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무스를 반대로 착정한다-17화 (17/55)

〈 17화 〉 EP.4 지느러미 선생님

* * *

완벽한 자유를 위해서 현재의 신분을 지울 필요가 있었다.

‘미끼’로서 살아온 이계인 강우용의 존재를 세계에서 지워 버리는 것이다.

역시 떠오르는 방법은 하나였다.

“레이코. 기대 이상이었어. 이래서야 아무도 의심 못해”

처참한 동굴 내부의 모습을 슬쩍 흘겨 본 우용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우용의 부탁은 이러하였다.

첫째.

먼저 레이코가 위험성이 높고 정보가 부족한 작전을 받아 온다.

이 작전에서 우용은 ‘미끼’의 임무를 수행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

불의의 사고란 즉, 사망.

정확히는 의문의 마물에게 납치되는 시나리오였다.

마물에게 한 번 끌려간 인간 남성이 되돌아온 적은 없었으니까.

때문에 실종자와 사망자는 같은 취급이었다.

‘작전 장소에서 착정당해 사망하였다’는 전개는 배제했다.

우용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이 사체 무더기를 뒤지려 들 것이 분명하였으니, 들킬 위험성이 배로 커지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둘째.

마력 감지에 들키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위조한 신분증이 필요했다.

보다 자유로운 모험을 위해 신분증은 필수였으니까.

다행히도, 레이코 정도의 실력이면 충분했다.

위조한 신분증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름] 클레어 말츠바르젠

[종족] 인간

[성별] 여성

[나이] …

[출신지] …

[가족력] …

변방 시골 마을 출신의 키 큰 독신 여성.

이것이 우용의 새로운 신분이자 앞으로 연기해야 할 가상의 인물이었다.

당연히 ‘여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완벽한 자유를 위해서.

“최고야. 어디든 싸돌아다닐 수 있겠어. 출신지도 생소하고 가족력도 단순하고..”

여하튼, 레이코와 우용이 힘을 합쳐 모두를 속인다.

이 모든 것은 우용이 마법을 쓸 줄 아는 사실을 오직 레이코만 알고 있기에 가능한 작전이었다.

“그나저나 용케 혼자서 마무리했네?”

“마법을 좀 썼을 뿐이야”

단, 조건이 있었다.

완벽을 위해 목격자를 지울 필요가 있었으니.

작전의 대상인 마물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우용의 신호는 본래 구출 신호였다.

신호를 받은 레이코가 도착해 마물을 처리하는 것이 본래의 시나리오였다.

“설마하니 또 꿍꿍이를 부린 건 아니겠지? 죽인 척을 한다던가…”

“걱정 마. 의뢰는 완료했다고 보고하면 돼. 줄곧 꿈꿔왔던 자유인데 설마 어설프게 하겠어”

저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진짜겠지.

그토록 고대했던 순간인 만큼 아무래도 제 무덤을 파진 않을 것 같다.

처리가 중요하지, 처리한 주체가 누구인지는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레이코. 보고는 어떻게 할 거지?”

“…”

잠깐 뜸 들이는 레이코.

이내 머릿속으로 정리를 마친 그녀가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대상 마물은 처치했으나 미끼를 잃었다. 사체를 뒤진 결과 시체는 나오지 않았다. 아무런 방어 기제 없이 주술이 사라진 걸로 예측하건대, 군단장급 마물에게 빼앗긴 걸로 볼 수 있다.”

“그 정도면 될까”

“애당초 정보가 낮은 작전이야. 그리고...”

레이코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처참한 광경이면 신빙성이 더 올라가지”

확실히.

의심의 여지는 없다.

우용이 한 번 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좀 놀라긴 했어. 일 꽤나 잘하잖아 레이코”

우용은 그대로 레이코를 지나쳐 동굴을 나섰다.

­쏴아아아아

폭풍우를 맞으며 두 팔을 활짝 벌렸다.

“난 이제 자유야­ 드디어”

이제 전부 끝이다.

자지의 족쇄는 이미 해결했고.

최전선 요새에서의 ‘미끼’생활도 끝이다.

더 이상 잡일도 안 해도 된다.

오늘로서 이계인 강우용은 죽었다.

죽고 새로 태어난다.

자유의 몸을 가지고!

이 어찌 가벼울 수 있을까.

이렇게까지 후련할 수 있을까.

추적추적 몸은 젖어가나 그 여느 때보다도 개운했다.

“후…”

그러다가도 생각이 난다.

“자유의 몸이 되면 꼭 찾아가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우용이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그동안 ‘미끼’ 임무를 수행하며 다툼의 희생자를 수 없이 보아왔다.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정말 많았다.

차마 눈뜨고 못 보겠어서 파트너에게 여러 번 성질도 냈었다.

그러나 성질을 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더라.

언제나 마무리는 수동적인 자세로 그러려니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능력이 없었으니까.

자유롭지 않았으니까.

‘지금은 능력이 있다. 몸도 자유롭다’

더 이상은 외면할 필요가 없다.

우용의 분노는 세계를 향했다.

‘이 되먹지 못한 세계를 바로 고친다’

그가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한편,

우용의 뒷모습을 보며 레이코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용의 부탁을 들어준 것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니.

너무나도 슬픈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자신이 좀 더.

조금 더 빨리 우용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면.

조금 무리해서라도 그의 부탁을 들어줬었다면.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결말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강우용. 바로 떠날거야?”

“응”

“...”

복잡한 기분이다.

비록 협박으로 인해 그를 돕긴 했으나, 분노하거나 미운 감정은 일절 없었다.

오히려 저렇게 행복해하는 우용을 보니 한편으로 기쁘기까지 했다.

그러나...

“우용...강우용..”

목이 메어 왔다.

이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그야 최전선에서 얼마나 많은 마물들을 만났는데, 모를 수가 없다.

그녀 역시 이 다툼이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왜 지금까지 우용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는가.

왜 그리 엄격하게 규율을 강조했는가.

레이코는 그저 우용을 보호하고 싶었다.

헛된 생각을 품지 않도록 훈계하고. 계속해서 자신의 옆에 두고 싶었다.

그렇다. 솔직히 말하면 새장에 가두고 싶었다.

그러나 우용은 어떻게든 철창문을 열기 위해 발악했고,

결국 이렇게 날개를 펼치고야 말았다.

“어째서.. 어째서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들 떠나갈까”

“...레이코”

마물 사냥을 마치고 술잔을 기울이는 밤.

그 짧은 여유가 즐거웠다.

그 사소한 행복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우용의 ‘잭콕’을 마시는 게 유일하다 싶은 낙이었다.

그와 함께 생산성 없는 농담 따먹기나 하고 싶었다.

“레이코. 날 남동생과 겹쳐보지 마. 그거 고치라고 했잖아”

우용의 차가운 말에 레이코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이윽고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연다.

“아니야 강우용..분명 처음에는 그랬지만…”

“…”

“이제는…”

그간 외면해 왔었다.

평소의 일상이 너무나도 즐거운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모른 채 했었다.

두려웠던 것이다.

더 이상 나아가다 그 관계가 무너질까 봐.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솔직해지는 법이다.

인간이란 본래 그런 미련한 존재다.

레이코는 고백했다.

언젠가부터 우용을 한 명의 이성으로서 바라보고 있었다고.

“…”

잠시간 적막이 감돌았다.

침묵을 부순 건 가면을 벗은 우용이었다.

울먹거리는 레이코의 모습을 미처 못 본 채 할 수 없었으니까.

과연 여성의 눈물은 강하다.

“참나…나이 먹고 그게 뭐야”

씁쓸하게 웃는다.

“어쩌라고..”

*

둘은 여느 때보다도 애틋한 키스를 나눴다.

일종의 작별 인사이자, 일전의 과격했던 행위에 대한 사과이기도 했다.

“이제 어쩔 계획이야”

“일단 세상을 둘러봐야지. 난 너무 모르는 게 많아”

“중립국 드루이드령으로 가. 이민자들이 많은 자유로운 곳이야”

“조언 고맙네”

미련을 놓은 듯.

사랑에 빠졌던 레이코의 눈빛이 초점을 찾으며 되살아 났다.

“우용.. 언제가 다시 만날 때 부디 적이 아니길 빌게”

여자가 아닌, 군인 레이코로서.

딱딱하게 말한다.

“푸핫! 내가 만인장을 무슨 수로 이기겠어. 도망이나 칠란다”

다시금 긴장 풀린 미소로 서로를 지그시 바라보는 레이코와 우용.

“잘 있어 레이코.”

*

“다리는 좀 어때?”

“네에 주인님♡ 걱정 안 해도 돼요. 며칠 지나면 재생되니까요”

­까드드득

이제는 익숙한 소리.

“그러니까 이름이..”

뭐였더라.

분명 굉장히 어려웠었는데.

“라크스 무스칸크리트 레드블레어­”

“아아. 그래”

“좀 어려우신가요? 우후훗… 부디 ‘라크스’ 라고 불러주세요♡

결코 그녀의 죄목을 인정하는 게 아니었다.

용서 또한 하지 않았다.

그녀는 씻을 수 없는 무거운 죄를 저질렀고, 원래는 아무런 관용 없이 레이코에게 뒤를 맡길 셈이었다.

그럼에도 우용이 그녀를 살려준 건.

그저 자신에게 절대복종하겠다는 여인을 살육할 이유가 없어서였다.

그녀는 우용의 발치에서 빌빌 기며 맹세했다.

다시는 살육하지 않겠다고.

다시는 착정하지 않겠다고.

오로지 우용만을 바라보겠다고.

죽을 때까지.

영원히.

‘딱히 엎드려 빌라고 시킨 건 아니었지만…’

놀랍게도 전부 자기 주도로 이루어진 행위였다.

우용은 잠잠히 지켜볼 뿐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그러한 각시를 보며 여러모로 생각했다.

이성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그 결과가 이거다.

‘뭐…고집을 부려 처형한다 한들.. 희생한 남정네들이 되살아 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점이 마음에 좀 거슬렸지만, 이것 역시 옆에 있다면 해결되는 문제였다.

그렇다고 우용이 아무런 보험 없이 멍청하게 결정한 건 아니었다.

급조한 노예 계약이 있어 가능했다.

눈앞의 지네 여인은 스스로 제 몸에 노예 마법을 걸어버리는 미친년이었다.

자신에게 속박 마법을 걸면서 ‘인식’의 주체를 우용으로 설정한 것이다.

‘자지 족쇄’를 이용하여 비유하자면 이런 것이다.

족쇄를 자신 스스로에게 걸되, 그 뇌파의 주체를 친구로 설정하는 것과 같다.

이 경우 정작 자신이 야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친구가 자궁을 인식하면 자신의 자지에서 주술이 발동하는 기구한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우후후♡”

여하튼,

그 과정이 좀 복잡하긴 했으나 둘이 힘을 합치니 어느 정도 가능하더라.

라크스가 먼저 마법을 걸고 그것을 우용이 다듬었다.

물론 좀 더 보정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긴 했지만.

“자아~ 우용니임♡”

향랑각시가 몸을 낮춰 우용의 앞으로 이동했다.

기다란 생머리가 내려앉은 가녀린 등을 내세우며 지네 다리를 실룩인다.

이야, 이 나이 먹고 어부바라니.

“앞으로 할까요?”

“그렇다고 공주님 안기는 더 아닌 거 같아”

“에잉..아쉬워라”

표현이 좀 그렇지만.

‘탈 것’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영차­”

“하응♡”

“야야, 이상한 소리 내지 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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