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EP.10 졸업 시험 (上)
* * *
생각대로 사는 것과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
많은 이들이 전자를 선호하지만 공교롭게도 대부분의 일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본래의 계획은 우연을 거듭하며 무너지고,
믿었던 것의 실상을 알고 배신감을 느끼기 십상이다.
결과적으로 오두막의 모두가 우용의 정체를 알게 된 점이나. 드루이드령의 실체를 알게 된 후 머리를 쥐어 싸맸던 점이 그러하였다.
중립국 로벨하임.
솔직히 꽤나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다소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면이 있더라도, 중립국의 존재는 언젠가 평화의 씨앗이 될 것이 분명할 거라 생각했다.
“후우…”
담배연기가 어둠 속으로 자욱이 뻗어나간다.
그 쓰레기 같은 진실을 알게 되고 벌써 1년이다.
“시간 참 빠르네..”
한숨을 내쉬며,
우용이 오른손에 들린 가짜 담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모조품이라 그런지 목 넘김이 만족스럽지 않다.
라비앙에 의해 연초는 반강제로 끊게 되었다.
정력에 좋지 않다나 뭐라나.
다소 불만을 표하긴 했지만,
결국엔 고집스럽게 담배를 끊어낸 우용이었다.
겉으론 찡찡대도 내심 악착같이 매달렸다.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자 하였으니까.
이 끝이 보이지 않는 다툼 속에서 실낱같은 희망이라 생각했던 드루이드령도 이제 믿을 게 못 된다.
믿을 건 자신밖에 없다.
그 고독함 속에서 우용이 할 수 있는 건, 이런 사소한 습관들도 무시하지 않고 하나씩 개선해나가는 것이었다.
“우용씨?”
그렇게 발코니에서 사색에 젖어있던 와중.
뒤편에서 들려오는 하늘하늘한 목소리에 우용이 고개를 돌렸다.
아리아였다.
이 오두막에 한해서, 더 이상 ‘클레어 말츠바르젠’이라는 거짓된 신분과 이름은 필요가 없어졌다.
“다들 취해서 뻗어 있어요”
“라비앙도?”
“선생님도 버티다가 지금은…”
“하하하…뭐, 약한 술은 아니니까. 넌 용케 멀쩡하네”
“저는 별로 안 마셨잖아요. 체질이 아니라서…”
아리아가 우용의 곁으로 다가와 함께 난간에 기댔다.
“우용 씨는 괜찮나 보네요?”
“나야 뭐, 술에 살고 술에 죽었었지. 일이 그쪽이었으니까.”
카멜레온 특유의 영롱한 눈동자는 언제 봐도 신비스럽다.
바닷바람에 흩날리는, 짙은 초록색과 밝은 연둣빛의 투톤 머리칼.
그 아래는 하얀색 크롭 나시티의 편한 차림이다.
그 덕에 짙은 초록색 비늘들로 덮여 있는 목과 어깨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좀 더 아래로 시선을 옮기면, 묵직하게 흔들리고 있는 도마뱀 꼬리를 볼 수 있다.
깔끔하게 재생되긴 했지만 이제 더 이상 꼬리 자르기를 사용할 순 없을 것이다.
“어..어딜 봐요?”
아리아가 엉덩이 부분을 가리며 뾰로통하게 우용을 올려다봤다.
“어? 아니 그냥…”
이렇게 본모습으로 돌아다니는 아리아를 보고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 역시 이 작은 오두막에 한해서 아무것도 숨기지 않게 되었다.
“다들 정이 꽤 많이 들었어. 이제는 진짜 내 집 같달까”
“…”
“그래도 이런 가족 같은 분위기, 나쁘지 않지?”
“그러게요…”
취기의 도움을 받아 절로 낯간지러운 소리가 튀어나온다.
그런 우용의 영향일까.
다소 부끄러우면서도 아리아 역시 감성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언니의 술을 모두가 함께 나눠마시니까 뭐랄까… 기분이 묘해요."
“하하하. 좋은 의미지?”
“무, 물론이죠!!”
별들이 수없이 새겨진 밤하늘 아래.
잠시간 적막이 감돌았다.
“…”
“…”
아리아는 우용이 고마웠다.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눈앞의 남자는 홀로 서는 방법밖에 모르던 자신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어쩌면,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을 알게 모르게 두려워하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언니와 친구들처럼 언젠가 또 잃을까 봐.
그런 불안함 마저도, 이 이계인 남성은 언니의 술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만들어주며 떨쳐내도록 달래주었다.
아리아는 모두를 믿으라는 우용의 조언을 따랐고, 시간이 흘러 오두막의 모두는 이렇게, 서로를 지탱해 주는 가족이 되었다.
입은 조금 험할지라도 선생은 언제나 제자의 편이었다.
다른 두 여인은 칠칠맞지 못하고 상대하기 피곤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단도직입적으로 함께 있으면 재밌었다.
그렇게 확신하던 우용의 말대로 자신의 신변을 고발하려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어쩌면 그냥 우용 이외에 관심이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부족하다고 느꼈던 ‘블랙 사파이어’의 2%는 또 다른 색들로 채워졌다.
전부 저 검은 머리칼의 이계인 남자 덕분에.
언니와 함께 했던 시간과는 또 다른, 잊지 못할 풍부한 맛이 또 하나 추가되었다.
“고마워요 우용씨”
언니를 잃고 줄곧 아리아를 괴롭혔던 마음의 공동은 이제 오두막의 가족들로 가득 찼다.
“왜 그래 갑자기”
“그냥 여러모로”
“허허…”
아리아도 참 부드러워졌다.
모든 것을 털어놓고, 대등한 위치에서 대화한 이후 그녀와는 급격히 친해졌다.
일방적으로 그녀의 비밀을 쥐어잡고 있었을 수도 있었지만, 그런 건 우용이 원하는 게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진실된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
잘 풀렸으면 아무래도 좋은 것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자신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거짓된 신분으로 남몰래 힘을 키운다는 점이나.
세계의 부조리함을 바로 고치고 싶다는 점이나.
그래서 더욱 끈끈해질 수 있던 걸지도 모른다.
모질이인 타샤와.
또라이성 짙은 라크스.
욕을 달고 사는 라비앙.
“정말이지, 아리아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네..넷?!”
“오해 마라. 나는 섹시한 스타일이 취향이야”
“…진짜 저질…”
비교적 성숙한 아리아와의 대화는 최고의 힐링이었으니까.
“…처음 카포티아에 갔을 때 기억해요?
“당연하지. 그런 극적인 상황을 잊을 수가 있겠냐. 다짜고짜 죽이려 들었으니까”
“그, 그건…크흠…!! 그건 미안하다구요”
“그러고 보니 아직도 듣지 않았네. 대체 어떻게 알았던 거야? 나, 아무리 생각해도 들킬만한 행동을 하진 않았던 거 같은데”
“처음엔 냄새였어요”
“뭔 냄새?”
“담배 냄새요. 그 담배, 흔하지 않잖아요. 향도 특이하고. 구하기 굉장히 힘든 걸로 알고 있는데”
맞는 말이다.
우용이 피우던 담배는 기호식품에 어지간히 진심인 매니아들이나 미끼의 신분이 아니라면 구하기 힘든, 최고급 품질의 연초였다.
“뭐 이리 잘 알어. 너… 설마 담배 피냐?”
“아니거든요!? 언니도 그 담배를 애용했어서 알고 있을 뿐이에요! 용차에서 피우실 때 냄새 맡고 깜짝 놀랐었는데…”
“하하하..그땐 미안했네. 너한테 관심 좀 끌려다가…”
“참나…진짜 미친놈인 줄 알았다니까요?”
“마지막은 약속시간이었죠. 제가 말했던 시간에 돌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시길래. 일부러 도발하는 건가 싶었다니까요. 그때부터 전 영락없이 들킨 줄만 알고…”
“으음 뭐, 충분히 그럴만했네”
“생각해 보니 우용씨는 언니랑 비슷한 구석이 많네요. 술이라던가 담배라던가. 어찌 그렇게 한량 같은 부분이 똑 닮았는지..”
“야야, 한량이라니. 나 이래 봬도 꽤 열심히 산다고”
“우후훗..”
우용과의 대화는 즐겁다.
“알고 있어요. 열심히 하시는 거…”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오백삼십이! 오백삼십삼!”
“끄허엇…”
“하핫 네놈. 이제는 꽤 하잖냐!!”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데 못하면 안 되지!”
들박 피스톤 오백 개는 거뜬하다.
아 물론,
피지컬 만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진행되는 체력 훈련의 성과는 과연 대단했다.
무엇보다 외관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기본 프레임과 운동신경이 타고난 남자와 노력이 만났을 때,
꾸준한 운동은 엄청난 빛을 발한다.
“오우…장난 아닌데.”
자신의 몸이지만 심취할만하다.
코코넛 같은 어깨 근육.
적은 체지방으로 툭 튀어나온 핏대.
쩍쩍 갈라져 있는 탄탄한 복근.
눈에 띄게 볼륨이 빵빵해진데 반해, 체지방은 또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가히 피지크 선수 못지않은 몸이다.
이래서야 거울 앞에서 변태처럼 자신의 몸을 뚫어져라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주인님? 식사 전에 강장제를…꺄악!!”
쨍그랑
“뭐, 뭐야?”
7m에 육박하는 일체형의 기다란 하체를 가진 라크스가 넘어질 리는 없고.
“왜 그래 라크스…”
아니나 다를까.
그저 쟁반을 뿌리치고 양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있다.
당연히 진짜로 눈을 가린 건 아니고, 손가락 틈새로 우용의 몸을 바삐 훑고 있다.
“주인님 모, 몸이…♡ 몸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오..?!”
“참나, 매일 보면서 갑자기 왠 호들갑을..”
상체만 벗고 있을 뿐인데 호들갑이다.
정말이지.
라크스도 많이 변했다.
뭐랄까. 뼛속까지 여성이 되어 버렸다고 해야 하나.
매일같이 우용에게 깔려 절구질을 당하다 보니 정신이 개조됐는지, 라크스는 더 이상 게걸스럽게 입맛을 다시며 침대를 지배하던 천박한 마물이 아니게 되었다.
내숭 같은 거 모르던 솔직한 여편네였는데.
이제는 우용 앞에만 서면 수동적으로 태도가 돌변한다.
“무슨 소란이죠?”
라크스의 호들갑을 듣고 라비앙도 2층으로 올라왔다.
“…이게 뭔가요? 어떻게 이리 무능할 수가…”
바닥에 쏟아진 적갈색 액체를 보며 그녀가 눈살을 찌푸렸다.
정력을 돋우는 효능의 특제 강장제다.
참고로 매일 세 잔씩 먹어왔다.
이내 그녀도 우용의 몸을 보고는,
“어머…”
잠시 동안 넋을 잃는다.
“다들 왜 이래요. 새삼스럽게…”
"으음.. 이렇게 보니까 또 다르군요 학생. 예기치 못한 상황이라는 설정이 중요한 거였네요"
“참나..그게 뭐예요”
빡센 체력훈련.
담배 모조품을 통한 금연.
특제 정력 강장제.
마법 숙달과 연구.
매일 똑같은 지루한 일과.
허나 지루하다고 생각할 틈도 없이 열심히 임해 왔다.
3개월의 시간을 쏟아 우물을 탈출하고 나선 일취월장이었다.
하루 종일 다양한 마법들을 연구하고.
쉬는 시간이면 새로운 주술들을 설계하고 정비하고.
그 결과.
이 오두막에서 교미로 우용을 이길 수 있는 여자는 아무도 없게 되었다.
타샤의 근력을 뛰어넘을 정도로 초인이 된 건 아니지만.
적어도 힘겨루기에서 속수무책으로 패배하진 않았다.
자지만 꼽혀있으면 결국 승리는 우용에게 돌아간다.
웨어울프와의 물리적 교미를 감당할 정도의 기본기를 갖춘 하드웨어.
이를 바탕으로 마법까지 가미하니, 이 오두막에서 우용을 감당할 수 있는 마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성장함에 따라 자연스레 교미 훈련의 내용도 달라졌다.
라비앙을 제외한 여인 모두가 덤비는 것으로 변했다.
그렇게 내빼던 아리아의 경우, 우용의 교미 훈련이 타샤와 라크스만으로 감당이 안 되자 라비앙이 급하게 섭외했었다.
시작은 반강제였지만.
이제는 뭐, 알아서 참여한다.
아리아도 처음이 힘들었지, 몇 번 박히고 나니 내심 우용의 자지를 찾게 되는 것이었다.
제아무리 정신적으로 이겨내려 해도 결국엔 마물이다.
유전적으로 설계되어 있는 본능을 이길 수가 없다.
매일 밤,
세 명이 우용을 상대하는 꼴이 되었다.
타악 타악 타악 타악
"헛...헉...우우…♥"
아리아도 K.O
타샤도 K.O
“마지막이구나 라크스”
“네, 네에…♡”
“최선을 다해라”
“다, 당연하죳?!”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섹스 머신, 그 자체다.
“어머머…대단하네요 학생. 인간 남성인데 마물을 세 명이나…”
곁에서 손가락을 빨며 지켜보던 라비앙이 연신 감탄했다.
홀로 마물 세 명을 압도하다니.
그러고도 체력이 남아도는 우용이, 이제는 조금 무섭기까지 하다.
공포와 흥분이 섞여 기묘한 감정을 만들어 낸다.
괴물이 탄생했다고.
그 깐깐하던 라비앙이 경탄하며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오두막에서 자지를 갈고닦은지 2년.
“선생님. 이제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졸업할 때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