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교류전이 끝난 후 (2)
* * *
나를 간절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아이시를 보자 방금까지 혼잡했던 머릿속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만히 아이시를 보면서 생각을 하고 있자 한 가지 잘못된 생각에 다다를 수 있었다.
'왜 원작에 등장하지 않고 이번에 새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가족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거지?'
나는 맨 처음 나에게 띄어진 푸른 메시지 창을 떠올렸다.
'분명히 '작품에는 없던 새로운 등장인물'이라고 했지만 나에 대한 다른 말들은 없었어.'
'그리고.. 이 아이에 표정을 보니 거짓이라고 하긴 어려워.'
그만큼 아이시라는 소녀의 간절한 표정은 진실돼 보였다.
이러한 생각들이 내 머릿속으로 점차 흘러들어오자 나는 우선 인정하기로 했다.
'이 소설 속에는 내 가족들이 존재한다는 것.'
머릿속이 차가워진 만큼 생각이 빨리 정리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아이한테 미안한 짓을 한 거구나.'
그동안 같이 지내왔던 자신의 가족이 어느 날 가족이 아니라고 한다면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기에 나는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그런 미안한 감정을 담아 내 넥타이를 잡고 있는 소녀의 손을 빼낸 뒤 소녀, 아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렇게 속상해하지 마, 농담이니까 말이야."
내 말에 아이시는 훌쩍이며 대답했다.
".. 농담?"
그 순간 아이시의 눈에 생기가 약간이지만 돌아오기 시작했다.
"응, 농담."
"어째.. 서?
"아이시가 오빠를 보자마자 투덜거리고 오빠 말을 자꾸 끊어서?"
내 말을 듣자 아이시의 눈은 맨 처음 봤을 때처럼 생기 넘치는 눈동자로 돌아왔지만 그 눈에는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내가 그 맺힌 눈물을 보고 "잠깐..!"이라고 말했지만 아이시는 서글프게 울기 시작했다.
"나.. 나는, 오빠가 진심으로.. 말한 줄 알고.. 흑! 얼마나 무서웠는데에!"
아이시가 나를 탓하며 울자 주변에 시선이 우리에게로 쏠렸다.
그렇기에 나는 아이시를 어떻게든 달래보려고 하였지만 원래 세계에서도 단 한 번도 나보다 어린애를 달래 본 적이 없기에 아무것도 못하고 어버버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내 손에 들린 민초 아이스크림이 눈에 들어왔고 나는 울고 있는 아이시의 입에 민초 아이스크림을 먹였다.
아이스크림을 먹은 아이시는 훌쩍거리며 입을 몇 번인가 오물오물거리더니 약간이지만 표정이 풀리게 되었다.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아이시에게 민초 아이스크림을 먹여주며 결국은 그냥 아이스크림을 아이시에 손에 올려주었다.
그러자 아이시는 잠시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울지 않고 소매로 눈물을 닦은 뒤 나를 보고 우물쭈물거리며 물었다.
"오빠, 나는 오빠 동생이지?"
나는 다시 한번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아이시 에파치아는 에르문 에파치아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야."
그러자 아이시는 해맑게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보자 나 또한 자동적으로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아이시에게 물었다.
"아이시,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오빠가 사줄게."
"진짜?"
"당연하지."
"그러면.. 저거!"
아이시가 잠시 고민을 하며 가리킨 곳은 2학년 B반이 개업한 제과점이었다.
아이시와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 또한 제과점을 한번 들려볼 생각이었기에 곧바로 나는 아이시와 제과점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주변에 풍기는 빵 냄새가 느껴졌다.
'괜찮은데?'
솔직히 어느 정도는 잘 만들 줄 알기에 제과점을 했을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가게로 들어오니 생각이 바뀌였다.
냄새로는 어느 정도가 아니라 수준급인 거 같았다.
슬쩍 아이시를 보자 아이시 또한 나와 마찬가지인지 '오!'라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곧바로 빵 몇 개를 고르기 시작했다.
우리 둘이서 빵 5개를 골랐고 카운터에서 계산을 한 뒤, 테라스로 향했다.
테라스에 앉은 우리는 곧바로 빵을 한입 물었다.
그리고 똑같은 한 단어가 나왔다.
""맛있어!""
내가 먹은 메론빵은 한입 물자마자 입안에서 빵이 살살 녹으며 그 틈으로 메론크림이 느껴진다.
심지어 빵과 메론크림 조합이 느끼하지 않아 굉장히 먹기 좋았다.
그렇게 속으로 감탄을 하며 먹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후배! 그 빵, 맛있어?"
후배를 이렇게 대충 말하면서 재밌어하는 듯 부르는 사람은 내가 알기로 한 명 있기에 나는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들리며 대답했다.
"맛있어요, 유진 선배."
내 말에 유진은 재밌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하연이 좋아하겠는데?"
"네?"
내가 잘못 들었나?
갑자기 여기서 하연 마르피아가 왜 나와?
"그도 그럴게, 지금 너희 둘이 먹고 있는 빵은 하연이 만든 거니까."
나는 이어진 유진에 말에 빵을 먹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 그때 내 앞에 앉은 아이시가 유진에게 말했다.
"나중에 이 빵 진짜 맛있다고 전해주세요!"
유진은 알겠다고 말한 뒤 아이시에게 물었다.
"근데.. 누구?"
유진의 물음에 아이시는 먹던 빵을 내려놓고 대답해 주었다.
"저는 아이시 에파치아라고 하고, 에르문 오빠에 동생이에요"
"헤에~ 나는 너희 오빠 선배인 유진 마르피아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나는 혹시나 유진이 아이시에게 뭐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그리고 그때 테라스로 한 여자 선배가 뛰어오더니 주변을 살피고 유진을 바라보았다.
"유진! 하연이가 당장 돌아오래!"
그 말을 한 뒤 여자 선배는 다시 들어갔고 유진 또한 우리에게 인사를 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 빵들을 하연 마르피아가 만든 것에 감탄하며 아이사와 함께 빵을 먹고 나왔다.
그리고 빵 2개가 남았는데 그 빵들은 아이시에게 나중에 먹으라고 넘겨주었다.
그 뒤로 나와 아이시는 여러 점포를 돌아다녔다.
아이스크림 가게, 오락실, 방 탈출 등등 말이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니 8시가 거의 다 되어갔다.
시간을 확인한 아이시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오빠, 나 슬슬 집으로 가봐야 할 거 같아."
"응? 불꽃놀이 안 보고 갈 거야?"
내 말에 아이시는 입을 내밀며 말했다.
"통금이 8시 30분이라 못 볼 거 같아."
나는 그런 아이시를 보며 말했다.
"그러면 지금은 일찍 가고 다음에는 같이 보자."
"그래! 어차피 내년에는 같이 볼 수 있으니까 말이야!"
아이시는 흔쾌히 대답한 뒤 가보겠다고 나에게 손을 흔들며 아카데미 입구 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나는 뛰어가는 아이시를 보며 생각했다.
'내년에 무슨 불꽃놀이가 따로 있나?'
아이시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시계를 확인해 보니 8시가 딱 돼있었다.
"소화 좀 할 겸 걸을까?"
아이시를 만나기 전부터 먹거리들을 점령하고 다녔기에 소화를 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아카데미에 마련돼있는 공원으로 향했다.
축제로 인해 공원은 사람이 별로 없었기에 선선한 저녁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원래 이렇게 사람이 없었나?"
아무리 축제 때문에 사람이 없다고는 해도 지금처럼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은 이상했다.
심지어 들려오는 소리는 바람소리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느낌이었기에 나는 부적을 꺼내들고 능력을 발동시키려 하는데 앞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능력 사용은 자제해 줄래?"
처음에는 나무의 그림자 때문에 모습이 제대로 안 보였지만 가로등에 불빛이 비치자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빛을 받아 더욱 빛나 보이는 은빛 머리카락, 검은 눈동자, 그리고 하얀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딱 봤을 때 어른스러워 보이는 한 여자가 내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겉모습을 보자마자 떠오른 사람은 있었지만 그 사람이 직접 이렇게 나올 리 없기에 우선 경계를 하였다.
내가 경계하는 모습을 본 그녀는 더 이상 내게 다가오지 않고 입을 열었다.
"나 기억 안 나?"
그 질문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게 나는 저 여자와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저런 은빛 머리카락을 보지도 못했다.
내 표정을 본 여자는 '아.'하면서 품에서 가면을 꺼내들었다.
"생각해 보니 이 모습으로 봤었구나."
여자가 가면을 착용하니 여자의 머리색부터 시작해서 여자가 입고 있는 옷이 바뀌였다.
갈색 머리, 검은색 정장, 아무런 장식 없는 하얀색 가면.
나는 저 모습을 한 사람이 기억이 났다.
"설마.. 경매장?"
내 대답을 들은 여자는 가면을 벗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역시 네가 맞았구나?"
나는 순간적으로 입을 막았다.
저 여자는 아직 내가 경매장 손님인 것을 확신하지 못했는데 내가 스스로 확인시켜준 꼴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자에게 물었다.
"나를 왜 찾은 겁니까?"
그러자 그 여자는 유진과 마찬가지로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말을 하였다.
"그야, 재밌는 사람인 거 같으니까."
내가 그 말에 어이없어한다는 표정을 지었고 여자는 신경 쓰지 않은 채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감사 인사를 전하러 왔어."
"감사 인사요?"
감사 인사라.. 내가 이 여자에게 감사 인사를 받을만한 일을 했나?
"경매장에 나타난 실패작을 죽여준 것에 대한 감사야."
생각해 보니 경매장에서 실패작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 떠올랐다.
'이 여자랑 실패작이랑 무슨 상관이야?'
내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이 여자가 일했던 곳인 경매장에서 실패작이 나왔다는 것뿐, 그 이상은 알지 못한다.
"그 실패작, 내가 놓친 거야."
"사람이었을 때 내가 막지 못해서 실패작으로 변한 거고."
정리하자면, 저 여자가 그 남자를 막지 못해 실패작으로 변한 거고 그 실패작을 놓쳐서 내가 대신 처리했다는 건가..
나는 불만 있는 얼굴로 여자를 노려봤다.
'아무튼 내가 고생한 건 전부다 저 여자 때문이라는 거잖아?'
내가 노려보자 여자는 내 시선을 은근슬쩍 피했다.
그런 행동에 내가 따지려고 할 때 여자가 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내가 일부로 그 사람이 너라는 걸 안 알리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노려보지 말아 줄래?"
뭐,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 나는 표정을 고쳤다.
그러자 여자는 내게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데 나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
"뭔데요?"
저 여자가 궁금한 거라..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저 여자가 맞는다면 나한테 딱히 물어볼 건 없겠지만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혹시 생각하던 사람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여자에 물음에 확신을 가졌다.
"너 진짜로 은류에 아는 사람 있어?"
나는 그 질문에 아주 잠깐 생각을 하다가 답을 꺼내었다.
"없는데요."
그러자 여자는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물었다.
"그럼 왜 이르벨이란 아이한테 은류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 거야?"
"그전에 그건 어떻게 아신 건데요? 분명 소리를 차단시켜버린걸로 아는데."
그러자 여자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그야 다 아는 방법이 있지."
뭔가 대답이 마음에 안 든 나는 마찬가지로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그럼 방금 질문도 알아서 알아보세요."
그 대답에 여자는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바닥에서 그림자가 튀어나와 내 몸을 묶었다.
그렇게 되어 나는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여자는 내게 걸어오며 말했다.
"은류에 아는 사람은 없는걸 알아. 내가 다 한 번씩 확인해 보고 오는 길이거든."
'아니, 그럼 대체 왜 물어본 거야?'
"그러니까 내가 너한테 제안을 하나 할까 하는데."
"제안이요?"
"응, 너한테도 나쁘지 않을 제안이야."
나는 한번 들어보겠다는 의미를 담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여자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내가 은류에서 아는 사람이 되어줄게."
"네?"
여자는 내 바로 앞까지 걸어온 뒤 내 눈을 마주 보곤 마나를 슬며시 끌어올리며 말했다.
"내 이름은 소피아 크리스틴, 은류의 길드장이야."
"어떻게.. 나랑 아는 사람 할래?"
역시, 내 앞에 있는 여자와 내가 생각하던 소피아 크리스틴은 같은 사람이었다.
나는 소피아 크리스틴 뒤에 일렁이는 검은 마나를 보고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네, 할게요."
소피아는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나를 묶은 그림자를 풀고선 자신의 기운을 가라앉혔다.
그리곤 나에게 물었다.
"그럼 나랑 아는 사람이 되었으니 한번 서비스해 줄게."
"서비스라면 어떤..?"
"네가 원하는 정보. 그 정보를 완벽하게 전달해 줄게."
나는 그 말을 듣고선 미소를 지었다.
"혹시 그 서비스, 지금 당장 가능할까요?"
"지금? 안될 건 없지."
안 그래도 당장 알아봐야 할 정보가 있었기에 바로 말했다.
"저, 에르문 에파치아의 가족에 대한 것을 모조리 조사해 주세요."
한번 내 가족에 대해서 알아봐야 할 거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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