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EP.9 거짓된 세계 (3)
* * *
“별로 안좋아해요”
좋아하지 않으면서 왜 이런 독한 술을 마시는 걸까.
심지어 꽤 매니악한 부류의 증류주다.
지구로 치면 특정 증류소에서만 생산되는 싱글 몰트위스키랄까.
아마 술에 대해 뭣도 모르고 막 시켰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 예상외로.
당황하기는커녕 꽤나 담담하게 마신다.
한두 번 마셔본 느낌이 아니다.
“그런 곳 치곤 잘 마시는데요? 보통이면 그 특유의 향 때문에 입에 대는 것조차 힘들어할텐데.”
“..언니가 즐겨 마시던 술이거든요”
무언가 사연이 있는 듯하다.
베일에 가려져 표정은 모르겠고,그저 여인의 목소리가 조금 어두워졌다.
“언니가 술을 즐기셨나 보군요”
“…”
“색이 꽤나 탁한데, 로벨리 지방 라임을 넣었나 보네요. 각설탕도 좀 들어간거 같고. 언니분 취향 참 독특하시네”
매니악한 증류주를 보니 반가운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조주 지식이 술술 튀어나온다.
“…”
그러나 여인의 반응이 심심하다.
언니 때문일까?
아무튼 더 이상 이와 관해 얘기하는 건 좋지 못한거 같다.
우용이 이야기의 주제를 돌리려던 찰나.
공교롭게도 잠시간 침묵하던 여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술에 대해 잘 아시나요?”
“하하..취미로 이것저것 접해봐서.. 일반인 보다 자신은 있어요”
“그렇군요”
여인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여기도 틀렸어요. 그 맛이 안나요”
어째선지 잘만 홀짝이던 술잔을 손으로 밀어내 멀리한다.
“단골손님이 아니었던 건가요?”
“네. 여유가 생길 때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요. 항상 같은 주문을 시키죠”
“그러니까.. 이 술만?”
그녀가 고갤 끄덕였다.
다양한 주막을 돌아다니며 같은 메뉴만 시키는 모양이었다.
“언니는 직접 타마셨거든요. 가끔 뺏어마셨던 게 전부였는데. 그래도 확실히 기억에 남아있어요. 독하고 가슴이 아리지만, 마지막은 단맛으로 끝나는…분명 오선초 향이 많이 났어요”
여인이 아리송하게 맛을 묘사한다.
한 마디로 그녀는 자신의 언니가 타마셨던 술맛을 찾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이렇게 술집을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흐음…”
두서없는 묘사는 오랜만이다.
지구에서 일하며 이런 고객을 만난 게 한두번이 아니다.
질릴만큼 상대했고, 그만큼 만족도 시켰었다.
어쩌면 그녀를 도울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감히 드리는 말씀인데. 제가 한번 흉내내봐도 될까요?”
“네?”
“그 언니분이 마셨던 맛을 재현해 볼게요. 이래봬도 꽤 오래된 취미거든요”
“그게 가능한 가요? 저야 감사하지만..”
“제게 한 번 맡겨 보세요. 속는 셈 치고”
여인이 머뭇거리다 이내 끄덕였다.
다소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지만 거절하진 않는다.
“도와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부디 부탁드려도 될까요?”
“맡겨만 주세요”
미안해하며 사양하는 행동거지와는 반대로 목소리에 기대감이 담겨 있었으니.
그 기억 속의 ‘술맛’에 꽤나 집착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제가 할 일은…”
“그냥 말씀해주시면 돼요. 아무렇게나 나열해보는 거예요. 기억 속의 술맛을”
“아..알겠습니다”
이렇게 말해놓고 정작 조주에 실패하면 그만한 쪽이 없다.
우용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는 상황.
그래도 경험은 무시 못한다.
서비스업으로 손님을 상대했던 나날들이 마냥 허송세월은 아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의 능글맞은 수완이 발동했다.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까. 내기를 할까요?”
서로의 부담을 줄이고, 재미로 이끌어가는 방법이 하나 있었으니.
“조주하려면 술을 주문해야하니까. 앞으로 주문할 술값의 내기를 하죠. 제가 언니의 맛을 재현하면 그쪽이 내는 걸로. 실패하면 제가 내는 걸로”
바로 내기를 가미하는 것이었다.
이러면 일종의 유희에 불과해진다.
재현에 성공하면 좋은 일이고, 실패해도 그만이다.
물론, 최선은 다한다.
“아..좋아요!”
우용의 의도대로 여인이 한결 가벼워진 목소리로 긍정했다.
“으음.. 일단 주막을 들릴때마다 시킨다는 그 술. 언니가 즐겨마셨던 술과 명칭은 같죠?”
“네. ‘블랙 사파이어’라는 술이에요. 언니도 항상 입에 달고 살았어요. 블랙 사파이어 한잔하고 싶다고”
주막을 돌아다니며 메뉴판을 어느정도 섭렵하고 나면, 자연스레 자신의 방식으로 입맛에 맞게 타마시는 경지에 오른다.
우용 역시 칵타일 세계에 그렇게 입문했다.
이 경우 어디까지나 아마추어일 뿐이다.
없던 레시피를 만드는 게 아니다.
기존에 존재하던 것에 한두가지 재료,섞는 술의 비율에 변화를 줌으로써 아주 약간의 맛을 조정할 뿐이다.
즉, 베이스가 되는 술의 차이는 없다.
핵심이 되는 중요한 리큐르들도 마찬가지다.
“실례지만 조금만 마셔볼게요”
“네. 마음껏”
그녀에게 술잔을 건네받았다.
한 손으로 가면을 살짝 벌린 채, 고개를 돌려조금 음미해 본다.
예상대로 라임의 진한 향이 올라온다.
각설탕 역시 들어가 있는 모양.
평범한 블랙 사파이어의 맛이다.
“언니의 술도 이 정도로 텁텁했나요? 간혹 녹지 않은 설탕 알갱이가 씹히는 경우가 있다던가”
“아뇨. 설탕 알갱이가 씹히는 경우는 없었어요. 텁텁한 정도는 비슷해요. 단 맛도 제대로 났고”
“그리고 오선초 향이 났다고 했죠?”
“네. 맞아요. 많이 났어요. 알코올 향을 덮을 정도로”
“으음.. 독한 정도는 어느 정도인가요?”
“분명 이것보다 마시기 힘들었어요”
그녀로부터 몇 가지의 정보를 얻은 우용이 갈피를 잡았다는 듯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하나씩 재료가 되는 술과 재료들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점주님 주문 좀 할게요”
“네에~”
“이프리콧 한 잔이랑, 베일리쉬한 잔. 그리고 로벨리 라임 하나랑. 비콘 이파리 두 장. 이렇게 주문할게요. 아, 술은 아무것도 첨가하는 것 없이 내용물만 따라 주세요. 빈 잔도 하나 주시고”
“어…”
메뉴판에 없는 원재료를 요구하니 당황할 만하다.
“계산은 확실히 할테니까요”
“크흠..! 알겠습니다 손님”
“소금이랑 화이트 시럽은 조금만 빌릴게요?”
특이한 손님이네 중얼거리며.
엘프 점주가 그에게 시럽이 담긴 유리병을 건넸다.
이윽고 우용의 요구대로 순수한 내용물만 담긴 술잔들이 하나 둘 그의 앞으로 대령되었다.
자체의 단맛이 강하고 점도도 진하기에, 결코 그냥 생으로 마시는 술들은 아니다.
“시작할게요”
우용이 빈잔에다가 투박하게 술을 때려박기 시작했다.
증류주의 비율은 도수가 센 쪽을 조금만 늘린다.
베이스가 되는 술 자체가 단맛이 강하지만, 끝맛을 더욱 강조하려면 약간의 시럽과 소금을 첨가하는 것이 좋다.
“각설탕 없이 저렇게 탁한 색과 텁텁한 맛을 내려면 라임을 상당히 많이 넣어야 하죠”
“흐음…”
일반적인 ‘블랙 사파이어’의 레시피보다 두 배 가까이되는 라임 즙을 넣는다.
“오선초 향이라고 진짜 오선초를 넣는 건 아닙니다.”
실제 오선초는 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대신 비스무리한 향을 흉내내는 허브를 넣는다.
이계에서 사용하는 가니쉬의 범주는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오선초 향을 내는 가니쉬는 인간령 서부의 특산품 ‘비콘’이 유일하다.
아마 이것이 그녀의 언니분이 제조한 술의 가장 큰 특징일 것이다.
“완성됐습니다”
“와아..이렇게 금방..”
3분도 걸리지 않았다.
우용의 능숙한 손놀림아래 칵테일 한 잔이 뚝딱 완성되었다.
“한 번 마셔보세요”
우용이 완성된 술잔을 여인에게 살포시 밀어주었다.
“그럼…”
긴장과 기대가득한 마음으로 술잔을 기울이는 그녀.
“…!!”
한 모금 머금자마자 움찔하고 놀란다.
“어떤 가요? 언니분이 만드셨던거랑 비슷한가요?”
우용은 확신했다.
자신이 술값을 지출하지는 않을 거라고.
로브 너머로 그녀의 표정을 볼 수 있었더라면 아마, 두 눈이 휘둥그레져 있을 것이 분명하다.
“…놀라워요. 여태껏 수많은 술집을 기웃거려도 찾지 못했었는데”
실로 놀라웠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대로, 모호하게 내뱉었을 뿐인 적당한 묘사로 이러한 재현이 가능한 것인가.
“정말 말도 안돼요. 이 정도로 비슷하다니…”
허나 그녀의 어감에서 묘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하하.. 그렇게 똑같진 않나 보네요”
“아니에요. 정말 똑같은데 아주 조금 달라요. 아주 조금. 아, 물론 술값은 제가 지출할 거예요. 솔직히 믿기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아주 조금 다르다.
그녀는 딱히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으니, 언니가 만든 술에 특별한 자부심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아주 극미한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신의 미각을 지니고 있지 않는 이상, 일반인이 이토록 유사하게 만든 술의 차이를 느끼기는 불가능하다.
우용이 재현한 술은 실제로 여인이 맛봤던 과거의 술맛과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그녀가 미세한 차이를 느끼는 이유가 뭘까.
대강 짐작이 간다.
“그 이유는 간단하네요”
“네?”
“술의 맛과 향이 꼭 섞는 술의 비율과 향신료, 가니쉬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우용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갸우뚱 고개를 기울이는 여인.
“그러니까 함께 마시는 대상, 분위기. 요주의 사건 등이 한 데 모여 술맛을 결정합니다. 2% 부족할 수밖에요. 이건 제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죠”
대수롭지 않은 듯 우용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혹시 모르니 레시피는 적어드릴 테니까. 훗날 언니와 함께 다시 마셔보세요. 분명 제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과연…”
여인이 술을 한 모금 더 홀짝였다.
“우후후..재밌네요 당신”
꽤나 인상깊어하는 목소리로 작게 웃는다.
“마치 제 언니 같아요. 키가 큰 점도 그렇고, 목소리도 그렇고. 무엇보다 성격이”
“하하하..그런가요?”
“네. 능글맞기도 하고,다정하면서. 술을 좋아하고…”
*
여인과는 꽤 오랫동안 얘기했다.
그녀는 생각보다 말수가 많았다.
성공적인 칵테일 조주가 꽤나 호감을 산 모양인지 먼저 이것저것 이야깃거리를 꺼내는 그녀였다.
마물을 상대로 평범하고 진득한 대화라니.
예상대로 그녀는 드루이드령 현지인이었다.
그 덕에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건 역시 ‘딸’들에 대해서일까.
“드루이드령은 오히려 인간 여성들이 우대를 받아요. 남자아이를 낳을 수 있는 유일한 여성이니까”
중립국인만큼,전쟁이 필요없는 드루이드령이 인구 문제를 대처하는 방식은 특이했다.
인간령은 부족한 남성 개체를 충당하기위해 ‘이계인’이라는 기구한 제도와 철저한 관리 제도를 마련했다.
마족령은 번식과 남성 개체의 보존을위해 인간령으로부터 인간 남성을 착취했다.
반면 드루이드령은 다툼이 없는 만큼 남성 개체수가 위협받을 일이 없었으니. 인간 남성에 대한 취급이 남달랐다.
남성의 경우 일부다처제와 같은 방식으로 자유로이 살아가는데 반해, 오히려 현지 인간 여성이 더욱 부자유스러웠다.
그녀들이 남자아이를 낳느냐에 따라 드루이드령의 존속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딸’이라 불리는 그녀들은 철저한 관리 속에서 오로지 인간 남성의 씨를 받고 아이를 낳기 위해서 일생을 바친다.
남자야 뭐, 정액을 싸지르기만 하면 끝이지만.
아이를 가지는 여성은 임신 기간이 있기에 관리가 더욱 까다롭다고 했다.
“드루이드령이라고 마냥 오아시스는 아니었네요. 여기는 또 인간 여성들이 고생하는군요”
“어쩔 수 없어요. 이면에는 어두운 면이 있을 수밖에 없죠. 그야 세상이 이렇게 난장판이니까요”
“인간 여성들의 수는 유지가 되나요?”
“그녀들에 한해서 로벨하임은 적극적으로 이민을 수용하고 있어요. 의외로 꽤 수가 많답니다”
“뭐, 드루이드령으로 이민 오는여자들이 많은 건이해가 되네요. 인간령에서 여성에 대한 처우는 그렇게 좋지 않거든요. 반강제로군에 들어가서 허구한 날 고생길만 걸으니까..”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건 행운이었다.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주막에 들어간 건 최고의 선택이었다.
“당신도 군인인가요?”
우용이 일순간 당황했다.
당연히 정체와 관련한 질문에는 예민할 수밖에 없다.
별 수 없다.
적당히 얼버무리는 수밖에.
“뭐, 휴가내고 여행 온 셈이죠”
때마침 슬슬 일어나야할 시간이다.
술잔을 기울이며 정신없이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었다.
아리아와 약속했던 시간까지 앞으로 30분.
술집을 나서기에 적당한 시간이다.
약속의 장소까지 거리는 짧지만 변장을 풀어야 하기에 미리 나설 필요가 있었다.
“어이쿠야. 시간이 벌써 이렇게…슬슬 돌아가야 해요 저는.”
“…그렇군요…”
여인이 아쉬운 듯 살짝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고는 팔목을 만지작거린다.
“…”
그러한 그녀를 우용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렇다 저 습관.
중간부터 신경쓰이는 게 하나 있었다.
로브에 가려져 팔찌는보이지 않지만,
왜 저렇게 팔목을 만지작거리는 걸까.
이상한 기시감이 든다.
그러니까.
그녀를 보고 있으면 문득 아리아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도.
묘한 분위기도.
저 이상한 습관도.
‘하…피곤한가 보네’
우용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기시감을 가질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도 그럴게 그녀의 손은 파충류의 것을 똑 닮아 있었으니까.
어느 엘프의 손이 저렇단 말인가.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먼저 일어선 그녀가 다소곳이 꾸벅였다.
“네. 저도 즐거웠어요. 오늘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거예요”
우용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현관문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디려던 찰나.
살며시 당겨지는 옷소매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저…마지막으로 꼭 보답이 하고 싶은데.”
“보답이요?”
“네. 당신은 제 은인이니까요”
“하하 은인은 무슨…저야말로 술이나 얻어 마시고 좋았죠”
그 술맛의 의미가 그녀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우용의 입장에선 호들갑으로만 느껴졌다.
“근처에 묵으려 했던 숙소가 있어요. 그곳에 두고 왔는데…같이 가주실 수 있을까요?”
마음은 고맙지만 시간이 얼마나 지체될지 모른다.
“그 시간이 좀..하하…”
“여기서 바로 뒤쪽이에요.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 곳인데. 어떻게 안 될까요?”
“어..음…”
이렇게까지 보답하고 싶다는데 어찌 거절할 수 있으랴.
“하하..제가 좀 바빠서 그런데. 그럼 빨리 좀 부탁드릴게요”
“네! 빨리 가요 우리!”
여인이 신난 듯 우용의 손을 낚아채고는, 성큼성큼 앞장섰다.
따르릉
“안녕히 가세요!”
*
가까운 뒷골목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었다.
깔끔하고 생기 있는 길거리와는 딴판이었다.
폐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구조.
난민촌이라기엔 주민이 아무도 없다.
“여기 숙소가 있는 게 맞나요?”
“맞아요. 다 왔답니다”
아무리 봐도 재개발 지역인 거 같은데.
멍청하게 주변을 둘러보던 우용은 잠시 후 그녀의 손에 이끌려 어느 건물로 들어갔다.
다 무너져가는 석조 건물이다.
반전은 없었다.
카운터에 사람은커녕 파리 한 마리도 날아다니지 않았다.
그냥 아무도 없는 폐건물이었다.
그러나.
어째선지 여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우용의 손을 꽉 붙잡은 채 2층을 향해 성급히 올라갔다.
“저기…아무리 봐도 숙소는 아닌 거 같은데”
“…”
강제로 끌려온 셈이다.
2층에 위치한, 그녀가 머무를 예정이었다는 방엔 그녀의 짐으로 예상되는 물건들이 몇몇 널브러져 있었다.
그러니까 익숙한 수녀복이.
뭐, 특이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종교 국가인 만큼 수많은 주민들이 수녀복을 애용했으니까.
일종의 전통 의상과도 같다.
허나 이어지는 그녀의 부탁은,
마냥 웃으며 넘어갈 수 없는 말이었다.
“혹시 그 가면을 벗어주실수 있나요?”
너무나도 공손하고 차분한 목소리.
“하하하…저야 괜찮은데. 그런 건 부탁하는 쪽이 먼저…”
파르륵!!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인이 로브를 촤악 펼쳤다.
“…!!”
로브의 끄트머리를 붙잡은 채 양손을 활짝 벌린 그녀.
그 검은 로브의 안쪽엔 수많은 살인 기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다양한 형태의 검과 독침들.
거대한 가위와 벤찌, 표장과 수리검.
날렵한 전투에 최적화되어있는, 거의 알몸과 다름없다고 봐야 할 야릇한 복장.
허리띠와 허벅지의 벨트에도 역시 살벌한 무기들이 고정되어 있다.
피카앙
보이지 않는 검격이었다.
그 섬세한 검격은 정확하게 우용의 가면만을 두동강 냈다.
찰그락…
“여성 호르몬 특유의 냄새와 여자 목소리..하마터면 모를 뻔했는데. 클레어씨. 아니, 그것도 진짜 이름이 아니겠죠”
“누..누구야 넌?!”
“묻고 싶은 건 제가 더 많아요. 어떻게 알고 제게 접근한 거죠?”
무언가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가면이 벗겨지니 머리가 새하얘진다.
어떻게 된 판국인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내 여인이 머리에 뒤집어쓴 로브를 마저 벗었다.
타오르는 붉은 머리카락과 용족의 뿔.
금색의 커다란 홍채와 십자가로 길쭉한 동공.
얼굴 가양과 목을 뒤덮고 있는 파충류 고유의 비늘.
“아니. 그러니까 누구냐니..”
“아직도 시치미를뗄 생각인가요?”
홀로그램처럼 비늘이 번쩍이며 여인의 몸이 서서히 변한다.
“그래요. 이 모습이 더 재밌으니까”
붉은색 비늘이 초록색으로 변하고, 용족의 뿔이 사라진다.
그렇게 잠시간 본연의 모습을 거쳐, 이내 우용에게 익숙한 모습으로 한 번 더 변하기 시작했다.
뾰족한 귀.
우유처럼 새하얀 피부.
금색이 어른거리는 밝은 연둣빛의 머리칼.
엘프였다.
정작 그 눈을 제대로 마주친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우용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리아…?”
“죽어주세요. 가명, 클레어 씨.아, 역시 바로 죽이기엔 아까우니까..”
꿈에도 몰랐다.
그녀의 정체가 카멜레온이었을 줄은.
"교미로 죽여줄게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