 동하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시린핑 주석께서 직접 판을 깔아주기로 했고, 모든 준비가 끝날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있으니까. 그동안 난 최선을 다해 지금의 경지를 한 단계 끌어올려 볼 생각이야.”
“보스의 경이로운 성취 속도를 봐선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천중천의 수뇌부가 한 명이 아니라 셋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는군요. 결국 괴물 같은 고수를 셋씩이나 한꺼번에 상대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까?”
“숫자는 중요하지가 않아. 결국 승패는 나의 무공 성취도에 따라 결정 지어질 테니까.”
덤덤하게 말하는 동하를 향해 최룡이 급히 물었다.
“저희는 뭐 준비할 게 없습네까? 조직원들을 정비해서 그날 대결장을 겹겹이 에워쌀까요?”
동하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천중천 수뇌부와의 대결은 아마도 시린핑 주석의 관저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 그런데 어떻게 조직원들을 동원할 수 있겠나?”
“네에? 시린핑 주석의 관저에서 싸울 거라고요?”
동하의 말에 최룡과 간부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래, 그러니까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대신 대결 날짜가 확정될 때까지 내가 수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넵! 그건 걱정 마시라요.”
“절대로 보스를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 * *
짙은 구름에 달빛마저 사그라져 칠흑처럼 어두운 공터에 동하는 홀로 정좌를 하고 앉아 있었다. 동하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수련에 집중하기 위해 리차오 빈민촌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시린핑 주석의 전갈이 있을 때까지 이곳에서 홀로 무공 수련에 매진할 결심이었다. 그는 현재 입월합벽의 경지에 올라 강환을 구사할 수 있는 완숙한 초절정의 고수였다. 하지만 현 수준에서 최소 한 단계 이상 발전하지 못한다면 천중천의 세 수뇌부에게 당할 수밖에 없으리란 것이 동하의 예측이었다.
동하가 자신의 예측을 확인하기 위해 나직하게 이진산을 불러보았다.
“어르신, 거기 계십니까?”
[그래, 나 여기 있다.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목소리를 그렇게 좍 까느냐, 이놈아?]
‘어르신의 세 제자인 장렌, 천룽, 왕차이의 무공의 경지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그게 뭐가 중요해? 중요한 건 상대가 아니라 너 자신이라고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느냐?]
이진산이 역정을 냈지만 동하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말씀해 주십시오. 그들이 얼마나 강한지 알아야 저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크흐흐흠…….”
끝내 못 마땅한 듯 신음을 흘리던 이진산이 내뱉듯이 말했다.
[노부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 그 세 놈은 지금의 동하 딱 네놈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강환의 경지라는 말씀입니까?’
[그렇다.]
‘그렇다면 지금은……?’
[당연히 한 단계 더 발전했겠지.]
‘저의 단계에서 한 단계 더 발전했다면 그건 대체 어느 정도의 경지입니까?’
[…….]
잠시 뜸을 들이던 이진산이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강환의 다음 경지는 바로 무형검의 경지니라!]
‘무형검이오……?!’
낯선 용어에 고개를 갸웃하는 동하를 향해 이진산이 낮게 깔리는 소리로 설명했다.
[우리가 기를 발현하여 만들어낼 수 있는 최강의 무기는 바로 강기이다. 그리고 이 강기에 절정에 오르면 강기로 검을 만들어낼 수 있는 무형검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평소에는 눈에 보이지 않으나, 그 주인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기를 일으켜 뽑아낼 수 있는 이 무형검은 세상에서 가장 예리하여 잘라내지 못할 물체가 없느니라.]
동하가 저도 모르게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그러니까 장렌, 천룽, 왕차이 이 세 사람이 이 무형검의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란 말씀입니까?’
[노부의 생각에는 그러할 것이라고 믿는다.]
동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가장 궁금한 것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럼 저도 단 며칠의 짧은 시간 안에 이 무형검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 겁니까?’
[당연히 가능하다.]
‘어째서 그리 확신하시는 겁니까?’
[그야 노부도 완숙한 무형검의 경지에 이르렀었으니까.]
순간 동하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그러니까 어르신이 다다른 경지라면 저도 무조건 다다르게 된다는 말씀입니까?’
[이놈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노부가 언제 그렇게 말했느냐?]
급 당황하는 이진산을 향해 동하가 따지듯이 말했다.
‘어르신께서 방금 그렇게 말씀하셨잖습니까? 제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노, 노부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노부가 다다른 경지에 대한 오의를 네놈에게 전수해주면 똑똑한 네놈이 찰떡같이 알아듣고 따라올 것이라 믿고 있을 뿐이야.]
‘으음…….’
동하는 알 수 없는 찜찜함을 느끼며 신음을 흘렸다.
이 영감이 나한테 분명 뭔가를 숨기고 있어.
그게 대체 뭘까? 이거 왠지 느낌이 쎄한데.
강한 의문이 엄습했지만 동하는 그 실체를 확신할 수 없었기에 대응 또한 불가능했다.
여러 생각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동하의 머릿속에서 이진산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빨리 운기를 시작하지 않고 뭘 꾸물거리고 있느냐? 내일이라도 당장 노부의 제자들과 맞닥뜨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아, 알겠습니다.’
이진산의 재촉에 동하는 어쩔 수 없이 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웅!
그의 중단전을 빠져나온 맑은 기운이 온몸의 혈맥을 따라 돌기 시작했다. 동하의 기의 끝자락을 붙잡고 온몸 구석구석까지 최대한 부드럽게 흘려 보내는데 집중했다. 동하는 느리지만 천천히 기를 돌리며 새로운 경지를 향해 신중하게 나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고요하던 기운이 그의 통제를 벗어나 급류처럼 사납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어억! 이, 이게 왜 이러지?”
동하가 서둘러 기의 끝자락을 움켜잡고 통제하려고 해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난폭한 기운이 그의 온몸 핏줄울 터뜨려 버릴 듯 팽팽하게 부풀리며 마구잡이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앗!
“크흐흐흡!”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며 동하는 필사적으로 기운을 다스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기운은 점점 더 사납게 날뛰며 제멋대로 치달렸다. 이러다간 꼼짝없이 주화입마에 빠지겠다 싶어 동하가 이진산을 급히 불렀다.
‘어르신! 기운의 흐름이 이상합니다! 아무래도 운기를 멈춰야 할 것 같습니다!’
[멈추지 마라!]
‘네? 그게 무슨……?!’
당황하는 동하를 향해 이진산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가 마음대로 뛰어놀 수 있도록 그냥 놔두라는 말이다.]
‘네? 저의 통제를 벗어난 기를 그냥 내버려두란 말씀입니까? 그러다간 주화입마에 빠지게 될 텐데요?’
[그럴 일은 없을 테니, 나를 믿고 그냥 둬!]
‘하지만 어르신!’
[이 미련곰탱이 같은 놈아! 이제부턴 노부가 네놈의 기를 다스릴 테니, 안심하고 시키는 대로 하란 말이다!]
‘어, 어르신께서 저의 기를 다스린다고요? 그게 대체 무슨……?!’
투화아아아악!
“으아아악!”
바로 그 순간, 거대한 괴물처럼 변해 버린 기운이 그의 혈맥을 뚫고 폭주하자 동하는 가슴이 쪼개지는 통증을 느끼며 처절하게 비명을 내질렀다.
화아아아아아악!
동하의 머리카락이 허공으로 곤두서고, 옷자락이 찢어질 듯 펄럭이며 머리 위로 밝고 세찬 기광이 치솟았다. 그 맹렬한 기운은 밤하늘을 어둠을 몰아내고 쭉쭉 뻗쳐올라가더니, 하늘을 끝까지 솟구쳤다.
“컥……, 커헉……!”
입을 떡 벌린 채 가쁜 숨을 토해내는 동하의 두 눈에서 시퍼런 안광이 뿜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초점이 없는 그의 눈동자는 이미 이지를 상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크흐흡!”
동하가 마침내 고개를 천천히 떨구며 정신 줄을 완전히 놓아 버렸다. 순간 하늘까지 치솟았던 기광도 천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츠츠츠츠츠츠!
그리고 마침내 그의 머리 위로 밝게 빛나는 한 자루의 검이 완성되었다. 세상의 그 어떤 물체라도 단숨에 베어 버릴 듯 예리해 보이는 그 검은 이진산이 살아생전에 최후의 경지로 완성했던 무형검이 분명했다.
[드디어……, 드디어……!]
고개를 떨구고 있는 동하의 머릿속에서 이진산의 희열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순간 동하가 고개를 번쩍 쳐들며 대소를 터뜨렸다.
“크핫하하하하! 드디어 동하 이놈의 몸이 노부와 완전한 일체화가 이루어졌느니! 이제 이 몸의 주인은 강동하가 아니라 이진산이다!”
분명 동하의 입으로 웃으며 외치고 있었지만, 그 영혼의 주인은 더 이상 동하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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