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개학식 (2)
* * *
칼리스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에르문을 바라보았고 곧바로 한쪽 손가락을 들어 [발화]를 발동시켰다.
[발화]가 발동되자 손가락 위로 사람 얼굴크기만 한 불덩이가 생겨났고 에르문을 향해 날렸더니 에르문은 부적을 사용하여 물로 이루어진 방어막을 만들어냈지만.
'약해.'
에르문의 현재 힘으로는 7급인 자신의 조금 작은 불덩이조차 막을 수 없었기에 불덩이가 물로 이루어진 방어막을 매우 빨리 증발시켜 에르문의 왼쪽 팔에 곧바로 직격했다.
"끄윽.."
에르문에 고통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깔끔하게 무시한 뒤, 다시 한 번 공격을 하려는 찰나.
에르문이 한쪽 팔을 부여잡은 채로 고통을 참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쌤, 왜 이러는지 이유라도 말씀해주시면 안 돼요..?"
이유를 알려달라라..
"이유야 간단하다, 그저 교육이다."
"..네?"
에르문이 의문 섞인 목소리를 내었고, 자신도 이것이 진실한 말이 아닌 그냥 형식상으로 꺼낸 말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이러고 있는 것은 그저 단순히 자신의 죄책감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고는 말을 할 수 없지 않나.
"[발화]"
몇년 전 사건과 수련회에서 일어난 일이 겹쳐 보인다고.
"[발화 화광길]"
그녀석과 너의 모습이 겹쳐 보여 자신의 마음에 죄책감이 밀려온다고.
"[발화 화꽃]"
그녀석처럼 되지 않고 오래 살아 대성했으면 좋겠다고.
어찌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은 바닥에 쓰러져 간신히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에르문에게 다가갔고,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쓰러져있는 에르문의 눈은 감길려하고있었지만, 눈빛만큼은 빛나고 있었기에 자신은 자연적으로 입을열 수밖에 없었다.
".
.
.
.
."
자신의 말이 끝났을 땐 에르문은 기절해있었고, 칼리스는 바로 전에 에르문의 눈빛을 떠올리며 에르문을 보건실로 데려갔다.
*****
눈을 떠보니 하얀색 천장이 보였고, 크게 숨을 쉬어 냄새를 맡아본 결과, 나는 여기가 어딘지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었다.
"보건실이네."
"정답이야."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내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서 막대사탕을 빨고 있는 레일라 히리아스가 있었다.
레일라 히리아스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우유 맛 사탕을 꺼내고선 내게 건네주며 말했다.
"능력평가에서 생긴 상처는 전부 치료가 끝났어. 그리고 널 그렇게 만든 칼리스한테도 열심히 뭐라 했으니까 나한텐 고마워하고 칼리스한테는 너무 뭐라 하지 말아 줘."
나는 상체를 일으키고 사탕을 받으며 말했다.
"감사해요."
"감사하지? 그럼 빨리 돌아가! 안 그래도 칼리스가 너네 반 애들 대부분을 나한테 보내서 힘들단 말이야."
"알겠어요, 바로 갈게요."
오늘 온종일 능력을 써댔을 레일라 선생님을 위해 나는 한 번 더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 뒤, 기숙사로 향하기 시작했고, 기숙사로 가는 길에 아까 받은 우유 맛 사탕을 꺼내어 입에 넣었다.
확실히 우유 맛사탕은 달콤했고, 맛있었다.
쨋든, 사탕을 음미하며 아까 칼리스에게 들은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칼리스가 한 말을 축약하자면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앞으로 위험한 일을 할거면 충분히 강해지고 난 후에 해라.
둘째, 강해졌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우선 1학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는 '1학년 최종평가'에서 매우 우수한 성적을 낼 것.
셋째, 반즈, 네이드, 리아, 이르벨은 방학 전보다 확실히 강해졌지만 나는 방학 전과 별 차이가 없으며 나를 포함한 5명 중에 현재 내가 제일 약하다는 것.
나는 이것들을 생각하며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우선 첫 번째부터 생각해보자면 1학년 2학기에는 좀 안정적이지만 위험한 큰 사고가 최소 2개 이상 일어난다.
그리고 두 번째, '1학년 최종평가'가 위험한 큰사고 중 하나이다.
세번째, 세 번째는.. 내가 안일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나는 단 한 번도 노력을 통해서 본연의 힘을 키우려고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일만 해도 전부 아티팩트를 얻으러 간 것이지, 내 본연의 힘을 키우러 갔던 것이 아니였다.
아, 본연의 힘을 키우기 위해 했던 일이 하나 있긴 하다. 바로 사나의 던전을 봉인한 것.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있다.
우선 힘을 키우기 위해선, 사나를 죽여서 던전을 클리어하거나 사나의 마음을 온전히 열어야 하는데, 둘 다 현재로서는 방법이 없어서 사실상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사실을 떠올린 나는 크게 한숨을 쉬며 한가지 결심을 했다.
"그래, 슬슬 노력할 때가 되긴 했지."
빙의를 한 입장에서 아무리 그래도 조주연보단 강해야 되지 않겠나?
나는 매우 빠르게 기숙사로 돌아갔다.
어째 오늘은 생각할 게 매우 많은 밤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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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았고, 나는 책상 앞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눈을 비볐다.
"하.. 졸려..."
"에르문, 잠을 못 잔 건가?"
"아, 시울.. 잘 잤어?"
시울이 적당한 크기로 변해 내 무릎 위로 올라앉았고, 나는 그런 시울을 쓰다듬었다.
시울은 내 손길을 잠시 즐기다가 내 책상에 올려져 있는 종이를 쳐다보았다.
"에르문, 이건 무엇을 적은 종이지?"
"아, 이거.."
나는 시울을 쓰다듬다 말고 종이를 들어 올렸고, 그 종이에는 여러 이름이 적혀있는데, 그 이름들은 다름 아닌 고위 능력자들에 이름이었다.
이름이 적혀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오늘부터 멘토신청기간인데, 이건 아카데미에서 나눠준 멘토들 이름이 적힌 명단이야."
"흠.. 몇 명 빼고 전부 X가 쳐져 있군."
시울의 말대로 몇 명 빼고는 전부 이름에 X가 쳐져 있었고, 나는 아직 X가 안쳐진 이름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저 사람들 중에서 누굴 골라야 될지도 모르겠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남겨둔 이름들에 능력자는 전부 소설 속에서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기에 제대로 된 실력을 모르겠기 때문이다.
물론 인터넷으로도 찾아보았지만, 인터넷으로 모든 실력을 알기에는 부족했다.
일단 나는 고민을 잠시 접어두고 아카데미로 향했다.
*****
"흠.. 너희는 이미 다 골랐구나."
나는 아카데미에 가자마자 애들에게 멘토를 정했느냐고 물었고, 애들은 이미 다 정한 상태였다.
네이드는 자신의 형이자 권룡이라 불리는 6급 능력자인 데이드 스페라이를.
이르벨은 원소조작이라는 능력으로 모든 원소를 조작해 전투를 벌이는 7급 능력자 피레 슈리아를.
리아는 성화 길드의 전 부 길드장이자 현재는 아카데미교수인 7급 능력자 칼리스 아이시클을.
반즈는 현재 검왕이라 불리는 7급 능력자 데리온 이피리안을.
물론, 이처럼 대단한 멘토들이 명단에 있기에 똑같은 멘토를 신청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중에서 단 한 명만이 멘토에 선택을 받게 된다.
'그래도 얘네가 떨어질 일은 절대 없겠지'
애초에 원작 소설에서도 똑같은 멘토를 골랐고 모두 다 붙었기에 확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나만 못 고른 거네.."
다시 한 번 나만 못 골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나 자신이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봤을 때 넌 오늘 온종일 생각해도 안될 거 같다. 쌔앰!"
내가 혼자 자기 위로를 하고 있자 보다 못했는지 이르벨이 손을 번쩍 들며 교실을 나가려던 칼리스를 불렀고, 칼리스가 곧바로 우리에게 다가오자 이르벨이 칼리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었다.
"흠.. 확실히, 에르문이 오늘 안에 혼자서 생각을 하진 못할 거 같군."
"쌤?"
어딘가 나를 같이 까는 쌤을 불러보았지만 칼리스는 가뿐히 내 말을 무시해주며 나에게 말했다.
"에르문, 멘토를 선별한 기준이 뭐였지?"
"..무기 숙련도가 높은 분이요."
내 대답을 들은 칼리스가 의문을 표하며 다시 질문했다.
"무기? 너는 부적으로 싸우지 않았나?"
"부적으로 싸우긴 하지만.. 부적으로는 근접전을 잘 못해서 근접무기를 하나 정해서 연습하려고요."
"흐음.. 아."
칼리스는 내 대답에 잠시 고민하다 무언가 떠올랐다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어 나다."
"지금이 멘토멘티 시즌인데 너 어차피 할 것도 없으면 멘토나 해라."
"무기를 하나 배워 근접공격을 하고 싶다더군."
"멘티가 누구냐고? 에르문 에파치아다만."
"잠시만 기다려라."
칼리스는 잠시 상대방과 대화하더니 나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에르문이니?"
나는 목소리를 듣고선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혹시 체이선배세요?"
"맞아! 어떻게 알아대?"
"척하면 척이죠."
"약간 감동인데? 그것보다 에르문, 너 근접무기 알아보고 있다며."
"그렇죠?"
"그럼 혹시 낫 한번 배워보지 않을래?"
"...예?"
나는 갑작스러운 권유에 잠시 멍을 때렸고, 체이선배는 내가 잘못 듣지 않았음을 깨닫게 한 번 더 말해주었다.
"나한테서 낫 한번 배워볼래?"
"네, 제발요."
나는 체이선배가 혹시라도 말을 바꾸지 않게 낫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사실 전 예전부터 낫에 대한 동경과 경외심이 넘쳐흘러서 체이선배가 낫을 휘두를 때마다 멋지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또 그뿐인가요? 체이 선배가 낫을 휘두를 때마다 저는 다시 한 번 낫이 얼마나 대단하고 간지는 멋진 무ㄱ.."
내가 애절하게 낫에 대해 찬양하고 있을 때, 칼리스가 폰을 낚아채자 나는 칼리스를 노려보았지만. 칼리스는 네가 어쩔 건데라는 표정을 지으며 체이선배와 대화하기 시작했다.
"들었지? 내일부터 아카데미로 오면 된다."
"그래, 그럼 수고해라."
칼리스가 전화를 끊자 나는 칼리스에게 물었다.
"그래서.. 해주신대요?"
"그래, 체이 스타리아가 너의 멘토다."
나는 손에 힘을 꽉 쥐었다.
'체이선배라면.. 완벽하지.'
체이 스타리아또한 나와 종류는 다르지만, 카드를 주로 사용하는 능력자이다.
그렇기에 나는 체이 스타리아에 전투방식을 보고 배우며 약간 어레인지시켜 나만의 전투방식을 만들면된다.
'왜 난 체이선배를 생각하지 못했을까.. 과거의 나야 머리 좀 써라.'
"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리고 이르벨 너도."
칼리스 선생님은 체이선배를 연결해주었고, 이르벨이 없었다면 칼리스 선생님께 물어보지도 않고 아쉬운 선택을 할뻔했기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칼리스는 선생으로서는 당연히 할 일을 한 거라며 교실을 빠져나갔고, 이르벨에겐 나중에 밥이나 한번 사는 걸로 했다.
결국 멘토를 구한 나는 한층 편해진 마음이 되었다.
'내일부터 열심히 배워야지.'
하지만 이때에 나는 알지 못했다.
"다시."
체이 스타리아를 멘토로 고른 건, 스스로 지옥에 발을 들인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