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무스를 반대로 착정한다-55화 (55/55)

〈 55화 〉 EP.11 졸업 시험 (下) (4)

* * *

사령(死?) 문어.

죽은 자의 영혼을 흡수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

이름에서 예상할 수 있듯, 사실 '사령 문어'는 굉장히 악명 높은 종족이다.

세간에 알려지길 착정으로 상대 남성을 죽음에 이르게 할 뿐 아니라 그 시체마저 양분으로 삼는 극악무도의 마물이었다.

허나 거듭된 조사 끝에 우용은 알 수 있었다.

여기에는 다소 오해가 있다는 것을.

“박사님. 전 마법을 쓸 수 있으니까 죽지 않아요”

“소년. 그런 거 아니다. 이제 그만…”

"제 앞에서는 마음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절 믿으세요"

확신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는 우용.

허나 군리는 여전히 복잡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내면 깊이 자리 잡은 트라우마는 쉽게 떨쳐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꾸르르륵...

다리 하나가 우용을 향해 매섭게 덤벼들다 갑자기 우뚝 멈추었다.

연체동물과는 거리가 먼 기계적인 움직임.

군리가 의도적으로 제어한 것이 분명하다.

"하아.. 오늘 이 몸은 최음 능력을 평소의 세 배로 이끌어냈다. 그걸 견뎌냈으니 된 거다."

"......"

문어는 뇌뿐만 아니라 다리도 사고하는 기능이 있다.

헤엄이나 포식과 같은 행동은 뇌가 직접 명령을 내리지만, 나머지 뻗고 구부리는 등의 세세한 동작은 다리가 알아서 한다.

심지어는 뇌의 명령 없이 미각, 촉각 활동도 한다.

이러한 섬세한 감각 덕분에, 문어의 빨판은 자신의 몸을 구별하므로 다리끼리 엉키거나 들러붙지 않는다.

이는 두뇌 뉴런의 거의 2배의 수효를 가진 뉴런이 다리에 분포되어 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마냥 편리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 똑똑한 다리들을 '유용한 도구'로서 사용하려면 하나의 전제가 필수적으로 깔려 있어야 했다.

바로 멀쩡한 상태의 두뇌다.

제대로 된 사고가 불가능해지면 다리들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자유를 찾은 다리들은 제멋대로 남성의 몸에 들러붙어 정기와 양분을 흡수하려 들었으니, 사령 문어들은 허무하게 교미 상대를 잃기 마련이었다.

때문에.

군리는 쾌락이 두려웠다.

조금만 정신줄을 놓으면 마음껏 활개치는 다리들에 의해 남성들이 죽어나갔으니까.

물론, 그녀가 처음부터 본능을 두려움으로 느끼기 시작한 건 아니었다.

그녀의 몸에도 결국 쾌락을 최우선시하는 마물의 피가 흐르고 있었고, 성욕만 해결할 수 있다면 교미 대상이 죽는 건 아무래도 좋았었다.

“...내겐 남편이 있었다. 본능에 따라 정기를 충족하던 내게, 처음으로 사랑이란 걸 알게 해 준 남자였지. 허나 인간이란 나약한 존재…”

사랑하는 애인을 제 손으로 죽였던 실수는 그녀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겼다.

“난 내 자신이 화가 났다네. 종족 고유의 기작을 이성으로 이겨낼 수 없던 내 자신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미웠었다”

군리의 분노는 자신에게 향했다.

마물의 피가 이끌어내는 흥분과 성욕.

그리고 사령 문어 특유의 신경 분포.

그 지긋지긋한 기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것이 군리가 본격적으로 생물 연구에 접어들기 시작한 계기였다.

“생각하는 힘을 기를수록 다리의 통제가 쉬울 거라고도 생각했었지. 그러나 야속하게도. 이 녀석들도 함께 똑똑해지더군”

그녀가 자신의 다리 하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당연히 잘라내는 것은 불가능.

군단장급 마물의 치유능력은 단 1초 만에 잘린 부위를 수복시켰다.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유전자에 설계되어 있는 대로 움직이는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고, 멍청하고, 하찮은 존재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자신이 하고 싶을 때.

자신의 주도 하에.

언제든지 시작하고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존재.

그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생각했던 군리는 점차 학문에 집착하게 되었다.

멍청하게 쾌락을 추구하는 마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

각인된 유전자의 명령, 그리고 도파민의 중독에 따라 움직이기 않기 위해서.

‘쾌락’에 버금가는 자신만의 오락거리를 찾아낸 것이었다.

“이 몸은 결국, 신이 설계한 대로 움직이는 게 싫었던 게야”

“그것이 박사님이 말씀하신 독립이었군요”

“그렇다. 소년도 알다시피 마물의 본능은 이성을 좀먹을 정도로 강하다. 대부분의 마물들이 미치광이스러운 면모를 보이는 이유가 그렇지. 이 몸도 다르지 않아. ‘크사르크사켄 군리’가 있기 전에 ‘사령 문어’가 있지.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그것이 진실이다.”

“……”

“참 우습지 않는가? 우린 결국 꼭두각시다. 유전자의 꼭두각시지.”

잠시간 허공을 바라보던 군리.

이윽고 자신의 연구실을 쭈욱 훑어보다가, 한결 풀어진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그래도 이 몸은 겨우 여기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진심으로 교미보다 연구를 사랑하는 마물이 되었지. 이렇게 긴 세월 동안 금욕이 가능했던 건 멍청하게 고집을 부렸기 때문만은 아니야"

마지막 단추를 잠군 그녀가 다소 비장한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표명했다.

“이 몸은 자신이 없다. 오늘 소년과 끝까지 같다간, 분명 지금껏 쌓아온 것들이 무너지고 말게야. 겨우 쾌락의 족쇄에서 벗어났는데 말이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군리.

언제나 변수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던 그녀가 오늘따라 완고하다.

“감사합니다. 드디어 자기 얘길 해주셨네요”

“소년. 이 몸을 이해하겠는가?”

“이해라…”

2년 동안 가깝게 지내던 여인의 솔직한 이야기다.

우용은 그 여느 때보다도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진심으로 군리의 입장에서 현 상황을 바라보았다.

군리의 슬픔이 얼마나 큰 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제3자이기에 가능한 사견이 하나 있었다.

“글쎄요. 제 눈에 박사님은 틀렸어요. 단단히 착각하고 계십니다”

“뭐, 뭐시라..?!”

“박사님은 조금도 독립하지 못했습니다”

“……”

우용의 발언에 표정이 굳는 군리.

그야 당황스러울만하다.

나름 용기를 내어 솔직하게 털어놓았건만.

돌아오는 게 위로 아닌 지적이라니.

물론 위로를 바라고 말한 건 아니었다.

다만, 자신이 걸어온 길을 부정당하고 쉽게 인정하는 지성체는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박사님의 종족, 그러니까 사령 문어에 대해 조사한 건 비교적 최근입니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게냐”

“박사님이 학문을 좋아하시는 것도 결국 문어의 특성이라는 겁니다. 박사님이 이렇게 저명한 학자가 될 수 있었던 건 또한, 사령 문어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라고요”

“……”

학문계에서 내로라하는 작자들은 공통점이 있다.

종족이 대게 거기서 거기다.

사령 문어를 포함한 소수 종족이 학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말 되겠다.

마치 지구의 소수 민족, 유대인처럼.

이 말인즉슨, 그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학자의 피가 확실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로벨하임 최고의 마법사.

이성과 지혜를 겸비한 최고의 생물학자.

단순히 그녀가 노력했기에 가능했던 걸까?

아니다. 슬프게도 피 터지는 노력만으론 ‘최고’의 타이틀을 따낼 수 없다.

지구나 이세계나 마찬가지다.

즐겨야 한다.

그리고,

즐길 수 있다는 건 재능이다.

‘사령 문어’의 타고난 비상한 두뇌와 탐구욕, 호기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박사님은 확실히 여타 마물들과는 다릅니다. 그야 10년이라니…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교미의 쾌락에서 어느 정도 독립하셨다고 볼 수밖에요. 하지만. 마물의 습성에서 독립하면 뭐 합니까? 아무리 도망쳐도 결국, 박사님을 받아들이는 건 ‘사령 문어’의 지적 호기심이었습니다”

“소년…이 몸은…”

“박사님께서 말씀하신 독립이라면, 지금 당장 연구도 때려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박사님의 탐구욕 역시 신의 설계일 테니까요”

가슴 깊숙이 끓어오르는 거북함에 군리가 우용의 눈을 회피했다.

우용이 이를 방관할 리 없다.

어느새 자리에 일어서 눈높이를 맞춘 우용이 그녀의 턱을 붙잡아 강제로 눈을 맞추며, 계속해서 정곡을 찔렀다.

“독립을 갈구하신다고 말씀하셨지만, 말을 빙빙 돌릴 뿐입니다. 박사님은 단순히 교미가 두려울 뿐이에요. 상대를 죽일까 봐”

“아..아냐..”

“그렇게 똑똑한 박사님이 자신의 모순을 알아채지 못했을 리는 없고. 그저, 줄곧 도망친 거겠죠. 모른 채 해왔던 겁니다. 이 냉혹한 진실을“

“…네, 네놈…그 이상은…우웁?!”

군리가 눈살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깔기가 무섭게. 그녀의 양볼을 붙잡아 강제로 키스하는 우용.

“추웁­춥­”

“우웁…웁­”

처음엔 당황해 고개를 내빼다가도, 계속해서 고집부리며 밀고 들어오자 이내 포기한 듯 우용의 혀를 받아들인다.

“푸하…”

“하아…하아…하아…”

“독립이라느니, 그런 거 생각하지 마세요. 마음 편히 받아들이세요. 박사님을 괴롭히는 문제는 단순합니다. 애인을 잃었던 과거. 그 과거의 상처가 문제입니다”

결코 우용이 함부로 논할 부분은 아니지만, 말해야만 했다.

군리를 구렁에서 꺼내려면 다소 자신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상처를 해결하는 법은 하나다.

교미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 밖에 없다.

“그 상처만 해결하면 이런 금욕 생활 때려치고 박사님도 편해질 수 있는 겁니다. 교미도, 연구도.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실 수 있는 겁니다”

“마, 마음대로라니. 이 몸은 연구만으로도 충분하다. 교미에 대한 미련은 없어”

“무슨 소리예요. 그럼 아래는 왜 이렇게 젖어 있는데요?”

우용이 따지듯 말하며 그녀의 다리 사이로 손을 쑤셔 넣어 검지로 문어 보지를 문질렀다.

­찌걱…

“하읏…♡ 웁­?!”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야릇한 신음.

뒤늦게 입을 틀어막아 보이지만 이미 늦었다.

자지를 간절하게 원하는 문어 보지는 솔직하다.

“크윽..그, 그만둬라. 역시 이 몸은 교미할 수 없다. 다시 성욕에 눈을 떴다간.. 또 누군가를 죽이게 될지도 몰라”

“성욕을 푸는 방법이 꼭 교미만 있는 건 아니죠. 자위가 있잖아요. 좀 더 유순하게 생각하시는 겁니다. 연구를 하다가 머리 식힐 겸 자위 한번. 이런 느낌으로”

“자위라니?! 어, 어쩜…!!”

수치스럽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는 군리.

허나 그렇게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었다.

당장 라비앙만해도 자위로 성욕을 버티는 중이다.

오히려 너무 중독인 게 문제긴 하지만.

10년간 일절 야릇한 행위를 하지 않은 군리라면.

정말 자위만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가끔가다 자지가 생각나면 절 부르는 겁니다”

“하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우용이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떨구며 한숨을 내쉬는 군리.

“그런 저속한 말을 잘도 하는구나”

“마물이 인간에게 저속하다고 타이르는 모습이라니. 기가 막힌데요? 추릅­춥­”

“웁­ 우웁­ 우음­♡”

­찌걱 찌걱 찌걱 찌걱

키스를 재개하며 군리의 항문 같은 질입구를 부드럽게 문지른다.

“하읏…♡ 잘못하면 죽는다. 내 다리들은 만만치 않아. 이 몸을 포함해 9명을 상대하는 것과 같다”

“그 정도로 지성이 있다면 대화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어디 한번 친구가 되어보자구요. 미워하지 말고”

“하으읏…♡ 참 재밌는 소릴…하는구나앗…”

“먼저 이름부터 붙여주는 겁니다”

꽤나 어이가 없는지 군리가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부르르륵...부륵…

끝내 우용의 고집을 받아들인 걸까.

다시금 그녀의 가슴에서 먹물이 새어 나오며 연구복을 점차 적시기 시작했다.

새하얀 먹물에 젖은 채, 흡반에 빨려 들어가듯 구겨져 있는 젖꼭지 부분.

그 야릇한 모양새를 우악스럽게 망가뜨리며 우용이 자지를 들이밀었다.

툭 튀어나온 단단한 빨판 젖꼭지가 손바닥에 노골적으로 느껴진다.

“긴장을 푸세요”

“하으으…♡ 이 몸은 이제 어찌되도 모르겠구나”

“제가 최선을 다하는 만큼. 박사님도 최선을 다해 부딪히는 겁니다”

거듭되는 우용의 속삭임에 살짝이나마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군리.

쾌락에 솔직해지자 거짓말처럼 굳어 있던 문어 다리들이 우용을 향해 꾸물거리며 올라오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전신을 옭아맬듯한 공격적인 자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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