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던전 실습(2)
* * *
나는 동굴로 더 들어갔다. 걸을 때 마다 발 밑에서 축축한 흙이 바스라진다. 동굴 위에는 뾰족뾰족한 종유석이 듬성듬성 나 있고, 종유석 끝에는 습기로 가득찬 물방울이 방울방울 매달려 있다. 굉장히 축축해서 기분이 나쁘다. 너무 어두워서 간단한 라이트 마법을 전개했다. 그제서야 앞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으.. 축축해.'
얼마나 걸었을까?
바스락
저 앞, 어두운 곳에서 축축한 흙이 생물에 의해 밟혀 바스라지는 소리가 들린다.
'찾았다.'
바스락, 바스락
소리를 들어보니 여러마리가 있는 거 같다. 음.. 5마리 정도 인가?
캬아악
어둠속에서 거대한 개미가 그 단단한 입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개미는 무려 3m나 되었다. 저게 개미인가? 개미를 단단하게 감싸고 있는 외골격은 어둠속에서 내가 만든 빛으로 인해 번쩐번쩍 광을 냈고, 턱에는 마치 거대한 톱날 같은 턱이 섬뜩한 빛을 냈다. 어지간한 물리공격에는 상처조차 나지 않을 거 같았고, 마법 계열도 저항력을 가지고 있는 거 같다.
개미들은 나를 발견하고는 일제히 달려 들었다. 가장 앞에 있는 개미가 무시무시한 턱을 내밀고는 돌진했다.
[쉴드]
캉!
개미가 내가 전개한 쉴드에 의해 막혔다. 개미는 당황한듯 뒤로 다시 물러나다가 턱으로 보호막을 짓씹어댔다. 뒤이어 다른 개미 들도 쉴드를 갉아 먹었다. 마력을 먹는 특성이라도 있는 걸까? 무슨 개미가 이렇게 특징이 많아?
콰득
내가 전개한 쉴드가 깨지고 있다. 그틈에 나는 마력으로 장검을 만들었다. 나는 내가 만든 장검을 한손으로 가볍게 잡았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한다. 내 몸속에 녹아 들어 있는 마나가 내 의지에 반응한다. 마나는 내 고유능력으로 인해 오러로 바뀌었다. 오러로 성질이 바뀐 마나는 내가 인도하는 길을 따라 몸을 가로지르며 검에 점점 응축 되었다. 어느새 내검은 묵빛의 강기가 서려있었다.
쨍그랑!
내가 전개한 쉴드가 마침내 섬뜩한 소리와 함께 깨어지고 거대한 개미 한마리가 턱주가리를 들이 밀었다. 개미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어 내 머리가 있는 곳을 짓씹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빠르게 피하고는 개미들을 향해 파고 들었다.
'왼쪽 어깨.'
날카로워진 감각이 적들의 공격을 예상한다. 개미가 내 어깨를 노리고 쇄도했다. 나는 상체를 틀어 한끗차이로 피하고는 손에 쥔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뎅겅
내가 자른 개미의 머리가 허공에 빙글빙글 돌고는 땅에 툭 닿았다. 그게 신호라도 되는듯 나머지 4마리의 개미들도 일제히 달려들었다.
내게 달려드는 개미들을 보고는 차분히 검을 바로 잡았다. 한번에 끝내기 위해 오러를 끌어올려 검에 압축하고 또 압축했다. 순식간에 압축된 강기는 내가 검을 앞으로 휘두르는 것과 함께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마치 피식자를 유린하는 포식자 처럼, 날카로운 발톱 모양의 강기가 서늘한 빛을 내며 개미들에게 쇄도했다.
서걱
아주 작은 소리. 그게 개미들의 마지막이였다. 강대한 기운을 가지고 있던, 어쩌면 밖에 나가면 재앙이라고 불릴 수 도 있는 개미들의 마지막은 싱거웠다.
검에 묻어있던 개미들의 피를 강하게 휘둘러서 털어내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확실히.. 강하긴 한데.. 애매하네.'
'으음, 뭔가 너무 싱거워. 잔뜩 기대했는데..'
확실히 개미들의 등장은 나름 분위기 있었다. 어두컴컴한 동굴 속 거대한 개미가 붉은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본다. 확실히 개미가 가진 기운은 강대했다. 하지만 그뿐인걸까? 개미들은 너무 쉽게 으스러졌다.
'뭔가 손맛을 느낄 틈도 없었고 말이지.. 그냥 가볍게 휘두르니까 툭 하고 잘리니 말이지..'
하아.. 잔뜩 기대하고 있던터라 흥분해있던 몸을 뜨거운 숨결을 내뱉으며 식혔다.
'그래도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더 가볼까?'
더 안으로 들어 갈 수록 던전은 매우 복잡해졌다. 마치 일부러 길을 잃어버리게 만드려고 하는 악의가 느껴진달까? 교묘하게 환각 마법이 발동되고 있어서, 어지간한 사람들은 방향감각조차 잃은 채로,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옳을 길인줄도 모르고 더더욱 깊은 곳으로, 저 어둠으로 빠져버리게 될 것이다.
'물론, 나한테는 아무런 영향도 못 주지만.'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이제야 알거 같다. 왜 이렇게 굴이 많은지, 도대체 왜 그렇게 규모가 큰지. 왜 '개미의 굴'이라고 불렸는지.
내 앞에는 거대한 동굴을 가득 매운 수없이 많은 개미들이 보였다. 그들은 덩치도 더 컸다. 4m정도? 수는 어느정도 인지 가늠도 안된다. 저 앞 보이지 않는 어둠부터 동굴의 내 앞까지. 수없이 많은 개미들이 벽을 가득 메우며 내게 다가 오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오랜만에 난전이라니, 너무나도 설렜다. 몸에 아드레날린이 휘감겼다. 근육이 수축하고 몸에 열이 올랐다. 감각이 매우 민감해졌다. 아찔한 흥분감이 내 몸을 휘감았다.
씨익
나는 미소지었다. 그래, 이정도는 돼야지. 그래야 내가 기대한 보람이 있지 않겠어?
검에 오러를 휘감고, 오러를 이용해 내 신체를 강화했다. 마법을 사용해 내 몸을 더 강화시켰다.
[속도강화]
[감각확장]
[근력강화]
나는 검을 양손으로 꽉 말아쥐고는 개미들을 향해 달려 들었다.
***
라이온은 눈을 떴다. 컴컴한 동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던전인가. 라이온은 생각했다. 자신이 할일은 무엇인가?
그때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라이온은 등에 맨 거대한 도끼를 꺼내 들었다.
캬아악!
어둠을 뚫고 거대한 개미가 쇄도했다.
라이온은 도끼에 휘백색 오러를 휘감고는 도끼를 머리위로 들어올려 개미를 향해 내리 찍었다.
콰직
거대한 힘에 의해 도끼에 부딪힌 개미의 머리가 산산조각 났다. 마치 그게 신호라도 되는 듯이, 저 어둠속에서 무수히 많은 개미들이 쇄도했다.
'그렇군, 그저 내 앞에 있는 적을 으스러트리면 되는거였어.'
라이온은 끝없는 개미의 군세를 향해 휘백색으로 빛나는 도끼를 휘둘렀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개미의 군세에 뛰어들고 나서는 본능에 몸을 맡겼다. 그저 몸이 시키는대로 검을 휘둘렀다. 마법을 영창했다. 검이 한번 궤적을 그릴때마다, 마물 특유의 초록색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헬파이어를 영창해 재가 되버린 개미에게서 탄 냄새가 났다. 사방에 피가 튀고 살이 흩날린다. 단단한 외골격은 자신을 향해 파고드는 검을 막지 못했다.
정신을 차렸을때는 모든게 끝나 있었다. 끝도 없이 몰려드는 개미들은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사방에 피와 살이, 개미의 껍질이 쌓여있다.
시산혈해.
딱 그말이 떠오르는 광경이였다.
"하아.."
몸이 잔뜩 달아올라 달뜬 한숨을 내뱉는다. 이게 뭐야..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쓴 웃음을 짓는다. 가끔 이럴 때가 있었다. 마치 마왕의 피에 각인이라도 된것일까? 적을 잔혹하게 죽일때마다 마음속에서 묘한 쾌락이 차오른다. 아주 미약하게 떠오른 그 쾌락은 미쳐 즐기기도 전에 사라져서, 끝없이 또 다른 쾌락을 찾게 만든다.
원래라면 그 쾌락은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 애초에 그것조차 절제를 하지 못한다면, 나는 이미 제국에서 끔찍한 살인귀과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물을 죽일 때는 참을 필요가 없다. 쾌락을 쫓을 수 있다. 그 사실에 미약하게 나마 걸려있던 자물쇠가 풀리고 쾌락을 쫓다보면, 이렇게 제정신을 차리면 이런 광경 인것이다.
'자제를 해야하는데..'
마음이 혼란스럽다. 마치 마왕의 피가 내게 말하는 거 같다.
'너는 도망칠 수 없다고.'
너도 다른 마왕과 똑같이 피에 미친 살인귀과 될거라고.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까득
이빨이 으스러지게 깨문다. 웃기지 마. 나는 달라. 너네들과는 달라. 나는 피에 미치지 않아. 나는 너희와 똑같은 길을 걷지 않을거야. 방해 하지마. 꺼져.
키득
머릿속에서 그 목소리가 비웃는다. 해볼 수 있으면 해보라는 듯, 지켜보고 있겠다는 듯, 그 비웃음은 마치 그렇게 느껴졌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그 목소리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마치 내가 잘못들은 것처럼.
"하.. 이게 뭐하는 짓인지."
짜증이 치밀어 올라 인상이 찌푸려졌다. 눈을 가리고 있는 앞머리를 스윽 쓸어넘겨 뒤로 넘기고는 생각했다.
나는.
죽이는 것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고.
피에 미치지 않았다고.
그저 짜릿한 싸움을 즐기는 거라고.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에서 떠오르는 감정을 애써 무시한다. 그 감정은 내가 아니다. 이 피에 각인된 본능일 뿐이다. 나는 내 감정을 지배 할 수 있다. 나는 다른 마왕들 처럼 되지 않을 것이다.
끊임 없이 부정했다. 그것은 내 감정이 아니라고. 그저 일순간 떠오른 피에 각인된 본능이라고. 내가 통제 할 수 있을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만약 이 감정이. 내가 느끼고 있는 지금 떠오르려는 이 감정을 내가. 내 감정이 맞다고 긍정한다면, 그때는 내가, 내가 아니게 되 버릴거 같아서.
떨리는 손을 피가 나올정도로 쥐고는 지금의 감정을 저 마음 깊숙한 곳에 쳐 박았다. 더이상 떠오르지 않기를 바라면서. 나는 내게 말했다.
'뭘 그리 생각하고 있어?'
'아무일도 없었잖아.'
'왜 그렇게 울상인거야?'
'웃어.'
나는 방긋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남들이 보면 감탄이 나올정도로 아름다웠으나, 그 얼굴은 어딘가 망가지려 하고 있었다.
* * *