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개학식 (1)
* * *
뜨거운 날씨,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씨, 나는 기숙사 침대에 앉아서 아카데미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 왜 바로 개학이냐."
내가 이렇게 축 처져 있는 이유는 명확했다.
"하.. 알고있었지만 바로 개학하는건 좀 심적으로 않좋네."
그렇다, 사나가 있는 던전을 봉인하고 밖으로 나오니 시간은 한 달 가까이 흘러 개학 하루 전이었고, 그것을 알고 있던 나는 태평했지만, 체이선배가 매우 놀라면서 곧바로 나를 기숙사에 박아넣어 버렸고, 게이트와 관련된 것들은 자기가 알아서 처리한다면서 걱정하지 말란다.
'음.. 던전 환불했다는 거 말 안 해줬는데 상관없겠지?"
나는 애써 자기 합리화를 하며 반으로 향했다.
뒷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이들은 곳곳에 모여 방학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애들이 왔나 확인하였고, 평소 앉아있는 자리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르벨과 네이드를 볼 수 있었다.
"진짜.. 방학 동안 아버지한테 일방적으로 맞으면서 굴러다니니까 몸이 남아나질 않아.."
"그래 보여, 지금 너를 보면 5년은 늙은 거 같다니까?"
"에이, 5년이 아니라 10년 아니야?"
"어떤.. 어? 에르문!"
내가 대화에 끼어들자 이르벨과 네이드가 반갑게 인사하였고 나는 자리에 앉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네이드는 방학 동안 굴러다녔고.. 이르벨, 너는?"
"나는 이곳저곳 좀 돌아다니면서 친화력을 높이고 다녔어."
그렇게 말하며 이르벨은 손을 튕겼고, 이르벨의 주변에는 푸른색과 연두색에 빛 무리가 떠다녔다.
'물의 정령은 원래 있었고, 바람의 친화력을 높인 거구만? 그래도... 1학년 2학기 시작할 때 정령 두 마리면 확실히 소설보다 성장이 빠르네.'
내가 속으로 이르벨의 빠른 성장에 감탄하고 있을 때, 뒷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어? 반즈! 어서 와!"
"반가워 네이드. 아, 에르문이랑 이르벨도 반가워."
반즈는 언제나 그랬듯 이야기에 흐름에 자연스레 녹아들었고 나는 반즈에게 질문했다.
"반즈, 넌 방학에 뭐했어?"
"아.. 난 그냥 검만 휘두르면서 훈련했어."
그 말에 네이드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반즈.. 너도 나랑 같은 신세였구나? 밖에서 놀지도 못하고! 온종일 훈련만 하는 게 삶이야? 그치?"
그렇게 애들이 떠드는 것을 보며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역시 반즈는 언제 한번 정신치료 좀 해줘야겠네.'
평소와 같은 반즈처럼 보이기에 다른 애들은 눈치를 못 챈 것 같지만 문많아 소설을 끝까지 다 본 나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반즈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그리고 반즈가 이상한 이유를 알고 있는 나는 반즈가 어서 빨리 기운을 차릴 수 있게 도와줄 셈이었다.
'물론 리아도 마찬가 ㅈ..'
내가 리아를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딱 리아가 문을 열고 들어왔고, 나는 리아를 보고선 당황했다.
"어..? 리아?"
내가 자신을 부르자 리아는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고 나는 반가워서 그랬다는 핑계를 대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뭐야, 왜 리아가 정상적이야?'
분명 소설에서는 리아가 피폐해져서 개학식에 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리아는 피폐하다는 단어는 일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생기가 가득했다.
예상과는 다른 상황에 나는 반즈에게 했던 것처럼 질문을 날렸고 내 질문을 들은 리아의 답변은 내 예상이 틀렸다는 것을 확실시해주었다.
"나? 나는 지인 분에게 마법을 배우면서 편히 놀다 왔는데?"
그렇게 말하며 리아는 품에서 어떤 물건을 하나 꺼냈다.
"봐봐 기념품으로 이것도 사왔다?"
그 물건에 정체는 다름 아닌 벚꽃 잎 모양에 키홀더.
리아는 그 열쇠고리를 지인 분이 사주었다면서 이야기하였다.
나는 즐겁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리아를 보며 이 상황을 대충 정리해보았다.
'그러니까, 결론은 반즈는 원작대로 흘러갔고, 리아는 원작을 빗겨나갔다.'
그렇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였다.
'왜? 어째서 반즈는 그대로고 리아는 빗겨나간 거지?'
결국 나는 이 해답을 칼리스가 들어오기 전까지 떠올리지 못했고, 어딘가 찝찝한 상태로 조회를 들었다.
칼리스는 우리를 한번 쭉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모두 오랜만이다. 방학 동안 잘 쉬다 왔나?"
"네~"
"대답은 잘하는군. 일단 오늘이 개학인 만큼 딱히 큰 일정은 없다. 단, 능력평가가 있을 것이다."
그 말에 아이들이 약간 소란스러워졌고, 칼리스는 손뼉을 한번 치며 말했다.
"왜 이렇게 소란스럽지? 당연한 것 아닌가? 2학기가 되었기에 다시 한 번 너희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 뿐이다만?"
칼리스의 말이 정론이었기에 학생들은 금세 조용해졌고 그것이 마음에 든 칼리스는 훈련장으로 따라오라는 한마디만을 한 채 밖으로 빠져나갔다.
"흠.. 그러니까 개학하자마자 선생님이랑 한판 해야 한다는 거네?"
네이드에 절규가 섞인 질문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현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렇지? 그리고 아마 좀.. 많이 빡셀 거야."
내 의문스러운 말에 네이드가 몸을 흠칫 떨었고, 반즈가 네이드의 등을 다독여주면서 우리는 다 같이 훈련장으로 출발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훈련장에 도착하였고, 얼마 걸리지 않아 반 아이들이 전부 다 도착하자 칼리스가 입을 열었다.
"이번 능력평가는 첫 능력평가의 반대 순서로 시작하겠다. 또한, 저번에는 내가 방어만 했지만, 이번에는 대련자의 능력 수준에 맞추어 공격을 실행할 것이다."
그 말에 아이들은 아까보다 더 소란스러워졌다.
성화길드의 부 길드 장이자 현 7급인 칼리스가 방어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격도 한다는 것은 능력평가에서 두들겨 맞을 준비를 하라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저번 훈련에 얼떨결에 칼리스와 대련을 해본 나는 지금 능력평가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한 명 한 명 칼리스와 대련을 위해 대련장으로 들어갔고, 모두 어딘가 다치거나 비틀거리며 나왔다.
그 중에 네이드, 반즈, 이르벨, 리아는 대련장에서 나오자마자 보건실로 이동했을 만큼 심하게 다쳐있었고, 나는 묵묵히 차례를 기다렸고 마침내 내 차례가 와서 곧바로 대련장으로 들어갔다.
대련장에 들어가자마자 느껴진 것은 뜨거운 열기.
아마, 칼리스의 연속적인 능력 때문에 지금의 환경이 조성됐을 거다.
내가 들어가자 칼리스는 처음 대련장에 들어갔던 모습 그대로 나를 불렀다.
"왔나?"
"왔죠?"
"뭐, 아까 설명을 들었다시피 이번 능력평가는 너와 나의 대련이다. 궁금한 건?"
"음.. 반즈랑 애들 상태가 유독 심각하던데 어떻게 된 건가요?"
내 질문에 칼리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많이 성장했길래, 그만큼 더 격하게 했을 뿐이다."
나는 칼리스의 대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준비자세를 잡았고, 칼리스가 말했다.
"그럼 시작하지."
칼리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능력을 발동시킬려했지만, 명치에서 강한 충격이 느껴졌고, 나는 뒤로 멀리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커.헉.."
나는 고개를 겨우 들어 올려 앞을 바라보았고 그곳에는 어느새인가 내가 원래 있던 자리에 서 있는 칼리스가 보였다.
자리에서 일어나고 자세를 잡을 시간을 벌기 위해 나는 부적 여러 장에 능력을 부여시켰다.
"[쏠 사] & [번개 전]"
칼리스를 향해 쏘아지는 부적주변에 번개가 흐르기 시작했고, 번개의 속성을 부여받은 부적은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날아갔다. 당연히 나는 이 공격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 수 있다 생각하여 부적을 날리자마자 일어나고 있었지만, 반쯤 일어났을 때, 내 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림자를 보자마자 나는 [밀칠 배]를 사용하여 나를 뒤로 밀쳤고, 곧바로 [솟아날 분] & [꿰뚫을 관]을 사용하여 내 앞에 있는 모든 바닥에서 가시가 솟아났다.
나는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고 헛웃음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그럴게..
'아까 날린 부적들은 진작에 재가되어 흩날리고 있고, 칼리스주변에는 바닥에서 솟아난 가시들이 전부 짓눌려있다라.. 허, 이게 무슨 대련자의 수준에 맞추어서 대련을 하는 거야, 그냥 양학이지.'
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칼리스는 내게 아주 천천히 한 걸음씩 옮기며 말했다.
"에르문, 내가 너무하다고 생각하나?"
"당연한 거 아니에요?"
"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 어째서 수련회 때 나츠라를 상대하러 올라간 것이지?"
'..!'
"지금 나는 7급 초에 힘을 내고 있다. 즉, 네가 상대한 나츠라와 똑같은 상태란 것이지."
"....."
"다시 한 번 물으마, 왜.. 왜 나츠라를 상대하러 올라간 것이지?"
나는 천천히 입을 떼었다.
"확신이 있었어요. 그 당시에 나츠라를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확신? 무슨 확신이지?"
나는 아공간을 열어 '진실의 형태'를 꺼냈고, 칼리스를 향해 날려주었다.
"진실의 형태, 사용자가 어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던 진실로 만들어주는 아티팩트에요. 그리고 저는 이것을 통해 제가 나츠라와 동급이라 생각하였고, 잠깐 그것이 진실이 되어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칼리스는 내 말을 듣고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선 '진실의 형태'를 살펴보더니 반으로 찢어버렸다.
어차피, 이미 효력이 다한 것이기에 찢든 말든 상관없었지만, 칼리스에 기분이 매우 나빠 보였다.
칼리스는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천천히 입을 열었고.
나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왔다.
"..에르문, 지금부턴 이 악물고 버텨라. 죽기 직전까지 가기 싫으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