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71화. 불길한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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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화. 불길한 예감
”보스,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며칠 후 아침에 동하가 둥청 시장의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쑨웬이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동하의 안색이 너무 어두웠던 것이다.
“아니, 괜찮아.”
동하가 억지로 미소 지으며 소파에 앉았지만 최룡과 탕시린이 따라 앉으며 불안한 듯 말했다.
“형님, 정말 안색이 안 좋으십네다. 혹시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는데 실패하신 겁네까?”
“실패했네, 실패했네. 이젠 꼼짝없이 그 천중천이란 놈들한테 당할 수밖에 없겠네.”
혀를 끌끌 차는 탕시린을 향해 최룡이 눈을 부라렸다.
“이놈의 에미나이가 왜 자꾸 재수 없는 소리를 하고 자빠졌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고 있고만 뭐가 재수 없는 소리야. 그리고 뭐 에미나이? 야, 북조선 촌놈! 너야말로 뒤져볼래?”
“뭐이 어드레?”
티격태격하는 최룡과 탕시린을 향해 동하가 살짝 짜증기가 베인 목소리로 말했다.
“다행히 운 좋게도 무형검의 경지에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니까 쓸데없이 다투지들 말라고.”
“그게 정말이십네까, 형님?”
“정말 신급 경지라는 무형검의 경지에 성공했어?”
최룡과 탕시린이 언제 다퉜나 싶게 나란히 입을 떡 벌렸다.
창첸과 우레이도 반색하며 다가왔다.
“경하드립니다, 보스! 드디어 인간이 오를 수 있는 최후의 경지에 오르셨군요!”
“저도 이름만 들었지만 무형검의 경지가 실존하는지조차 몰랐습니다!”
모두들 흥분하고 있었지만 동하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무형검의 경지에 오르는 순간의 기억이 흐릿하여 확실하게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동하는 그 놀라운 경지가 자신의 의지가 아닌 이진산의 의지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자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이진산 어른의 경지에 접근하고 있는 게 아니라, 이진산 어른 그 자신이 되어가고 있는 건지도 몰라!’
동하가 골치 아픈 듯 양손 엄지로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고민에 잠겼다. 물론 이진산은 절대 아니라고 박박 우겨댔지만 동하는 이제 자신의 육신이 이진산에게 완전히 지배당하지나 않을지 두려워하고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의 영혼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나의 추억, 나의 생각, 나의 의지가 완전히 지워지고 나란 존재가 영영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동하는 지금이라도 당장 이진산의 영혼을 자신의 몸속에서 몰아내고 싶었다. 물론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나가라고 해서 나갈 이진산도 아니었고, 그의 영혼을 강제로 쫓아낼 방법 또한 없었다. 더구나 천중천과의 대결을 앞둔 시점에서 이진산이 사라져 버린다면 어차피 그들의 손에 개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질 않아!’
전설의 경지에 올랐음에도 기뻐하기는커녕 머리를 싸매고 있는 동하를 흑룡회 간부들이 의아한 듯 지켜보았다.
‘그래,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어! 이진산 어른과 이 문제에 대해 담판을 지어야 해. 그런 다음에야 천중천과 마음 놓고 싸울 수가 있을 거야.’
결국 동하는 천중천과 중국 삼합회 세계의 패권을 놓고 세기의 대결을 벌이기 전에 이진산과 담판을 짓기로 결심했다. 그래야 모든 의혹을 털어내고 전력을 다해 싸울 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이번에도 어그러지고 말았다. 하필이면 그때 곽치상 서기가 방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강 보스, 마침 있었구만.”
“곽치상 서기님!”
“허허허! 불과 열흘 만에 만났는데, 자네 눈빛부터가 달라졌군. 그사이 새로운 성취를 이룬 것인가?”
동하가 찜찜한 표정을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운 좋게도 그리되었습니다.”
곽치상이 대견하다는 듯이 동하의 어깨를 두드렸다.
“장하네, 장해! 덕분에 나도 안심하고 이걸 전할 수가 있겠군.”
“이게 뭡니까?”
곽치상이 내민 봉투를 동하가 조심스럽게 받았다.
“직접 열어보시게.”
봉투를 열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카드를 펼친 동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초대장이 아닙니까?”
“그렇다네. 내일이 바로 시린핑 주석님의 칠순 생신일세. 그간 가족끼리 조촐하게 생일을 보내셨던 주석님께서 이번만은 당 간부들을 대대적으로 초대하여 축하연회를 열기로 하셨다네.”
동하가 긴장한 눈으로 곽치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럼 그날 천중천의 세 수뇌부도 초대되는 겁니까?”
“그러니 자네도 초대장을 받았겠지?”
‘이런 빌어먹을……!’
동하는 곽치상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속으로 욕지기를 내뱉었다. 이진산과 결판을 짓기도 전에 천중천과 일전을 벌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입술을 질끈 깨물고 뚫어져라 초대장을 들여다보는 동하를 바라보며 곽치상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나?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아, 아닙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동하가 품속에 초대장을 갈무리하며 억지로 웃어 보였다.
“주석님께 초대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꼭 전해주십시오. 내일 감사하는 마음을 담은 선물을 들고 찾아뵙겠다고요.”
“그래, 자네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곽치상을 향해 최룡이 불쑥 외쳤다.
“저기, 서기님!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습네까?”
“최룡, 무례하다!”
최룡을 꾸짖는 동하를 곽치상이 손을 들어 말렸다.
“아아……, 괜찮네. 그래, 궁금한 게 무엇인가?”
“내일 주석님이 생신 축하연에 저희들도 참석하면 안 되겠습네까?”
“자네들까지……?”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곽치상을 향해 탕시린은 물론 장첸과 우레이까지 간절하게 부탁했다.
“저도요! 저도 꼭 가고 싶습니다!”
“저희들도 가고 싶습니다.”
“원래 생신 축하연이란 게 하객이 많을수록 흥이 나는 법 아닙니까?”
동하가 다시 한번 간부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어허! 다들 정말 왜 이러지?”
하지만 곽치상의 입에서는 의외의 말이 흘러나왔다.
“그렇지! 축하연이란 게 원래 축하해주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은 게지. 알겠네. 여기 있는 사람들도 모두 내일 강 보스와 함께 오도록 하게. 내가 내일 일찍 관용차를 보내주겠네.”
“감사합네다, 서기님!”
“서기님, 완전 멋지십니다!”
곽치상 서기를 향해 호들갑스럽게 엄지를 세우는 최룡과 탕시린을 동하가 황당한 듯이 쳐다보았다.
* * *
다음날 오전 일찍 동하와 최룡, 쑨웬, 탕시린, 창첸, 우레이는 곽치상 서기가 보내준 세 대의 차량에 나눠 타고 주석관저로 향했다. 최룡과 나란히 뒷좌석에 앉아 동하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젠장, 그렇게 불렀는데 끝까지 대답을 안 해주시는군!’
동하는 지난 밤늦게까지 이진산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불러도 이진산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럴수록 동하는 이진산이 자신의 영혼을 몰아내고, 제 육신을 차지하려고 한다는 의심이 점점 더 깊어졌다. 아무리 의심이 깊어져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므로, 미치고 펄쩍 뛸 일이었다. 당연히 동하는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컨디션이 최악일 수밖에 없었다.
옆자리에서 동하의 안색을 살피던 최룡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님, 안색이 왜 그리 어두우신 겁네까?”
“…….”
“역시 천중천과의 싸움이 부담스러우신 겁네까?”
“…….”
최룡이 주먹을 불끈 쥐며 결의를 불태웠다.
“그것 때문이라면 아무 걱정마시라요. 저희가 왜 기를 쓰고 주석님의 생신 축하연에 끼겠다고 했겠습네까? 만약에 형님이 그 장렌, 천룽, 왕차이란 놈한테 당하실 것 같으면 저희 간부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목이라도 물어뜯을 작정입네다.”
그제야 동하가 천천히 눈을 뜨고 아직도 주먹을 말아 쥐고 있는 최룡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피식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고맙다, 최룡. 네가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다.”
“형님도 참…….”
최룡이 감동을 받았는지 검지로 시큰해진 코끝을 문질렀다.
그래, 육체를 빼앗기든 영혼을 빼앗기든 신경 쓰지 말고 일단 천중천과의 대결에 집중하자!
그것이 나를 진심으로 위해주는 이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길이다!
최룡 덕분에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은 동하가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우우……!”
마침 그때 그들을 태운 차량이 주석관저의 정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 * *
“와! 파티의 규모가 으리으리하구만!”
차에서 내려 경호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주석관저의 앞마당으로 들어선 동하와 일행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족히 백여 명은 됨직한 하객들이 운동장처럼 널찍한 앞마당에 삼삼오오 모여 손과 손에 샴페인 잔을 하나씩 들고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사이사이에 온갖 산해진미가 차려진 뷔페 테이블들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사이를 웨이터와 웨이트리스들이 분주히 오가며 시중을 들고 있었다.
하객들 모두 공산당의 고위급 간부들이나 대기업의 오너들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들 너머로 연회장 중앙의 상석에 앉아 있는 시린핑 주석과 그 좌우편에 포진한 여섯 명의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시린핑 주석을 포함하여 이 일곱 명의 상무위원들이야말로 중국 공산당을 움직이는 최상위 지도자들이었던 것이다.
“정말 여기서 천중천의 세 고수와 대결을 펼치는 거 맞아?”
탕시린이 옆을 지나가는 잘생긴 웨이터의 쟁반에서 샴페인 잔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최룡도 재빨리 술잔을 하나 들며 황당한 표정으로 연회장 한구석에서 수준 높은 연주를 하고 있는 미니 오케스트라를 쳐다보았다.
“만약 여기서 대결이 벌어진다면 TV로 생중계되는 것이나 마찬가지겠는데요.”
쑨웬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그걸 노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그걸 노리고 있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탕시린이 의아한 듯 묻자, 동하기 만면에 유쾌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시린핑 주석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시린핑 주석으로선 내가 천중천 세 고수와의 싸움에서 이길지 패할지 장담할 수가 없을 거야. 그러니까 공산당 고위 간부들과 대기업 오너 등 중국 사회의 지도층들을 모조리 불러 모은 거겠지. 그래야만 내가 패한 후에도 나 하나 죽는 걸로 끝나고, 자신에겐 화가 미치지 않을 테니까.”
“아……!”
비로소 알아들은 듯 입을 반쯤 벌리는 탕시린의 얼굴을 쳐다보며 동하가 쐐기를 박았다.
“아무리 장렌, 천룽, 왕차이 그 셋이 잔혹한 성격이라 해도 이 많은 지도층 앞에서 중국 국가주석을 살해할 수는 없지 않겠어?”
순간 최룡이 미간을 확 찌푸렸다.
“그러니까 뭡네까? 만약 일이 잘못되면 형님만 희생시키고, 자기는 미꾸라지처럼 쏙 빠져나가겠다는 거 아닙네까? 이거 기분이 영 더러운데요.”
“기분 더러울 거 없어. 시린핑 주석으로선 나를 믿고 이 정도 모험을 걸어준 것만 해도 결코 쉬운 결단은 아니었을 테니까.”
“으으음…….”
주변의 경쾌한 분위기와는 달리 동하의 일행들의 어깨를 묵직한 침묵이 짓눌렀다. 왠지 시린핑 주석이 동하가 패할 것을 가정하고 판을 벌인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여어~ 강 보스! 이쪽으로 오시게!”
이때 시린핑 주석이 동하를 알아보고 팔을 번쩍 쳐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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