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무스를 반대로 착정한다-7화 (7/55)

〈 7화 〉 EP.2 설녀의 눈물

* * *

풍경이라곤 평평한 눈밭과 앙상한 나무들, 그리고 멀찌감치 눈으로 뒤덮인 산맥들이 전부다.

정말이지 재미없는 곳.

피부를 에는 듯한 사나운 바람에 세차게 딸려 온 눈보라가 사정없이 피부를 때렸다.

“크억…”

손과 발은 감각을 잃은 지 오래.

얼어붙은 귀는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거 같다.

설원지대에 진입한 지 겨우 두 시간 지났지만 부르튼 입술에선 벌써부터 피가 나기 시작했다.

엄청난 강추위다.

“선두 정지”

병사들의 동태를 확인한 레이코가 행렬을 멈춰 세웠다.

“여기서 잠깐 쉬어가겠다.”

동굴이 하나 있었다.

*

“하아…추워”

“혹한기라 생각하자….”

“얼마나 남았지?”

입술이 녹으며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한다.

대열은 우용을 중심으로 빙 둘러싼 모양새로 그의 옆은 레이코가 고정이다.

어느 상황이든 간에 미끼의 신원 확보가 최우선 사항이었으니까.

설령 전투에서 패배할지라도.

병사들은 제각각 지정된 자리에 앉아 노출된 피부에 기름을 발랐다.

하피의 날개로부터 추출한 기름이다.

‘아마 수감자로부터 공수해 온 것이겠지’

기름을 발라 얇게 코팅하면 그나마 살갗이 덜 텄다.

“하하…. 전 괜찮아요”

몇몇 병사가 우용에게 기름을 건넸으나 그는 거절했다.

그냥 조금 꺼림칙했기에.

“레이코 씨는 안 추워요? 전 말도 잘 안 나오던데”

두꺼운 털 장비와 갑주를 두르고 있는 병사들과 달리 레이코는 평소의 복장 그대로였다.

알몸이나 다름없는 복장으로 이 강추위를 헤집고 다닌 것이다.

“난 뭐…문제없지. 내 싸움 방식을 보면 알겠지만. 이것저것 껴입을 순 없어. 움직임이 둔해지면 치명적이거든”

그녀가 허리춤에 걸린 카타나를 내세우며 말했다.

"흐음.. 그렇군요"

저 일본도를 볼 때마다 그녀가 ‘마법사’인지 의심이 든다.

감응석이 박힌 지팡이나 맨손을 사용하는 여타 군인들과 비교하면 과연 독보적인 무기다.

“애초에 별로 춥지도 않고”

하긴, 전신으로 에르마와 감응할 수 있다면 체온을 조절하거나 보이지 않는 털옷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대단하네요. 역시 만인장! 이라는 건가요. 전 아무리 두껍게 껴입어도 추워 죽겠는데”

레이코는 우용을 향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주변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일어나도록!”

“에에~”

“이잉….”

모두가 찡찡거리며 탄식을 내뱉는다.

그야 동굴에 온 지 이제 겨우 5분이 지났다.

“하하…이년들이…캠핑왔니 우리가?”

딱딱한 군인 상태를 해제한 레이코의 말투에 모두가 식겁하며 일어섰다.

“아… 아닙니닷!”

“뭣들 해. 대장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단단히 화가 났다는 증거다.

“다들. 긴장 놓치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우용 역시 뻐근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변명을 늘어놓을 순 없었다.

아무리 마법을 사용한다지만 가녀린 여성의 몸으로 이런 강추위 속 행군이라니.

고생하는 여동생뻘들 앞에서 징징대기엔 체면이 문제다.

뭐­ 이런 단체 작전은 오랜만이기도 하고.

까짓거 군대 혹한기 훈련 한 번 더 받는 셈 치자.

라고 생각하려던 찰나였다.

­아우우우

길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

모두가 반사적으로 숨을 죽였다.

조용히 전투태세를 갖춘다.

­아우우우

한 번 더 울음소리가 들렸다.

꽤 지근거리다.

아니, 녀석은 바로 동굴 밖에 있다.

“당장 굴을 나가라!! 연소석이다!”

적막을 부순 건 레이코였다.

­투콰아앙

­쿠과과과

그녀의 고함이 끝나기 무섭게.

엄청난 굉음과 함께 동굴의 천장이 무너졌다.

그녀는 한 손으로 우용을 끌어안은 채 도약했다.

각력을 이기지 못하고 도약한 자리서 무수히 많은 파편이 튀어 올랐다.

“전투 준비해!!”

훈련은 잘되어 있다.

머리 위로 빗발치는 돌덩어리들을 뚫고 모두가 재빠른 움직임으로 동굴을 벗어났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쌔애애액

거대한 부메랑이 바닥에 가깝게 저공비행으로 지나갔고, 동굴을 나서자마자 선두를 치고 가던 백인 장 두 명의 발목이 날아갔다.

“꺄아아악!!”

“흐억..!!”

“레오나!! 베밀!!”

그 비명이 마지막이었다.

바닥에 쓰러진 두 명의 목으로 반달처럼 휘어져 있는 칼날이 지나갔다.

분수처럼 피가 튀어 올랐다.

그 중심에서 입맛을 다시고 있는 웨어울프의 실루엣.

“레…. 레이코씨…! 전 신경 쓰지 말고….”

“아니, 너도 지키고. 저년도 죽인다.”

레이코는 우용을 들춰 매지 않은 다른 손으로 카타나를 뽑았다.

­파지지직

순식간에 칼날을 타고 엄청난 스파크가 튀었다.

자칫 손을 대었다간 그대로 감전사할 정도의 엄청난 전류.

이내 모종의 형태로 상태가 변했다.

­스스스스

마치,

안개를 보는 것 같았다.

­쌔애애액

­쓰커엉

먼저 목이 날아간 건 동굴 입구 가양에 숨어 있던 웨어울프 두 마리였다.

레이코는 눈앞의 적 보다 보이지 않는 적을 먼저 해치웠다.

“우엇…우아아악!!”

그 탈인간적인 움직임을 강제로 함께 하며 우용이 비명을 내질렀다.

곧바로 이어지는 백인장 두 명의 복수.

정면에서 날아오는 반달 모양의 궤적을 몸을 비틀어 가볍게 피한 후, 레오나와 베밀의 목숨을 앗아간 녀석의 몸에 칼을 들입다 꽂는다.

"크르르륵!!"

­우우웅

“공진­”

­파아아앙

그녀의 가슴팍에 도저히 검이 꽂혔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이 생기며,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너무 찰나의 순간 일어난 일이라 그 누구도 비명을 내지르지 못했다.

“대, 대장님!!”

“백인장 두 명이…!”

“어째서 이런 함정을 설치할 수 있는 거지? 발정기가 아니었던가?"

상식을 한참은 벗어난 상황이었다.

발정기 마물은 함정을 팔 정도로 지략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버서커와 같이 폭군처럼 헤집고 다녀야 하는 게 보통이다.

게다가 마들렌 요새에 도착하기 아직도 두 시간은 남았는데.

어째서 눈앞에 웨어울프 무리가 있단 말인가.

“대단해! 이것이 만인장….”

원시 부족을 연상시키는 차림새와 검게 그을린 근육질의 몸매.

망토처럼 드리워져 있는 헝클어진 쟂빛 머리칼과 씨익 웃으니 드러나는 날카로운 송곳니.

목걸이에 걸린 이빨의 개수가 5개인 걸로 예측하건대, 무리의 대장 되겠다.

그녀의 뒤편엔 약 스무 마리 정도의 웨어울프가 공격적인 자세로 대기하고 있었다.

“어째서 네 년들이 여기에 있는 거지?”

“어째서 여기 있냐고? 하하­ 웃기네!”

늑대 무리의 대장이 공격적으로 웃는다.

레이코가 눈살을 찌푸리며 카타나에 손을 대자, 그에 대응하듯 어깨에 들춰 맨 부메랑과 반달 모양의 검을 내세우며 그녀가 말했다.

“워워 진정해~! 너희들도 마찬가지잖아”

레이코와 병사들은 이해했다.

“지원군이구나”

발정기가 아닌 거로 보아하니 니케르 설원의 토종 웨어울프는 아니렷다.

다른 지역에서 온 마물들이라 생각할 수밖에.

문제는 규모였다.

아까부터 레이코 마음에 걸리는 건 우두머리 뒤편에 서 있는 웨어울프들의 수였다.

늑대는 행군할 때 가장 강한 자들을 최선두와 최후미에 배치한다.

이때 선발되는 무리의 수는 상위 10%씩.

우두머리가 위치하는 자리가 무리의 맨 끝임을 감안하면, 대충 이 행군 집단의 최후미가 스무 명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너희들…”

이는 곧 전체 무리가 200명에 달한다는 것을 의미했으니.

“전쟁을 일으킬 생각인 건가?”

이렇게까지 규모가 확대되면 다음은 무조건 전쟁이다.

“하핫! 뭐, 거기 있는 남정네를 준다면 순순히 물러가도록 할까”

되도 않는 협상을 건네며 비웃는다.

일순간 모두의 시선이 레이코 옆구리에 안겨 있는 우용에게 향했다.

이내 광기에 찬 눈빛으로 입맛을 다시며 한 마디씩 뱉는다.

“쩝… 맛있겠네. 머리칼 색 좀 봐. 검은색이야”

“그러게. 쟤랑 아이를 낳으면 무슨 색일까?”

“서두르지 마. 서열순서니까…음음. 그러니까 대장이 먼저, 그 다음은 나야!”

“에엑? 내가 먼저지!”

한기가 돌았다.

우용은 확신했다.

‘붙잡히면 기 빨려 죽는다’

저 평균 신장 190cm를 넘는 근육질 변태 늑대들을 무슨 수로 이기랴.

게다가 발정기가 무려 한 달이다!

“레… 레이코 대장. 이제 어쩌죠?”

“후퇴다. 녀석들은 언제든 동료를 부를 수 있어. 여기서 싸우는 건 너무 위험하다”

병사들과 레이코가 속닥거리는 소리로 보아 상황이 꽤 좋지 않은 모양.

만인장 정도의 실력자면 전투 자체는 문제가 없겠지만.

인간 측은 지켜야 할 미끼가 있었다.

‘미끼’는 언제까지나 함정용일 뿐.

미끼를 낀 채 대놓고 전투를 하는 건 본말전도다.

“하하…빨리 가는 게 좋을 거 같네요”

“그래…지금이다!! 다들 뛰어!!”

하지만 이놈의 일은 도통 쉽게 흘러가는 법이 없다.

“어딜!!”

­투콰아아앙

“여…여기도 연소석이?!”

“꺄아아악~”

“대..대장.!!”

세상에나.

동굴 입구를 중심으로 연소석이 원형을 그리며 깔려 있었다.

­쿠구구구

그대로 지반이 무너졌다.

땅이 가라앉음에 따라 도약의 힘이 약해졌고, 둔해진 움직임을 틈타 우두머리가 우용을 낚아챘다.

“감사히 받아갈게♡”

“어…어엇…?!”

“우용!!”

­파지지직

레이코의 발끝에서 전기가 일었다.

다시금 모종의 형태로 변질되어 응축된 공기 분자들이 바람벽을 형성했다.

이를 발판으로 그녀가 공중에서 한 번 더 발을 디뎠다.

­쌔애애액

깔끔한 일도로 우두머리의 팔을 잘라내는 레이코.

“키야아악!!”

“우왁!!”

그에 따라 우용이 무너진 지반을 향해 아래로 떨어졌다.

“강우용! 내 손을…!”

다시 한번 공중에서 도약을 시도하는 레이코.

엄청난 속도로 그에게 다가갔으나.

“크르르르!!”

“그르르릉!!”

열댓마리의 웨어울프들이 일제히 그녀를 막아섰다.

"이..이런..! 방해 마라!"

­쌔애애액

물론 유연한 검기로 눈 깜짝할 새 늑대들을 썰어버렸지만.

"크르르륵!!"

"깨갱~!!"

그새 우용은 손이 닿지 않는 깊숙한 곳으로 하염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와아아아아악~~~레이코오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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