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무스를 반대로 착정한다-33화 (33/55)

〈 33화 〉 EP.8 일보 전진

* * *

“참, 말썽쟁이네요 학생. 어제 땡땡이는 좋았나요? 당장 오늘 아침 체력 훈련도 걸렀네요?”

“말도 마세요. 진짜 죽을 뻔했으니까”

2층 복도 끝에는 자그마한 발코니가 있다.

빨랫감을 너는 용도로 활용되는 장소라고 한다.

마법이 있으면서 왜 굳이 빨래를 하냐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우용도 처음엔 이해가 안갔다.

“그나저나 참 번거롭게 사네요”

의외로 이 세계의 사람들은 아날로그 방식을 중요시 여겼다.

감성을 중요시한다고 해야하나.

지구에서의 예시를 들자면, 좋은 차를 탈 수 있으면서도 일부러 올드카를 고집하는 것과 같다.

아니면 디자인 좋은 가구들이 많음에도 일부러 앤틱 가구를 선호한다거나.

“인위적인 바람보다 자연의 바닷바람이 좋아요. 낭만 있잖아요”

“그렇게 바닷바람이 좋으면 냄새를 흉내내면 되지 않나요?”

“그래서야 의미가 없죠. 모조품이 아닌, 진짜 자연의 바람이라는 의미가 중요한 거예요. 그런 것도 이해 못하나요? 하여간…”

“하하...”

라비앙의 독설을 받아들이며 우용이 담배를 태웠다.

할 말은 없다.

어젯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으리라.

타샤와 함께 나자빠져 자느라 주종 계약을 맺지 못했을 테니까.

“그나저나 먼저 깨워주신 건 감사한데. 대체 그 알약은 뭐였던 건가요”

라비앙의 협조는 알겠다.

알겠다만, 그 의문의 알약은 대체 무엇인가.

웨어울프는 분명 알약을 먹으며 라비앙을 언급했었다.

“의심하는 건가요?”

“그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요”

“표정은 그렇지 않은데요? 흐음, 배은망덕하네요 학생. 그건 발정제에요”

“네?”

예상대로 알약의 정체는 발정제였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라비앙의 태도가 심히 뻔뻔하다.

“아니아니, 그걸 왜 도와주셨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저 진짜 죽을뻔했다니까요?”

“에휴 답답해”

더욱 놀라운 건 군리의 명령이었다는 점이었다.

“웨어울프와 교미하면서 이상한 점 못느꼈나요?”

“이상한 점이라…”

“그녀들은 일반 마물과 차이가 조금 있죠”

잘은 모르겠다.

굳이 꼽자면 이 세상 괴력이 아니라는 점과.

아, 그리고 최음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

생각해보니 웨어울프와 교미하면서 최음에 걸린 느낌은 일절 없었다.

“맞아요. 웨어울프들은 딱히 최음제를 분비하지 않아요. 참 신기하게도 몸의 특성이랑 가치관이 일치하는 여자들이죠”

비겁함을 싫어하는 웨어울프의 단순 우직한 성격이 마치 신체 특징에서 파생되었다는 듯이 이야기 하는 그녀.

하긴, 한 달이라는 긴 발정기도 일종의 신체 메커니즘이고, 이는 웨어울프의 행동 양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교미에 있어 오로지 신체로만 승부를 보는 마물이에요”

“그렇다기엔 어제 열 번이나 사정했는데...질액에 특수한 효과라도 있는 건가요?”

최음제없이 그렇게 발기할 수는 없다.

자신의 몸은 자신이 잘 알고 있다.

확실히 우용은 일반인에 비해 정력이 좋은 편이긴 했으나 아무런 효과없이는 네 번, 많아야 다섯 번이 한계다.

아홉 번이고 열번이고, 탈인간적인 사정이 가능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최음의 효과였다.

“아니에요. 그저 그녀들의 질 구조는 조금 달라요. 구조의 변형이 타종에 비해 상당히 자유로운 편이죠. 마치 근육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그런 느낌 못 느꼈나요?”

확실히 그랬었지.

우용이 고갤 끄덕였다.

“아무튼, 발정제가 아니었다면 못 이겼을 거예요. 발정상태에 들어가면 보다 과격한 착정이 가능하지만, 그만큼 지능이 떨어지고 자신도 예민해지기 마련이죠. 양날의 검과 같다는 말이에요”

“흐음…”

“만약 그 알약을 주지 않았더라면 학생. 무조건 졌어요”

선천적으로 최음제를 분비하지 않는 몸이다.

그대신 신체 능력이 월등히 발달하였다.

즉, 무시무시한 근력 하나로 남성을 역강간하는 여자들이었으니.

발정 상태가 아니었다면 보다 섬세한 근육의 컨트롤이 가능했을 것이고, 그만큼 우용은 고전했을 것이다.

“흠…그렇군요”

“상대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건 중요하죠.”

웨어울프의 멍청하고 무데뽀인 면모가 살렸다.

예리한 여편네였으면 진작에 여정은 끝났으리라.

“그래도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됐을 텐데. 사실 이번에 우용씨와 함게 배우게 될 학생들은 군리 교수가 직접 선발했거든요. 혹여나 들킨다하더라도 충분히 제제 가능할 법한 분들로구성했으니까요”

“네? 아니 잠깐만요”

아니, 그러면 빨리 좀 말하라고.

“그 엘프랑 늑대를…일부러 골랐다고요?”

“네. 당신과 우물 바닥에서 대화한 직후 명단을 수정했을 거예요. 설마 이번처럼 특이한 경우에 평소처럼 학생들을 모집했을까요?”

우용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사실 다른 학생들을 아예 안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 또한 군리의 의도였다.

동기들과 함께하며 상호적으로 배울 수 있다는 게 있다면서.

그 문어 박사는 일부러 우용과 함께 할 학생들을 선발했다.

체력은 타샤에게.

마법 센스는 아리아에게.

“만일의 상황에서도 학생의 비밀을 지킬 수 있도록 특별히 선발했어요”

기본적으로 타샤는 단순하고 아리아는 관심이 없다.

그녀들을 위한 대비책은 얼마든지 준비되어 있었다고 한다.

“하아…그런 거였다니…”

어질어질하다.

결국 이 오두막 여편네들의 손아귀 위였다는 것인가.

물론 마음은 안심이 된다.

라비앙은 둘째치고 군리의 직접적인 케어라니.

든든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두 분이 지인이었다는 건 예상 외였네요”

“그럼 좀 빨리 도와주지 그랬어요”

“재미없잖아요? 아무튼 좋은 경험했네요. 다양한 마물과의 교미는 중요하답니다”

"재미없다라...하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선생님!"

*

오두막의 아침 풍경은 난장판이다.

어제야 타샤의 일로 정신이 없어 신경쓰지 못했지만, 여유를 갖고 둘러보니 참 가관이다.

“이야…”

아까부터 우용을 노려보며 질겅질겅 고기를 씹는 웨어울프.

우물에서 독서하며 샌드위치를 들고 있는 인어.

거대한 지네 몸체의 향랑각시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영향이 크다.

그 사이에서 묵묵히 식사를 드는 수녀 엘프는 난잡한 주변 환경의 조화를 무자비하게 부순다.

“그르르르…”

어제 일이 분한 건지 타샤가 연신 우용을 향해 그르렁거렸다.

“워워…난 이제 네주인이야”

“잘도 해줬겠다! 크흑..!!”

타샤가 주먹을 쥐었다.

진상을 알고나니 크게 걱정되진 않는다.

어젯밤 라비앙의 도움으로 주종 계약도 끝마친 상태다.

애당초 타샤부터가 패배를 깔끔하게 인정했다.

실제로, 비밀을 발설하고 자시고는 타샤에게 있어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우용의 비밀은 이미 관심사 밖이었다.

그녀는 그저 승부에서 패배했다는 사실이 분했다.

패배를 인정하는 것과 분한 감정은 명백히 달랐으니.

참으로 웨어울프답게 분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르릉…흐음…”

굉장히 분하지만.

또 한편으론 기대가 되었다.

우용의 종복으로서의 앞날들이.

비록 남편으로 삼진 못했지만 어찌됐든 우용과는 함께할 몸이 되었다.

어쩌면 또 교미를 할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주인님. 어쩌자고 또 종복을 만들었어요?”

“하아…어쩔 수 없었다니까. 이해하잖아”

“그치만…”

라크스는 자기 말고 또 다른 종복이 생긴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그녀의 질투 어린 시선은 곧잘 웨어울프를 향했다.

“쯧..”

“크르르르…”

눈이 마주치면 서로 으르렁 대기 일쑤.

이유없는 악감정으로 서로를 노려보다가, 이내 ‘노예 선배’인 라크스에게 궁금한 것이 생겼는지 타샤가 질문한다.

관심있는 건 역시 교미다.

“네년. 종복이 되고 교미한 적은?”

“친근한 척 말걸지 말아주세요. 무식함이 옮을거 같으니까”

“하핫­!! 재밌네~?”

­쾅!!

주먹을 쥐며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서는 타샤.

그 덕에 애꿎은 의자 다리만 두 동강 났다.

“식사는 조용히 하세요”

자그마한 소란에 독서하던 라비앙이 일침을 가한다.

“하하하…”

난처한 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다.

우용이 신경쓰이는 건 역시, 이러한 소란 사이에서 묵묵히 식사하고 있는 엘프였다.

왠지 라크스와 타샤가 소동을 벌이는 게 전부 자기 탓인 것만 같았으니.

책임지고 서둘러 주제를 돌리기로 한다.

“하하! 그나저나 오늘 고기수프가 참 맛나네. 누가 했을까?”

“제가 했어요. 우후훗♡”

­까드드득

라크스의 발톱들이 신난 듯 까득거렸다.

“그러고보니 인간은 맛을 중요시하죠?”

“으음. 확실히… 훌륭한 아내가 되려면 요리는 필수지”

“에엣?! 그런 건가요?”

마물은 대게 잡식성이다.

이는 그녀들이 무엇이든 잘 먹기 때문이 아니라무엇을 먹든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을 어떠한 ‘맛’을 느끼며 먹는다­는 중요치 않다.

마물들의 식사는 ‘신체 활동을 위한 영양 보충’이라는 행위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의식주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개념이었으니.

마물들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쾌락뿐이었다.

당연히 미각보다 성감이 발달했다.

좀 더 외설적으로 말하자면, 음식을 맛보기 보다 자지와 정액을 맛보는 걸 더욱 중요시하는 작자들이다.

여하튼,

이러한 문화와 가치관 때문에 마족령은제대로된 요리 문화가 발달될 수 없었다.

그런 곳에서 먹고 자란 마물들이 멀쩡한 요리 실력을 갖추고 있을 리 없다.

단순히 고깃덩어리를 조리해 먹거나.끽해봐야 빵과 함께 이것저것 곁들인 샌드위치가 전부다.

“머릿속에 교미밖에 없어서 몰랐지? 진짜 남편을 얻고 싶으면 요리부터 해봐. 으음.. 너희는 내 종복이니까. 내게 맛있는 요리를 해주는 건 어때? 연습한다는 셈으로”

의도가 뻔히 보이는 꼼수지만.

주인으로서 이 정도쯤은 괜찮지 않을까.

그러고보니 도망 이후 제대로 된 식사를 해본 적이 없다.

먹는 걸로 투덜거릴 생각은 결코 아니지만. 내심 맛있는 음식들이 생각나는건 사실이다.

어쩌면 풍족했던 ‘미끼’ 생활 때문인지도 모른다.

“혹시 몰라? 만족시키면 어떤 상이 있을지”

“우후훗♡ 주인님. 그거 진심? 주인님을 만족시키면 교미해주시는 건가요?”

관심을 보이는 라크스와, 교미라는 말에 귀를 쫑긋 세우는 타샤.

“하하! 암튼 열심히 해봐. 타샤도 라크스한테 배울 건 배우고. 라크스도 쓸데없는 텃세 부리지 말고”

“크르르..”

“쳇…”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들.

나름 분위기를 잘 풀었다고 생각했다.

우용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식사를 들고 있는 엘프를 흘겨 보았다.

기다란 베일에 가려져 눈이 보이지 않는다.

오똑한 코와 오물거리는 작은 입술만 보인다.

“크흠..드루이드령은 어떤가요? 그러니까 식문화에 대해서...”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금방까지 마족령과 인간령의 식습관 차이가 주제였으니까.

이번엔 드루이드령을 언급할 차례가 아닐까­싶었다.

“…”

분명 아주 자연스러울 터였는데.

“선생님.수업은 언제 하죠?”

대놓고 무시라니.

무관심은 독설과 질타보다 아프다.

바텐더로 일하며 수많은 사람을 상대해봐서 잘 알고 있다.

처음부터 아예 귀를 닫는, 이런 부류의 작자들에겐 아무리 말을 걸어봤자 소용없다.

우용도 그냥 빠르게 포기했다.

대화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말을 거는 것만큼 무례한 행동이 또 없으니까.

“그래요. 식사들 마쳤으면 슬슬 수업이나 할까요”

책을 덮으며, 라비앙이 물방울을 타고 우물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다소 난잡한 아침 식사가 끝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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