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무스를 반대로 착정한다-19화 (19/55)

〈 19화 〉 EP.4 지느러미 선생님 (3)

* * *

우용이 놀란 건 그녀가 인어와 같은 신체를 지녔기 때문이 아니었다.

드루이드령 최고의 마법사로 짐작되는 여인이 마물이라서?

그것도 아니다.

그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든 건, 바로 말도 안 되는 크기의 맘마통이었다.

“흐음~ 제 가슴에 무언가 묻은 걸까요?”

머리색도 분홍색.

야릇한 옷매무새도 분홍색.

잉어와 같은 꼬리도 분홍색.

눈앞의 머메이드는 그 핑크빛 색감만으로 본연의 광기를 순전히 표출하고 있었다.

솔직히 썩 좋아하는 색은 아니었다.

그야 핑크색이라니.

똘끼있는 작자들의 전유물 아니던가!

“흐음…?”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다.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흐드러진 핑크색 머리의 주인은 상상 이상의 독설가였다.

“그나저나 집이 좀 답답하네요. 그 거대한 지네 몸뚱아리를 끌고 들어왔기 때문이 분명하군요”

대화하고 싶은 건 우용이지 향랑각시가 아니라는 듯. 머메이드 여인이 쯧­하고 혀를 차며 상당히 불쾌한 표정으로 라크스를 바라보았다.

“뭐…? 다시 말해봐”

다짜고짜 방해꾼 취급을 하며 싸움을 걸어오니 각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머메이드를 향해 눈살을 찌푸린 라크스에게서 일순간 탁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잊고 있었다.

라크스가 사실은 지독한 살기를 부리던 되먹지 못한 마물이었다는 사실을.

“후훗.. 귀가 먹으신 걸까요? 좀 나가 주실 수 있냐고 묻고 있어요. 아아, 함께 대화하고 싶으시면 문틈으로 빼꼼 고개라도 내밀고 계시던가요”

공손함을 가장한 공격적인 말투.

부드러운 목소리로 또박또박 음절을 뱉어내는 것이 여간내기가 아니다.

“호오…주인님은 너처럼 비린내 나는 여자랑 대화하고 싶지 않을걸?”

라크스 역시 한성질 하는 편이었으니 순순히 내빼지 않았다.

“흥. 무식한 여자. 이 비린내는 제 몸에서 나는 게 아니라 물 비린내에요. 비린내는 죽은 생선에서 발생하는 휘발성 물질이 원인이라는 것 모르시나요? 이래서 곤충이 별로예요. 하여간 뇌가 텅텅 비었다니까”

“어쨌든 비린내가 나는 건 사실이잖아? 그리고 중요한 건 그게 아닐 텐데. 어차피 넌 내 손에 곧 죽을 테니까. 으음, 시체가 되면 아주 지독한 비린내가 나게 생겼어”

단숨에 싸움이 붙었으니 말릴 새도 없었다.

머메이드가 삼지창으로 허공에 동그랗게 원을 그렸고 궤적을 따라 거대한 물방울이 형성되었다.

라크스 역시 공격성을 드러내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문제는 이곳이 좁은 실내라는 점이었다.

­쿵

"아얏!"

마법을 전개하기에 앞서 라크스가 천장에 머리를 쿵­ 하고 박아버린다

지네 몸체는 그 길이만 7m에 육박했으니, 섣불리 고갤 들다 봉변을 당한 것이었다.

당연히 집중력은 단번에 깨져버렸다.

­꾸르륵

그 틈을 타 거대한 물방울이 라크스의 상체를 그대로 집어삼켰다.

“라크스!!”

"우욱…"

전신의 숨구멍이 막히며 점차 경직이 되어가는지 몸을 웅크리는 라크스.

나머지 지네 몸체들도 곧이어 거대한 물방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라?”

그대로 혼수상태에 빠지는가 싶었지만 어째선지 라크스의 정신이 멀쩡해 보인다.

"그대로 기절시키면 재미없잖아요? 거기서 멍청하게 지켜보라구요 후훗"

지네 몸 선을 따라 공기가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허나 조금이라도 닿으면 숨구멍에 물이 들어가 까무러치기 십상이다.

완벽하게 움직임이 봉쇄된 것으로 봐아겠다.

"크윽... 밖이었다면..!!"

라크스가 이를 바득바득 갈며 소릴 내질렀으나 이내 그마저도 불가능해졌다.

"시끄럽네요. 입은 좀 다물어 놔야겠군요"

"우웁....웁..."

그렇게 라크스는 물방울에 갇혀 멀뚱멀뚱 방관해야만 하는 꼴이 되었다.

인어의 광기는 멈추지 않는다.

그다음 표적은 우용이었다.

"그보다 멍청한 계집이 능력 하난 좋네요? 웬 남자를 데리고 다닐까...으음 .. 그러니까 '주인'씨?"

사실 처음부터 우용의 정체를 꿰뚫고 있던 그녀였다.

“푸핫­ 뭘 그리 놀라는 거죠? 설마 안 들킬 거라 생각하신 건가요? 냄새를 아무리 옅게 흩뿌려도 제 앞에선 무용지물이랍니다”

하긴, 남자임을 몰랐다면 애당초 이러한 다툼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간 남성과 단둘이 다니는 라크스를 보니 호기심과 함께 괜한 심술이 났다.

이것이 그녀가 갑작스레 싸움을 건 이유였다.

이 유치한 이유가 첫째고,

둘째는 그냥 우용과 노닥거리고 싶었다.

안 그래도 인적 드문 변방의 시골이다.

이게 웬 떡인가. 제 발로 굴러들어온 남성을 못 본 채 지나칠 수 있을 리 없다.

“그나저나 학생 중에 인간 남성이 있다는 얘기는 처음인데.. 재밌네요. 애초에 마법을 쓸 수는 있는 건가요?”

그나저나 아까부터 우용을 학생이라고 부르는 여인.

마법 수업이라도 운영하고 있는 걸까.

물론 그녀에게 배우러 온 것은 맞지만, 우용은 우선 뭔지 모를 오해부터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 잠깐만요 전 학생이...엇!”

그러나 부자연스러운 바람이 날아들어 우악스럽게 가면과 로브를 벗기는 바람에 차마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어머~ 횡재~♡ 이렇게나 먹음직..아니, 훈훈한 외모를 어째서 가리고 다니는 거죠?”

이어지는 섬세한 물길이 상냥하게 우용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자연스레 변장이 지워져 나갔다.

“게다가 검은 머리칼.. 이 어찌 신비스러울 색감인지. 자아, 그럼 우리 이계인 씨는 무엇 때문에 정체를 숨기며 드루이드령까지 왔을까요? 킁킁. 무언가 기묘한 마기도 느껴지고”

인간령에서 소환된 이계인.

오필리아에게 하사받은 힘.

정체를 숨겨야 하는 입장.

정확히는 아니더라도 우용의 의심스러운 점을 단숨에 짚어내는 여인이었다.

광기로 인해 초점이 모호한 눈이지만 상황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과연 예리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천천히 대화해요. 으음~ 그러니까 일단은 교미부터♡”

“아니, 잠깐만요. 여기서 착정하면 안 되는 거 알죠? 드루이드령, 로벨하임이잖아요?”

잘 알지도 못하는 상식을 들이밀며 상황을 무마하려는 우용.

허나 어림도 없다.

여인은 잠시간 고민하는 듯 망설이다 이내 좋은 생각이 났는지 짜악­하고 손뼉을 쳤다.

“그래요 합의! 자아, 우리 가난한 학생은 수업료 대신 몸으로 때우는 거예요. 절대 강간이 아니에요?”

“하하하…선생님. 제 의견은요?”

“네에~ 수업료를 받겠어요”

꼼수는 통하지 않는다.

우용의 발치에 물방울이 형성되며 몸이 부웅 떠올랐다.

­꾸르륵

그렇게 엉거주춤 바보 같은 자세로 입맛을 다시고 있는 여인에게 끌려간다.

“크윽…”

끝까지 정체를 숨길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현재까지의 경과를 숨김없이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그녀가 오필리아의 지인이자 ‘드루이드령 최고의 마법사’가 확실하다면 말이다.

문제는 이 미친 인어가 도통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처럼 마물들에게 어울리는 속담이 없다.

그녀들의 최우선 순위는 언제나 철저하게 교미였다.

어째서 마물들은 항상 이런 식일까.

역시 대화로 통하지 않는다면 직접 실력을 행사할 수밖에.

공격적으로 나간다면 그녀도 잠자코 당하지만은 않을 테고, 직접 검을 부딪혀보면 상대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법이다.

과연 그녀는 우용이 찾는 ‘스승’이 맞는 것인가.

­파지지직

우용의 발치에서 전류가 일었다.

손이 아닌 다른 부위로 에르마와 감응하는 것 정도야 이제는 거뜬하다.

­파스스슷

“어라라?”

우용을 옮기던 물방울이 흩어지며 공기 중의 수증기로 돌아갔다.

우물 속에 떨어짐과 동시에 다시 한번 전류를 일으킨다.

이번엔 오른손이었다.

­첨벙!!

­파지직

순식간에 속박 마법을 연상한다.

만약 그녀가 로벨하임 최고의 마법사가 아니라면, 이제 곧 뻗어나갈 무형의 사슬이 여인을 속박하고 라크스를 구출할 것이다.

­파지지직

“뭐, 뭐야? 왜…”

­파지직

그러나 사슬은 미처 뻗어나가지 못했다.

­지직...

결코 집중력이 깨진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머메이드가 디스펠 마법을 전개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마법이 나가지 않았다.

­파직

­파직

연신 마법을 시도해보지만 정전기는 모종의 형태로 변하지 못하고 자꾸만 방전되었다.

수중에서의 마법 사용이 쉬운 편은 아니지만 지금의 우용에게 문제 될 정도는 아니었으니.

그래서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네? 아무것도 안 했는걸요”

괜스레 묻긴 했으나 우용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남성인데 정말로 마법을 사용하다니. 어찌 이런 일이… 재밌어♡ 재밌어♡ 재밌어♡”

와중 우용에 대한 머메이드의 흥미는 최고치에 달했다.

여태껏 유지하던 고상한 말투를 내팽개치면서까지 노골적으로 흥분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흥미는 곧 호감으로, 호감은 곧 욕정으로 치환되었으니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외지인에 대한 경계심마저 사라졌다.

이윽고 그녀가 물장구를 치며 어벙한 표정으로 우물에 빠져있는 우용에게 다가갔다.

부드럽게 헤엄치는 잉어 꼬리가 홀로그램 필름을 씌운 것처럼 은은하게 빛을 반사해 무지개를 그렸다.

"우후훗♡ 학생의 귀여운 건방은 잘 봤어요. 이 물은 평범한 물이 아니에요. 특수한 과정을 통해 공기 중의 에르마를 액화 시킨 것이죠. 즉, ‘에르마’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답니다”

“에르마? 이 물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에르마를 이렇게 가시적인 형태로 접한 건 처음이었으니까.

우용에게 있어 ‘에르마’란 줄곧 보이지 않는 의문의 입자였다.

“이렇게 눈에 보일 정도로 농축하는게 가능한가요?”

“놀랍죠? 이 정도 양이면 드루이드령 3할 정도는 거뜬히 커버할 정도의 엄청난 양이랍니다”

마법이 나가지 않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뛰어난 집중력으로 아무리 연상을 잘해도 엄청난 에르마의 흐름에 휘말려 마법이 나가지 않는 것이다.

서커스의 ‘저글링’이라는 묘기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제아무리 잘난 피에로여도 공이 수백, 수천 개가 넘어가면 감당할 수 없게 되는 것과 같다.

“어째서 저는 가능하냐는 표정이네요?”

여인이 조악하게 웃는다.

이때 우용은 깨달았다.

집주인의 마법 실력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후후..너무 겁먹지 마요”

하얗게 질려 사색이 된 우용의 얼굴을 보며 머메이드가 태연자약하게 미소 짓는다.

라크스와 우용이 상대할 수 있는 여자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게 그녀는 지금껏 우물 밖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 에르마 농축액에 몸을 담근 채 여유롭게 마법을 남발한 셈이었다.

“우리 남학생은 아직 많이 미숙하군요. 배워야 할 게 산더미에요”

­파지지직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용의 사지에 무형의 사슬이 날아들었다.

“크윽..!!”

우용이 고안해낸 마법을 그새 카피해서 멋들어지게 내보이는 머메이드였다.

파훼법이야 꿰뚫고 있는지라 금방이라도 풀 수 있지만, 역시 피부에 직접적으로 맞닿은 천문학적인 수의 에르마 때문에 디스펠 마법이 전개되지 않는다.

머메이드는 입맛을 다시며 부드러운 손길로 우용의 옷을 풀어헤쳤다.

한꺼풀씩 능숙하게 벗기며 우용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으음.. 뭐랄까. 그릇도 크고 내용물도 꽉 찼는데… 걸음마를 제대로 배우지 않아서 자꾸만 흘린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도 너무 걱정 말아요♡ 선생님이 차근차근 알려줄 거니까”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이대로는 마법을 봉쇄당한 채로 마물과 섹스하게 생겼다.

평범한 일반 남성으로서 꼼짝도 못 하고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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