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EP.3 끊어진 사슬
* * *
수많은 화살들이 부자연스러운 궤적을 그리며 그녀의 가슴으로 날아들었다.
“유리아!!!”
목숨이 걸린 급박한 상황에서.
유리아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심장을 노리는 화살들을 향해 환영하듯 두 팔을 벌렸다.
푸욱
푸두두둑
마법 화살들이 일제히 그녀의 심장에 박히며 듣기 거북한 소리가 났다.
“어,..어…유리아…”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유리아의 상처에 손을 뻗는 우용.
“쿨럭…”
여전히 미소 짓고있는 유리아의 입에서 한 줄기 검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마치 그녀의 창백한 피부색을 대변하는 듯한, 검고 푸르른 육신의 정수가 상처를 더듬는 우용의 손을 타고 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피..피가…피..”
맥을 잃고 쓰러지는 유리아를 손으로 받쳤다.
머리가 새하얘졌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허둥지둥대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다들 철수 준비해라. 잠잠해지면 내가 우용을 데리고 곧장 탈출한다”
“넵!!”
“알겠습니다!”
레이코를 두고 매정하게 뒤돌아서는 마법사들을 보며 우용이 허탈하게 웃었다.
“하하하…유리아를 이 꼴로 만들어 놓고 어디가는거야…?”
반쯤 광기에 젖은 표정으로 웃다 이내 유리아를 향해 마법진을 전개했다.
지혈을 위해 써본적도 없는 치유 마법을 남발해보지만.
동요해서 그런지 집중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지직
지지직
애당초 연상한다고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쉬운 마법이 아니었다.
피는 멈추지 않았다.
“쿨럭…그만해요 우용 씨. 저는 이제..”
“어..어째서…왜… 아무것도 안 한거야!!”
그녀라면 공격을 무효화 시키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다못해 마법 화살을 튕겨내기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너.. 너무 슬퍼마세요”
“왜 가만있었냐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울상으로 따지는 우용의 얼굴을 매만지며, 유리아가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
“제..제가 마법을 쓰면.. 전부 휘말려요”
더 이상 물을 필요는 없었다.
“쿨럭…연소석이 있잖아요..섣부르게 행동하다 여..여기서 터지면..전부 죽어요”
“아아…제발…”
우용이 휘말릴까봐.
인간측 사냥꾼들이 죽을까봐.
그래서 자신을 희생했다고 말하는 유리아.
그 강도가 어찌됐든 공격성을 띠는 마법은 모두를 얼어붙게만든다.
디스펠 역시 마찬가지다.
사활이 걸린 상황에서의 마법 사용은 금물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통제를 믿을 수 없었고, 그래서 마음을 내려놓았다.
완벽하게 우용을 보호하기 위해서 얌전히 화살을 받아들였다.
“저는 벌을 받는 거예요 우용 씨. 그간 너무 많은 생명을 앗아갔어요..싱그러운 풀들도..동물들도..”
우용은 화가 났다.
“제발…제발 다물어 유리아..”
너무나도 고운 유리아의 마음씨가 도리어 그녀를 죽이게 생겼으니까.
“닥치라니까... 말하지 말고…내가 다시 집중해볼게. 가만히 있어 봐!”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마법을 전개해 본다.
당연히 제대로 된 치유가 가능할 리 없다.
지지직
지직
집중을 떠나서 숙련이 한참은 부족하다.
정전기는 마법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계속해서 맥을 잃고 방전되었다.
이대로는 불가능했다.
“레이코오오오!!”
잔뜩 핏발이 선 눈으로 고갤 돌려 애타게 레이코를 찾는다.
“살려내! 유리아 살려내! 당신이라면 가능하잖아!!”
“…”
돌아오는 건 경멸에 가까운 차가운 시선이었다.
“하하하…씨발년이…유리아는 말이야.. 당신들을 위해 기도했던 여자야. 다툼으로 죽어간 자들을 위해 기도했던 여자라고!!”
“강우용…”
“설원의 마녀면 뭐 어때서. 그 ‘마녀’라고 부르는 여자는 정작 당신들이 휘말릴까봐 마법을 쓰지 않았어. 공격을 걸어온 당신들을 위해서!!
우용이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추한 얼굴로 울부짖었다.
허나 카타나를 집어넣은 레이코는 요지부동이었다.
레이코보다 자신이 더욱 원망스러웠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나약함이 제일 화가났다.
애당초 유리아 대신 화살을 막았으면 됐을 터였다.
“하하하…빌어먹을…정신나가겠네 씨발!!”
“그쯤해 강우용”
“우용 씨…저는..”
“넌 조용히 있어 유리아!! 회복..회복에 집중하라고!!”
전부 들으면 유리아가 이 세상에서 살아질 것만 같아서.
그래서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절규하는 우용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유리아는 입을 멈추지 않았다.
“쿨럭..정말..애처럼 그게 뭐에요..”
땡깡부리는 아이 마냥 우용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주변이…따뜻하지 않나요?”
“어어. 맞아..맞다고..왜 이러는건데 갑자기..크윽..”
생명은 죽어가며 온기를 잃는다.
체온을 잃고 싸늘해져가기 마련이다.
본질을 잃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본질을 잃고 점차 몸이 따뜻해져가는 유리아를 보며 우용은 불안함을 금치 못했다.
“저…아무래도 사랑에 빠졌나봐요..”
유리아의 눈에서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이번엔 얼어붙지 않고 그대로 볼을 타고 부드럽게 내려갔다.
그녀의 눈물이 얼음장에 닿으며 빠른 속도로 궁전이 녹기 시작했다.
툭
투둑
굵은 물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더니.
쏴아아아
이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만난지 얼마나 됐다고..사랑에 빠진 걸까요..”
“유..유리아…크으윽…”
“저는 헤픈 여자일까요? 흐윽…”
받치고 있던 유리아의 몸이 가벼워졌다.
“유리아…왜..왜 이래…뭐 하는 건데…야! 야!!”
그녀의 몸이 눈송이처럼 가루가되어 흩어져나가기 시작한다.
하반신부터 빠르게 형태를 잃고 사라져갔다.
“어..어어.. 왜..왜 이러냐고…!”
“이걸…”
그녀의 아랫배에 도달했을 즈음이었다.
신체가 사라져감에 따라, 그녀의 몸속에서 누군가의 잘려나간 ‘오른팔’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언젠가..이걸 들고…요새의 최하층으로 가세요..”
남에게 들키지말라며 당부한다.
“뭐…뭐…아니 알겠어. 알겠는데 넌 어디가는거야”
“울지마세요. 언젠가 꼭..다시..”
“아니야. 미루지말고. 지금부터 나랑 모험하자. 응? 네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 내가 도와줄게. 제발..가지마 유리아. 가지마”
“사랑해요 우용..”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쏴아아아
소나기가 내리는 깊은 지하 공동은 메아리처럼 퍼져나가는 우용의 절규로 요란하게 흔들렸다.
유리아가 있던 자리에는 그녀가 차고 있던 목걸이와 누군가의 오른팔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
어째서 다투는가.
정의란 무엇인가.
모든 다툼은 아주 사소한 이념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관계는 얽히고설켜 난잡하게 부풀어간다.
결코 영웅이 있고, 악당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이분법적 사고로는 ‘어째서 다투는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툼의 양상은 복잡해지고 누가 옳고 그른지 분별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완벽한 정의는 없다.
‘허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승리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다툼의 수많은 희생양들을 생각해서라도 승리해야만 한다.
설령 오해와 착각 속에서 다툼의 불씨가 일었다 하더라도, 그 오해를 푸는 건 어느 한쪽이 불을 진압하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승리에 대한 집착’은 군인들이 함양해야할 최우선 사념이었고.
윤리와 도덕적 관념, 혹은 개인적 사상들은 두 번째였다.
그래서 줄곧 외면해왔다.
우용의 울부짖음을 이해못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 마물과 인간은 한창 다투고 있는 중이었으니.
깊은 생각은 독이었다.
어디까지나 자신은 목숨을 내걸고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장으로 나가는 군인이다.
승리를 위해서.
“후우…”
레이코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외출을 준비했다.
“시간 빠르네…”
아드리옴 요새에 승전보가 울린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레이코와 병사들에겐 무공 훈장과 휴가가 주어졌고, 짧고도 길었던 휴가는 오늘로서 끝이다.
비록 본래의 지원 작전은 실패했으나 그 실패를 무마할만큼 뜻밖의 쾌거를 이뤄냈기에 가능했다.
웨어울프 집단의 정보 또한 한몫했다.
여튼, 복귀와 함께 곧바로 전쟁 준비에 가담해야한다.
웨어울프들의 동태가 심상치 않았으니까.
지원이 필요했던 마들렌 요새는 함락된지 오래다.
이번 휴가는 앞으로 있을 격변을 위한 마지막 단물과도 같았다.
집무실을 나가기 직전, 선반에 놓인 액자를 들었다.
액자에 담긴 초상화를 지그시 바라보며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남동생.
“만약 살아있었다면 지금 우용의 나이정도 됐으려나..”
그녀에겐 우용을 자신의 동생과 겹쳐보는 습관이 있었다.
생각을 떨쳐내려해도 동생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흔하지 않은 동양인이었기에 그러기도 했고, 쓸데없이 고집이 있는 점이나 능글맞은 성격이 비슷했다.
무엇보다 자유로운 사고방식이 비슷하다 못해 똑같았다.
‘빌어먹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남동생은 마법을 배우고 싶어하던 청년이었다.
몰래 가르쳤던 게 화근이었다.
실력 좋은 누나를 동경하던 남동생은 어리석게도 홀로 숲에 들어갔고, 그대로 마물에게 착정당해 목숨을 잃었다.
삐쩍 곯아 썩어가는 그의 시체를 본 게 마지막이었다.
그날부로 깊은 못 하나가 레이코의 가슴에 박혔다.
가슴 깊숙이 남은 증오와 앙심은 오늘의 레이코를 만들었다.
“하아…”
개운해질 리 없는 한숨을 내쉬며 복잡한 심정으로 집무실을 나왔다.
꼭 가야할 곳이 있었다.
이제는 대화해야 한다. 화해해야만 한다.
언제까지고 담을 쌓을 수는 없는 법이다.
물어봐야 할 것도 많았다.
마법에 대해서.
현재 우용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자는 레이코가 유일했다.
설원의 마녀와 마주쳤던 지하 공동에서 병사들을 먼저 돌려보낸 건 그녀의 배려였다.
상부에 보고 하지도 않았다.
모든 것은 진실성있는 대화를 위해서였다.
'만인장'과 '미끼'가 아닌, 미즈하라 레이코와 강우용으로서의 대화.
일단은 이야기부터 들어보고 천천히 향후를 결정할 생각이었다.
“강우용. 나야”
철커덕
문고리를 잡는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끼이익
곧이어 문이 열리고.
너무나도 차분한 그의 모습에 갖가지 잡념들이 일순간 날아갔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레이코 씨”
기다리고 있었다고?
꼴도 보기 싫었던 게 아니었던 건가?
갈피를 잡기가 힘들다.
조금의 위화감이라면 우용의 눈 밑에 드리워진 진한 다크서클 정도일까.
“오랜만이네”
할 수 있는 최선은 가까스로 당혹감을 감추며 태연하게 대하는 것뿐이었다.
“..뭐하고 있던 거야?”
레이코는 우용의 어깨너머로 방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종이 뭉텅이들로 심히 어질러져 있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저기요 레이코 씨.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부탁이 딱 두 개 있어요”
우용이 돌연바지를 내렸다.
동시에 우람한 남근이 자태를 드러냈다.
“…!!”
“하지만 레이코 씨.꽉 막힌 당신이라면 또 거절하겠죠”
그의 눈웃음엔 광기가 가득했다.
잠시 후 이어지는 광경에 레이코는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지직
스파앗
자지에 걸린 주술이 방전되어 공중으로 사라져나갔다.
“뭐..뭐야??”
그녀가 허둥지둥 자신의 팔목을 확인한다.
우용의 생사와 위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하던 주술이 사라져있었다.
“푸..풀었다고..?”
“이렇게 다시 걸수도 있죠”
눈을 감고 삽시간 집중하자 지릿하는 소리와 함께 우용의 자지와 레이코의 팔목에 다시금 주술이 걸렸다.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말을 잇지 못하는 레이코.
그러한 그녀를 보며 우용이 조악하게 씨익웃었다.
그대로 레이코의 멱을 잡아 방으로 이끌었다.
“흐끅”
강압적인 손길에 레이코가 작은 신음을 토해냈다.
벽으로 몰린 그녀의 옷을 서슴없이 풀어 헤치고 엉덩이에 자지를 들이밀었다.
“자, 레이코. 너는 내 동정을 뺏은 강간범이 되는거야. 욕정을 참지 못해 미끼의 주술을 풀고 강제로 섹스한 여자가”
“뭐..뭐라고?! 무슨 그런 터무니없는!! 하응!!”
우용이 폭력적으로 가슴을 주물렀다.
“사..상부에 보고할거야.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남자가 있다고..흐윽!!”
“푸하하하!!”
진심으로 웃었다.
“과연 당신의 말을 믿을까? ‘미끼’가 스스로 족쇄를 풀었다고 변명하려고?”
“크윽..”
“그것보다 발정난 관리인이 주술을 풀고 겁탈했다고 보는 게 훨씬 유력해보이는걸”
확실히.
자지 족쇄를 스스로 풀 수 있을 정도로 마법을 숙련한 미끼의 존재는 터무니없다.
재판에 올랐을 때 압도적으로 불리한 건 마법 실력이 공공연히 알려진 레이코였다.
‘미끼의 동정을 가져간 죄는 무겁다.’
마물을 꾀어 내는 효율이 줄어드는 만큼 전력 손실로 이어진다고 봤으니까.
결코 만만한 징계로 끝나진 않을 것이다.
레이코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레이코. 난 당신에게 기회를 주고 있어”
“크윽…”
“범죄자로 낙인찍혀 군인 자격을 박탈 당할래. 아니면…내 부탁을 얌전히 들어줄래“
레이코는 체념했다.
아직 ‘만인장’의 자리를 포기할 순 없었다.
“원하는 게 뭔데..”
“일단은 벌부터 받아라. 가만히 있던 죄야”
“하윽!!”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